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77
00177 탈출 =========================
“오… 재미있는? 그게 무슨 소리지?”
“곽사가 병력을 모으고 한수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 그리하여 장안을 차지하여 황제를 손에 넣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금시초문인데.”
“요 근래에는 서량의 풍문을 듣지 않으십니까?”
가후의 질문에 이각은 눈쌀을 찌푸렸다.
강족들이 하도 약속한 궁녀들을 달라고 떽떽거리는 탓에 이각은 그들과의 대화를 끊은 상태였다.
원래라면 궁녀들 따위 몇명 정도 나눠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후가 제안한 계책 때문에.
궁녀는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것은 이각에게 있어서 싫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궁녀들을 나눠주고 황제의 보물을 덜어주겠다는 약속은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잘라버린 이각은 떨떠름한 얼굴로 가후를 보았고 가후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이씨의 세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지만 강족들을 소홀히 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들은 대장군과도 친한 사이이지만 곽사와도 깊은 연이 있는 이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곽사의 편을 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자네가 또 해결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이각과 곽사 모두 가후를 중용했지만 가후는 이각에게 좀 더 많은 편의와 책략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것에 가후가 완전히 자신의 편이라고만 생각했던 이각은 웃으며 물었고 가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를 배신할 생각인가?”
“배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책략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상대와 비슷한 힘을 가졌을 때 쓸 수 있는 법. 약한 자의 책략은 강자의 힘에 눌려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천개의 책략을 꾸밀 수는 있으나 대장군의 힘이 없다면 그 천개의 책략 중 쓸 수 있는 책략은 한개조차 될 수 없습니다.”
“…끄응.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겠는가?”
“흐음… 글쎄요.”
잠시 생각하던 가후는 피식 웃었다.
“몇가지 계책이 있기는 합니다만 과연 대장군께서 허락하실지는…”
“뭔가? 자네의 책략이라면 내 얼마든지 받아들여야겠지.”
이각이 반색하며 묻자 가후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첫번째 책략. 이이제이.”
“누굴 쓰려고?”
“지금 파촉의 유장이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고 있습니다. 그를 이용해서 곽사를 치는 겁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
“딱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만… 문제는 그들에게 그만큼의 대가를 주어야한다는 것이지요. 유장은 장안을 차지하려고 북진하는 것입니다. 그런만큼 그 가치를 부여해주어야 합니다.”
“…지금 장안의 사정을 알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자네를 바보라고 하겠네.”
장안의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고 삼보의 백성들이 수만이나 아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각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자신의 재산을 푼다면 유장을 어떻게든 회유할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두번재 책략은?”
“원교근공. 지금 서량은 지속되는 기근과 황충 탓으로 식량이 많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식량과 물자를 약속하고 곽사와 강족들을 처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한수와 곽사가 손을 잡았다고 하나 그들의 목적은 서로 같고 욕심은 서로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뒤를 칠 수 있는 방법은 멀리 있는 마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지요. 황제 폐하께 권하여 마등의 관직을 올림과 동시에 그에게 서량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그것은 불가능하다. 마등이 서량을 완전히 차지하여 다스리게 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이야.”
옛부터 서량에 머무르고 있던 마등이다.
그에게 공식적인 직위와 함께 서량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당장 한수와 곽사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되어버린다.
이각은 떨떠름한 얼굴로 가후를 보았고 가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군요.”
“뭔가?”
“격안관화. 동태사와 반동탁 연합의 일은 기억이 나시겠지요. 동태사께선 반동탁 연합군을 호로관에서 최대한 막은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여 반동탁 연합이 스스로 허물어지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황제를 홍농으로 보냄과 천도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대장군께서 저들을 끌어 한참 상대를 하다가 밤중에 몰래 빠져나와 낙양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럼 허물어진 장안에서 저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멀리서 구경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끄응… 그건.”
이 책략이든 저 책략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그걸 떠나서 세번째 책략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막는다고 치더라도 황제 폐하는 누가 호위를 하지? 자네가 할것인가? 아니. 자네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해.”
