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134
방통에게 사정을 얘기해주었다.
물론 관평도, 그리고 손상향도 직접적으로 서로에 대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 눈치라는게 있지 않은가.
양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자 잠자코 듣고 있던 방통은 피식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몰랐냐?”
“걔들 둘을 보면 분홍빛이고 나발이고 없어. 나도 나름 풍류를 즐길 줄 아는데. 그 둘을 보면 진짜 사무적이고 공적인 대화밖에 안해.”
“뭐 먹을 것 만들어주지는 않고?”
“지금 상황에서 뭘 만들 수나 있겠냐? 아니, 하면 하겠지만. 그래도 진짜 철저하게 동료처럼만 행동하던데?”
“아…”
하긴.
돌덩어리인 관평이나 사섭에게 배워서 그런지 자신의 내색을 표현하지 않는 손상향이나.
둘이 내버려둬봤자 천년만년 그 자리일 것이다.
방통은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씩 웃었다.
“이거 역시 사랑의 전도사이며 풍류남아인 내가 움직여줘야…”
“내버려둬. 남 연애사에 신경쓰는거 아니라더라. 그리고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인간관계는 사고를 부르지. 그걸 생각한다면 지금 처리를 해주는게 낫지 않을까?”
“어쩌게?”
“둘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같은 막사에서 재우면…”
“에라이. 미친놈아.”
난 그에게 탁자 위에 있는 붓을 던졌다.
생각하는 꼬라지 하고는.
그것을 피해낸 방통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농담이야.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
“하후상이 괜히 껴들었다가 문제생겼다. 그냥 내버려둬. 풋풋하고 좋지.”
“관평이나 손상향이나 풋풋과는 거리가 좀 것 같은데. 뭐 그럼 그렇게 하지.”
방통도 괜히 남 연애사에 끼어들어봤자 좋을 것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하후상이 술과 고기를 들고 들어왔다.
“벌써 나눠준거냐?”
“예. 다들 좋다고 먹더군요.”
“잘했어. 이따가 복귀할 이들 것도 챙겨줘.”
“예.”
“그럼 우리도 한번 먹어볼까…?”
방통은 화로에 불을 붙인 후 적당히 거치대를 놓고 그 위에 고기가 꿰어진 대나무 꼬치를 올렸다.
그것을 본 하후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그게 답니까?”
“그럼 뭐. 여기서 얘가 만든 승상부계라도 해먹을까?”
“그건 아니지만…”
“그냥 이정도면 되는거야. 상아. 한잔 받아라.”
“예.”
방통이 따라 준 술을 받은 하후상이 한모금 마신다.
그가 술잔을 돌려주자 난 빈 대나무 꼬치에 고기를 끼웠다.
“이거 익으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 바둑이나 한판둘까?”
“오? 요새 승률이 좋으신가봐?”
“좋기는.”
맨날 진다.
내가 인상을 쓰자 방통은 킬킬 웃었다.
“몇점 깔아줄까?”
“뭐 그렇게 많이 깔 필요는 없겠지. 네점만 깔자.”
“그정도면 충분히 많거든?”
투덜거리면서도 방통은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접이식 낡은 바둑판.
그리고 일반 돌과 먹물을 먹여 굳힌 바둑돌을 두었다.
하후상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요새 전적이 아름다우시던데.”
“야. 시끄러워. 그렇게 사실만 말하다가 혼난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죠.”
“크크크. 하후상이 언변이 많이 늘었구만.”
“끙…”
“왜? 사실이잖아?”
부정해서 뭣하랴.
사실 나는 바둑 진짜 못 둔다.
이게 공부한다고 해서 될 만한게 아니란 말이지.
그나마 나와 접전을 이루는게 감녕이나 관평 정도?
그 외에는 다들 나를 아예 가지고 놀더라.
관평과 둘 때면 재밌긴 한데 아내들이 옆에서 무지하게 답답해했다.
그리고 나와 바둑을 뒀던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이렇게까지 바둑을 두지 못한다는 것에 모두 놀랬다.
바둑이나 장기 같은 것은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잘 둔다고 하던데.
하긴 내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
그리고 함께 둔 사람들도 종요나 조조, 아버지, 그리고 조앙과 양 사형 정도니까.
그 외에도 다들 머리를 쓰는데 있어서는 어디가서 결코 뒤지지 않는 이들이니.
젠장.
바둑은 그냥 놀이에 불과하잖아!
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흑돌을 잡았다.
“시작하자.”
“금 두냥?”
“그래.”
지금까지 방통과의 모든 놀이의 전적은 거의 패배 뿐이었다.
특히 바둑에 한해서 난 그를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방통에게 바둑을 두자고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승부욕 때문은 아니다.
그가 나를 바둑으로 이기면 꽤나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방 숙부님의 일.
역병에 대한 일.
거기에 영안성 공략을 위한 것 까지.
요 근래 계속 일만 하며 피로가 쌓인 것 같아 좀 풀어주고 싶을 뿐이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방통의 빈틈을 노리려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일승을 챙겨보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뭐랄까.
“오늘만큼은 이긴다.”
“하이고~ 귀엽다. 그래. 한번 해보렴 아가야.”
저런 태도를 보면 진짜 투지가 끓어오른단 말이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술을 한모금 마신 그가 고기 꼬치를 한입 뜯어 먹고 우물거린다.
가볍게 둔 그의 돌 옆에 내 돌을 둔다.
“다녀왔습니다.”
