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33
00133 약자의 권리 =========================
여포가 말에 오른다.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마중 나올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가는 것 정도는 봐줘야 안심을 하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두려움이 었던 자가 떠나는 것이다.
그를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내가 투덜거리듯 말하자 여포의 옆에 있던 장료는 쓰게 웃었다.
“당신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날 기억해서 어쩌려고? 왜. 밤길에 통수라도 치시게?”
“아이 참! 도련님! 가는 사람들한테 자꾸 그렇게 말씀하실 거에요!?”
“흥.”
날 타박하는 여영기에게서 도망쳤다.
그런 나와 여영기를 보며 장료는 껄껄 웃었다.
“하하핫!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많은 것을 주시는구려. 이 돈. 잘 쓰겠습니다.”
“아껴 써. 괜히 펑펑 쓰지 말고.”
“그러니 제가 맡은 것 아닙니까. 여 장군… 아니, 봉선 형님에게 이런 걸 맡겨봤자 금방 동이 날테니까.”
“장 사부…”
장료가 쓰게 웃으며 대꾸하자 여영기는 머뭇거리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여영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료는 큰 손을 내밀어 여영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기야. 내 조카… 너도 나처럼 평생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것이구나. 그래. 훌륭하다. 너의 뜻… 인정하도록 하마.”
“장 사부…”
“어이. 고순. 넌 뭔가 할 말 없냐?”
결국 눈물을 흘려버린 여영기를 향해 고순은 감녕을 가리킨 후 속삭였다.
뒤쪽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감녕을 가리킨 그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저 자식이 널 울리면 반드시 연락을 다오. 패죽여버릴테니.”
“흐, 흥패 오래비랑은 그런 사이 아닌데!?”
“아니긴… 넌 옛날부터 그랬다.”
여포가 무인으로서의 삶을 버렸다는 기에 장료와 고순은 더 이상 여영기를 아가씨라 부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여포를 따라 왔던 동생으로서 고순은 여영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넌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늘 툴툴거리곤 했지. 가끔씩은 솔직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봉선 형님과 너의 몇 안되는 닮은 점이 그거구나. 좋으면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아, 아, 아니거든!? 누… 누가 좋아해! 뭐… 뭐라고 말좀 해봐요! 도련님!”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뭐.”
“아아아아!! 진짜 아닌데!!”
얼굴 새빨개져서 그렇게 말해봐야 설득력 없다.
여영기가 하는 걸 보면 감녕에게 호감이 있기는 한 것 같았다.
언제부터 저랬더라.
난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부터냐? 너 울던 거 감녕이 달래줬을 때?”
“…아 진짜. 아닌데. 진짜 아닌데.”
“하하하! 한가지 더 닮은게 있군. 형님이나 조카나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 그렇지 않수? 형님?”
“……”
장료가 웃으며 여포가 탄 말의 엉덩이를 툭 치자 여포는 휙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단순하기 그지 없는 부녀다.
장료와 고순이 놀리는 것에 홍당무가 된 여영기는 우물쭈물하다가 여포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그래.”
“…도착하면 꼭 연락 줘요. 저 산양군에 계속 있을거니까.”
“그래.”
“그리고 밥도 잘 먹고 다니구요.”
“그래.”
“술 너무 먹지 마요. 싸움도 하지 말고.”
“그래.”
“…그래 밖에 할 줄 몰라요?”
“미, 미안하구나.”
말재주가 없는 여포는 머뭇거리다가 시무룩히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과거 천하 최강이었던 여포가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니 웃긴다.
“야. 그만 좀 괴롭혀라.”
“괴롭히는 거 아니라구요! 진짜… 아버지.”
“…응.”
“그냥 갈거에요?”
여영기의 말에 여포는 당황하며 날 보았다.
어쩌라고.
난 어깨를 으쓱이고 안아주라는 시늉을 했고 여포는 머뭇거리다가 말에서 내렸다.
“왜?”
“크흠.”
낮게 헛기침을 한 여포는 여영기를 끌어안았다.
여영기가 여자치고는 꽤나 큰데도 여포의 품에 안기니 굉장히 작아보였다.
“아, 아버지!”
