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32
00132 약자의 권리 =========================
“일어났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이의 허벅지를 베고 있었다.
눈이 너무 부었는지 잘 떠지지 않는다.
“응. 계속 이러고 있었던거야? 미안. 다리 아프지?”
“헤헤. 당신 얼굴을 계속 보고 있을 수 있어서 좋았는걸요?”
영이는 날 내려다보며 베시시 웃었다.
아이고 이쁜 것.
손을 뻗어 영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내 손길이 좋았는지 그녀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버님에게 들었어요.”
“…아. 내가 운거? 하하. 이거 좀 부끄럽구만~”
유쾌하게 말했지만 아직 내 속은 진정되지 않았다.
이유하에게 지배되고 있던 내 삶.
그것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과연 내가 제대로 벗어난 것일까?
의문을 가지며 쓰게 웃은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영이는 내 이마를 콕 눌렀다.
“좀 더 이러고 있어줄래요?”
“그치만 너 다리 아프잖아. 으쌰.”
영이의 다리 위에서 일어났다.
창 밖을 보니 어두컴컴한게 아직 밤인 듯 싶었다.
“아야야…”
“아고. 다리 아팠지? 누워봐.”
“왜요?”
“주물러줄게.”
“헤~ 고마워요~”
은근히 저렸나보다.
영이를 눕히고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조금 아팠는지, 아니면 간지러웠는지 꺄르륵 웃는 그녀와 함께 장난을 치던 나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인상을 왕창 구겼다.
“오밤중에 누구야?”
“글쎄요? 그래도 나가봐요.”
“쳇.”
아까까지 웃고 떠들며 놀았는데 자는 척 하기도 그렇지.
영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준 후 밖으로 나가보았다.
“음? 뭐야?”
“저… 그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감녕과 여영기였다.
둘이 왜?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여영기는 머뭇거리다가 내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뭐가?”
“그… 아버지를 살려주셔서.”
“흠.”
허리를 완전히 숙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삼국지의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녀석 덕분일지 몰랐다.
“아니 뭐. 됐어.”
“에?”
내 시큰둥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여영기는 당황했고 나는 감녕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 자식도 알고 있는 일을 내 아집으로 끝낼 수 없는 일이지. 됐어. 나한테 감사할 필요는 없으니까 가서 잠이나 자라.”
“도, 도련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
나 그리고 아버지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어이. 감녕.”
“왜 그러슈?”
멀뚱히 날 쳐다보는 그의 복부를 냅다 후려쳤다.
내 힘으로는 그의 복근을 뚫을 수 조차 없다.
간지럽다는 듯 씩 웃는 그를 향해 나도 마주 웃었다.
“그 뭐냐.”
볼을 긁적거리며 난 머뭇거렸다.
감녕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가 키운 흑귀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삼국지의 주박에 걸린 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유하가 아닌 이유하로서 살아갔겠지.
스스로를 진유하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고맙…다?”
“응? 뭔 소리요. 취했수?”
“아니. 아냐. 됐어. 야. 가서 잠이나 자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감녕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구나.
늘상 장난만 치던 상대에세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진짜로 부끄러웠다.
“에이~ 한번만 더 말해봐. 자자.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어휴~ 우리 도련님이 참. 살다보니 별 소리를 다 듣네. 한번만 더 말해보슈. 응? 뭐라고 했더라? 야. 영기야. 너도 들었냐? 도련님이 나한테 지금 고맙다고 한거지? 응? 하… 쯧. 그래. 도련님은 나한테 좀 고마워 해야해. 이 우주 최강 감녕님이 옆에 있어주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라고. 앞으론 나한테 더 잘해. 매달 증류주 두병씩 주고.”
“야. 꺼져.”
실실 웃는 그를 향해 인상을 구겼다.
쯧. 역시 이런 건 나한테 안어울려.
감녕과 나는 그냥 서로 욕하고…
가끔씩 도와주는 그런 관계가 맞다.
“가서 잠이나 자렴. 응? 그리고 너 몸 조심해야 될거다.”
“내가 왜?”
내가 당하고 가만히 있을 것 같냐?
궁금해하는 그를 향해 난 피식 웃었다.
“그럴 일이 있어.”
난 어깨를 으쓱였다.
사형장에서 여포의 시선.
그리고 그가 일부러 져줬다는 것.
어쩌면 여포의 구류기간이 끝났을 때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난 멍청히 서 있는 감녕을 비웃고 안으로 들어가 영이를 끌어안고 다시 잠들었다.
여포의 구류기간이 끝났다.
