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00
내가 묻자 사마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어찌 하문하시나이까. 명령하십시오.”
“흐흐.”
나는 가볍게 웃고 말했다.
“승상 종요 말이야. 짐은 종요의 덕을 참 많이 입었네. 종요는 짐의 나라에 인재를 등용하는 법을 세우고, 지방의 행정을 바로잡고, 근간이 되는 법을 만들어주었네. 짐은 반드시 종요를 공신각에 배향할 것이야.”
“종 승상의 공로는 마땅히 공신각에서 기려질 가치가 있사옵니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 저울을 달아보건대, 승상의 쓰임이 다했지 싶어.”
“그것이 무슨 말씀……”
“승상의 공로는 알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일이거든. 지금의 승상은 오로지 정략에만 골몰하고 정사는 돌보지 않으니, 짐으로서는 참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네.”
“우매한 신은 폐하께오서 그리 말씀하시는 연유를 이해하기 어렵나이다.”
나는 사마의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다 알면서 그러는군.”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상서령 있는가.”
“예, 폐하.”
내가 부르자, 상서령 제갈량이 침전의 깊숙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독대라고 생각했던 사마의는 뜻밖의 제3자에 어깨를 움츠렸다.
제갈량은 나의 부름에 응하면서, 두루마리를 한아름 안고 왔다. 그가 탁자에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개중 하나가 굴러 잠깐 펴졌는데, 거기에는 사마의가 퍽 놀랄 만한 글이 엿보였다.
‘승상 종요가 백성 서넛을 함부로 잡아다 종으로 부리다. 이에 종요를 탄해……’
마지막 글자는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돼지 해(亥) 자에 획을 더한 글자였다. 사마의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앞의 내용으로 미루어, 돼지 해 자의 뒤에는 힘 력(力) 자가 붙으리라. 핵(劾). 탄핵. 탄핵이란 얼마나 두려운가. 돼지(亥)를 억지로 끌어다(力)가 멱을 따듯이 잔혹하고 시끌벅적한 사업이 아닌가.
“이, 이것은……”
사마의의 음성이 떨렸다. 나는 침묵했고, 상서령 제갈량이 대신 입을 열었다.
“그대가 앞장서서 승상 종요를 탄핵해주게.”
나는 어사대부 유엽이 캐낸 정보를 천자의 개인서고에 가득 보관하고 있었다. 종요의 것만 있느냐고? 아니. 실은 가후도 종요만큼은 아니지만, 뭐 딴에는 생계형 비위라고 봐줄 만하지만 엄연히 비위한 사실이 있었다. 종형 제갈근의 것도 있었고, 심지어는 강직하기로 소문난 허저의 것도 있었다. 허저는 어느 전장에서 노획물로 얻어진 것 중 보검 한 자루가 맘에 들어 슬쩍 제 것으로 삼았다. 큰 잘못은 아니었고, 나도 그의 허물을 잡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기실 노획물자는 모두 천자에게 귀속된 것이니, 그를 퉁겨내자면 얼마든지 퉁겨낼 수 있었다. 이는 모두 만일을 위한 것이었다. 대국의 승상쯤 되는 종요에게 구린 구석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고, 나는 모조리 그것을 유엽을 통해 알고 있었다. 유엽은 자신의 비위 사실도 스스로 적어 나에게 바쳤다. 그것은 더 없는 충성의 보증이 되었다.
나는 사마의에게 말했다.
“그것은 승상을 탄핵하기에 족하네. 경이 이와 같은 사실을 백각에서 폭로하고, 그의 탄핵을 주도적으로 논의하게.”
사마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담이 좋은 그라고 해도 조정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를 작정하고 떨어뜨리라는 명령에는 긴장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어찌하여 백각경 가후에게 맡기지 않으십니까?”
내 대답은 간단했다.
“그쪽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덧붙여 말했다.
“본파가 나서서 종요를 탄핵하면, 참파는 그들에게 깊은 원한을 품을 것이다. 원한은 복수를 부른다. 나는 백각이 복수의 피바다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신이 주도한다고 하여 저들이 원한을 누그러뜨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씩 웃었다.
