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110
서주의 의원들과 지원품이 도착했지만 상황이 크게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전염병은 기승을 부리고 있고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었으니까.
서주에서 온 의원들에게 내게 전수받은 것들에 대해서 전부 가르쳐 준 당지는 복면을 만지작거렸다.
“역병지대로 들어가기로 한 의원들은 약 삼십여명 정도입니다.”
“그거면 되려나?”
“글쎄요…”
그 많은 현을 고작 그정도의 의원만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괴질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살던 마을이나 현이 폐쇄되고.
지금 병자들이 모여 있는 지역만 생각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넌 괜찮겠냐?”
“병을 치료하면서 환자들과 함께 목숨을 거는 것은 의원이 일입니다.”
“음… 그래. 그리고.”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고민하다가 결국 말해버렸다.
“방덕공께서 역병에 걸리셨다. 병에 걸린 몇몇 명사들은 따로 빼서 치료를 하고 있지만…”
방통에게 이야기를 듣고 알아보았다.
난민들이나 일반 백성들과 다르게 역병에 걸린 숙부님과 다른 몇몇 명사들은 다른, 좀 더 좋은 곳에서 격리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도 사람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는 사람을 더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이 괴질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그저 경구수액을 먹이며 돌보는 것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네가 가줄 수 있겠냐.”
“승상부주 답지 않은 말씀이시군요.”
“응?”
충분히 나 다운 말 같은데?
나는 모르는 백성 수백, 수천보다 내가 아는,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을 더 챙기는 사람이다.
그런만큼 이 부탁이 나 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나?
내가 당황하자 당지는 씩 웃었다.
“‘가줄 수 있겠냐…’ 가 아니잖습니까. ‘가라’ 잖습니까.”
“하하!”
그렇군.
원래 나다운 모습이라면 이런 것이 아니겠지.
내 밑에 있는 이들에게 부탁따위 하지 않는다.
명령이 있을 뿐이지.
난 당지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간 너에게 많은 부담을 준 것 같지만… 이왕 주는거. 좀 더 하자. 방 숙부님을 네가 전담해라. 그리고 숙부님을 반드시 살려다오. 내가 가르쳐 준대로만 한다면 숙부님이 살아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당지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의 어깨를 두들겨 준 나는 뒤로 물러났다.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줄테니까 걱정마라. 그리고 알지?”
당지에게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전수해주었다.
이 병은 병자의 설사와 구토에서도 전염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손에 닿는다면 바로 비누를 써서 씻도록 한다.
그리고 복면을 항상 착용하고 있도록 한다.
그 외에 다른 주의사항을 모두 말해주었으니 큰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당지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사마 어르신. 그리고 승상부주가 아니었다면… 저는 화타 어르신의 제자가 될 수 없었겠지요. 다만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이 있는데… 만약 제가 잘못되면 제 누이는…”
“네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 누이는 진가가 책임진다. 걱정마라. 너는 방 숙부님을 살리고, 역병을 치료하는데만 집중해.”
예전에 번아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의원이 할 일은 살리는 일이다.
관인의 할 일 중에는 이런 비상시에 통제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가봐라.”
“예. 승상부주.”
“너에게 우리 가문이, 그리고 방가가 큰 빚을 진 셈이구나.”
“그런게 어디 있습니까. 서로 돕는 것이지. 부주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이 있잖습니까.”
당지는 망태를 챙겼다.
약재와 복면, 그리고 장갑이 들어가 있는 두툼한 망태를 어깨에 끼운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남입니까?”
“하하하!! 그래!”
남은 아니지.
이정도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았다면 말이야.
당지와 의원들, 그리고 병사들과 인부들이 금줄 너머로 들어간다.
뒤따르는 수많은 수레에는 소금과 꿀이 실려 있었다.
물은 내부에서 오염되지 않은 우물물을 끓여서 쓰면 될거다.
