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8
8화 여포군은 당예기(唐猊旗)를 들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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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는 결국 아껴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여 봉선아, 잘 들어라. 주군께선 호관 일대를 평정하기위해 내달 출병하신다.”
호관(壺關).
호구관(壺口關) 혹은 호관구(壺關口)로도 불리는 곳으로 이름처럼 병모양의 협곡에 자리잡은 관문이다.
예로부터 병주는 서로는 황하를 넘어야하고, 동으로는 태항산맥을 끼고 있어 오가는 길을 병풍처럼 막고 있는데 하내와 빠르게 오갈 수 있는 길이 바로 호관이다.
이 길이 아니면 태항산맥을 크게 돌아가거나 물길을 타고 가는 수밖에 없으니 호관이야 말로 병주의 입구라고 할 수 있었다.
함곡관에 비할 바는 아니나 호관도 천연의 요새로 가히 백인으로 만인을 막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잃고 병주를 지킨다 함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호관 일대를 평정하신다함은 흑산적을 치겠단 말씀이십니까?”
“흑산적이 감히 호관을 넘보고 있으니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호관이 흑산적에게 넘어가면 상당 일대는 흑산적의 소굴이 되어버릴 게 틀림 없었다.
“그러면 하는 수 없지요. 제 부대만 끌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평지에서 총력전을 펼친다면야 널 선봉에 세우겠으나 산지가 대부분인데다가 승패가 빨리 결정되지 않겠구나. 네가 북적을 막는 사이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면 안문과 정양의 태수들에게도 원군을 청하시지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예비병력을 죄다 끌어모아서라도 흑산적이 병주로 넘어오는 것만은 막아야겠다. 내일 출발하기 전에 내게 들러 전서를 받아가거라.”
“안문과 정양의 태수들에게 전하실 서신입니까?”
여포가 묻자 등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들은 물론이고, 운중에도 들러주었으면 좋겠구나.”
“운중에선 병력을 빼기가······.”
여포가 말끝을 흐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운중에서 병력을 빼는 건 애매했다. 병주 땅에 침입한 흑산적을 격퇴하는 것도 물론 급한 일이다.
하지만 북쪽 변방의 이적들은 흉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북의 선비와 오환 역시 무시 못 할 위험요소였다. 기주의 북부와 어깨동무하듯 이어지는 병주 운중군 역시 북방의 이적들을 막아내는 중요한 곳임에는 틀림 없었다.
“운중에 무맹종사 장양이 있으니 병력을 조금 더 빼더라도 걱정이 없다.”
등고의 말에서 장양이라는 자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졌다.
장양.
자는 치숙으로 정원이 병주를 장악하고 외적들을 막는데 큰 공을 세운 무장이다. 그 용맹이 어찌나 뛰어난지 운중에서 다시 그 만한 무장이 나오지 않을 거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 장양 형님이 있었지!’
장양이라는 이름을 듣자 여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장양과는 연배도 제법 차이가 나는데다가 관직도 장양이 훨씬 높았다.
여포는 아직 정식 관직도 없고, 이제 겨우 병주군의 부장이지만 장양은 자사부의 속관 중 하나인 무맹종사로 종군하고 있었다.
접점이 없을 듯한 두 사람이지만 둘은 제법 친분이 깊었다. 동향 출신인 데다가 장단이 잘 맞아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이각, 곽사 놈이 내게 수배를 내려 모두들 날 잡으려 할 때 숨겨주었던 형님. 하비에 고립되어 있을 때에도 날 구하려 했던 것도 장양 형님이었지.’
여포는 왠지 모르게 장양이 보고파졌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내게 들리는 것 잊지 말고······. 군량과 건초는 미리 준비해놓을 테니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느니라.”
여포는 등고에게 읍을 하고는 물러났다.
* * *
다음날.
아침부터 병주성이 들썩들썩했다.
여포군이 출정했기 때문이었다. 군세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이백여 남짓한 여포군 병력과 수십의 짐꾼 정도가 다인 조촐한 행렬이었다.
그럼에도 병주성이 떠들썩한 것은 여포군의 깃발 때문이었다. 당예기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큰 전쟁이 있을 거란 얘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병주 자사 정원까지 나와 배웅을 하니 작은 행렬이라도 병주성 백성들의 관심이 여포군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진양 병주성을 떠나 마을과 현을 지날 때마다 여포군의 규모가 불어났다.
그건 모두가 당예기 때문이었다.
당예기는 여포조차도 그 존재를 모를 만큼 알려지지 않은 물건이었다.
당예기가 마지막으로 쓰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 단석괴가 선비병들을 끌고 병주를 들이쳤을 때였다.
