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65
어렸을 때부터 유학이 싫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알고 까면 더 잘 깔 수 있다고.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했다.
충, 효, 그리고 인성.
옛 성현의 말씀들을 따르며 살아가는 방식을 익힌다는 것.
좋다.
다 좋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성현의 말씀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유학에 금방 흥미를 잃고 많은 유학자들을 까내려갔다.
노가 주변에 있는 유학자들의 논리를 무너트리고 그들의 말문이 막히게 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열 두살이 되었을 때.
유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들의 근거는 오로지 현재가 아닌 과거를 사는 성현들이다.
현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생각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생각은 그저 반골.
체제를 거역하는 것이기에 불과했다.
위정자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인식은 그의 생각을 보일 수 없게 만들어나갔다.
그렇기에 숨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숙은 끝까지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자신의 즐거움을 감춰나갈 수 밖에 없었다.
“어이. 노가야. 이건 어쩔 생각이냐?”
황승언의 집에서 얻어 개량한 연노의 시위를 가볍게 튕기며 옛날을 추억하던 노숙은 장중경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아. 그건 거기 두십시요.”
“이것도?”
노숙이 오랜시간 연구한 자료들이다.
장중경은 인상을 썼지만 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지 않느냐.”
“그다지…?”
그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유학은 잘못되었고,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쓰이는 것이 중요하다.
체면과 겉치레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지.
그렇기에 명가의 가주이며 오의 이인지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노숙은 스스로 진흙 속에 들어가는 것을 사양치 않았다.
스스로 나서 조조군의 강력한 성장 기반인 농법에 대한 연구를 훔쳐 강남에 맞게 개량해나갔다.
“몇년만 더 하면 큰 성과를 발휘했을텐데.”
“어쩔 수 없지요.”
안타깝게도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년, 아니 일년만 더 있었어도 제대로 된 비료를 만들어 양주 일대의 생산량을 크게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 같은데.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떻겠냐.”
“이제와서요?”
“그래. 너도 가끔씩 말했잖느냐. 어쩌면 오에 있는 것보다 조조의 밑에 들어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럴 것이다.
오에 남아 있는 것보다 장중경의 말대로 조조의 밑에 들어가는 것이 더 편했을지도 몰랐다.
“글쎄요… 허나 그것은 제 취향이 아닌지라.”
“취향 한번 고약하네.”
바깥에서 노숙을 훌륭한 정치가이며 책사라고 칭하고 있지만 오랜시간 노가의 신세를 져가며 노숙을 봐왔던 장중경에게 있어 노숙은 여전히 철없는 꼬마였다.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벌컥 화부터 내고.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힘을 쓰는 것이 바로 노숙이었다.
말 그대로 철 없는 어른이다.
장중경은 짧게 혀를 차며 짐을 내려 놓고 허리를 폈다.
“그럼 저건 어쩔 생각이냐?”
“음…”
장중경이 가리킨 밭 한쪽에 시선을 돌린 노숙은 신음했다.
화사하게 핀 꽃들이 즐비한 밭이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
하지만 그 꽃이 가진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노숙으로서도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환약이라도 잔뜩 만들어 놓을까? 그걸 쓴다면 가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만.”
앵속.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귀신의 꽃이다.
한송이의 앵속으로 만들어낸 마약은 많은 이들을 중독시킨다.
아주 오래 전 자신의 취미를 위해서 산에 갔다가 발견한 꽃이었다.
그 꽃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씨앗을 챙기기 위해 씨방을 가르고, 그 씨방에서 나온 즙을 자신도 모르게 핥았을 때 알게 되었다.
이 꽃은 아주 위험한 꽃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 꽃은…”
고민이 된다.
이미 앵속에 대한 연구는 끝난지 오래다.
하지만 버릴 수 없어서 지금까지 쥐고 있었던 앵속을 어찌 해야 할까.
노숙이 망설이자 장중경은 앵속밭을 둘러보았다.
“저정도면 적어도 일만 이상의 고통을 모르는 전사를 만들 수 있어. 그리고 그들로 시간을 끈 후 강북 일대에 앵속을 퍼트려나가면…”
그렇게 된다면 합비 뿐만이 아니라 비옥한 강북 일대를 무너트릴 수 있게 된다.
조조의 막대한 힘의 원천은 넓은 땅덩어리에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생산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진유하가 제안하고 다른 이들이 발전시켜나간 신농법은 그 땅의 소출을 매년 늘려가고 있었다.
진가윤의 연구소라지?
자신 혼자서 낑낑대며 개발하고 고안해봤자 그저 한두가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조는,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유학을 인정함과 동시에 기술을 발전시켜나간다.
그러니 당해낼 수 있나.
이미 궤를 달리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려면 마찬가지로 궤를 달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궤를 달리할 수 있는 방법이 손아귀에 있었다.
이미 모아 놓은 앵속 씨앗은 많았다.
저기 심어져 있는 앵속 뿐만 아니라 모옥의 창고 안에 있는 씨앗들을 키운다면 적어도 오년 안에 조조의 모든 기반을 무너트릴 수 있다.
‘그리고 천하 자체가 죽어버리겠지.’
과거 원술이 광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노숙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앵속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앵속은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마물이다.
자신조차도 어렸을 때 그 앵속에 중독되어 엄청나게 고생하지 않았는가.
사는 것에 힘들어 하는 백성들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도.
관리도.
하인도.
앵속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환각을 준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평한 결말을 가져다 준다.
그것을 알고 있는 노숙은 고민했다.
혼자 죽을 것인가.
아니면 함께 죽을 것인가.
