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11
성도에서 빠져나온 이적은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위국의 입장 상 가맹관을 뚫었다면 다음은 자동을 쳐야 한다.
하지만 사마의 정도 되는 사람이 굳이 자동성을 직접 공격할까?
이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려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이에게 맡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향할 곳은 자동을 지나치는 우회로의 처음인 십방현이다.
그곳으로 간 이적은 십방현의 현령을 찾았다.
“어? 어서 오십시요. 이 가좌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십방현은 고작해야 칠천호의 호구만 지닌 작은 현이다.
그곳의 현장직을 맡고 있던 마정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찾아오자 그를 환대했다.
현청에 그를 모시고 와 성대하게 그를 대접해 준 마정은 그가 연회를 물리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곳까지 와주셨는데…”
“연회 같은 것은 나중에 해도 괜찮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말이야.”
마정이 따라 준 차를 홀짝거린 이적은 담담히 말했다.
“이보게 마정.”
“예.”
“몇해 전에 아이가 태어났다면서?”
“하하하. 그렇습니다.”
“이곳까지 오며 듣자하니 아이가 워낙 귀여워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하더군. 사실인가?”
“헛소문입니다. 어찌 관인으로써 그렇겠습니까?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정이 답했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마정은 야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술에 물탄듯, 물에 술 탄듯 흐르는대로 살아가는 자.
더 높은 자리에 가려는 욕망도 없고, 또 잘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마가의 가주로서 관직에 오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십방현의 현령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마정은 현의 백성들에게 칭송받았다.
마정이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글자도 떼고, 글도 꽤 읽었고.
호족 가문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지기 위한 훈련도 쌓았다.
나름대로 재주가 있지만 그것은 다른 호족 가문의 자제들에 비해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며 현상 유지에만 충실한 사람이었다.
십방현은 주변의 길이 험하고 딱히 특산품이나 작물이 자라지도 않았다.
그 덕분인지 산적이나 도적의 출몰도 극히 적었다.
가끔가다 출몰한다고 하더라도 병사들이 나서서 그들을 잡는 정도가 다였다.
마정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적이 나타나면 그는 인근의 현이나 자동에 요청하여 병사를 불러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러다보니 마정이 딱히 야심을 가질 일도 없고, 또 주목받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성도에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또 현 자체가 부유한 곳도 아니다.
그냥 저냥 먹고 사는 이들이 많은 곳이니 성도에서도 괜히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십방현의 관리들도 대부분이 대를 이어서 관직을 이어가는 이들 뿐.
그러다보니 하는 일만 할 뿐 이었고 다들 업무에 익숙해져 있었다.
덕분에 몇해 전 태어난 아들을 관청에까지 끌어들여 귀여워해주는 것이 그의 정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는데.
이제와서 이적이 정무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니 마정으로서는 심장이 두근거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위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현의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라는 명령이 나오면 어쩌나.
괜히 지금의 행복이 깨지면 어쩌나.
그는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정이 정색하며 요새 바쁘니 어쩌느니 떠드는 것을 들은 이적은 씩 웃었다.
“다 알고 온 것이네. 우리 사이에 그렇게 속여서 뭐 하겠나.”
“쩝… 그래서 저를 파직이라도 시키시려는 겁니까?”
“그런 것은 아니야.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 그렇지.”
“제안… 입니까?”
“그래.”
“무슨 제안을 하시려고…?”
궁금해하는 마정을 향해 이적은 싸늘히 말했다.
“이제 곧 위군이 자동성을 우회하여 십방현을 공격할 걸세.”
마정은 순간 침음성을 흘렸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이적은 이를 드러내었다.
“자네가 싸워 줘야겠는데.”
“제가… 싸워야 합니까? 하지만 십방현에는 병사들도 별로 없고 뛰어난 장수도 없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그리 싸움을 잘하는 편이 아닌지라… 막기 쉽지 않을텐데…”
“걱정말게 십방현의 성벽을 이용해서 적을 최대한 막아내는 사이 성도에서 병력을 보내 줄 것이야.”
“하지만 성도는 지금 남만군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쪽으로 병력을 돌릴 여유가 있겠습니까?”
“뭐… 자네 말대로 병력을 돌릴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는 익주목에게 녹을 받아 먹고 있는 자 아닌가. 목숨 정도는 걸어줘야 하지 않을까?”
마정의 표정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일반 도적도 아니고 그 무시무시한 위군이라니.
마정에게는 위군과 싸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이적은 천천히 말했다.
“자네라면 가능할 것이네. 아니더라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지.”
“…싫습니다. 그런 거.”
마정 역시 호족 출신으로 역사서 정도는 얼마든지 읽었다.
충신들의 결말은 항상 같았다.
고통, 괴로움, 그리고 절망.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받다가 현세의 영광을 잃는다.
그리고 얻는 것은 후대의 추앙.
현실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마정에게 있어서 그런 것 따위는 관심 밖의 것이었다.
마정이 불안해하며 말하자 이적은 쓰게 웃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배신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서도.”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답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력이 위태롭고 힘든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거대한 파도가 몰아친다면 다른 배로 옮겨타는 것은 일반인들의 당연한 생리였다.
망설이던 마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 가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머리도 나쁘고, 용맹하지도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글을 읽을 줄 알고 간단한 행정 업무 정도 뿐.”