적의 예봉과 맞부딪히면서 돌파를 막았지만 전멸. 그 이전의 당예기 부대도 최후는 비슷했다.
이렇듯 끝이 좋지 않지만 나이든 자들이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당예기는 굶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기근과 환란이 비켜간 병주 땅에도 굶주린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 당예기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자 굶주린 백성들이 너도나도 여포군에 가담하려 했다.
쓸만한 자들을 가려서 받았는데도 정양을 지났을 때 여포군의 수는 500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포군은 산지를 빠져나와 운중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병주성을 나선지 열흘만의 일이었다.
여포는 좋은 길로 접어들자마자 돌연 신경질을 냈다.
“아- 나! 그 많은 놈들 중에 글을 아는 놈이 한 놈도 없다니 이게 말이 돼?”
“대형, 또 그 얘기요? 지겹지도 않소?”
위월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여포는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도 이제 군세가 오백인데 그 중에 글 아는 놈 하나는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요즘은 오백도 군대라 하오?”
“전에는 일백이었다. 그 때 비하면 다섯 배나 늘었으니 대군이지.”
그러자 위월은 질렸다는 듯한 얼굴로 대꾸했다.
“회택에 한 사람 있었잖소.”
“그 노인네는 숟가락도 못 들것 같더만······. 업고 다닐 일 있냐?”
이번에는 성렴이 불쑥 끼어들어 입질을 해댔다.
“마읍에도 하나 있었잖소.”
“그 노인네는 눈이 침침해서 글을 알아도 못 읽잖아.”
암만 병주라도 글을 아는 백성이 이리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을 읽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자들은 일찌감치 종군하고 있으니 여포군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대형, 내 형님이 돌아오거든 한번 물어보슈.”
위월이 대뜸 말하자 여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위월의 형이 얼핏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형?”
“내 형, 위속 말이오.”
‘위속’이라는 이름이 귓구멍에 파고들자마자 여포는 게거품을 물고 날뛰었다.
“위속, 이 새끼 어딨어? 잡히면 뼈 마디마디를 죄다 분질러 버릴 테다!”
고함을 치며 손에 든 화극을 크게 휘둘렀는데 그만 애꿎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며 흙먼지를 크게 일으켰다.
이토록 여포가 길길이 날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속은 후성, 송헌과 짜고 자신을 팔아넘긴 배신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닌 거지만······.
친형을 박살낸다는데 위월은 남얘기 하듯 심드렁한 어조로 대꾸했다.
“투덜거리는 거 듣기 싫다고 유배지로 죄인을 데려가는 일을 맡겨 보내버렸잖소.”
“내가 그랬나?”
“기억 안 나오? 버르장머리 고쳐질 때까지 모래만 밟고 다니라고······.”
얘기를 듣자 생각이 난다.
‘내가 못할 짓을 많이 하긴 했구나.’
모든 일에는 그 원인이 있는 법. 위속이 변절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였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이제 기억난다. 그런데 어찌 위속에게 물어보란 말이냐?”
“유배 오는 자들이 그렇잖소. 하나같이 머리에 먹물은 들어차가지고는 하는 말마다 알아듣지도 못할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그 자들이 왜?”
“유배 오는 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니 쓸만하다 싶은 놈 있으면 한놈 빼다가 데리고 다니면 되지 않겠수?”
“죄인을 빼돌리는 건 큰 죄다.”
“아이고, 대형. 우리가 언제부터 법 지키고 살았소? 게다가 삭방에 유배온 자들은 거의가 죽을 때까지 유배 풀리지도 않고, 찾는 이도 없으니 죽었다하면 다들 그리 믿소.”
삭방으로 유배를 가는 건 사형을 당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삭방은 척박한 땅으로 사예와는 그 기후가 달라 사예의 인사들이 유배를 오면 풍토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수시로 북적들이 침입하는 곳이니 그들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원한을 지닌 자가 있으면 이송 중에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쨌든 죽는 건 매한가지가 아닌가.
“삭방까지 유배 올 정도면 얼굴이 팔린 자일 텐데 괜히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다.”
여포가 이리 나오자 위월은 입을 삐죽 거리며 말의 속도를 낮춰 여포와의 거리를 벌였다. 그 틈을 성렴이 파고 들었다.
“대형, 이제 운중이니 장 사부를 만나면 한번 청해보슈. 장 사부 휘하에 인재가 많으니 그 중에 글을 아는 자 하나 없겠소? 장 사부께 말해 한 명만 내어달라 해보시오.”
장 사부는 운중에 있다는 무맹종사 장양을 말하는 것이다.
장양은 높은 무예와 의기로 운중과 오원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또 군문으로 이끌었기에 병주의 젊은 무장들 사이에서 ‘사부’라는 존칭을 붙여 불리고 있었다.