“그렇지요.”
“그럼 누가 할 것인데? 지금 있는 문무백관들을 쓰자고? 그들은 안된다. 믿을 수 없어.”
“그럼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대장군께서 신뢰하는 것은 저 밖에 없을텐데…”
“그들 말고… 어디 자네가 선택해보게나. 자네는 누굴 믿겠는가?”
이각의 말에 가후는 빙긋 웃었다.
“이미 있잖습니까. 대장군과 함께 뜻을 같이 했으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알고 스스로 물러난 이. 곽사나 번주와 다르게 자신의 그릇을 아는 이가.”
“아! 그렇군! 그가 있었지!”
가후의 말에 이각은 밝게 웃었다.
“문제는 곽사가 어떻게 한수를 회유할 수 있었느냐인데…”
그냥 곽사가 강족들만 꼬셔서 그들을 데리고 장안을 친다면 딱히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각의 움직임이 움츠려 들어서 그렇지.
하지만 곽사는 용케 한수를 끌어들였고 그와 강족들을 포섭하여 장안을 공격하려 했다.
아무리 이각이라고 하더라도 그 셋을 혼자서 막아낼 수는 없었다.
잘해야 양패구상, 잘못하면 곽사와 한수가 황제를 차지한다.
혹은 파촉에서 올라오고 있는 유장이 장안을 습격하여 장안을 차지하고 황제를 파촉의 깊숙한 곳으로 숨겨버린다.
둘 모두 가후에게 있어서는 골치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게 되어서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많군. 어디보자… 써야 할 패는 무엇일까.”
이각의 방에서 나와 걸으며 가후는 생각했다.
필요한 패는 셋.
첫번째는 황제가 되고 싶은 권력욕과 자신의 신분상승의 욕구에 미쳐 있는 이각.
이건 이미 준비된 패다.
두번재 패는 황제를 데리고 도망가기 위한 병력.
이는 동승과 종요가 준비하고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또한 장제가 대기하고 있으니 그가 함께하면 나머지는 해결될 것이다.
“문제는 세번째 패인데… 단외가 과연 날 받아주느냐가 문제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유장을 막아야 했다.
서쪽의 곽사, 남쪽의 유장.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이각이 너무나도 약했다.
자신이 가세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장안에서 홍농으로 가는 길은 외길이니… 흐음… 쯧. 결국은 단외밖에 없군. 아니면 원술을 이용해볼까.”
이용할 패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패가 없었다.
차라리 이럴 때 귀여운 사제라도 옆에 있다면 그 녀석을 썼을 텐데.
하지만 서주에서 훌륭히 일하고 있는 사제를 이제와서 끌어들이기는 힘들었으니 가후로서는 난감하게 웃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뭐 어쩔 수 없나. 언제부터 내가 완벽한 상황에서 책략을 꾸몄다고.”
단 한번도 책략을 꾸밀 때 완벽한 상황은 없었다.
대부분은 임기응변, 그리고 그 상황을 이용한다.
수경원의 기재라는 자신의 이름을 숨길 수 밖에 없는 이상 그가 쓸 수 있는 책략의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명성을 이용할 수 없으니 제대로 책략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대, 대부께서 여긴 어인일로.”
“폐하를 알현하러 왔는데. 계신가?”
“네. 허나…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아무나가 아니니 들어가도 되겠지?”
“끄응…”
이각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가후다.
그런 가후의 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각 뿐.
황제조차도 이각의 횡포에 입을 다무는데 자신 어찌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머뭇거리던 병사가 고개를 숙인 후 뒤로 물러나자 가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주 훌륭하군.’
황제를 지키는 병사조차도 이각의 횡포와 힘에 굴복하고 있다.
이만큼이나 나락으로 떨어지다니.
한 황실이 이토록 몰락한 것에 즐거워하며 가후는 한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이각의 방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방에서 가후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궁녀들이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후의 계책으로 성은을 받은 궁녀들이 이각에게 끌려가고 다음날 자결해버린다.