“주군께서 오셨다고…”
“다들 피로해하는데 고기와 술 덕분에 피로가…”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을 신경 쓸 수는 없었다.
나는 고심을 한 후 돌을 놓았다.
내가 놓은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방통은 잘 익은 고기 꼬치를 한입 먹은 후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야.”
“응.”
“그. 우리가 연을 맺은지 얼마나 됐지?”
“글쎄… 어디보자.”
내가 열 네살 때 수경원에 와서 방통을 처음 만났었으니까.
그때 이후로 생각하면 이십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우리 많은 일이 있었지 않냐?”
“그렇지.”
“그 오랜 시간동안 내가 너에게 단 한번도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방통은 나를 진지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것을 마주하며 나도 웃었다.
“난 항상 너를 친형제처럼 생각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과 함께 숙부님 밑에 들어갔지.”
“그랬지. 림이는 요새 뭐한다냐?”
“학자로서 잘 살아가고 있다.”
방통의 동생인 방림은 방통이 조조의 신료가 된 이후에도 임관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머리도 좋고, 인물도 괜찮아서 임관했으면 좋겠지만 관직에는 뜻이 없다더라.
지금 아마 낙양에서 살고 있을텐데.
“습정의 동생과 결혼했다지?”
“응.”
“그래. 그때 가보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 나도 못 갔는데 뭘.”
방림도 나를 형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딸 하나를 낳고 만족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데.
천하가 안정되면 한번 만나러 가봐야겠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방통은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무튼 그건 둘째치고. 림이가 일찍 결혼하여 낙양으로 가고. 그곳에서 살아가며 난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 나도 안다.”
“채 사저. 서복, 양 사형, 그리고 너. 비록 성은 다르지만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며, 형제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진가는 손이 귀한 가문이다.
아버지도 내 동생을 보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복 동생이라도 있으면 정말 잘해줬을텐데.
아무튼 나 역시 수경원 동문과 사형제들을 진짜 친형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아들과 딸들을 낳으며, 진가가 번창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도 너 결혼해서 안정되게 살아가는 거 보고 좋았어.”
자식이 눈물나게.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하고 있어.
방통은 희미하게 웃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행복을 가질 수 있었을까 싶다.”
“사부님의 안목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분명 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래.
모르는 일이다.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유비는 살아 있었을 것이고 그리 된다면 방통은 유비의 밑에 들어갔을 거다.
그리고…
결말은 좋지 않았겠지.
내가 웃자 방통 역시 빙그레 미소지었다.
“너도 좋지 않았냐? 내가 있다는 것, 서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채 사저가 있다는 것.”
“좋았지. 나는 형제자매가 없으니까. 수경원 동문들이야말로 내 진정한 형제자매라고 생각하고 있어.”
가 사형도 그렇고 양 사형도 그렇고.
그 외에 다른 수경원 동문들도 다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수경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마음을 맞춰가며 항상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고맙다. 유하야. 그동안 하지 못한 말.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별 말을 다하네. 나도 고맙다.”
“그렇지?”
방통은 환한 미소를 지은 후 말했다.
“그러니까 한수만 물러주라.”
이 얘기 하려고 이렇게 썰을 풀었구만.
무척이나 자애롭고 환한 미소를 짓는 그를 향해 나 역시 자애롭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딴데가서 알아보렴.”
“…하하. 우리가 연을 맺은지 얼마나 됐지?”
아니 이놈이!?
방금 내가 둔 수는 내가 생각해도 진짜 묘수였다.
단 한수만으로 방통의 대마가 목숨을 잃게 생겼다.
저 대마를 잡으면 내가 무조건 이긴다.
이 천금같은 기회를 어떻게 날려?
방통이 다시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하자 난 고개를 저었다.
“바둑 두는 사람 어디갔냐?”
“끄응… 야! 이러기냐?”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라네. 형제여.”
“오… 이런 묘수를.”
“주군께서도 실력이 많이 느셨군요.”
그래.
늘어야지.
언제까지 지면서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방통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 거리다가 돌을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한참 신음하던 그는 바둑판을 엎었다.
“어이쿠!! 손이 미끌어졌네!”
“한심한 놈.”
“으아아아!!”
“훗.”
절규하는 방통을 비웃으며 난 돌을 정리했다.
기쁘다.
이번에 바둑을 두자고 했던 것은 방통을 기운차게 해주려고 한 것인다.
저렇게 소리지르며 열받아 하는 걸 보니 기운은 잘 차린 것 같다.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고 승리도 얻어내다니.
“큭… 분하다…!”
아이고.
이십년 묵은 체증이 한방에 내려간다.
굴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방통을 향해 난 싱글벙글 웃었다.
“하… 진다는 것이 과연 무슨 기분일까? 쯧. 너무 양민학살한 것 같아 미안하군. 그래. 원래 세상이란 것이 이런 거란다. 가끔은 이길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야.”
난 방통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 뒤를 보았다.
장합이 훈훈하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았고 난 손바닥을 올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짝.
장합과 손바닥을 마주친다.
예전에 장합에게 바둑을 좀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장합은 냉정히 말했었다.
난 바둑에 재능이 없다고.
방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요행을 노려야 할 것이라고.
그 요행이 여기서 터지다니.
하지만 그게 어디냐.
이긴 건 이긴 거지.
“아이~ 좋아~”
“야! 다시 둬! 다시! 이번에 철저하게 짓밟아주마!!”
씩씩거리던 방통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난 그를 향해 웃었다.
“응. 안해.”
내가 미쳤냐. 또 두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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