혹시 몰라서 장작들까지 잔뜩 가져가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별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의원의 수가 적어 한 사람이 맡아야 하는 병자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의원들이 추가로 온다고 하지만 그때까지 저들만으로 괜찮을까?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승상부주!”
“뭐냐.”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마 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겠지?
나에게 온 병사의 표정이 그나마 평안한 것을 보니 문제가 터진 것 같지는 않다만.
난 불안감에 휩쌓인 채 관청으로 향했다.
관청에 도착한 나는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했다.
교주에서 지원물품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보내는 공물과 함께 꿀, 그리고 암염이 담긴 수레들이다.
“교주목께서 형주에 퍼진 역병을 막는 일을 지원하신다 하셨습니다.”
좋은 일이다.
교주목이 선의로 이런 것을 보내준다면 그저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도 내가 떨떠름한 이유는 이것을 가지고 온 사람 때문이었다.
“음. 그래. 그나저나 오래간만이군. 잘 지냈나?”
이런 인사를 하는 것도 웃기는군.
내 인사에 그녀는 살짝 목례했다.
“예.”
갑옷을 입은 늘씬한 여인.
그녀는 바로 손책의 여동생인 손상향이었다.
옛날 청이와 문제를 일으켜서 내가 교주로 유배를 보냈던 그녀다.
옛날과 다르게 꽤나 차분해진 듯한 그녀를 마주하던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그래. 뭐 오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돌아가라. 여긴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니까. 나중에 업에 온다면 제대로 대접해주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 없으신 겁니까?”
“도움…”
필요하지.
필요하긴 한데 네 손까지 빌려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솔직히 민망하고 말이야.
어떻게보면 나는 손상향에게 있어서 원수나 다름없는 입장이다.
거기에 손가의 재산을 거의 몰수하였고 손가에 있는 이들을 교주로 보내버렸다.
물론 손책과 주유가 있어서 교주쪽이 살만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터전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는 입장이다.
“네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
손상향에 대한 부담은 그녀의 도움을 거절하게 만든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고 그녀는 별다른 아쉬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음… 이걸 보낸 것은?”
“백부 오라버니입니다. 교주목… 저의 스승님께서 보내신 것도 있지만. 꿀은 오라버니가 따로 모아서 보냈습니다.”
“그런가. 다른 이들은?”
“지금 남만의 공략 때문에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래서 얘가 올라왔나보군.
난 볼을 긁적거렸다.
어떻게 해야하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와준 것은 진짜 고마운데.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러니 돌아가라.”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괜찮으니까 가라. 그리고 이왕이면 좀 돌아서 가고. 올때는 돌아서 왔지?”
“예. 여강을 통해 우회하였습니다.”
“잘했다. 갈때도 그 길로 가라. 이것을 받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관의 도움을 받도록.”
내가 패 하나를 던져주자 손상향은 그것을 얌전히 받았다.
그녀를 수행하기 위한 병사들이 말에 오르자 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째 좀 변한 것 같다?”
옛날에는 진짜 천둥벌거숭이 같았는데.
무척이나 침착한 것이 넓고 잔잔한 호수를 보는 듯 싶다.
말에 오르려던 손상향은 천천히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덕분입니다.”
“사섭을 말하는 건가?”
“예. 사 스승님께 배웠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이가 존중받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녀의 말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네 오라비의 일은…”
“괜찮습니다.”
손권을 죽인 것은 손책이다.
하지만 그 뒤에 내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손상향은 그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중모 오라비는 그 원인을 만들어 냈지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스스로의 정의를 세우려 했습니다. 정의와 정의가 부딪히는 것에 대해서… 제 자신의 정의도 세우지 못했는데 따질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많이 컸네.”
“감사합니다.”
옛날에 청이를 도발하고 무례했던 손상향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녀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돌아가라. 그리고 교주목에게 전하도록. 이번 일이 마무리 된다면 내가 직접 교주목을 찾아뵙겠다고 말이야.”
