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66
한의 황제인 유협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위왕 조앙에게 선양을 한지도 꽤 시일이 지났다.
위 제국은 끊임없이 발전하며 이제는 과거 한 이상의 위엄을 천하에 알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요새 좀 힘들어.”
이제는 결코 젊은 나이라 할 수 없게 된 조앙은 자신의 무성한 백발을 가리켰다.
그것을 응시하던 진유하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시큰둥히 팔짱을 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말이야.”
“뭐. 폐하께서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그것 뿐만이 아니야. 그게… 요새는 좀.”
“좀?”
“고개숙인 남자가 된 것 같단 말이지.”
“황태자 전하와 황자 전하, 황녀 전하도 있는데 고개 좀 숙이시면 어떻습니까. 거기에 황태손 전하도 계시고. 괜한 짓으로 제국 승계권에 문제 일으키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계속 고개숙이고 계십시요.”
“어허. 진 상서. 그리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진림이 퉁명스레 말하자 조앙은 너스레를 떨었다.
황제가 된 지 꽤 시일이 지났지만 조앙은 여전히 능글맞고, 많은 신료들에게 사랑받는 황제였다.
공석에 있을 때는 누구보다 위엄이 넘치는 황제이지만 사석에서 친인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만은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까이는 이른바 동네 북이었다.
그럼에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조앙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림의 이어지는 갈굼을 조앙은 웃으며 받아들인 후 양수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면.”
“들어가면?”
“이제 슬슬 태자에게도 황제의 업무를 맡겨 볼 생각인데…”
그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진림은 술잔을 내려 놓으며 벌컥 화를 냈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 노구를 이끄는 신도 아직 일을 할 수 있는데, 위 제국을 건국하신 폐하께서 자신의 가치를 그리 낮게 평가하시다니요!”
“아니 그렇게 화낼 것 까지야.”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상서인 진림이 결사반대를 하는 것을 본 조앙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몇년 전부터 꾸준히 진림이 사직서를 냈지만 조앙은 항상 반려시켰다.
그 보복이나 다름없었다.
조앙은 도와달라는 듯 양수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양수는 더욱 심했다.
“아뢰옵건데…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되면 상서부 뿐만 아니라 다른 중앙의 모든 부서에서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들고 일어나지 않아도 신이 솔선수범하여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 그럴까?”
“그럼 당연한 말씀을. 아직까지 폐하께서는 더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신료들이 사직서를 냈을 때 반려시키신 폐하이신데 그들이 그것을 인정할 것 같습니까?”
황제마저도 신하들이 이토록 반대하면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조앙은 마지막으로 진유하를 보았다.
간절한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진유하는 빙긋 웃었다.
“승상부터 설득하고 오십시요.”
“치, 치사한 자식! 내가 너 태사자리 안 줬다고 이러는 거냐?”
공적으로는 군신의 관계이지만 사적으로는 가족관계다.
그런만큼 조앙은 진유하에게 더욱 거칠었고 진유하 역시 거칠게 답했다.
“아니 태자 전하가 그냥 수업을 받는게 아니고 실제 태자부에서도 많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사예교위와 함께 사예주에 대농장을 설치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나눠준 게 누군 줄 아십니까? 거기에 독발부의 사차 반란을 진압한 것 역시 태자전하입니다.”
“아니 그건 태자만 한게 아니잖은가. 오자양장 인 등 장군과 함께 나섰고 모용부에서도…”
“예전에 서량을 정벌하신 폐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듯 싶습니다.”
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여 한모금 마신 사마의가 무뚝뚝히 말하자 조앙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위국의 정치체계가 이렇다.
황제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중신이라고 하더라도 황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각 부서들과의 유기적인 연계, 그리고 공, 사적인 연결고리를 통해 견제와 협력을 하는 것이다.
이상적이라면 이상적인 형태다.
문제는 이들이 인간이라는 것.
누구 하나 편해지는 꼴을 못본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다.
조앙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자자. 자네들이 나에게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잘 알고 있어. 그럼…”
“허튼 소리는 마시고 내일 해야 하는 일부터 처리를 하실 생각을 하십시요.”
“내일?”
“고구려의 동천왕이 직접 공물을 바치기 위해서 업으로 찾아온다고 합니다. 비록 제후국이기는 하나 결국 부여를 쓰러트린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입니다. 저희 위국의 오랜 우방이기도 한 고구려의 왕이니 쉽게 대하지 마십시요.”
“으음… 이런 자리에서까지 일 이야기를 꺼내야겠는가? 양 승상?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나만 믿고 있게.”
“저만 꺼내는 것도 아닙니다. 상서령도 할 말이 있지 않은가?”
“모용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북방에 나가 있는 장군부와 협력하여 독발부의 잔당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물자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현재 상서부에서 뺄 수 있는 예산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유분이 남는 황가에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양주 남쪽의 묘족이 항복을 요청하고 위 제국 내의 신료가 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리 될 경우 양주의 크기가 비대해집니다. 양주목에게만 임무를 맡길 수 없으니… 그쪽을 관리할 이를 파견해야 합니다.”
조앙은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사적인 자리에서 술 한잔 하며 은근히 휴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신하들은 공격적으로 나오며 오히려 일을 더 넘기려고 하고 있다.
조앙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푹 숙이자 진유하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뭐,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겠지요. 파사국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까 그… 폐하께서 하신 쓸데없는 소리에 대한 반박도 겸하겠군요.”
