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5
00125 천하최강의 의미 =========================
행군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사만이 넘는 병력을 움직이면서 문제가 안생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조조가 대단하긴 했다.
“내일이면 팽성군에 도착할 것 같소. 첨병의 이야기로는… 적군은 요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팽성군을 하루 앞둔 거리에서 마지막 전략회의가 시작되었다.
조조, 나, 아버지, 그리고 순욱과 정욱.
모두 긴장하고 있는 눈치였다.
“일단 저희 산양군의 병력이 앞서서 나서겠습니다. 계획했던 것처럼.”
조조나 정욱에게 나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조가 죽기라도 하면 다 망해버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맡겨놨다가 똥망했던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나와 아버지가 키운 병력을 쓰는 것이 낫다.
그에 대한 준비는 이미 다른 장수들과 모두 이야기를 해놨으니 걱정은 없었다.
“진 군수도 동의하오?”
조조의 질문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이번 전투로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인것 같았다.
그렇다면 하는 수 밖에.
“참군으로라도 돕는게 낫지 않겠나?”
정욱이 떨떠름히 물었지만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적병은 칠천.
전투에 나올 수 있는 장수는 여포와 장료, 고순 뿐이다.
“첩자가 보낸 것을 들어보면 규율이나 훈련도, 그리고 장비도 그리 좋지 않다고 합니다.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조조가 키운 병사가 아닌 산양군에서 키운 병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니 잃어도 조조에게는 큰 손해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바로 전투에 들어갈 것 같은데… 지금 말해두도록 하지. 여포를 잡게 되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팽성군에서 멈출 것인지. 아니면 하비를 계속 공격할 것인지.”
“물을 것도 없습니다. 공격하시지요.”
“허나 명분이 약해. 여포가 우리를 공격한 것은 그가 아직 서주군이 아닐 때의 일이야. 그렇다면 그들을 잡은 순간 그 명분은 사라져.”
“명분… 쩝.”
그놈의 명분.
더러워서 황제를 빨리 잡든가 해야지.
유비의 속내야 어쨌든 그는 서주목이 되고 시혜를 베풀며 인자하며 덕 많고 현명한 이로 서주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서주에 전부 퍼지지 않았지만 하비성에 살고 있는 명사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어서 그를 죽였다간 조조에게 안 좋은 소문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좀 더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비를 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까짓거 욕 좀 먹으면 어때.
내가 욕먹는 것도 아닌데.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조조는 빙긋 웃으며 내 말에 맞장구쳤다.
“그래. 잘라내야 한다면 잘라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 아무튼 이 이야기는 우리가 여포를 잡았을 때의 이야기다. 자네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본진의 막사로 돌아 온 아버지와 나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영이가 끓여 준 차를 마시며 생각을 이어나가던 아버지는 영이를 내보내고 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여포를 잡을 수 있다.”
“그렇겠죠.”
준비는 완벽했고 전략도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을 정도의 전략을 꾸몄다.
장료와 고순을 여포에게서 떼어내고 여포를 상대한다.
여포만 잡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결정했니.”
“…..”
차를 한모금 마신 후 아버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결정.
아버지와 나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포를 잡으면 어찌할 것인가.
여포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살릴 것인가.
아버지와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이유는 여포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포의 딸인 여영기가 내 목숨을 구했다.
그녀가 스스로 나서 아버지와 나를 따르겠다고 말한 순간 그녀는 우리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유하야.”
“네.”
“너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여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삼국지라는 지식이 가진 두려움.
여포를 죽이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를 흔들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삼국지의 지식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포를 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를 알기에 나는 고민하고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유하의 지식이, 그의 삶이 오히려 너를 강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에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
아버지는 빈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잡지도 못한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두려워하고 있기는 마찬가지구나.”
아버지나 나나 똑같은 심정이었다.
삼국지에 얽매여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가서 쉬거라. 내일 전투를 치뤄야 할테니까. 잘 할 수 있겠니?”
“걱정마세요. 천하 최강을 죽음 바로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구요.”
부드러운 어조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
여포를 잡는 것에 대한 자신은 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여포를 죽일 수 있을까?