“스승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손상향은 빙긋 웃으며 말에 올랐다.
그녀가 멀어지자 관평은 지그시 그녀의 뒤를 응시했다.
“왜 그러냐?”
“저 여인이 손가의 개망나니라 불리던 손상향입니까?”
“넌 모르나?”
“예.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상당히 건방진 여자라고 들었는데…”
그녀의 변화에 나도 놀랄 정도다.
그런만큼 어색함은 남아 있었다.
손상향이 멀어지는 것을 관평은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웃었다.
“관심있냐?”
“관심… 글쎄요. 그렇다기보다는…”
“음?”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군.
관평은 휙 몸을 돌리고 가버렸다.
그를 향해 짧게 혀를 찬 후 난 병사들에게 외쳤다.
“이거 다 창고에 넣어둬!”
“예!!”
당지가 의원들을 데리고 역병지대로 들어 간지 사흘이 지났다.
아직까지는 역병이 나았다는 이들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게 역병의 확산은 상당히 줄었다는 거다.
목숨을 걸고 역병지대 안으로 들어가서 관인들과 병사들이 통제하고, 죽어라 땔감이나 새로운 옷. 그리고 비누를 투입해서 씻긴 덕분일까?
병이 확산되지 않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날은 점점 더워져 가고 할 일들은 늘어가고 있었다.
난 죽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역병이 더이상 퍼지지는 않지만 걸린 이들 중에 죽는 이들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노인과 아이들이었다.
체력이 부족해서 경구수액과 죽만으로 버티지 못하는거다.
거기에 역병에 걸려 죽은 이들은 시체도 빠르게 소각해야 해서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억장이 무너지겠지.
그것에 절망한 이들이 실성해 쓰러지거나 관인에게 저항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보고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시체들을 장례절차에 맞춰 매장하기에는 시간과 예산도 없다.
아니, 시간과 예산이 있어도 할 수 없다.
역병에 걸렸던 시체들이다.
그 시체들은 또다른 역병의 근원지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인 화장을 명했다.
매일매일 사람의 시체가 타는 냄새가 역병지대의 우울함을 늘려간다.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난 눈을 꾹꾹 눌렀다.
“후우…”
피곤해 죽겠군.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문이 열렸다.
헬쑥한 안색의 방통이 걸어들어왔다.
“이제 좀 진정되냐?”
“음…미안하다.”
“그래. 자식아. 알면 좀 잘해라.”
원래라면 하루, 이틀이면 역병에 걸렸을 때 죽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방 숙부님은 칠일을 넘게 생존해계셨다.
별반 차도는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 버티는게 어디냐.
그리고 이유하의 시대에 있는 백신이라는 것을 쓸 수 없는 이상 믿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자체치유력 뿐이다.
이렇게 버티고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늘어간다.
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방통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머뭇거리는 그를 바라보던 나는 방통의 손을 잡았다.
움찔한 그를 향해 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말을 내뱉었다.
“한심하고 멍청하고 나약하고 불쌍한 자 같으니라고. 그런 정신상태로 뭘 하겠다는 건지. 에라이. 네가 그러고도 한 가정의 아비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윽… 끙. 할 말이 없군. 다들 미안하다.”
“야야. 다들 욕해.”
내 말에도 다들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쯧.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주목에게 욕해보겠나 싶은데.
방통은 꾸벅 다른 이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그의 사과에 손사레를 치며 관리들이 웃었다.
“이제 이쪽은 내가 맡으마. 넌 이제…”
“승상부주!! 큰일입니다!”
“…하. 진짜.”
매일 매일이 큰일이구만.
난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문 중랑.”
관도의 통제를 맡고 있던 문빙이 거칠게 뛰어들어왔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금줄 너머에 백성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뭐?”
왜 모여?
아니.
의문 따위는 품을 필요 없었다.
나도 불안해하고 있던 부분이었으니까.
“어떤 개자식이 선동을 해서 끌고나왔나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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