장갑에 감싸진 손이 앵속을 감싼다.
튼실한 씨방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그 황홀한 독을 배출할 것만 같았다.
쓴다.
써버리자.
어차피 이번 전쟁에서 자신은 죽는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 되었어도 반드시 자신을 제거할테니까.
지금 조조군을 이끌고 있는 진유하라면 반드시 자신을 제거할 것이다.
그렇다면 써버리는 것이 낫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속삭였다.
어차피 세상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헛된 명분에 취해 현실을 보지 못하고 떠들어갈 뿐이다.
그렇다면 써도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무너질 천하라면.
그럼 자신의 손으로 무너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달콤한 유혹은 그를 계속해서 자극해나갔다.
사랑스럽다는 듯 씨방을 쓰다듬던 노숙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장중경은 담담히 먼저 말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화타가 만든 마취제 역시 앵속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앵속을 천하에 퍼트려도 네가 한 것임을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진유하를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겠지.”
화타와 친한 진유하이니만큼 그의 관리 실패는 진유하에게 치명적인 공격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최고이며 동시에 최악의 적인 진유하를 떠올린다.
‘어디서 그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나타나서는…’
과거에도 그와 몇번 만난 적이 있었다.
분명 방덕공의 모옥이었다.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노숙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듯 그 역시 자기만을 생각하는 자였다.
“뭐가 다른 것일까요.”
“무슨 소리냐?”
“저 역시 기술의 발전에 대해 힘을 썼습니다. 농법 개량, 무기 개발, 새로운 전술. 시작은 어쩌면 제가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네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진유하 또한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렇지요…”
그가 한 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노숙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저 역시 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차이가 나버린 것일까요.”
노가의 가주가 된 이후에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학자들을 포섭하려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들은 기술은 천한 것들의 하찮은 일이라며 무시해왔다.
결국 뜻이 맞은 장중경과 제자가 된 보연사 정도만이 힘이 되어줬을 뿐이다.
오의 이인자가 되어 기술 개발과 부의 재분배에 대해 말했지만 양주 호족들과 명가에서는 그것을 듣는 둥 마는 둥 넘어갔었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것은 백성들이니 그들에게 나누어주어 그들의 욕망을 자극, 좀 더 많은 생산을 하게 하자.
사람은 어리석다.
일년 후의 커다란 떡보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작은 떡에 손을 뻗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호족과 명가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허나 어째서 진유하는 성공한 것일까?
노숙의 의문이 가득 담긴 질문에 장중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만약 네가 태어난 곳이 노가가 아닌, 북방의 가문이었다면… 혹시 모르지.”
“그럴까요.”
그래.
운이 나빴을 뿐이다.
어린 시절 양주에서 살아가며 양주의 고집 센 이들과 얽메여 살았던 자신.
어린 시절 수경원에 들어가 뛰어난 자들과 교류하며 결국 자신의 뜻을 펼친 진유하.
어쩌면 그와 자신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지만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환경이 다르다.
어쩌면 자신이 실패한 원인은 그저 옆에 있어 준 이들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노숙은 피식 웃었다.
“여몽에게 전해주십시요. 제 복수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그러지.”
“그리고 연사에게는… 아니, 연사에게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수룡주에 갈때 여차피 연사와 함께 가야하니까.
노숙이 무덤덤히 말하자 장중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 앵속은?”
“쓰지 않습니다.”
망설임 없이 노숙은 고개를 저었다.
그를 향해 장중경은 빙긋 웃었다.
“천하는 너의 것이 되지 않을텐데도? 네 것이 아니면 부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정도로 미친 놈은 아닙니다. 다만…”
노숙은 작게 웃었다.
“그에게 미혹을 하나 던져주도록 하지요.”
“미혹?”
“제가 연구한 모든 자료들을 파기하지 않고 이곳에 두겠습니다. 하지만 앵속의 씨앗은…”
장중경에게 노숙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선생께서 가지고 계셔주십시요.”
“만약 진유하가 저것들을 파기하지 않고 가지려 한다면 그 씨앗을 키워 천하에 퍼트려달라는 것이냐? 이거 의원에게 너무한 부탁을 하는군.”
“원래 저는 너무한 놈이잖습니까.”
“쯧.”
짧게 혀를 차지만 장중경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를 향해 노숙은 작게 웃었다.
“그라면 제가 남긴 것들을 가지고 많은 것을 하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기술을 중시여기는 사람이니까. 너도 알지 않느냐. 지금 화타가 관의 지원을 받아 접종인지 뭔지를 하고 있다는 것.”
“들었습니다. 마마에 걸리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라지요?”
“그래.”
노숙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자신과 마찬가지이나 또한 반대다.
기술력을 올려 자기 만족을 원하는 노숙.
기술력을 올려 여기저기 써먹으려는 진유하.
어쩌면 자신과 진유하가 손을 잡는다면 가장 좋은 조합을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정말 수경원에 입문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만약 그랬다면.
진유하의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아 구상만 해 놓았던 모든 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가 이끌어 온 기술자들과 함께 역사를 바꿔나갔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생각하니 아쉽다.
하지만 이제와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진유하에게는 진유하의 길이 있고.
노숙에게는 노숙의 길이 있다.
“허나 뜻은 이어질 수 있지.”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전법을 배운 여몽.
자신의 기술을 배운 보연사.
여몽은 아마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보연사라면 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뜻, 의지, 지식.
그것이 이어지고 천하에 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한숨을 내쉬며 노숙은 북쪽을 보았다.
‘과연 네가 이것을 다룰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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