그동안 팽성군을 안정화시키며 주변 정리를 하던 나는 처벌 때문에 머리가 짧게 잘린 여포와 장료, 고순이 짐을 든 채 나를 찾자 쓰게 웃었다.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에 대한 두려움을, 삼국지에 대한 공포와 주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사형장에서 극대화되었던 증오는 이제 거의 사라져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걸어 오는 그를 보며 장합과 서황은 허리의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여차하면 날 지키겠다는 것이겠지.
“진유하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천하 최강이라 불렸던 여포는 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머뭇거리다가 장료가 옆구리를 푹 찌르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살려준거? 됐…”
“그런게 아니요.”
“그럼?”
“알게 해줬으니까.”
물끄러미 구석을 쳐다보는 여포의 시선을 쫓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감녕과 창을 맞대며 훈련을 하고 있는 여영기가 있었다.
“후. 아무튼 좋소.”
“인사 정도는 하고 가지 그래?”
“안그래도 할거요. 그 전에… 당신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지.”
“굳이 안해도 될 일을. 쯧. 뭐 좋아.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무기를 들고 또 천하최강 어쩌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는 영기부터 조질거야.”
“그럴 일은 없을거요.”
어깨를 으쓱인 여포는 짧아서 어색한 머리를 긁적거렸다.
셋이 나란히 짧은 머리를 하고 있으니 웃긴다.
아니 좀 무섭다.
안그래도 험악한 인상들이 더 험악해졌네.
“그…”
“뭔데.”
“가끔씩이라도 좋으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영기를 데리고 와도 괜찮겠소?”
“그거야 지가 휴가 받으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런데…”
난 어깨를 으쓱인 후 감녕의 공격에 창을 떨어트린 여영기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못막냐! 이 돼지야!”
“누가 돼지야! 돼지긴!!”
“너지! 으랴!”
“으앗! 아야야…”
“어? 다쳤어? 어디 봐봐.”
“응… 여기. 여기 아퍼.”
튕겨져 나간 창과 얼얼한 손.
여영기는 우물쭈물거리며 감녕에게 손을 내밀었고 감녕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손을 잡아 여기저기 살폈다.
감녕이 망설임없이 자신의 손을 잡자 여영기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을 보았다.
어디 흉진데라도 있나 걱정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난 피식 웃었다.
“쟤도 휴가 받으면 바쁠 것 같은데.”
“빠드득.”
“감히.”
“아가씨 손을 저렇게 떡주무르듯이.”
여포에 대한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며칠만에 수년동안 쌓여 있던 그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난 아직 멀었다.
그렇기에 그를 골리듯 말했고 내 말에 여포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아니, 여포 뿐만 아니라 장료와 고순 역시도.
감녕.
날 놀렸겠다?
너도 좀 엿먹어봐라.
셋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보이기에 난 키득거렸다.
“어이. 영기 애비.”
“뭐요?”
“이거나 가져가.”
품에서 금괴가 담긴 주머니를 꺼내었다.
아마 금 서른냥은 될 것이다.
이정도면 당분간은 먹고 살 수 있겠지.
“감사히 쓰겠소.”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아껴서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
“진 군수도 도움을 주었소. 당신들 부자는… 나와 무슨 연인지 모르겠군. 이만큼이나 도움을 주고… 훗. 전생에 당신들. 나에게 목숨 빚이라도 진 것 아니오?”
“당신이 미래에 날 구할지도 모르지. 뭐 쓰잘데기 없는 소리는 관두고.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알아서들 하고 가.”
“그래야지. 경고를 해야 할 자도 있으니까…”
“음. 그래야지. 제대로 좀 해주쇼.”
감녕과 여영기가 여전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며 난 키득거렸다.
여포는 고순과 장료를 데리고 그들에게 향했다.
“엇? 영기 애비.”
여전히 싸가지가 없구나.
여포를 앞에 두고도 심드렁하니, 여영기의 손을 여전히 잡은 채 감녕은 손을 들었다.
“감히 내 딸에게… 그 더러운 손 떼지 못할까!”
“엑!? 얘 손이 더 더러운데!? 난 도련님이 주신 비누로 매일 씻고 있다고!”
“오, 오래비.”
당황하며 여영기는 손을 떼었지만 감녕은 싱글거릴 뿐 이었다.
여포, 장료, 고순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죽거리던 감녕은 잘 됐다는 듯 여영기가 놓친 창을 들었다.
“한번 더 해볼까?”
“까불지 마라. 애송이. 너는 내 상대가 안된다.”
“그거야 해보면 알 알이지.”