“경에게 원한을 품겠지. 그러나 경은 정파가 없으니까. 경에게 모든 원한을 뒤집어씌우려는 게야.”
사마의의 눈빛이 맹렬히 흔들렸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구태여 내 뜻을 숨기지 않았다. 칼자루를 쥔 건 이쪽이니까. 면전에서 내놓고 너에게 원한을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말을 해도, 사마의로서는 회피할 도리가 없었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받아들이든가, 거부하든가. 그러나 사마의는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다.
만일 거부한다면, 천자의 사람이 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만다. 고기를 잡으려거든 발목까지 물이 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갑자기 물이 불어나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도 감내해야만 했다. 고기를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죽고 마니까. 다만 고기를 잡은 후 빠르게 물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천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종요를 탄핵하고, 이것으로써 천자의 내밀한 사람이 돼야만 야심을 성취할 수 있었다. 상존이라면 모르겠으나, 사마의라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허면.”
사마의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신이 황상의 명을 수행한다면 황상의 은혜를 기대해도 될는지요.”
나는 웃었다.
“촌스럽게 구는군. 경이 짐의 밀명을 수행한다면 은혜를 기대해도 좋네. 단, 짐은 은혜를 보장하지 못하네. 다만 그 자격만을 경에게 부여할 뿐이야.”
사마의는 나를 향해 장읍을 올렸다.
“그것이면 됐습니다. 신 사마의,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이만 물러나보게.”
사마의는 보따리에 두루마리를 짊어지고 물러났다. 나는 허리를 쫙 펴며 제갈량을 바라봤다.
“통할까?”
제갈량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통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혹여 잘못되기라고 한다면 약속은 무효야.”
제갈량은 아주 저 얄미운 눈깔을 치뜨며 대꾸했다.
“제가 승상 자리에 연연하는 위인인 줄 아세요? 저는 아쉬울 거 없거든요?”
“말을 말자.”
사마의는 그 길로 집무실에 돌아왔다. 정위 상존은 입을 쩍쩍 벌려 하품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마의가 들어오자 상존이 손을 흔들어 반겼다.
“그건 뭔가? 황상의 선물보따린가?”
사마의는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황상께서 노름을 시작하셨습니다.”
“노름이라니?”
“승상을 탄핵하라시는군요.”
“탄핵? 자네더러?”
“예.”
사마의는 착석하며 언뜻 웃음을 내보였다.
“황상이 이황자를 태자로 세울 모양입니다.”
그 말에 상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상이 그리 말씀하시던가?”
“아뇨, 그럴 리가요. 황상이 어떤 분이신데.”
“허면 어찌 알았는가.”
“제게 속임수를 거시더군요.”
상존의 표정은 내내 어리둥절했다.
“속임수?”
“천자의 침전에 이르니, 마침 이황자 전하께서 계시더군요. 그런데 다 들으란 듯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무엇을?”
사마의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황자의 기질이 허약하니 대사를 집행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고.”
“그 말인즉슨?”
“이황자를 태자로 책봉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상존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원자 전하를 태자로 세우겠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런데 자네는 방금 반대로 말했어.”
“그러니 속임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천자가 자네를 속이려고 한다? 원래는 이황자를 세울 것인데 원자를 세울 것처럼 연기를 했다?”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버젓이 불러다놓고는 다 들리도록 그런 중대한 정보를 흘리겠습니까? 아주 교묘하시더군요. 쩌렁쩌렁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딱 제 귀에 결정적인 몇 마디만 걸리도록, 속아 넘어가기 적당하도록 말씀하시더군요.”
사마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황자 전하의 기술은 천자에 미치지 못했어요. 저를 스쳐지나가면서 기침을 하시는데, 너무 티가 나더라는 겁니다.”
상존은 팔짱을 끼며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황상께서 왜 자네를 속이려 하시는 걸까.”
“저를 천자의 믿을 사람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으음.”
“천자께서는 조만간 이황자를 태자로 세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