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12
결국 십방현에 들어와 이적과 이야기를 마친 사마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마정을 일단 돌려보낸 후 사마의는 이적에게 말했다.
“이 가좌.”
“말씀하십시요. 경조윤.”
“당신 아주 영악한 사람이군.”
“좋게 봐주시어 감사합니다.”
이적이 빙긋 웃자 사마의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정을 전부 들어보니 이 남자.
자신을 위해서 십방현령을 이용했다.
“십방현의 현령을 보아하니, 아마 우리가 도착해도 싸우지 않고 성문을 열었을 거다. 그리고 우리는 십방현을 그대로 통과했을 것이고.”
“그랬겠지요. 마정의 성격상 대군을 앞에두고 싸울 사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그를 자극하여 일부러 우리를 환대하게 했어. 악단과 무희까지 대동해서 말야.”
“예.”
“그럼으로써…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고.”
“정확히 보셨습니다.”
이적 혼자 사마의를 찾았다면 사마의는 이적과 대화조차 섞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그가 대화를 걸었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사마의와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전 위국이 형주를 공격했을 때 익주목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지?”
“그때는 시대의 흐름을 읽기 어려웠으니까요. 예상보다 오가 너무 빨리 무너졌습니다.”
“흥. 결국은 기회주의자라는 것이군.”
“나쁩니까?”
기회가 생겼을 때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것은 정치가로서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니다.
적어도 이적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사마의는 이적을 말없이 응시하다 피식 웃었다.
“성도에 당신의 부하를 심어뒀다라… 만약 실패한다면?”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실패의 가능성 따위는 얼마든지 있지 않겠습니까?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이적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사마의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천하에는 재밌는 사람들이 많군. 만약 당신이 좀 더 일찍 들어왔다면 더 높은 자리에 올랐을텐데.”
“저도 아쉬울 뿐입니다. 그때 이엄이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빠르게 위국에 합류했을텐데.”
한마디도 놓치지 않는 그를 작게 흘겨 본 사마의는 손을 내밀었다.
이적이 공손이 그 손을 잡자 사마의는 천천히 말했다.
“자네의 제안대로 십방현은 일단 그대로 두도록 하지. 솔직히 후방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십방현은 우리 쪽 인물이 점거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감사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사마의는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지금 승상이 있는 곳은?”
“촉군의 팔릉현입니다. 하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현을 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럼 그들과 합류할 때까지는 당신의 신병은 우리 쪽에서 보호해주지. 하지만 기억해두게. 만약 자네의 말과 행동에 거짓이 있다면.”
“그때는 제 혀를 잘라내셔도 상관없습니다.”
자신만만한 어조로 신뢰를 약속한다.
그를 향해 한차례 웃은 사마의가 가볍게 박수를 치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왕기가 들어왔다.
그는 손에 들려 있던 수갑을 이적의 팔에 채웠다.
순순히 그가 왕기와 함께 나가자 문흠은 안으로 들어와 기분나쁘다는 듯 말했다.
“너무 말을 잘하는 자입니다.”
“그렇지.”
“혹시 사기를 치는 것 아닐까요? 말이 많은 자들, 그리고 달변가들. 그들의 대부분은 사기꾼들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협상가이기도 해. 그렇다면 그를 받아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야. 다만…”
“다만?”
“아무것도 아닐세. 자.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예.”
십방현에서 보급을 받고 사마의의 군은 바로 현을 떠날 준비를 했다.
물자에 상당한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보급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곡식과 물, 그리고 화살을 보급받은 후 사마의는 현을 떠나기 전 마정을 보았다.
마정은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부디 경조윤의 승전을 기대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만약 패전한다면… 자네와 자네 아들도 무사하지는 못할테니까.”
“하하…”
마정이 어색하게 웃자 사마의는 그의 아들을 힐끔 보았다.
꽤 잘생긴 소년이다.
그를 지그시 응시하던 사마의는 마정에게 물었다.
“나도 아들이 있다네. 둘째 아들이 자네의 아들과 비슷한 나이인데… 이름이 뭔가?”
“아. 예. 막이라고 합니다.”
“막이라… 괜찮은 이름이군.”
이상하게 친숙함이 느껴지는 소년을 빤히 바라보던 사마의는 어깨를 으쓱였다.
“위국은 재능이 있는 이들은 태학에 보내지. 자네 아들을 태학에 보내 볼 생각은 없는 건가?”
“없습니다.”
“호오…”
“제가 제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괜한 걱정 말고 마음 편히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봤자 쓸데없는 견제만 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지요. 그저 편안히, 가족들과 친우들을 챙기며 현에서 살아간다면. 그 또한 행복 아니겠습니까.”
아무런 야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말을 들은 사마의는 한차례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자네는 소의를 따르는 사람이군?”
“예? 예…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마의는 씩 웃었다.
자신의 제부 역시 비슷한 성향이었다.
아니.