큰 골치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서역의 파사국 이야기가 나오자 조앙을 비롯한 이 자리의 중진들은 올 것이 왔다는 것에 다들 이를 갈았다.
“그럼 그들과는 누가 만나지? 역관의 소집은 됐나?”
“일단 제가 나서야겠지요. 이곳까지 올 이의 위치도 보통이 아닐테니.”
진유하가 직접 나선다고 할 정도로 파사국의 일은 중요했다.
조앙은 휴가는 물건너 갔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말했다.
“그 부분은 좀 더 생각을 해보지. 만약 한번의 실수라도 생긴다면.”
최악의 경우.
위국은 유래없는 큰 도전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만인지상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부질없는 자리일 줄이야.
위 제국이 만들어졌지만 웃기게도 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조앙은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일년 내내 일이 많다는 승상부나 상서부, 장군부 같은 경우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다들 돌아가며 휴가를 가진다.
하지만 황제의 자리는 절대 비워 둘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조앙은 빠른 후계자 교육을 실시했다.
조가의 피와 채가의 재능을 듬뿍 이어받은 조천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힘이 없었다.
위국 명문가인 하후가와 양가, 진가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조앙이 보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조천을 굴렸다.
사자는 절벽 위에서 새끼를 떨어트리는 법.
황태자라 하나 신분을 숨기고 밑바닥부터 기어오르게 해 많은 친우를 얻고, 실력을 쌓아서야 비로서 태자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겨우 만족할 정도로 태자를 키워 가끔씩 정무를 맡겨 보았는데 곧잘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이정도로 격한 반응이 나올 줄이야.
“쯧.”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지금의 체제를 바꿀 수는 없었다.
더욱이 파사국에서 움직였다면.
그나마 간신히 얻어낸 며칠 정도의 휴가를 취소하고 당장 총력을 다해야 할지도 몰랐다.
“폐하. 태자 천이옵니다.”
“들어오도록.”
이제 이십대 중반이 된, 거기에 양가의 여식과 혼인까지 하여 잘생긴 아들도 낳은 조천이 들어오자 조앙은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큰 성과를 내었다면서?”
“고작해야 반란군 나부랭이에 불과합니다. 그깟 놈들 잡지 못해서야 어찌 위 제국의 태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채염을 닮아 타고난 재지를 갖추고 조앙을 닮아 유연한 성격을 둘렀다.
덕분에 조천은 태자검을 만들기 위해 서주로 떠난 이후 신분을 숨긴 채 태학에 입학하여 많은 업적을 이뤘다.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빠르게 태학을 졸업했다.
거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지휘관 양성소에도 들어가서 훈련을 받고 차근차근 공을 쌓아 장군직도 손에 넣었다.
이정도면 진짜 어디 내놔도 아깝지 않은 인재다.
조천이 세운 업적을 보면 다른 중진들도 인정할 줄 알았는데.
조앙이 입맛을 다시자 조천은 히죽 웃었다.
“양 숙부님이나 진 숙부님께서… 대리청정에 대해서 거절하셨습니까?”
“귀신같구나. 어떻게 알았느냐?”
“그야 폐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이 은퇴이실테니까요. 그리고 숙부님들께서 가장 막고 싶은 일이 폐하의 은퇴일테니까.”
“끙…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젊으셨을 때 밑바닥에서부터 활동하시며 많은 이들의 인심을 사신 것처럼, 저 또한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럼 그 한계가 올때까지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조천이 싱글벙글 웃으며 답하자 조앙은 눈쌀을 찌푸렸다.
영악한 녀석이다.
이미 조천은 황태자로 낙점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가 사사로이 악행을 저지르며 평판을 마구 떨어트리지 않는 이상 다음 대 위 제국의 황제는 조천이다.
그렇기에 그는 여유를 부리며 황태자로서 살아가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이 거슬렸던 조앙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제로서 명령을 내리겠다… 라고 한다면?”
“그럼 저는 승상과 상서령, 대장군께 이 일을 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 시중께도 말씀드리고.”
“네 아비에게 너무 몹쓸 짓을 하는 것 아니냐? 그리 되면 그들이 나에게 어떻게 할지 뻔히 알면서.”
“그래봐야 며칠간 충언을 올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폐하. 비록 이 태자 조천. 모자라고 미숙하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위 제국의 충신임은 압니다.”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일을 했다가 시중인 조식이 조앙 옆에 붙어서 며칠간 잔소리란 잔소리를 다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끙…”
“뭐, 그 분들의 호응을 얻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뭔데?”
“은퇴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은퇴를, 그리고 다른 부서로 전근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전근을 허가하는 것입니다.”
“허튼 소리 마라.”
“하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 그러는 줄 아느냐? 그것을 허락하면 어떻게 될 줄 뻔히 알면서.”
“양 승상과 사마 상서령께서는 몇년은 족히 더 일을 하실 것이고, 진 상서는 아마 사직할 것이며…”
조천은 히죽 웃었다.
“진 승상부주께서는 태사로 임명해달라고 청하시겠지요.”
진유하는 옛날부터 태사 자리에 오르기를 청했다.
실무는 안하고 명예만 있다.
녹봉도 꾸준히 지급되는, 어찌보면 신하들 중 가장 높은 직위가 바로 태사의 자리다.
“너무 일러.”
조앙이 고개를 젓자 조천은 웃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들, 경이의 스승으로 승상부주만한 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내어줘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려면…”
조천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조앙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조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 말이 맞구나.”
“그렇다면 당장 진가에…”
“아니.”
조앙은 냉정히 말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좀 더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