쉬쉬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이각이 궁녀를 겁탈하고 그들이 얼마 못가 자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기. 자네.”
“히익!?”
“두려워하지 말게나. 폐하께 광록대부 가후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전해주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직접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아… 예.”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지만 궁녀는 여전히 가후를 두려워했다.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나올때까지 가후는 몸가짐을 바로 한 후 허리를 숙였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더할나위 없는 충신의 모습을 보이며 기다리고 있던 그는 궁녀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가 오체투지했다.
“신 광록대부.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오시오. 광록대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어린 황제.
사제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다른 황제를 보며 가후는 빙긋 웃었다.
한명은 그저 시골의 작은 현, 현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명은 황제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다르다.
부하들에게 핍박받으며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황제 유협.
부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자신의 책략과 정책을 마음대로 쓰고 있는 진유하.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재능?
아니면 등에 지고 있는 것?
가후는 조용히 미소지었고 그의 미소를 보며 유협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희들은 모두 나가 있어라.”
“하오나…”
가후의 말에 자리에 있던 궁녀들과 호위무사들은 머뭇거렸다.
머뭇거린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황제의 권위가 추락할대로 추락한 것이다.
아무리 가후가 문관이라고 하나 어린 아이 하나 죽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유협이 선 황제 유변보다 황제로서의 자질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훈련 조차 할 수 없었다.
수경원에서 많은 훈련을 하고 이름을 숨긴 채 살아오면서도 단련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가후를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가후는 이각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둘이 독대를 하게 하다니.
이각의 명령을 받고 황제를 죽이러 온 것일지도 모른데도 저들은 이각을 두려워하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모두 나가라.”
유협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황제도 무섭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이각이니까.
그들이 우루루 나가자 유협은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었다.
“지금 내 상황이 이렇네.”
“고충이 크시겠습니다. 폐하.”
“하하하… 고충. 내 사람들을 방패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고충따위 느낄 것 같은가?”
유협의 힘없는 말에 가후는 쓰게 웃었다.
비록 자신을 위한 계책이라고 하지만 유협은 자신의 사람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궁녀, 자신의 여자.
그들을 ‘황제를 위함’ 이라는 애매모호한 명분으로 이각에게 바쳐 질긴 목숨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가끔씩은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야.”
“사직을 생각하셔야지요.”
“그래… 사직. 사직이지… 사직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서는 안되지. 좋아. 무슨 일인가? 또 뭘 요구하러 왔는가? 이각이 이제는 태사의 자리라도 달라고 하던가?”
유협이 씁쓸히 말하자 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때가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유협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돋았다.
“때라면…”
“네.”
담담히, 가후는 침착한 어조로 유협을 보며 말했다.
“장안을 탈출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어떤 방법인가!??”
“다만… 한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만.”
“무엇이든 하겠네. 저 이각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유협이 다급히 외치자 가후는 품에서 한장의 종이를 꺼내어 유협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은 유협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자 가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모든 삶은 선택이고 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이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인가?”
“네.”
차분히 가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협은 고개를 숙이고 절망했다.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며 가후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날 재밌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사제 정도에 불과한가… 아무리 그래도 종묘를 생각하며 자신의 사람까지 버렸는데 이제와서 저런 헛짓거리를 하다니… 쯧. 이정도 결단은 쉽게 내릴 줄 알았는데. 역시 당신에게 위에 서는 자로서의 자격은 없군.’
“이 방법… 이 방법 밖에 없는 건가? 아아… 난 못하네. 난 못해.”
절망하며 고개를 젓는 그를 향해 가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저는 폐하께 선택권을 드리는 것입니다. 폐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궁녀들을 이각에게 넘긴 것처럼. 그것을 폐하께서 허락하신 것처럼…”
“자네는 항상 왜 이런 선택만을 가져다 주는 것인가. 왜…”
우울해하는 그를 향해 가후는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이게 제 운명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