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178
본영으로 복귀한 곽회는 주변을 보았다.
이미 상황은 정리된 듯 보인다.
전투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아군을 지나 지휘부에 들어 온 곽회는 평안히 앉아 있는 서복에게 고개를 숙였다.
“강경을 생포했습니다.”
“왜?”
“그를 써먹을 곳이 있습니다.”
“어디에??”
“강경을 이용해 한중을 얻어보려 합니다. 연주목. 제 계획을 들어보시고 괜찮다면 허락해주십시요.”
서복이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곽회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한중을 점령하기 위한 생각 밖에 없었다.
그의 작전을 잠자코 듣던 서복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제 네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한 듯 싶군.”
“그렇습니다.”
출정하기 전과 출정 후의 눈빛이 달라져 있다.
곽회의 눈에 어려 있는 결의, 그리고 독기에 서복은 만족했다.
“축하한다.”
“무엇을…?”
“이것으로 너를 정식으로 교위직에 임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제대로 한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되었군.”
서복의 답에 곽회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말은 서복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였다.
“시행해. 모든 제반사항은 내가 지원한다.”
“알겠습니다.”
강경은 뒤통수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킨 강경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두 남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이 서복?”
“그렇다면?”
둘 중 더 나이가 많은 남자.
서복이 시큰둥히 대답하자 강경은 몸을 움직여보았다.
포박따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엄청난 자신감이군. 그래. 날 죽이지 않고 살려 둔 이유가 뭐지?”
“당신을 잡은 우리 군단장이 할 말이 있다더군.”
“뭔 소리를 하려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그가 투덜거리자 젊은 사내.
곽회는 입을 열었다.
“강경.”
“뭐냐.”
“항복하시오.”
“…하. 나 참.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군.”
그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을 마주하면서도 곽회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진심이라면?”
“진심… 이제와서 위국에 투항이라도 하라는 건가?”
“그렇소.”
“거절한다… 라는 답을 듣고 싶은것이라면 얼마든지 해주지. 거절한다.”
“왜?”
“왜라니.”
“이유가 없잖소.”
곽회는 진지함이 가득한 눈이었다.
그것을 힐끔 쳐다 본 강경은 이를 갈았다.
“위국 놈들에게 내가 당한 게 얼만데. 이제와서 항복? 웃기는 소리.”
“뭘 당했소? 천수군의 군수직을 잃은 것? 아니면 당신의 부하들이 죽은 것? 그것도 아니면… 한수가 죽은 것?”
“어르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자업자득아닌가?”
곽회의 대꾸에 강경은 이를 갈았다.
이래서 강자는 안된다.
이들은 약자를 모른다.
빼앗기는 자의 마음을 모른다.
강경의 이글거리는 눈을 마주하며 곽회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자업자득이니 뭐니를 떠나서. 애초에 검을 잡은 이유가 뭐요. 군사를 움직인 이유가 뭐요?”
“그건…”
“한을 위해서라거나 유목민을 위한 것이라거나 같은 같잖은 답변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겠소.”
강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고향이고, 그가 군수직을 맡던 천수군은 서량에 속한 군이었다.
오랜시간 한 황실과는 척을 지고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제와서 한을 위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천수군은 유목보다는 목축업과 농경을 중시하던 곳이었다.
그런만큼 유목민의 삶에 대해서 떠들 수는 없었다.
두가지 이유가 막히자 강경은 입을 다물었고 곽회는 여유롭게 말했다.
“검을 잡은 자는 반드시 각오를 다져야 하지. 그 각오가 뭔지 아오?”
“찌르려는 자. 찔리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건가?”
“맞았소. 한수는 검을 들었고 그 검을 위국에 겨눴소. 그렇다면 자신이 찔릴 각오 정도는 했을텐데. 지금 당신의 행동은 오히려 한수를 모욕하는 행동 아니오?”
“흥. 말은 좋군.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각오를 다졌다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미안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오로지 찌를 생각 뿐이니까?”
“욕심쟁이로군.”
“원래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내가 묻지. 너는 만약 패배한다면 어쩔 생각이냐? 상황이 바뀌어 내가 너에게 그리 말한다면 어쩔 생각이냐. 그냥 죽었으니 복수따위는 하지 말고, 원한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살아갈 생각이냐? 응? 적의 앞에 무릎을 꿇고 투항할 생각이냐?”
강경은 힐끔 서복을 보았다.