날 살린 여영기의 아버지를…
내가 죽일 수 있을까?
막사에서 나와보니 영이가 땅을 발끝으로 톡톡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왜 여기 있어?”
“헤헤…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런. 괜히 기다리게 한 모양이네. 갈까?”
영이의 손을 잡았다.
이곳은 산양군의 병사들만 있는 진영이다.
영이가 남장을 했지만 여자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병사들이 훈련을 할 때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거나 가끔씩 그들과 함께 진영 훈련, 작전술 등을 연구하고 그들과 함께 고생한 영이다.
쾌활하며 착한 영이를 어느정도 그녀를 겪은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다.
전장을 앞둔 병사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사이를 지나가면 오히려 서로 데려다 드리겠다. 지켜드리겠다 할 정도이니 혼자 가도 괜찮았을텐데.
“당신이랑 같이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아버님과는 무슨 이야기를 한거에요?”
“내일 전투에 대해서.”
“…여포에 대해서?”
“응.”
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영이는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아버지라는 것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지.”
“후후. 당신도 조만간 아버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 임신했어?”
그럼 전장에 데려오는게 아니었는데.
내가 당황하자 영이는 웃으며 내 팔을 꽉 끌어안았다.
“아직 아니에요. 그보다 영기가 걱정이네요.”
“뭐… 어쩔 수 없지.”
영이와 터덜터덜 걸어 내 막사에 돌아왔다.
자리를 깔고 누워 영이와 자려고 할 때 누군가가 막사의 천막을 걷어올렸다.
어떤 새끼야?
“너였냐?”
“도련님.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수?”
역시.
이놈은 예의가 없어.
주군이 있는 막사를 벌컥벌컥 들어오다니.
내가 영이랑 엄한 짓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어쩌려고.
영이를 보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여기서 하긴 곤란한 이야긴가보다.
내 막사에서 조금 떨어진,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 감녕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 있잖수.”
“뭔 얘기 하려고 뜸을 들여?”
“여포.”
“…..”
지금 우리 군 최대의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감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어쩔거요?”
“넌 어쩌는게 낫겠냐?”
“도련님이 그동안 여포를 잡고자 하던 것은 꽤나 봤수. 그런 거라면… 깔끔하게 죽이는게 낫겠지.”
“그럼 죽이면 되잖아. 기회는 만들어 줄테니까. 천하 최강의 이름을 네가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것도 그런데. 하아…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영기의 아비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이야~ 어쩐 일이야? 서로 죽이니 살리니 싸우던게 바로 어제 같은데.”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여영기는 영이에게 배운 특제 건강음료를 감녕에게 먹였고 감녕은 그걸 먹고 토했다.
당장 여포와 싸워야 하는 이때 긴장감없이 투닥거리던 것을 보며 아무 생각이 없구나. 라고 판단했는데 틀린 모양이다.
이 녀석도 나름대로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하아. 난 아직도 망설이고 있수.”
“네가 말했잖아.”
난 피식 웃으며 그의 가슴을 툭 쳤다.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해라.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 그때 내려.”
“내 판단에 따르겠다는 거요?”
이번 작전에서 여포를 상대하는 것은 감녕에게 맡겼다.
여포의 힘을 빼는 것까지는 병사들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천하 최강을 누가 가지느냐다.
허저나 전위에게 주는 것보다는 우리가 가지는게 나았다.
그렇다면 누가 먹느냔데.
그것 때문에 평소 사이가 좋던 장합과 서황, 감녕이 싸워댔고 결국 내가 결정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천하 최강. 여포를 상대하여 그를 잡는 것은 감녕이 하기로.
딱히 감녕이랑 가장 오래 알고 지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감녕의 위치 때문이지.
감녕은 현재 산양군에서 돌격대장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늘 선봉에 서서 흑귀대와 함께 달리는 그다.
서황이나 장합도 강하기는 했지만 맹장이라기보다는 지장에 가까운지라 그들에게 천하최강이라는 이름을 주는 것은 그리 효율성이 좋지 않았다.
