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29
정찰을 다녀 온 여건의 보고에 의하면 아직까지 상곡군 주변에 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삭주로 더 들어간다면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북쪽으로 올라갈 수록 날도 추워지는데 굳이 가서 뭐하겠나.
그냥 얌전히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데.
피곤해하는 여건을 쉬게 한 후 저수를 불렀다.
한참 빙고를 건설하느라 바쁘던 저수가 오자 난 여건의 정찰 보고를 말해주었다.
“적들이 병주목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라 봐야겠군요. 그들이 공격하려면 지금쯤은 나왔어야 했는데…”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탁발인이었다면 어떻게든 겨울이 되기 전에 승부를 보려고 했을텐데 말야.”
“어리군요.”
저수의 싸늘한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병주목의 책략에 낚였다면…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유목민 전사들을 이용해 기동력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이겠지.”
삭주의 대평원은 산도 없고, 언덕도 적다.
그런만큼 지형을 이용하기 어렵고 기병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 기병을 이용해서 치중부대를 노려 치중을 탈취, 그것으로 정벌군을 어떻게든 잡아내겠다는 방침을 취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대평원에서 치중을 빼앗긴다면 군세는 쉽게 유지될 수 없다.
약탈도 힘들 뿐더러 겨울이 되었으니 둔전도 할 수 없다.
회군 외에는 답이 없는 것이다.
“만약 저희가 공격을 가는 것이라면 최선의 수겠지만…”
물론 우리가 탁발부를 치기 위해 움직인다면 최선의 수겠지.
하지만 갈 생각 없다.
시간적으로 불리한 것은 그들이었다.
그런데도 기다리는 수를 선택하다니.
멍청하긴.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선택하려고 하지. 쓸데없이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살짝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한가지 밖에 보지 못한다.”
그들 역시 정면승부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이번 겨울을 나는 것이 중요할 뿐 일테니까.
“아무튼 시간적으로 우리는 유리한 편이니 얌전히 기다리자고.”
“예.”
아마 우리가 익주 공략을 위해서 자신들을 빨리 공략하고 싶을 것이다… 라는 정도의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귀여운 자식들.
익주 공략은 이미 미뤄두기했다.
저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빙고 제작은 어때? 겨울에 공사를 하는 것인데 힘들지 않나?”
“땅이 얼어붙기는 했지만 공사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혼응토가 쉽게 마르지 않는 것이…”
“그리 급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너무 열중하지는 말라고. 어차피 석빙고가 전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예.”
시간이 흘러 연말이 되었다.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보고를 받았다.
기다리던 탁발군이 결국 군을 움직였다는 보고였다.
전쟁을 피하고 탁발군에 가담하기 싫어서 그들을 피하는 유목민에게서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그쪽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보였다.
탁발부에서 전사가 아닌 이들이 찾아 보내는 목초나 식량도 이제는 거의 바닥난 상황.
북쪽에 있는 몇몇 부족들은 이미 동사하거나, 굶어 죽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연말이 지나고 1월이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출발은 커녕 매일 훈련과 도적, 약탈을 위해 오는 이들만을 처치할 뿐 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노리는지는 이제 탁발부도 뻔히 알게 되었을거다.
“슬슬 시작해볼까…”
적들이 움직였다면 공격할 곳은 안문군, 그리고 상곡군 두곳이다.
“낙양 쪽으로도 공격해들어 올 수 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한데. 낙양 쪽은 성벽의 보호가 잘 되어 있는 곳이야. 기병들만으로 공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성벽이 없는 안문군과 상곡군.
성벽이 있는 낙양.
둘 중 어디가 더 기병의 공략이 쉬운지는 어린애라도 안다.
거기에 탁발부에서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이쪽이 더 가깝다.
촉박한 시간을 가지게 된 그들로서는 병주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
난 창문을 열고 창틀에 놓아 둔 잔을 보았다.
아까 두시진 전에 내놓은 찻잔이다.
찻잔 안의 물은 반쯤 얼어붙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후 난 밖으로 나갔다.
“어으. 춥다.”
털가죽 옷을 껴입은 후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다른 이들도 털가죽 옷으로 추위에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야! 애들 불러!!”
“뭐 하시려고…?”
“뭐하긴. 벽 만들어야지.”
“엑!?”
토벽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는 관평에게만 해줬었다.
대충 예상을 한 저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나머지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뭘 그리 놀래?
“모아 둔 흙을 옮겨.”
“아, 알겠습니다.”
창고에 잘 보관해둔 흙들을 옮겨야 한다.
얼지 않게 보관해 둔 흙들이 성벽을 만들 예정지에 옮겨지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대충 쌓아 올린 후 물을 뿌린다.
그리고 다시 쌓고 물을 뿌리고.
