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9
78화 희비가 엇갈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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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옹의 말에 여포는 주먹을 움켜쥐며 분한 듯 말했다.
“정 자사는 작게는 이 여포의 원수고, 크게는 나라와 백성을 팔아먹은 죄인인데 어찌 그를 공격하는 것이 불의한 것이 됩니까?”
여포가 따지듯 말했지만 채옹은 화를 내기보다는 그를 다독여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었다.
“여 장군이 정 자사에게 원한이 깊음을 이곳의 사람들은 알고 있으나 저잣거리의 백성들이 알 수 있겠소? 증거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오직 자신이 믿는 것만을 진실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아셔야하오.”
“······.”
“장군이 병주성을 취하면 장군과 정 자사와의 관계를 알 리 없는 세상 사람들은 장군을 불의한 자라 손가락질 할 것이오.”
정원이 북사군의 방비를 포기하며 정예병들을 모두 천정관에 모아둔 일로 병주 사람들의 인심을 조금 잃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원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병주성 이남의 백성들은 여전히 그를 칭송했다.
뿐만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아는 진실은 정원이 명문 무가 출신도 아닌 여포를 군문에 들여 중히 썼다는 점이었다. 정원이 은덕을 베풀지 않았으면 어찌 지금의 여포가 있겠냐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 이대로 복수도 징죄도 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여 장군,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仇 十年不晩)이라 했소.”
채옹은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로 여포를 다독였다. 하지만 여포는 초선이 이 말을 해줬을 때와 같은 대답을 했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그러자 채옹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군자보구 십년불만이라는 말에 얽힌 얘기를 해드리리다. 그러면 진짜 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거요.”
채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여포이나 장내의 모든 이들이 채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 소양왕 때 범저라는 사람이 있었소.”
채옹은 진나라 소양왕 시절에 범저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범저는 위나라에서 죽을 뻔했다가 진나라로 도망쳐 소양왕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은원을 분명히 하여 소양왕의 총애를 받게 되어 몸이 귀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빈한하여 어려움을 겪을 때 작은 도움이라도 주었던 자는 하나도 빠짐, 없이 찾아가 후히 은혜를 갚았다.
반대로 노려 본 것 같은 작은 원한까지 하나도 잊지 않고 반드시 보복했다.
범저는 위나라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위제를 피해 진 소양왕 36년에 소양왕을 섬기기 시작하여 소양왕 46년에 결국 위제를 죽게 하여 원수를 갚았으니 이것이 바로 ‘군자보구 십년불만’의 고사였다.
채옹은 고사를 들려주고 난 후 여포의 소회를 물었다.
“자, 어떻소?”
“범저라는 자가 정녕 군자가 맞습니까? 제가 아무리 일학무식이라 하나 도가에는 신선이 있고, 유가에는 군자가 있다는 말은 알고 있습니다.”
“도를 이루면 신선이고, 덕과 예를 알면 군자라 하지만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여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자 채옹은 손등으로 수염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군자라 함은 학문이 깊고 덕행이 크니 유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나 세상 천지에 그런 사람이 있겠소? 내 일찍이 나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부터 경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나 정 자사에 대한 복수심은 가눌 수가 없었소.”
“그러면 이 세상의 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자 유림의 거두인 채옹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난세에는 승자만이 군자요. 그 옛날, 범저가 그랬던 것처럼 치욕을 참고 때를 기다려 몸이 귀하게 되고, 힘을 길러 원수를 갚으면 그를 마땅히 군자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저더러 군자가 되라는 말씀 같습니다.”
이에 채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세에 진정한 도를 구하는 자는 ‘탕아(蕩兒)’일 뿐이고, 난세에 진정한 덕을 구하는 자는 군웅들의 등살에 웅지를 펴보지 못하고 그 빛을 잃을 것이니······. 난세에 도와 덕을 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것으로 자신을 귀하게 하는 자야 말로 군자요, 영웅이니 여 장군은 마땅히 난세의 군자가 되어야 할 것이오.”
가후와 저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포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너무도 고상한 말이었으리라. 이를 눈치 챈 가후가 나섰다. 그는 여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채옹의 말을 풀어주었다.
“여 장군께서 얻으셔야 할 도(道)는 위로는 여 장군 자신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적들의 온갖 계략과 선동에도 장군의 세력은 흔들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구해야 할 덕(德)은 무엇이오?”
“난세의 덕(德)은 다른 땅에서 핍박받는 백성들을 구휼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지요. 그리되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백성들이 장군의 품에 찾아와 안길 것이니 땅과 호구수를 더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후의 풀이를 듣고서야 여포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한 차례 탄성을 터뜨리고는 채옹과 가후에게 두 손을 모아 들고 말했다.
“이 여포가 무슨 복이 많아 현인들을 선생으로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백개 선생께서 제게 이제 어찌 해야 군자가 되는 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존심을 굽혀 이를 취하고, 야심을 숨겨 익을 얻으니 이것이야 말로 군자지로라 할 수 있다오.”
그러자 여포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단목영에게 포권을 하고는 채옹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문을 열었다.