서복은 오랜 시간 위국을 위해 일한 자.
위국의 공신이나 다름없는 이였다.
그가 옆에 있다면 허튼 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결코 투항한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투항할 생각이오. 죽기는 싫으니까.”
“…뭐?”
곽회의 대답에 강경은 서복을 보았다.
그는 별반 놀라지 않은 듯 무심한 얼굴이었다.
‘이놈들은 대체…?’
명예따위는 없는 것인가?
그가 인상을 쓰자 곽회는 볼을 긁적거렸다.
“패자가 무슨 잔소리를 한단 말이오. 패배했다면 죽거나, 혹은 굴복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뿐.”
“하하… 그럼 차라리 죽이지 그러냐? 난 굴복할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강경이 조롱하듯 말하자 곽회는 입술을 달짝거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신을 죽이고 싶소. 이번 전투에서 내가 세운 전공은 당신 하나 뿐이니까.”
“그럼 죽이지? 왜 피곤하게 떠드는 거냐?”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위국의 방침에 어긋나니까.”
“지금까지 위국 놈들이 죽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뭔가 착각하고 있군. 우리 위국은 위국에 소속되지 않은 놈들은, 위국에 칼을 들이댄 놈들은 사람으로 보지 않소.”
“…미친.”
“강경. 이건 기회요. 당신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하… 그래. 뭐 조건을 얘기해봐라. 기껏해야 목숨만은 살려준다. 그런 이야기나 하겠지?”
강경의 비웃음 섞인 말에 곽회는 바로 답했다.
“제안하리다. 천수군의 군수직을 주겠소.”
“제정신인가?”
“충분히 제정신이오. 물론 주변에서 원성이 심하겠지만. 그정도는 감안할 수 있소.”
흔들림따위는 전혀 없는 말이다.
강경은 서복을 보았지만 그는 아까부터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표정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다.
강경이 입술을 살짝 깨물자 곽회는 차분히 물었다.
“어떻소? 천수군은 당신의 고향. 고향으로 돌아가 살게 해주는 거요.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되돌리게 해주겠소.”
“왕릉과 장기를 잡고, 그리고 수많은 위국병들을 죽인 것이 나인데도 그런 자리를 주겠다고? 하하. 웃기는 소리. 내가 그것을 믿을 것 같나? 나를 받아들이면 너희들 모두에게 불명예가 생길텐데? 왕릉이라는 자는 명가의 사람 아닌가? 그를 따르던 이들이 당신들을 공격할텐데도 나를 받아들이겠다고?”
서복은 품에서 상아로 만들어진 패를 던졌다.
그것이 자신의 앞에 툭 떨어지자 강경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연주목의 인수증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연주목의 자리를 내놓지.”
“…미치겠군.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길래 이런 달콤한 제안을 하는거지?”
강경은 바보가 아니었다.
전투에서 패배해 포로로 잡힌 장수다.
그런 자신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의 질문에 곽회는 웃었다.
“제대로 봤소. 당신이 해줬으면 할 일이 있소.”
“내가 한중에 들어가… 한중을 공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군.”
“정답이오.”
“하하하하!!!”
그제서야 강경은 크게 웃었다.
이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또 천수군 군수직까지 제안하는 이유를 알았다.
한참을 크게 웃은 강경은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다른 곳에 가서 알아봐라.”
“다른 곳은 없소.”
“왜? 이미 다 잡았을 것 아닌가?”
“다 잡았지. 그리고 다 죽였고.”
“…사람은 쉽게 안죽인다면서?”
“그놈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항복의 가망도 없다고 생각했고.”
장완, 등현, 양회.
그들 모두 오랜 시간 익주목에게 충성을 한 이들이다.
이득에 관련된 설득으로 넘어 올 자들이었다면 애초에 유장의 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망이 있고?”
“애초에 당신이 유장의 성품에 반해 그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잖소.”
바로 맞췄다.
강경이 가족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유장의 밑으로 내려간 것은 한수의 죽음 때문이었다.
가족의 보호, 그리고 자신의 안전.
그것을 위해 유장에게 의탁했을 뿐이지 유장에 대한 충성심따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강경이 자신을 노려보자 곽회는 여유롭게 말했다.
“회유도 통할 자가 있고 통하지 않을 자가 있다는 것 쯤은 경험이 적은 나도 알고 있소.”
“하…”
강경은 탄성을 토해내었다.
그를 향해 곽회는 차분히 말했다.
