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04
“이황자 제갈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학식이 깊고 정치적인 식견도 뛰어나나, 형을 제치고 태자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이황자가 태어나기로 그 기질이 매우 허약하여, 온 백성과 모든 땅을 다스려야 하는 천자의 일이 매우 벅차리라 생각하였소. 원자, 아니 태자는 외조부의 강건한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므로 이와 같은 고민을 할 까닭이 없소. 그렇기에 원자를 태자로 삼으오.”
조정의 대신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느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아, 짐이 또 한 가지 칙령을 반포하고자 하는데.”
승상 제갈량이 나를 바라봤다.
“무엇입니까?”
나는 장난기 많은 소년의 표정으로 칙령을 반포했다.
“금일부로 연좌제를 폐하겠네.”
“예, 예에?”
연타를 맞은 대신들에게 주어진 소임은 놀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볼기짝을 얻어맞은 공주님처럼 멍청한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얼떨떨한 사이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가 조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늙은 신하 가후의 목소리였다.
“천추만세! 만세! 천자께오서는 만세를 누리시고 태자께오서는 천세를 누리소서!”
가후가 먼저 말하자 승상 제갈량이 일어나 외쳤다.
“천추만세!”
그제야 정신을 차린 다른 신하들이 혹여 눈 밖에 날까 두려워하여 일제히 외쳤다. 천추만세! 정치의 노름판에서 성공한, 혹은 실패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한데 잡답하여 울렸다. 천추만세! 천추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태자께서는 천세를 누리소서! 천세! 천세! 천천세!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바깥을 바라봤다. 햇볕이 쏟아졌다. 그래, 태자는 천세를 누려라. 천자가 돼서는 만세를 누려라. 그러나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나. 만세도, 천세도, 백세도 아닌, 그야말로 부스러기 같은 시간만 남았구나.
사마의는 다급히 상존의 정위부에 들어닥쳤다. 승상 종요에 대한 일이 남아서, 그것을 처리하고 있던 상존이 아닌 때의 방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가?”
사마의의 얼굴은 질병을 앓는 사람처럼 파리했다.
“우, 우번……!”
“응?”
“우번을 탄핵할 것입니다!”
상존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번을 탄핵한다니.”
“우번이 태자사가 되었습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번이, 대체 우번이 뭘 했다고 태자사입니까!”
그는 다급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우번을 탄핵할 것입니다. 분명 참파도 이를 동의할 것입니다! 뒤통수를 맞았으니까요. 탄핵안은 가결될 겁니다! 백각령도 참파 쪽이니까…… 허면, 허면 정위께서 우번의 죄를 확정지어 주십시오! 가장 무거운 처벌을 명령해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됩니다. 그러면……”
상존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봐, 중달.”
“…예?”
“자네답지 않군. 언제나 중간의 회색지대에서 영리하게 알맹이를 빼먹던 자네가 이제는 아예 참파에 붙는다고 하는군.”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표는 회색지대가 아니라 알맹이일 뿐입니다!”
상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법칙을 저버린 자네야. 자네는 실패했네.”
“시, 실패요……?”
사마의는 그 낱말이 낯설었다. 또한, 그 낱말을 발음하는 상존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실패했다고, 내가? 그것도 실패와 실패로 살아온 당신의 입으로……!
“아닙니다, 아직 아닙니다. 시생과 정위가 다시 힘을 합한다면……!”
사마의의 말에 상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내가 왜 자네와 힘을 합쳐야 하는가?”
“저, 정위……!”
상존은 인심 좋게 웃어보였다.
“나는 항상 생존을 목표로 살아왔어. 그 목적은 달성되었네.”
상존은 사마의를 보던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나는 살아남았네.”
이황자 제갈주는 태자 책봉을 받는 데 실패했다. 애초에 책봉을 받고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실패라는 말이 적절치 않을지도 몰랐다. 천자는 이황자 제갈주를 업왕(鄴王)에 책봉했다. 작록속가제에 의하여 거느린 땅과 사람은 없었으나 황자에게 걸맞은 작록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었다.
“모후, 소자는 이제 기주로 떠나옵니다.”
제갈주는 모후인 시영에게 절을 올렸다. 시영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주는 합비와 달리 겨울이 혹독할 수 있으니 부디 몸 관리를 잘 하시오, 업왕.”
제갈주는 멋쩍게 웃어보였다.
“업왕이란 부름이 참 낯섭니다, 모후.”
“어쩌겠소. 이제부터 업왕은 계속 업왕일 텐데.”
“익숙해져야겠군요.”
시영은 풋 웃으면서 제갈주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어미의 입에는 주야, 주야, 이름이 더 좋구나.”
“소자도 그 편이 더 좋습니다.”
“그래, 주야. 다시 합비로 복귀할 때까지 몸조심하여라.”
“예, 모후.”
시영은 주의 손등을 살살 쓸다가 물었다.
“태자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지는 않니?”
제갈주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전혀요.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마의를 소환해둔 상태에서 천자와 이황자가 나눈 독대는 모략이면서도 진실이었다. 제갈주의 몸 상태는 천자의 과도한 업무를 소화할 정도로 건강하지 못했다. 네가 대사를 집행하기는 어렵겠구나, 그리 말하던 천자의 옥음도 사실이었다.
“소자, 웬만하면 합비에 있지 않으려고요.”
그런 제갈주의 말에 시영은 까닭을 되묻지 않았다. 권력의 근처에 가지 말 것. 그것이 차순위 후계자의 숙명이었으니까.
참파의 신료들은 종요의 저택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으로 가서, 종요에게 아뢰었다. 내막을 들은 종요는 놓아버린 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흐.”
그는 텅 풀린 눈빛으로 웃었다.
“원자라고……? 이황자가 아니라.”
백각령 엄준이 입술을 악물고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태자사는 우번이 자원하여 그리 되었습니다. 본파가 태자사의 자리를 가져갔습니다!”
종요는 쿡쿡 웃다가 고개를 뚝 떨어뜨렸다.
“뭘 어쩌겠나. 그저 직분에 충실하시게.”
“소, 소자를 태자에 책봉하시다니요.”
나는 밤중에 원자, 아니 태자 단의 처소에 들었다. 술 한 병을 달랑 들고 혼자서. 단이는 나를 보고 절절맸다.
“그럼, 누구를 태자에 책봉했어야 했니?”
“주가 있잖아요.”
나는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주는 건강이 좋지 않아.”
단이는 술잔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저… 그럼.”
“응?”
“주가 건강했다면 태자가 되는 것은 아우였을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예기치 못한 질문인지라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픽 웃으며 술을 마시고 대답했다.
“짐이 신봉하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는 것이다. 주의 건강이 좋지 못하고 네가 태자가 되었다. 건강한 제갈주는 없고, 태자가 되지 못한 제갈단은 없다. 그뿐이니라.”
“뭔가 시원한 대답은 아니시네요.”
나는 풋 웃으면서 그를 가볍게 질책했다.
“태자가 되었다고 이제는 부황을 꾸짖기도 하는구나!”
“아, 아니 그런 것은……”
“네게서 화평을 보았느니라.”
“…예?”
“짐은 화평하게 할 책무를 타고났다. 화평할 자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해야만……”
나는 단이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돌아갈 수 있어.”
나는 나를 짐이 아니라 나라고 했다. 단이는 동그란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도, 돌아가다니요?”
나는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