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62
00162 피는 피로, 눈물은 눈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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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강은 눈을 감고 지난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이 젊었을 때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이유?
친우들이 함께 했으니까.
거칠지만 사내답고 호탕하며 강했던 손견.
차분하며 모두를 달래줄 수 있었던 포용력이 있던 주이.
그리고 꼬장꼬장하며 모두를 갈구며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던 자신.
친우들과 함께 할 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천하를 돌며 악적들을 베고, 백성들을 수탈하던 관리들을 응징하고.
가끔씩은 낙양령인 주이를 도와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문대.”
나이는 달랐지만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함으로써, 같은 뜻과 같은 꿈을 꾸었다.
천하를 지킨다.
세상의 혼란을 막고 백성들을 지킨다.
중앙의 관리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막아낸다.
그러니 막아내고 지켜낸다.
천하의 백성들을, 황제와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해 고통받는 그들을 지켜낸다.
어렸을 때의 치기어린, 무모하고 불가능한,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도 행복했던 꿈.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각자의 사정에 의해 멀어지기는 했지만 모두의 꿈은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안하구만.”
쓰게 웃으며 육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점 미쳐가는 세상에 의지를 관철하다 상처입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은 아둥바둥 세상에 남아 있었다.
그것에 고통스러워하던 친우의 애절한 요청마저도 해서는 안될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폭력은 나쁜 것이다.
싸움은 나쁜 것이다.
사람이 어째서 사람인가.
대화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그래야 한다.
창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나 자신의 아집으로 친우의 요청을 거절했고 결국 그 이후 친우는 죽고 말았다.
십상시의 흉계에 빠져서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주이가 죽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손견과 함께 통곡을 하며 우리의 뜻을 잊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저 백성들의 삶만을 생각하던 주이가 십상시들에게 모함받아 죽었을 때 손견은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저들을 쳐죽여야 한다며 나섰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자신에게 손견은 화를 냈었다.
겁쟁이라 부르며 원망했었다.
그럴지도 몰랐다.
자신은 그저 제자리에 서서 입으로 떠드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창과 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싸우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손견이 죽었을 때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홀로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우리의 꿈을 위해서 일어서자.
주저앉아버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에게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주이의 죽음때 그토록 화를 냈던 손견은 자신의 말에 그저 아쉬워할 뿐 실망도, 분노도 하지 않았다
그때 지원을 했다면, 그때 그와 함께 갔다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친우들과 함께 했던 맹세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주이와 손견의 죽음은 항상 가슴에 짐이 되었었다.
싸움이 두려워 아무것도 못한 자신이 한걸음 내딛었다면 그들과의 맹세를 이루지 않았을까?
이미 그토록 막고자 했던 난세는 발발했다.
자신 혼자 발버둥치는 것만으로는 난세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을 따르는 이들만이라도 지켜야겠다.
그리 다짐했것만 결국은 그것마저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친우의 아들이 검을 들고 찾아왔을 때조차 그것을 나무랄 수 없었다.
무슨 자격으로?
친우의 죽음을 그저 지켜만 보았던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를 나무란단 말인가.
결국 난세에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할 뿐 이었다.
“후후.”
방통이 선물로 가져 온 죽엽청을 마시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독한 술을 한모금 마실 때마다 과거의 영광, 과거의 꿈, 과거의 뜻이 떠오른다.
어질거리는 시야 속에서 주이와 손견이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학문소를 몰래 나와 토끼를 잡아 구워먹으며 청운에 대한 꿈을 그리던 어린 시절.
아무런 걱정도, 아무런 불안도 없이 오로지 희망만 가지고 있던 과거의 그때.
행복했던 기억을 되돌려보았지만 독한 술의 숨결을 내뱉으며 취가가 가라앉았을 때 결국 남은 것은 가족이 다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에 주저앉아버린 겁쟁이인 자신만이 있을 뿐 이었다.
“그러니 막아야겠지.”
마음 같아서는 손책에게 이곳의 군수직 따위는 줘버리고 싶었다.
자신은 불가능했지만 그라면 이 험난한 난세에서 천하를 구하기 위한 웅대한 포부를 마음대로 실현할 수 있을테니까.
주이와 손견이 남겨 둔 자신들의 꿈을 그라면 이루어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손책이 이곳의 군수자리에 오른다 하여 원술이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그는 결국 손책의 공적을 무시하고 이곳을 차지하여 이곳의 식량과 땅을 기반으로 서주를 칠 것이다.
원술이 가진 명분은 간단하고 허무했다.
서주목이 정해지지 않은 지금 명가의 후손인 자신이 서주를 잘 다스리겠다.
무도한 연주목이 서주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후장군인 자신이 서주를 더욱 잘 다스리겠다.
그것을 연주목 조조가 좌시할 것 같은가?
그것을 기주목 원소가 좌시할 것 같은가?
아니, 그런 이유만으로 다른 지역을 공격하는 것을 본 천하의 모든 힘 있는 이들이 좌시할 것 같은가?
원술이 서주를 공격한 순간 모든 정의가 무너지고 힘만이 세상의 규칙이 되어버린다.
아직까지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아슬아슬한 평화가 무너져내릴 것이다.
그리고 황건적의 난, 반동탁 연합군 같은 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 끔찍한 전쟁이 천하 각지에서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이곳의 병력은 고작해야 오천여에 불과할 뿐이다.
제대로 된 군사 훈련조차 없이 그저 방어만 조금 할 줄 아는 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세력들이 그토록 만들어대는 정예병따위는 없다.
도적 정도는 막겠지만 정규병의 공격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원술은 적어도 사만 이상의 병력을 보냈겠지.
그리고 이곳을 차지한 후 바로 서주를 공격하려 할 것이다.
“…..”
선택을 해야한다.