“…그… 그동안 제대로 안아 준 적이 없었구나.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표현에 약해서…”
“아버지…”
여포가 자기를 끌어안자 여영기는 당황했지만 곧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고순과 장료는 저 솔직하지 못한 부녀를 보며 훈훈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언제까지나 널 응원할 거다.”
“응… 아버지…”
“그래. 그동안 몸 건강히 잘 있거라. 진 군수와… 저자의 말을 잘 듣고.”
“내가 앤가…”
“내 입장에서 넌 평생 애란다.”
여영기의 머리를 쓰다듬은 여포는 한숨을 내쉬고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말에 올랐다.
이제 갈 시간인가?
그들이 떠나갈 준비를 마치자 난 웃으며 말했다.
“잘가쇼. 기껏 살려줬는데 가다가 죽지 말고.”
“악담을 제대로 하는구만. 그럼 간다.”
여영기를 물끄러미 보던 그는 망설임을 지운 후 곧장 말고삐를 흔들었다.
세필의 말이 멀어진다.
여영기는 그대로 서서 자신의 아버지가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다가가간 나는 그녀의 옆구리를 푹 치고 말했다.
“좋냐?”
“…네.”
여영기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럼 웃어. 울지 말고. 너 우는 꼴 보려고 여포 살린 거 아니다.”
난 그녀에게 내뱉고 몸을 돌려 내 방으로 돌아갔다.
*****
“결국은 여포를 살렸군.”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팽성의 귀빈 관저에 머무르던 조조는 순욱을 향해 빙긋 웃었다.
“그래. 그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지. 여포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던 그가 결국은 여포를 놔줬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조의 질문에 순욱은 머뭇거렸다.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아닐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순욱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성장했다는 것이지요.”
“맞아.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지. 그 여유가…”
조조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목을 조를지 아닐지는 모르겠어.”
“아쉬운 것입니까?”
“음? 아니. 전혀.”
“그런데 왜.”
“이 사람. 하하하… 아직 잘 모르는구만.”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조조는 본 것일까?
순욱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그는 내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 그 두려움이 뭔지 모르는 이상 나로서도 그를 쉽게 통제할 수 없었어. 그렇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그를 두렵게 만든다 하더라도 그가 가진 두려움이 그를 자극하면 내 통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테니까.”
“…연주목께서 그의 두려움이 되고자 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빙그레 웃은 조조는 탁주를 한모금 마셨다.
산양군에서 가져 온 증류주와 죽엽청은 이제 모두 동이 나버렸다.
아쉬움에 입맛만 쩝쩝 다시며 탁주를 마신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그리고 우리 조가가. 진유하의 유일한 두려움이 된다면… 그의 움직임은 조율할 수 있을거야. 멋지지 않은가. 천하 최강인 여포마저도 꺽을 수 있는 진유하를 조율할 수만 있다면…”
그는 창문을 통해 떠나가는 여포를 보았다.
말에 올라탄 그와 진유하의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것을 본 조조는 입술을 핥았다.
“저들 모두가 나의 것이 되겠지. 진궁도, 진유하도. 전 천하 최강마저도… 말이야.”
진유하가 여포를 살린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그 결과가 조조에게 있어서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르게 여포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자.
자신의 가족에 발이 묶이는 자.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천하만을 노리는 자에 비하면 너무나도 다루기 쉽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여포를 죽인다.
조조에게는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포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진유하와 진궁이 그를 살리게 놔 둔 이유는 이미 진궁과 진유하가 자신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포는 은혜를 갚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작은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런 여포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여영기가 진궁의 사람이다.
진궁과 진유하를 자신이 가짐으로써 그들 모두를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굳이 그를 죽일 필요가 있을까?
조조는 진유하의 두려움이 여포의 생사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햇다.
그렇기에 그가 그 두려움을 넘길 바랬고 진유하는 훌륭히 그 두려움을 극복했다.
이제 자신이 진유하의 두려움이 되기만 하면 된다.
“진궁도 꽤나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 여포와 여포의 부하들을 산양군으로 끌어들였다면 내가 견제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이 견제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하. 이번 일로 정말 괜찮은 이들을 손에 넣게 되었어. 그렇지 않나?”
“…네.”
조조가 인재를 좋아하는 것 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는 능력있는 이를 좋아했다.