원래 현령 정도의 낮은 직급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저렇다.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자는 그만큼 열망과 욕심을 가진다.
그것이 정상적이다.
‘그 놈이 비정상일 뿐이지. 하긴… 딱히 사람 홀리는 재주 말고는 다른 재능은 없는 녀석인데.’
이상하게 운이 좋고, 이상한 지식이 많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거 없는 그의 주변으로 많은 이들이 몰리는 것이나.
도대체 상상도 되지 않는 방법으로 별 희안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웃기는 놈이다.
‘어쩌면 영이는 그것을 나보다 먼저 봤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진유하의 매력이나 재능이 뭔지, 사마의는 아직도 몰랐다.
꿈도, 야망도 없는 소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위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승상부주라니.
과거의 자신이 들었으면 개소리 말라며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자네 삶의 방식이 나쁜 것은 아니네. 그럼… 내 다음에 또 연락할테니 향후 위국의 지원군이 온다면 그대로 통과시켜주게나. 아마 그들은 나 이상으로 무서운 자들일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장료는 자동성의 공략을 끝내면 조앙과 함께 내려올 것이다.
그리 된다면 면죽관이나 부수관을 공략하지 않고 십방현을 통할 터.
괜히 마정이 개기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익주에 이런 소인들이 남아준다면, 흐름을 따르는 이들이 많다면 차후 익주를 다스리는 것도 무척이나 쉬워질테니까.
마정의 배웅을 받으며 십방현에서 출발한 사마의는 이적을 불렀다.
그를 태운 수레가 선두로 나서자 사마의는 천천히 물었다.
“성도까지 가는 길의 안내는 맡겨도 되겠나?”
“그야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길잡이가 없습니까?”
“있지. 하지만 나는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거든, 특히나 자네처럼 말 잘하는 사람은 더욱.”
“하하하… 이거 신뢰도가 영 엉망이군요. 그럼 이번 기회에라도 어떻게든 경조윤의 신뢰를 얻어야겠습니다.”
이적이 험지로 안내할지, 함정으로 안내할지 어찌 아는가.
사마의의 말도 이해가 간다.
이적이 웃으며 선두에 자리하자 사마의는 작게 웃었다.
이제 성도 공략까지 한걸음이다.
이적의 수에 걸려 엄안과 황권이 죽었고, 또 이만여의 대군을 정욱이 제거하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성도에 남은 것은 약 삼만에서 사만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굶주려가는 적들 뿐.
그들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마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나도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있겠군. 올해가 가기 전에는 돌아갔으면 싶은데…’
마지막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풀어진다.
업에서 기다리고 있을 장춘화를 떠올리며 사마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보니 쓸데없는 바람은 피우지 말라고 했었지…’
그럴 여유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하루 하루가 전투, 그리고 전략을 짜는 나날 뿐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그녀의 질투에 사마의가 작게 키득거리자 이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작게 헛기침을 한 사마의가 전방을 주시하자 이적은 앞을 보며 말했다.
“저 길에서 좌측으로 틀어 쭉 내려가야 합니다.”
“음. 그래야겠군. 가는 길목에 거쳐야 하는 현은 몇개인가?”
“신도현과 처현입니다. 그 현의 현령들은 제가 잘 아는 사이이니. 원하신다면 그들의 설득도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만.”
“가능하겠나?”
“신도현의 현령이 조금 억세기는 하지만… 설득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적의 말솜씨라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자신만만해하는 그를 향해 사마의는 웃었다.
“그정도의 언변을 가지고 있다면 차후 위국에서도 활약을 하겠군.”
“고작해야 말하는 재주 뿐인데 그것이 어찌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아. 걱정말게.”
‘차후에는 협상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될테니까.’
고구려, 왜, 그리고 서역까지.
협상을 해야 하는 곳은 많았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이적 정도 되는 사람이 쓰일 곳은 많다.
사마의가 작게 웃자 이적 역시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서역의 언어를 빨리 배워둬야겠군요.”
“눈치가 아주 빠르군.”
“할 줄 아는 것이 적으니 눈치라도 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할 줄 알 뿐입니다.”
이적이 고개를 숙이자 사마의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이적은 조심스레 말했다.
“물론 경조윤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경조윤의 밑에서 견마지로하여 위국의 발전과 안녕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다른 생각하지 말고 말이야.”
“하하하. 제 분수를 아는데 다른 생각따위 하겠습니까?”
입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달콤한 말을 하는 그를 향해 사마의는 작게 웃었다.
자신의 밑에 이정도의 언변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확실히 많은 것이 편해진다.
그가 다른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긴. 날카로운 칼이 두려워 다루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겠지.’
작게 웃으며 이적이 길을 안내하자 사마의는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 칼날을 갈아내든, 아니면… 제대로 써먹든. 결국 소유자의 일.’
사마의는 이적을 힐끔 본 후 담담히 말했다.
“진군하라.”
‘나라면 저자를 잘 다룰 수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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