내 결정에 그들은 순순히 납득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무식한 놈이니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에라이. 퉤.’
생각해보니 순순히는 아니네.
뒷끝 쩐다…
감녕이 여포를 잡아도 뒷감당하기 힘들겠는데?
“아니 그게 아니잖수! 결정은 도련님이 해야지.”
“글쎄… 만약 내가 죽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거냐.”
“뭐… 죽여야지.”
망설였지만 감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영 내키지 않은 눈치였다.
“힘들겠다 싶으면 하지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건 감녕 뿐만 아니라 서황과 장합에게 시켜도 똑같이 나올거다.
여포를 누가 잡느냐의 회의에서 결국 감녕이 잡는 쪽으로 결론이 났을 때 그들의 표정을 읽었으니까.
천하 최강을 잡아 자신이 천하 최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아쉬움보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가 더욱 드러나있었다.
그들 역시도 여영기와 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합은 비록 늦게 합류했지만 그 특유의 부드러움과 현명한 행동 때문에 여영기가 감녕과 비슷한 수준으로 따르고 존경했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재능이 있는 여영기를 장합 역시 좋아했고.
서황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노력하면서 좀 더 배우고, 좀 더 훈련을 하려는 그녀를 서황은 만족스러워했다.
노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훌륭한 군인인 서황에게 있어서 여영기는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부하였을테니까.
“허저나 전위에게 넘겨도 괜찮아.”
고민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에게는 고민따위는 없을 것이다.
아니 서로 시켜달라고 난리를 치겠지.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여영기와 남이니까.
여포는 그저 적에 불과할테니까.
“…아니요. 제가 하겠수다.”
“현명하게 생각해. 내 명령이 아닌. 네가 생각해봐. 천하 최강이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천하 최강…”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라는 명예다. 여포를 죽이면 그것을 얻을 수 있어.”
내 말에 감녕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탐날거다.
무인이라면 모두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니까.
특히나 호전적이고 싸움 좋아하는 감녕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겠지.
“…알겠수. 좀 더 생각해보겠수다.”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행동을 할 때 한번 더 생각해. 그것이 너의 행동에 힘을 줄거다.”
“만약… 내가 여포를 죽이지 않으면… 어쩔거유?”
감녕답지 않은 힘없는 목소리다.
늘상 즐겁고, 푼수같으면서도 적을 상대할 때는 더할나위 없이 잔혹했던 감녕 답지 않은 목소리에 난 차분히 대꾸했다.
“네가 어떤 행동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네가 우리를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절대로 널 버리지 않아. 네 선택이 곧 나의 선택이다.”
“하. 날 너무 믿는구만.”
“말했잖아. 너 답지 않게 왜 그렇게 고민하냐? 너는 너대로. 양양에서 했던 것처럼 네가 해야 할 길을 가면 되는거야. 말했지. 널 구속할 생각 없다고. 사실 미친개는 좀 묶어놓는게 좋지만 묶어놔봤자 난리만 칠게 뻔하니…”
“아니 뭔 또 개요. 개는.”
“개 아니야? 양양의 광견.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미친개. 하지만 이제는 천하의 광견이 되보는 건 어때? 천하 최강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그 누구도 널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천하최강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거야.”
“광견보다는 호랑이가 낫겠수. 쳇. 그래도 도련님이랑 이야기하니까 좀 정리는 되는구만. 늦은 밤인데 쉬쇼.”
난 그에게 쓴웃음을 지어보이고 몸을 돌려 막사로 돌아갔다.
“안잤어?”
“네. 기다렸어요. 감녕이 뭐라고 하던가요?”
“뻔하지.”
“아…”
그 회의를 할 때 영이도 옆에 있었다.
감녕이 무슨 말을 했을지 짐작한 영이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꼭 죽여야 하는 걸까요.”
여영기가 날 살려준 것 때문에 영이 역시 여영기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영이에게는 울먹거릴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글쎄…”
“당신의 뜻을 따를게요. 어떤 것이라도… 그렇지만.”
영이는 내 손을 잡아주며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후회하고, 슬퍼할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