능력있는 이를 얻고, 능력있는 이를 자신의 소유 안에 두어 자신의 말로 삼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순욱은 조조가 주군으로써 크게 만족스러웠다.
그의 안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는 언제든지 자신을 잘 활용할 수 있으니까.
재능있는 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을 중용한다는 것이기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조조가 순욱은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이제 귀큰 놈인데… 그 놈이 어떻게 움직일까?”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정도입니다. 첫번째는 원소와 결탁하는 것, 두번째는 서주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 아직 완전히 서주를 장악하지 못한 유비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정도…”
“아니.”
“네?”
순욱의 당황한 표정을 마주하며 조조는 히죽 즐겁게 웃었다.
“세번째 방법이 있지. 약자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 말이야. 오로지 약자만이 가진 유일한 권리. 그는 그것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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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나.”
천하최강이라고 떠들어대더니 한번 전투만으로 패배할 줄이야.
적어도 한달은 버텨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번 전투만으로 여포가 패배한 것에 유비는 어이가 없었다.
“그 멍청한 놈이. 형님. 이제 어쩔거유?”
“글쎄…”
난감해하면서도 유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비의 명사들에게 인정은 받았고 백성들의 호응도 끌어냈다.
기존 도겸이 데리고 있던 부하들의 충성도 이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하비 자체는 자신이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이었다.
당장 인접한 동해군만 봐도 조조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대로는 곤란한데. 하하.”
만약 조숭을 죽이는데 성공했다면 이런 걱정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조조가 분노에 차올라 서주를 공격하여 일방적인 도륙을 했을테니까.
자연스레 서주에 조조의 악평이 퍼지게 될 것이고 자신은 그 약점을 노리면 서주를 어렵지 않게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주에 들어 온 조조가 앞뒤 안가리고 학살을 저질렀다면 공포를 느낀 서주의 군수들은 자신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도겸조차 두려움을 느끼고 서주목의 자리를 줬을지도 모르지.
아주 손쉽게 서주를 모두 가질 수 있었는데 기회가 그냥 날아가버렸다.
“이거 참… 그 애송이 하나가 일을 다 망쳐버렸군.”
조숭을 구원한 그를 떠올리며 유비는 입맛을 다셨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아까웠다.
활만 멀쩡했어도 둘 다 죽일 수 있었을텐데.
“지나간 일에 후회는 말고 할 일이나 잘합시다. 자. 이제 어쩔거요?”
“흠…”
간옹의 질문에 유비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아우인 장비와 관우는 어찌 되었든 적이 앞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가서 싸우자고 하지만 싸웠다간 필패다.
아무리 서주가 비옥한 토지라고는 하지만 그곳을 전부 가질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거기에 자신들은 병력마저도 그리 많지 않았다.
서주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고작해야 일만 오천 정도.
그나마도 여포에게 병력을 주느라 정예병의 수가 적었다.
싸웠다간 필패다.
그렇지만 싸우지 않는다면 조조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난감함에 어쩔 줄 몰라하던 유비는 쓰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선생의 가르침대로 갈 수 밖에 없겠군.”
“노 장군님을 말씀하시는 거요?”
“그래.”
자신의 스승인 노식을 떠올리며 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챙겼다.
그가 무기를 챙기는 것을 본 장비와 관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유비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병사들을 챙기고 돈 될만한 것들을 준비해놔. 도겸의 재산 중에 작지만 비싼 물건들이 꽤 있으니. 간옹. 그건 너에게 맡기겠다.”
“예.”
“미축, 손건 자네들은 어쩔 생각이지?”
“저희들이야 유 공을 따를 뿐이지요.”
“고맙군.’
그들의 대답에 빙긋 웃은 유비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자자. 준비들 하자고. 연주목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 단단히 준비해. 병사들에게 밥을 잘 먹이고 사기를 최대한 올려놔.”
“알겠수다! 한판 제대로 뜨자는 거지?”
장비가 기뻐하며 외치자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한판 뜨면 무조건 죽는데 한판은 무슨.
“약자만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갈거다. 강자인 조조는 알아도 막지 못하는 수를 쓸 수 밖에 없어. 지금은. 물론…”
유비는 아쉬워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해를 좀 보고 위험부담이 크기는 하겠지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