“그럴까?”
여포가 관심을 보이자 성렴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해서 미소라고 짓는 것이 남들이 보면 인상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저 고개만 넘으면 성락이 지척이니 말을 달리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운 좋으면 성락에서 장 사부를 만날 테고, 아니면 못해도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니 먼저 가보시든가.”
“성렴아, 언제 이리 머리가 좋아졌느냐? 요즘 나 몰래 공부라도 하는 게냐?”
“참나! 내가 집이 빈궁하여 글을 배울 기회가 없어 그렇지 배웠으면 대 문호 소리는 듣고 있을 거요.”
“뭔 헛소리야?”
“기본적으로 내 머리가 좋다는 말이오.”
여포는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홍오야, 화극 좀 받아라.”
여포는 홍오를 불러 방천화극을 넘겼다.
아무래도 방천화극의 무게가 있으니 빨리 가려면 다른 자가 들게 해야 했다.
“대형, 내가 짐꾼이오?”
방천화극을 넘겨받은 홍오가 투덜댔지만 여포의 입고리가 씰룩인다.
“웬만한 자들은 들고 있지도 못한다. 힘 꽤나 쓰는 자라야 들고 다니고, 말까지 타려면 창도 좀 쓸 수 있어야 하는데다가 화극은 내 애병이니 아무한테나 맡길 수 있느냐?”
어거지 칭찬에도 홍오는 입이 귀에 걸렸다.
‘역시 쉽다니깐······.’
여포는 홀가분하게 말을 달려 혼자만 앞으로 치고나갔다.
“성렴아, 애들 추슬러서 데려 오너라.”
여포의 목소리가 내려앉을 때쯤 그의 모습은 저 멀리로 작아지고 있었다.
* * *
높지는 않지만 솟았다 꺼졌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 사이로 난 좁은 길.
여포가 길을 따라 열심히 말 엉덩이를 후려쳐가며 걸음을 재촉할 무렵. 이 구불구불한 산길의 어딘가에선 엉성한 산적 몇몇이 젊은 서생 하나를 붙잡아 봇짐을 털고 있었다.
이미 서생은 속옷 하나 간신히 입고서 무릎이 꿇려져 있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서생은 연신 빌어보지만 산적들은 그의 말엔 관심도 없다.
“얘들아, 봇짐부터 뒤져보자.”
한 놈이 서생의 목에 칼을 겨누고, 다른 놈들 서넛이 봇짐 하나에 들러붙어 옷가지 같은 짐들을 헤집었다.
“뭐야? 이거 옷이고, 이것도 옷이고, 옷이고······.”
연신 옷가지만 손에 잡힌다. 하지만 봇짐 아래에는 뭔가 묵직하고 딱딱한 것들이 있었다.
“이거 뭐야? 딱딱한데······.”
“돈 상자는 아니겠지? 열었는데 보석이라도 들어 있으면 어쩌지?”
“꿈도 야무지다. 아쉬운 대로 말린 가죽이기라도 하면 좋겠다.”
산적들이 모여 앉아 들뜬 마음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하지만 산적들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보따리에서 나온 거라곤 몇 권의 책이 다였기 때문이다.
“아-! 진짜!”
“차라리 먹을 거라도 나오지. 이게 뭐야, 짜증나게!”
“돈 되는 게 하나가 없냐?”
서생들이야 서책을 귀히 여기지 산적질이나 하는 처지에 서책이 필요할 리 없었다. 산적들은 옷가지처럼 서책들도 아무렇게나 휙휙 내던졌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서책들을 더럽혀지지 않게 줍고 싶었다.
하지만 서생은 목에 칼이 닿아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침이라도 잘못 삼켰다간 목에서 피비가 뿌려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저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완전 공쳤네. 이 거지놈아, 돈도 없는 놈이 어딜 함부로 쏘다니느냐?”
기분을 잡친 산적이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그러자 서생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눈치만 살핀다.
“이 자식아! 우리 형님이 묻잖아!”
“어디 가는 길이냐고!”
산적들이 눈을 부라리며 닦달을 했다. 그러자 서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벼······ 벼벼벼! 병사가 되······.”
“뭐?”
“병사가 되려고······.”
“목소리 더 크게 안 해? 안 들리잖아! 크게 안하면 네놈 모가지랑 몸뚱아리가 작별인사하는 거야. 알겠어?”
서생 목에 칼을 들이밀었던 산적은 마치 톱질을 하는 시늉을 하며 겁을 주었다.
그러자 서생은 고함치듯 말했다.
“당예기 부대가 온다기에 병사가 되려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