“자초 선생께서 일전에 말씀하시길 진정한 상인은 집을 나설 때 오장육부를 걸어두고 나선다 했습니다. 그러면 상인도 군자가 아닙니까?”
“총명······ 총명······! 여 장군이 일학무식이라고는 하나 오거서의 현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지혜를 얻었으니 여 장군은 일학무식이라 할 수 없소. 백학을 통달하고도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자가 많은데 여 장군은 그들보다 났다 하리다.”
여포가 채옹의 칭찬을 받자 무장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뭘 또 박수까지······.”
여포가 몇 차례 손사래를 치자 그제야 박수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때를 맞춰 가후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분양과 대릉에 군을 주둔시켰으니 정 자사에게는 뒤통수와 옆구리에 비수가 겨눠진 것과 같습니다. 함곡관의 동탁까지 있으니 정 자사는 어느 쪽으로든 출병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로서 장군께서 동탁과 한 약조는 지켜지게 될 겁니다.”
“그 건은 그리 알고 이쯤에서 마무리 하십시다.”
“예, 장군.”
“그리고······. 의록!”
여포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진의록은 덜컥 겁이 났다. 엄상의 앞에서는 죽이니 어쩌니 위협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였건만 여포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진의록의 철심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예? 예······! 장군.”
진의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며 대답했다.
‘또 뭘 시킬려고······. 설마 또 군리 일 하러 가라고 닦달을 할 건가? 내가 어쩌다가 저런 놈을 만나가지고······. 평생을 죽간만 보고 살았는데 죽을 때도 죽간만 보다가 죽겠생겼구나!’
진의록의 걱정과는 달리 여포는 그를 칭찬했다.
“진의록이 엄상과 담판을 지어 큰 공을 세웠으니 앞으로 유세 하는 일을 맡긴다.”
진의록은 처음에는 여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와 닿지가 않았다. 채옹이나 가후와 같은 걸출한 현인들 사이에 있어서 그렇지 진의록도 제법 머리에 먹물 깨나 먹은 자였다.
이내 여포의 말을 알아듣고 드디어 군리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짖었다.
“정말이십니까? 저 이제 군리일 안하는 겁니까?”
진의록은 뛸 듯이 기뻐하며 물었다. 그러자 여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의록은 쉽사리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다.
“정말이죠? 거짓말 아니죠?”
“그렇다니까!”
여포에게 확답을 듣고서 진의록은 그대로 서황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그간 여포의 집무실에서 쌓은 전우애가 그들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군리에서 벗어난 것은 오직 진의록 한 사람 뿐이었다.
“장군, 저도 빼주시면 안 됩니까?”
서황이 혹시나 해서 말을 던져보았지만 역시나 여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심히 해, 임마.”
“왜 의록만 빼주고 난 안 빼줍니까?”
“의록은 너보다 오래 군리일을 한 데다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빼주는 거 아니냐?”
그렇게 진의록과 서황은 서로 희비가 엇갈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 * *
여포는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그 손으로 갸우뚱 기울어진 고개를 바쳐 한동안 말없이 수하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꺼낸 첫 마디.
“군리가 한 자리 비었네?”
여포의 말 한 마디에 장내는 지독하게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여포가 부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려 하자 다들 여포의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군리 자리가 한 자리 비었으니 누가 서 공명이와 함께 일하도록 할까?”
“흠······! 이 몸은 허리가 좋지 않아 이만 일어나봐야겠네.”
제일 먼저 도망친 것은 채옹. 그의 뒤를 이어 가후도 일어섰다.
“군략을 짜봐야 할 것 같아서······.”
그들이 두 손을 모아 들어 간단한 인사와 함께 사라지자 무장들 몇몇이 우르르 일어섰다. 그들은 무예를 단련하러 가겠다며 사라졌고, 단목영은 장부를 정리하겠다며 꼬리를 말았다.
몇 남지 않은 자들 사이에서 저수는 위기감을 느껴야만 했다.
‘뭐라도 해야만 한다! 내 진가를 증명하지 못하면······.’
저수는 자기도 모르게 서황에게로 눈길이 갔다.
‘저렇게 되고 말 거야!’
저수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없으면 감군으로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장수들 각자가 휘하 병력을 데리고 진행의 훈련을 하고 무예를 수련하기 때문에 대군을 지휘하는 일을 할 수 없고, 감찰을 하는 것 정도만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여포군은 군령이 단순하고 큰 죄를 지은 자만 처벌했다. 그 마저도 서열 문화 때문에 죄 짓는 자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 저수는 할 일 없이 시간이나 때우는 처지였다. 하지만 군리 노릇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군사 노릇을 하자니 여포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가후가 있어 그것도 힘들었다. 감군의 직을 맡고 있으니 휘하에 병력을 따로 둘 수도 없었다. 그것은 여포군의 병력이 만 단위가 넘어갔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저수가 군리 일을 맡지 않으려면 여포가 자신을 다른 곳에 써먹게 해야만 했다.
“저 선생은······.”
여포가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을 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으로 초빙한 자에게 군리 일을 맡긴다는 것이 여포로서도 썩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 공명이! 당분간 너 혼자서 해라.”