어른 키보다 더 큰 정도의 토벽이 만들어지자 난 빙고를 만들던 병사들을 불렀다.
“대충 좀 다듬어봐라.”
“어… 알겠습니다.”
물에 젖은 흙으로 토벽을 만든다.
나무로 만든 지지대, 그리고 빙고를 만드는 공사를 할 때 썼던 장비들로 뚝딱거리니 그럴싸한 토벽이 만들어졌다.
“이정도면 됩니까?”
“음… 응. 이정도면 되겠지?”
두께도 두껍고 높이도 이정도면 된다.
벽이 그렇게까지 높을 필요는 없었다.
기병의 움직임을 제어할 정도만 되면 되니까.
“다들 모여봐.”
예시로 쓰기 위한 토벽을 보인 후 난 장수들을 불렀다.
우루루 모인 이들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다.
“상곡군 일대를 이런 식으로 막아내야 하는거다. 함정을 만들면서 각 지역별로 창고에 흙을 모아뒀으니까. 그쪽에 있는 흙을 다 모아서 저정도로 만들도록.”
“알겠습니다.”
“하지만 토벽만으로는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금방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얼어붙는다고 하더라도 그래봤자 흙벽은 흙벽이다.
그것을 걱정하는 하후상을 향해 웃으며 난 고개를 저었다.
“얼음 무시하지 마라. 완전히 얼면 어지간해서는 깰 수도 없으니까.”
화살이나 검, 창 정도로는 쉽게 부술 수 없을거다.
“근처에 있는 강에서 물을 퍼와. 물 잘 뿌려야 한다. 알았지?”
젖지 않은 흙은 제대로 얼지 않는다.
그런만큼 물을 잘 뿌리는 것이 중요했다.
“예!!”
“그리고 장료. 너는 정찰임무와 더불어 근처에 있는 이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다. 지금 이 순간부터 허가받은 이를 제외하면 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
토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 골치아프다.
그리고 탁발부도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을테니 진군하려고 하겠지.
그때 토벽으로 적들의 사기를 낮추려면 최대한 숨기는 것이 좋았다.
“이미 근처에는 아무도 없습니다만…”
“그럼 첨병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장료가 호주천과 흉족들을 이끌며 근처를 돌기로 했다.
그럼 나머지는 토벽 만드는데만 집중하면 되겠군.
“자!! 시작해!!”
토벽 건설이 시작되었다.
날도 추워 죽겠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투덜대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술을 주니 얌전해졌다.
역시 병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데는 술과 고기가 최고다.
“승상부주.”
“음?”
지휘할 사람이 적어서 나도 토벽을 만드는 공사현장에 참여했다.
흑귀대원들이 토벽을 쌓는 것을 지켜보며 지휘하던 나는 대군에서 온 저곡이 나를 찾자 그를 보았다.
“뭐냐?”
“대군에 일차 양식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오~ 그래?”
일차 양식장.
닭과 오리를 키우는 양식장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닭과 오리는 얼마나 되지?”
“대군에만 약 삼천여마리 정도 됩니다.”
“그래? 그거 잘 됐네. 나중에 이쪽에 몇백마리 보내.”
“어? 여기서도 양식장을 꾸리실 생각이십니까?”
“그럴리 있나. 먹으려고 하는거다. 먹으려고.”
여기에 양식장을 만들어봤자 어디다가 쓰겠나 싶다.
물론 상곡군에도 황충의 서식지와 산란지가 있었지만 그쪽의 흙은 이미 토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정도면 토벽 안에 있는 알들도 다 죽었을거다.
부화된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저곡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져다 드리지요.”
“어? 바로 가능해?”
“예. 상곡군과 인접한 평서현에서는 이미 병아리들이 많이 태어났으니까요.”
“그래?”
“예. 삼백여마리 정도면 됩니까?”
“응. 그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리고 나중에 더 보내줄 수 있다면 보내주고. 여기 사람이 몇인데 삼백마리가지고 되겠냐? 전쟁하는 이들은 잘 먹여야 해.”
청주와 서주, 기주에서 보낸 닭과 오리의 양식이 시작되었다면 머지 않아 수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몸보신이나 하자 싶었다.
“그리고 보내는 김에 밀도 좀 보내라고 해라.”
“밀? 밀은 어디다가 쓰시려고…?”
“애들 몸보신 좀 시켜주려고 그런다.”
“아… 음. 알겠습니다.”
공사를 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저곡은 입맛을 다셨다.
전투하러 와서 매일 작업만 하는 우리 애들 밥이라도 좀 잘 먹이고 싶다.
저곡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떠난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난 일갈했다.
“야!! 토벽 잘 만들어지면 맛있는 거 해줄테니까 좀 잘 만들어라!!”
“예!!”