여포의 싸늘한 말에도 감녕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서황과 장합이 뒤에서 손을 흔들며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감녕은 까불거렸고 여포는 자신의 방천화극을 잡아 감녕의 창을 쳐낸 후 그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꾸엑!!”
한대 맞고 날아가버린 감녕.
꼴 좋다. 짜샤.
여포 이겼다고 좋아하더니.
“말했잖나. 넌 아직 멀었다고. 그리고…”
기침을 토해내는 감녕을 보며 여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으로 오지 마라.”
“쿠엑… 컥. 이쪽이라니.”
“경계다. 한계를 넘는 자의 경계. 너는 지금 그 경계 근처에 도달해 있다. 잘못하면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 경계선을 넘어버릴지도 모른다.”
“뭔 개소리야… 한계따위.”
이를 드러내며 감녕은 다시 창을 잡고 달려들었다.
그의 공격을 방천화극으로 막아내던 여포는 방천화극의 물미로 감녕의 어깨를 친 후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또다시 날아가 바닥을 구른 감녕이 벌떡 일어나며 미소짓자 여포는 담담히 말했다.
“가끔씩 멋도 모르고 한계를 넘은 자들이 있지. 그런 자들의 결말은 처참하다. 그러니 너는 그러지 마라. 모든 것을 버리고 무에만 몰두하지 마라.”
“…그 한계라는 거 누가 정한건데?”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나보군. 제대로 된 사부가 있었다면 진작에 알았을텐데.”
여포는 감녕을 향해 피식 웃은 후 그에게 방천화극을 던졌다.
“너 자신의 한계를 넘지 말고 무기에 의지해라. 방천화극이라면 널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거다.”
안쓰러운 시선이 닿는다.
여영기가 당황하자 여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
“천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천재 뿐이다. 그것이 아니면 모든 것을 버리고 한계를 넘어버려… 그저 목적에만 미쳐버린 괴물이 되어버리지. 그러니 방천화극에 의지해라. 무인이 무기에 의지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여포의 말에 감녕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아까 그 한계라는거… 당신같은 힘을 가질 수 있는 걸 말하는건가?”
“그래.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수준에 오른 자는 단 둘 뿐이었다. 허나 그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조언이다. 부디 너는 넘지 마라.”
여포가 상대한 두명.
난 그들을 알 것 같았다.
관우와 장비.
그들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들의 무를 과신하며 주변을 잊고 움직이다가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여포의 말을 들으며 내가 생각하는 사이 감녕은 방천화극을 잡고 씩 웃었다.
“나는 한계를 넘을 수 있나?”
“넘을 수 있다. 너는. 하지만…”
여포는 여영기에게 다가간 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색한 얼굴로, 하지만 베시시 웃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고 여포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한계를 넘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 길은 한가지 뿐.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잊은 채 그것만 바라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마라. 좋은 거 아니다. 나도 그 한계 언저리에서 한걸음을 잘못 내딛었다면 돌아오지 못했겠지.”
“……”
여포의 말에 감녕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서야 여포는 만족한 듯 보였다.
“나중에 자리를 잡거든 연락하마. 그때까지는…”
“뭐.”
“이 녀석을 지켜다오.”
“당신이 말 안해도 우리집 돼지는 내가 지킬거니까 신경끄쇼.”
감녕의 도전적인 시선을 마주하며 여포는 피식 웃은 후 몸을 돌렸다.
장료와 고순은 감녕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낸 후 여영기를 가리키고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그었다.
“아가씨한테 손대면 나한테 죽는다.”
“카악! 퉤! 밤길 조심하는게 나을걸.”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억울해하는 감녕을 내버려두고 여포는 나에게 다가왔다.
이제 진짜로 떠나려는 모양이다.
난 무덤덤히 그를 보다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당신 말이 별로 안좋던데. 동탁이 그런 것도 안챙겨줬나? 이래저래 동탁 밑에서 개고생한것 같던데”
“아니. 그런건 아니오.”
인중여포 마중적토.
나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토마가 없다.
난 궁금해하며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예전 동탁의 밑에 있을 때… 그가 나에게 적토마라는 좋은 말을 선물로 준비했다고 하다가 도둑맞았다고 하더군.”
“그래? 누가 훔쳤는지는 모르고?”
“음. 신출귀몰한 양주의 말도둑이라고 들었을 뿐.”
“그래?”
아쉽다.
적토마를 구하면 어떻게 교배라도 시켜서 더 얻어내려고 했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딸을 잘 부탁하겠소.”
“나한테 부탁하지 말고 당신 사윗감한테 부탁하지 그래?”
“…영기는 평생 시집 안보낼거요.”
비뚫어진 아버지의 마음을 보이는 그를 향해 난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