여포의 말에 서황이 발끈해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걸 어찌 혼자 하란 말입니까?”
“초선이가 도와주잖아?”
“하루에 두 시진 정도 밖에 안 도와줍니다.”
“빨리 뽑아줄게. 있어봐.”
여포가 일어서서 평정을 파하려 하자 서황이 그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언제 뽑아주실 건지 확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서황은 여포가 어물쩍 넘어가려하자 집요하게 확답을 구했다. 어차피 이 마당에 눈에 뵈는 게 있겠는가.
“오늘 초선이와 얘기해보겠다. 됐지?”
그제야 서황은 여포의 팔을 붙잡은 손을 놓고 포권을 취했다.
“오늘 평정은 이걸로 끝낸다. 다들 돌아가라!”
여포는 수차례 손을 휘휘 내젓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에 다른 이들도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나 둘씩 장내를 벗어났다.
* * *
평정을 끝낸 여포는 그 길로 곧장 초선의 처소를 찾았다. 진의록이 군리에서 빠진 일로 새로운 군리를 뽑으려 그녀와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채옹과 가후 같은 현인을 곁에 두고 있으나 굳이 초선을 찾은 것은 두 선생을 위함이었다. 채옹이나 가후가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군리로 천거했다면 그와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초선아, 진의록을 군리에서 빼주었다. 누구를 군리로 들여야겠느냐?”
“오라버니, 군리는 하찮은 자리 같아보여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으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들여야 할 겁니다.”
“그래서 수하들 중에서 찾아보려 하는데 쉽지 않구나. 다들 하기 싫어하니······.”
여포는 부하들이 군리 자리를 어찌 생각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군리 자리는 애초에 내심 싫어하는 자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단 두 사람만을 군리로 둔 것은 가혹한 처사였어요.”
군리가 된 진의록과 서황은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 세상에서의 기억 때문에 괴롭히고 싶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세상에서는 여포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여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큰 공을 세운 진의록을 군리에서 빼준 것이다.
전공으로 따지자면 서황 역시 흉노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웠지만 싸우지 않고 뜻을 이루게 한 진의록의 공 보다는 못하다 할 터였다.
예전 세상의 여포였다면 서황의 공을 진의록의 공보다 높이 샀을 것이다. 그 때 그 시절에만 해도 여포에게 사인들이란 잔소리만 해대는 골치 아픈 자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금의 여포는 그 때의 여포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아낀 재물을 유용하게 쓰지 않았더냐?”
군리의 수를 늘리지 않은 것은 여포의 소소한 복수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작 중요한 까닭은 따로 있었다.
“하긴 군량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조정에서 보내오는 군리의 봉록도 요긴하게 쓰이긴 했죠.”
초선의 말대로 군리 십여 명의 봉록조차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군문의 장졸들만 먹이기에도 빠듯한 식량사정에서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는데도 군량을 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재물로도 양곡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전쟁에서 죽은 장졸들의 유가족에게 보내는 양곡은 대부분 군리가 받을 양곡들로 충당되었다.
“무장들 중에 할 일 없는 녀석들은 글을 모르니 군리 일을 맡길 수 없다. 그렇다고 선생들 중에 한 사람을 군리로 쓸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고조 유방의 공신 소하의 경우를 보면 행정과 보급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네 말은 선생들 중 하나를 군리로 써야 한단 말이냐?”
“쉽지 않네요.”
초선도 군리 일을 도와보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업무량을 잘 알고 있었다. 채옹은 나이가 있는데다가 천하의 백개 선생에게 한낱 군리 일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후는 군사의 일을 일임하였으니 그 역시 무리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저수 한 사람 뿐이었다.
“저 선생이 요즘 할 일이 없다만 그렇다고 저 선생을 군리로 쓸 수는 없지 않느냐?”
“문인들의 자존심은 작은 것에도 쉽게 꺾이죠.”
무장들의 자존심은 패배로 인해 꺾인다. 하지만 사인들은 작은 언쟁과 처사에도 쉽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초선은 이를 경계하는 말을 들려준 것이었다.
“그럼 어찌 한다?”
“저를 군리로 삼아주세요.”
“일이 많지 않겠느냐?”
“저 뿐만이 아니라 백개 선생의 따님인 문희 언니도 있고, 제 처소에서 제 시중을 드는 소옥도 경서를 탐독한 인재입니다.”
“그렇구나!”
“천자의 여인이 아닌 이상 여인의 몸으로 관직을 얻을 수는 없으니 대외적으로는 서 공명 아저씨만을 군리로 내세우면 될 일이에요.”
여인에게 관직을 내리는 것은 유가의 나라인 한나라에서는 불가한 얘기였다. 그러니 내부적으로만 군리로 대우를 하자는 것이었다. 학문이 높은 여인들을 그냥 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이다. 여인의 몸이라 해도 학문이 높다면 내 반드시 중히 쓰겠다.”
그 때 밖에서 여포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형, 안에 계시오?”
상개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냐?”
“좀 나와 보시오. 가 선생이 대형을 모셔오라 하셨소.”
“왜?”
초선과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여포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문지방을 넘었다.
“십상시 조 대인이 오고 있다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