친우들과의 약속을 외면하고 그대로 숨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필사적으로 원술의 공격을 막아내야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부지~”
“숙조부님.”
고민하고 있던 때 문이 열렸다.
천진난만하고 효심이 깊은 사랑스러운 육적.
똑똑하며 한마디 하면 열마디 정도는 가볍게 예측해버리는 훌륭한 육손.
육가의 훌륭한 아이들이다.
싸우는 것 조차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과 비교해서 훨씬 뛰어난, 과분할 정도의 아이들이다.
“그래. 그래. 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안자고 있느냐? 어서 자지. 그래. 이리 오거라.”
육적을 안아 올리며 육강은 부드럽게 웃었다.
자신의 품에 안긴 아들을 꼭 끌어안아 준 육강은 육손이 자신을 바라보자 빙긋 웃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육손의 질문에 육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
“아무것도 아니다.”
“듣자하니 원술의 사자로 손책이 왔었다고 들었는데… 혹여 그자가.”
역시나 영특한 녀석이다.
전에도 원술의 사자가 식량을 빌려주거나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 사양했던 것을 알고 있는 육손이니 원술의 부하인 손책이 온 이유를 금방 눈치챈 것이다.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그래… 방통은 알고 있지? 그 녀석이 조만간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함께 오에 다녀와주겠느냐? 오랫동안 가문에서 나와 있는 것 때문에 가문의 사람들이 걱정하던데 너희들이 가서 안심시켜줬으면 싶구나. 그리고 통이 그 녀석도 제대로 먹여줬으면 하고. 네 숙조모의 요리솜씨는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숙조부님.”
육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를 향해 육강은 부드럽게 웃었다.
“한마디 말씀드려도 좋겠습니까?”
“무슨 말을?”
“사원 숙부가 있으니… 숙부의 도움을.”
“안될 말.”
방통은 서주 팽성군의 군수이며 현재 서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하비성주 진유하의 형제와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하비성주 진유하는 연주목 조조의 부하다.
걱정되어 하는 소리를 잔소리로 치부하며 늘상 가볍게 다니고 있지만 속정만은 누구보다 깊은 방통이다.
그 아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와줄 것이다.
팽성의, 하비의, 아니 어쩌면 연주목에게 연락하여 연주의 군대를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자신은 살 수 있겠지.
허나 그것과 원술이 서주로 침공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막아야 한다.
그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비록 실패할지 모를지라도.
죽어서 친우들을 만나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막아야했다.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방통에게도 함구하거라. 이것은 가주로서 하는 명령이니까.”
“허나.”
“두번 말하지 않겠다.”
“숙조부께선… 손책 그자에게 죽어 주실 생각입니까? 하지만 왜?”
“…그게 내가 문대에게 진 부채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 뿐이니까. 손책이 원술의 밑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 그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게 이렇게 살아남은 나에게 남은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것은 부채가 아닙니다!! 숙조부께서 가지고 계신 혼자만의 아집입니다! 적 숙부를 생각하십시요! 왜 그런 고통을 저희에게 안겨주시려 하시는 겁니까!”
육손의 분노에 가까운 외침을 받으며 육강은 빙긋 웃었다.
“그가 날 죽임으로서 손책은 원술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문대가 가지고 있던 세력은 지금 원술에 의해서 묶여 있다. 이유? 손책이 어리고 믿을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친우인 나를 죽임으로써 원술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인다면 원술은 그를 신뢰하며 기존 문대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돌려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죽어주어야 한다. 문대가 죽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렇다면…”
“그깟 부채가 뭐라고 숙조부께서 그리 말씀하십니까! 인정 못합니다. 그것은 숙조부의 빚이지 육가의 빚은 아닙니다. 만약 숙조부께서 손책의 손에 돌아가신다면 육가가. 아니… 육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천하 모든 것을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원가에 남아 있는 단 한명의 살마저도 씹어먹을 것이고 손가의 모든 존재를 지워버릴 것이며 그들의 이름을 꺼내고 생각하는 자마저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부채라 하셨습니까? 명심해주십시요. 숙조부께서 손책에게 죽는 순간.”
육손의 눈에 귀화가 떠돈다.
“손가와 원가는 저희 육가. 그리고 저 육손에게 천하 이상의 부채를 지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는 피의 부채를!!”
그것을 보며 육강은 부드럽게 웃었다.
“쓸데없는 싸움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쓸데있는지 없는지는 숙조부님께서 잘 생각해보십시요.”
“손아.”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이 숙조부에게 하는 협박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압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육손은 어린 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눈으로 육강을 노려보았다.
“숙조부님을 생각하여 이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당장 방 숙부께 이야기하여 숙조부님을 납치해 오군으로 데려갈 수도 있는데 그리 하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십시요. 패륜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하하. 녀석. 알았다. 내 손책을 잘 설득해보마.”
“…약속하신 겁니다.”
육강이 난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육손은 눈에서 번뜩이던 귀화를 풀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육강은 품에 안고 있던 육적을 육손에게 안겨주었다.
그를 소중히 안고 나가버리는 육손을 향해 육강은 쓰게 웃었다.
“미안하다. 손아. 허나 나 혼자 남아 살아남고 싶지는 않구나. 그것이 육가를 위함이기도 하고, 내 아들 육적을 위함이기도 하고. 문대를 위함이기도 하며, 너를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는 남아 있는 술을 한모금 마셨다.
“이 못난 숙조부를 이해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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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누구야. 손이 아니야?”
얼큰하게 취한 방통이 관아로 돌아 왔을 때 육손은 환한 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육가의 애송이.
항상 자신을 볼때마다 똑바로 살라며 타박하는 어린 꼬맹이.
그래도 하는 짓이 귀여워 볼 때마다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녀석.
예전에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방통이 다가가자 육손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숙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