저곡이 떠나고 며칠이 지났다.
신년이 되었지만 신년제따위는 할 수 없었다.
토벽 만들고, 남는 인력은 석빙고 만들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저곡이 보낸 닭과 오리가 도착했다.
삼백여마리 보낸다더니 더 많이 보냈군.
수레로만 거의 오십 수레가 넘는다.
꽤 많은 오리와 닭이 수레 안의 커다란 장에서 퍼덕거린다.
“상태도 좋은 것 같고…”
모이를 잘 먹인 덕분일까?
닭과 오리의 품질은 나쁘지 않아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저희도 좀 기르는 것이…”
“아니. 그냥 먹자.”
“오백마리는 넘는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취사병들 불러.”
잠시 후 병사들을 위한 요리를 하는 취사병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수레에 있는 닭과 오리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성벽 만드느라 고생들 했을텐데 나눠줘. 한사람당 하나씩 먹이지 못하는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예!!”
옛부터 닭고기와 오리고기는 기력을 돋아주고 보양을 위해서 많이 쓰이는 재료였다.
요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털을 뽑고 내장을 정리한 후 몇가지 약재와 찹쌀을 넣고 푹 삶는다.
그리고 국물과 함께 먹는다.
뼈는 내버려 뒀다고 고아서 닭뼈 국물로 먹는다.
한마리 잡아두면 며칠은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닭과 오리였다.
“햐…”
“오래간만에 닭국물을 맛보겠군요.”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것이 육포와 죽 정도 뿐인 것이 안타까웠던 이들이다.
그들이 웃으며 말하자 난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내는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여야 한다.”
“예!!”
“그리고 빼돌리면 알지? 전시 군수물자 횡령은 반역으로 취급되는거…”
“아, 압니다.”
위군은 보급의 중요성을 안다.
그런만큼 병사들에게 먹이는 것을 항상 좋게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 그렇지.
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감독관들에게 말해. 일 잘한 놈들 몇놈은 빼라고.”
“그들은 왜…?”
“따로 지급해 주려고 한다. 고생했으면 그만큼 되돌려줘야 하니까.”
“닭 한마리를 통째로 주시려는 겁니까?”
취사병들의 눈에 부러움이 서린다.
그것을 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런 것도 있지만.”
닭과 오리가 많아졌으니 그것들을 가지고 몇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취사병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취사병이 나가고 잠시 후 장료와 저수가 들어왔다.
요새 토벽 만들고, 또 정찰 다니느라 고생이 많은 그들이 들어오자 난 웃으며 말했다.
“그쪽은 다 끝났나?”
“예.”
“저희쪽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진행 상황을 보면 며칠 안에 다 끝날 것 같습니다.”
날씨는 더 추워졌고 토벽은 더욱 단단해졌다.
매일 물을 뿌리고 있는만큼 얼어붙은 토벽은 바위 수준의 강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날 풀리면 망하는건데.”
“하하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습니까. 그리 되면 죽어라고 싸우는 수 밖에.”
토벽의 한계는 날이 추울 때.
이유하의 시대에 의하면 적어도 영하 기온을 유지할 때 그 효과가 최대가 된다.
나는 매일 내놓고 있는 물잔 속의 얼음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들었겠지만 닭과 오리가 보급될거야. 다들 신년에도 고생했는데 내 나름대로 뭔가 좀 해주고 싶군.”
“들었습니다. 닭과 오리고기를 내어주시겠다고…”
“아까 나가던 취사병들이 좋아 날뛰더군요.”
“날도 추운데 뜨끈한 국물로 몸이나 좀 녹였으면 싶어서.”
“병사들이 모두 좋아하겠군요.”
좋아하겠지.
맨날 육포에 죽, 그리고 순무와 콩 정도 밖에 못 먹을텐데.
“유주에서 닭과 오리의 양식이 시작되었으니까 어느정도 그쪽에서 성과가 나오면 더 지급될거라고 전해줘. 물론 이쪽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못 먹는다는 겁니까?”
“그렇지.”
“하하하… 지극히 단순하지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겠군요.”
저수와 장료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래.
먹을 것으로 꼬시는 것이야말로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지.
“그리고 정찰 보고는? 탁발부는 어디까지 왔나?”
“오일 정도 거리에 탁발부의 군사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수는 약 육만 정도라고 합니다. 기병이 사만 정도입니다.”
“깊게도 들어갔네. 적당히 하고 복귀하라고 전해.”
“예.”
“자. 그럼 하던 일 마저 하라고.”
“승상부주께서는 뭘 하시려는 겁니까?”
“나?”
나도 일 해야지.
하지만 저수나 장료에 비하면 좀 더 빨리 끝날 것 같았다.
“하나 좀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며칠 정도는 그것만 집중해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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