“강경. 마지막으로 말하지. 이건 기회요.”
“그럼 나도 마지막으로 말하지. 나는 불가능하다.”
“당신의 아들 때문에?”
강경이 입술을 깨물고 표독스러운 눈으로 응시하자 곽회는 시큰둥히 말했다.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당신의 아들인 강유는 익주군과의 협약을 위해서 성도로 갔다고 하더군. 맞소?”
“그래. 만약 내가 배신한 것이 알려진다면 그들은 내 아들을 바로 죽이려 하겠지… 맞다. 너희들 말대로다. 솔직히 유장의 밑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건 최악을 피한 차악을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내가 따르던 것은 한 어르신이었으니까. 그런만큼 너희들의 손을 잡기는 어렵다. 자. 죽여라.”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충절을 지키려는 거요?”
“그렇다면?”
“그럼 죽으시오. 어쩔 수 없지.”
곽회가 검을 뽑는다.
강경은 인상을 썼고 서복은 차분히 말했다.
“당신의 아들 걱정은 마시오. 적어도 천수를 누리고 갈테니까.”
“그건… 고맙군.”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아들의 사지를 찢어죽일 줄 알았는데.
강유는 의외라는 듯 서복을 보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뭘. 그렇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다. 팔다리의 힘줄이 끊기고, 혀도 잘리고, 눈도 파헤쳐진 채 벌레처럼 살아가다가 늙어 죽을텐데. 목숨은 살려주지. 위국은 의학이 발달된 곳. 그런 벌레의 목숨을 연명하는 법 정도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네놈!!”
“너는 너의 만족을 위해 충심을 유지하는 것이지.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충심을 지키는 것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할 것 아닌가?”
“내 아들에게 손만 댔다간…!!”
자리에서 일어난 강경이 서복에게 달려들었지만 서복은 간단히 그를 잡아 쓰러트렸다.
악을 쓰며 부둥거리는 강경의 팔을 꺽은 후 서복은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를 향해 쪼그려 앉은 곽회는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 제안하는거잖소. 강경. 우리와 손을 잡으시오. 고향인 천수군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곳의 군수직을 되찾을 수 있는데다가 당신의 아들에 대한 안전도 보장할 수 있소.”
강경은 부들부들 떨었다.
곽회나 서복이나.
둘 모두 이런 협박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내일 점심에 대해 논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위국은 신상필벌에 확실하지. 만약 당신이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성도 내에 있는 교사원 요원에게 요청하여 강유를 빼오리다.”
“성도에 잠입을 시켜 놓은 것인가.”
“몰랐소?”
“예상은 했지만…”
“그들이라면 충분히 당신의 아들. 강유를 빼내 올 수 있소.”
냉정하기 그지 없는 말에 강경은 눈을 감았다.
“한수의 행동이 옳은 것도 아니었잖소. 당신도 유학을 공부한 이라면 알 터. 군자는 길이 아니면 걷지 않아야 하오. 한수의 행동이, 그의 반란이 진정으로 대로라고 생각하는거요?”
강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곽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제안. 당신이 우리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왕릉에 대한 일은 우리가 막아주리다. 그리고 약속한 천수군의 군수직, 그리고 당신의 아들까지. 모두 주지. 어떻소?”
“…후우.”
“시간을 많이 줄 수는 없소. 일 다경을 주지. 그 안에 결정을 내리시오.”
곽회가 나가자 서복 역시도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아직도 어둠 속에 쌓여 있었다.
“강경은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를 이용해서 한중을 얻으려 한다. 그가 투항한다면…”
“투항? 강경을 받아주실 생각이십니까?”
장호와 곽혁은 크게 놀랬다.
곽회가 제안한 작전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강경을 투항시키는 것이었다니.
곽혁은 불안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중에 있던 이들 때문에 왕 장군과 장 사마가 죽었고 수많은 병사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연주목과 곽 교위에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왕릉은 왕가라는 명가의 사람.
거기에 장기 역시도 명가 쪽의 사람이다.
강경이 투항한다면 명가의 관료들은 서복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곽회를 증오하며 그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견제나 시기, 공격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
“그럼으로써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뭔데!?”
그의 외침에 곽회는 무척이나 즐겁게 웃었다.
“승리.”
“뭐?”
“영광이니 진급따위니. 그따위 것은 필요 없다. 질척거리는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승리라는 작은 진주 하나만을 얻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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