“그래서?”
“이 가좌께서 실망하시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입니다. 법 군사나 다른 분들처럼 대단하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배신하겠다는 것 아닌가.”
“…예. 해야겠습니다. 이 가좌. 제발 이해해주십시요. 제 아이가 태어난지 고작 사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위군은 저항하는 이들을 모두 죽인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가솔들을 위해서, 십방현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마정은 저항할 수 없었다.
그가 결심을 하고 눈을 번뜩이자 이적은 이를 드러내었다.
“저는 항복하겠습니다.”
“그렇군.”
“화를… 내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사람에게 각자 소중한 것은 따로 있지. 그것이 충의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재산일 수도 있어. 그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네.”
마정이 환하게 웃자 이적은 그를 향해 마주 웃었다.
“하지만 그냥 항복해봤자 자네는 그들에게 십방현을 빼앗길 뿐이야. 그러니… 내 제안을 받아주겠나?”
“…이 가좌. 설마?”
마정을 향해 이적은 히죽 웃었다.
“나 역시 자네와 같네. 익주목에 대한 충심보다는… 내 야망을 위한 마음이 더 중요한지라.”
이적도 자신과 같이 항복을 생각한다는 것에 마정은 간신히 안도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흔들리는 말에 탄 채 며칠째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사마의에게 문흠이 말을 걸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자동성의 공략이 중요하다지만… 장 장군을 그곳에 두는 것은. 그리고 학소도 그렇고.”
가맹관의 공략은 성공했지만 아직 성도를 치기에는 멀었다.
한중의 서복이 조앙을 보좌하러 오는 사이 자동을 공략할 줄 알았는데 사마의는 그대로 군을 나눠 우회로로 내려와버렸다.
“두렵나?”
“그럴리 있겠습니까.”
문흠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렵냐고?
천만에.
오히려 더욱 즐겁다.
“저희 경조군이 성도 공략의 첫 걸음을 떼는 거잖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텐데.”
“예?”
“아마 지금쯤 성도는 양 승상이 이끄는 남만군이 공략하고 있을거다. 처음은 아니야.”
“어어? 그럼 왜 이렇게 급하게 가는 겁니까?”
“자동성을 공략한다고 이래저래 시간을 쏟는 것이 싫어서. 남만군이 성도를 공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성전은 불가능할 거야.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가는 공성장비가 있다면 성도 공략도 쉬워지겠지.”
성도 내부에 심어 놓은 교사원 요원들이 움직여 준다면 좋겠지만 그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부로 파고들 수 있는 길이 없다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외부에서 때려 부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때려부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비가 필요했다.
“형주 쪽에도 공성장비는 없겠지. 즉 성도를 안정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도착을 해야 해.”
“그렇군요…”
문흠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의의 옆에서 말을 몰던 왕기는 작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만 걱정입니다.”
“또 무슨 걱정인가?”
“우회로를 통과하려면 십방현을 거쳐야 하는데. 십방현의 성벽은 두텁기로 유명합니다.”
“공성전을 해야 하는 건가?”
문흠의 질문에 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사마의는 씩 웃었다.
“공성장비의 운용법을 연습한다고 생각하자고. 이제 곧 십방현이니…”
말을 하려던 사마의는 멀리 보이는 이들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냐. 저건.”
사마의조차도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다가가던 군이 멈추자 십방현 쪽에 있던 무리들이 움직였다.
오십여명 쯤으로 보인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꽃과 과일.
그리고 음식들이었다.
젊은 무희들이 춤을 추고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정복을 차려입은 관인은 사마의의 군을 앞에 두고 납작 엎드렸다.
“소인. 십방현 현령 마정이라 합니다. 위국의 귀인분들께서 누추한 곳을 찾아주신 것에 무한한 영광을 느끼며 환영합니다.”
여기서 이런 환영단이 나올 줄이야.
당황하던 사마의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자 문흠과 왕기가 나섰다.
“왜, 왜 이러십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잡아두고 뒤통수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마정이라고 했나?”
“예, 예에에…”
“십방현의 현령. 왜 싸우지 않고 나온 것이지? 이건 우리를 농락하려는 건가?”
“그… 그럴리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마정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를 따라 무희들과 악단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다들 공손히 엎드렸다.
“소, 소신은 오랜시간 익주에 머물렀지만 늘 위국을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마음 뿐 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위국의 행보에 큰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깊었는데. 위국에서 이렇게 행차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전에.”
입바른 소리는 됐다.
사마의는 마정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우리가 이 길로 온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그건…”
“그건 제가 알려드렸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던 악사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를 힐끔 본 사마의는 싸늘히 웃었다.
“너는 누구냐.”
“소인은 익주 가좌종사직을 맡고 있었던… 이적이라고 합니다. 한때 유표의 부하였었지요.”
“…여기서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예상치 못한 수작을 마주치게 되는군.”
“삶은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즐거워지는 것 아닙니까?”
이적이 웃으며 말하자 사마의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 그래. 이 가좌. 자네는 십방현을 바치겠다는 건가?”
“십방현 뿐만이 아닙니다.”
즐겁게 웃은 이적은 천천히 이를 드러내었다.
“성도를 바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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