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76
00176 탈출 =========================
“아아…”
장안성에 들어오자마자 힘없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며 가후는 쓰게 웃었다.
이각과 곽사는 자신의 생각대로 제대로 된 막장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너무 막장이라 그렇지.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야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자들.
그런 자들에게 힘이 주어졌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지는지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후우… 장안이 이정도면 삼보는 완전히 끝장났겠군.”
연주, 서주, 기주와 다르게 양주 일대와 사예주 일대는 큰 흉년이 일어났다.
몇년동안 이어지는 작은 흉년에서 나라가 흔들릴 정도의 막대한 흉년.
하지만 이각과 곽사는 흉년으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돌보기다는 자신들의 부를 늘리기 위해서 곡식을 비싼 값에 팔아 넘겼다.
기껏 세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 마저도 살아남기 위해서 이각과 곽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는 곡식을 살 수 밖에 없었고 그 곡식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백성들을 결국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었다.
말 그대로 잡아먹은 것이다.
인육을 먹어야 할 정도로 끔찍한 흉년임에도 불구하고 이각과 곽사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항의하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창칼로 찔러 죽일 뿐.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다.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마음 약한 황제는 자신의 사비와 각지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을 털어 백성들을 한명이라도 구하려 했지만 이각과 곽사는 그것마저도 빼돌려 자신들의 판매물품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생지옥이 만들어졌다.
이각과 곽사라는 악마.
그들이 만들어내는 최악의 상황.
그 상황 속에서도 문무백관들은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려 했지만 이각과 곽사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의 무도함과 흉폭함은 더더욱 강해져갔고 그것에 가후는 어이가 없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건 예상보다 더욱 잘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들의 악심을 알기에 그들에게 황제를 넘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이각과 곽사는 효율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편이 아닌 이들은 죽인다.
자신의 것이 아닌 이들에게서 빼앗는다.
백성들이 자신들을 원망한다?
상관없다.
해라.
우리는 우리의 사람만 챙길테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따르는 부하들과 병사들에게는 제대로 곡식을 나누어주었다.
병영에 들어와 자질만 보인다면 병사로 받아준다.
굶주림을 버티지 못하고 임관을 신청하고 능력만 좋으면 그들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탁 이상의 공포정치를 실행하고 있었다.
“아주 재밌는 놈들이야. 정말이지. 인간으로서 어디까지 갈련지는 모르겠지만… 댁들이나 나나 곱게 죽지는 못하겠군.”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던 이들이 점점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떠올리며 가후는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어 실소를 터트려버렸다.
“멈춰라.”
거대한 황궁 앞의 병사들이 자신을 막자 가후는 품에서 작은 패를 꺼내었다.
그것을 본 병사들은 당황하며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과, 광록대부님!”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왕윤이 동탁을 죽였을 때 이각과 곽사, 번조, 장제를 이끌어 왕윤을 잡을 수 있게 한 자.
이각과 곽사의 모사인 가후를 감히 막았다는 것에 병사들은 당황했다.
저 사람의 말 한마디면 자신들이 죽는 것이다.
그것에 두려워하는 병사들에게 가후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을 오가는 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허름한 옷을 입은 가후를 보며 궁녀들이나 내관들은 신기한듯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기겁하며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관직이나 이룬 업적이 대단하며 이각과 곽사의 비호를 받아 그들의 다른 부하들처럼 부를 쌓을 수 있음에도 돈에는 관심이 없어 받은 월봉을 그저 구휼에만 쓰는 자.
늘상 저렇게 허름한 옷을 입고다니는 저 사내는 이미 황궁의 유명인사였다.
광록대부 가후.
선의장군직에 제수되었으나 스스로 불민하다 말하며 그 관직을 사양하고 대부 자리에 남아있는 자.
책략을 내세움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멈춤이 없는 자.
그렇기에 이각과 곽사가 신뢰하여 옆에 두려는 자.
그가 황궁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저 자의 세치혀가 움직였을 때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문화. 돌아왔구만! 걱정했네! 모친께선…”
“아직 정정하십니다.”
모친의 건강을 이유로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던 가후다.
이각과 곽사가 적절히 통제되는 듯 싶었지만 그가 물러난 몇달간 그들은 스스로의 욕심을 감추지 않고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태위인 자신이라도 그들을 통제하려 했건만 되려 그들에게 포로로 잡히는 굴욕만 맛봤던 주준은 창백한 얼굴로 가후를 맞이했다.
“가서 차라도 한잔 하세. 할 이야기가 많으니.”
“하하하. 알겠습니다.”
주준과 함께 주준의 방으로 간 가후는 방을 둘러보았다.
태위가 머물 만한 방이 아니다.
허름하기 그지 없는 방에서 싸구려 차를 마시며 가후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건강은 여전히 좋지 않아보이시군요.”
“전장을 달려야 할 이 몸뚱아리가 이렇게 쓰레기가 되어버렸으니 좋을리가 있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각과 곽사의 싸움에서 그것을 말리려다 다른 공경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버린 자신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홧병이 난 것이다.
만약 가후의 계획이 아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준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찌 되었는가.”
“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위님께선?”
“믿을만한 이들을 포섭했네. 다만…”
“이각과 곽사가 여전히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것이라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오면서 많이 들었으니까…”
“자네 밖에 없네. 저들을 진정시킬 사람은.”
흉포한 개새끼의 목줄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주준은 안심할 수 있었다.
황제에게 검을 들이밀 정도의 악당을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한 황실에 충성을 다하니 그게 어디인가.
주준이 안도하는 것을 마주하며 가후는 빙긋 웃었다.
“그럼 바로 그들을 만나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마침 곽사는 천수로 강족들을 이끌러 나갔네. 하려면 지금 바로 하는 것이.”
“성급함은 일을 그르칩니다. 시기는 제가 정할테니 태위께서는 그에 맞춰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끄응. 알겠네. 내 자네만 믿겠네. 한 황실의 미래는 자네에게 달려 있어. 부디 부탁하겠네.”
한잔의 차를 모두 마신 후 몇가지 사항에 대해 조율을 하고 가후는 주준의 방에서 나왔다.
“내 손에 미래가 달려 있다라.”
그렇다.
자신의 손에 한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이거 재밌군. 아주 재밌어.”
차분한 걸음으로 이각의 방으로 향한다.
방금 전에 주준의 방에 들어갔을 때 지난 복도보다 몇백배나 비싸보이는 복도를 지나 황제의 거처보다 화려한 문 앞에 선 가후는 문 앞에 서 있는 병사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광록대부 가후가 대장군을 만나러 왔네.”
“어서 오십시요. 장군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가후는 병사가 열어 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곽사와 번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날 이후 황궁 안에서 마음대로 자신의 병사를 끌어들여 무장을 시키고 있는 이각이었다.
수십의 병사들이 궁녀 셋의 옷을 벗기며 끌어안거나 입술을 빼앗고 희롱하는 것을 보며 가후가 피식 웃었을 때 한 궁녀의 치맛자락을 벗기고 있던 이가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들었다.
“오! 광록대부께서 오셨소? 이것 보시오. 황제 폐하의 계집이라 그런지 아주 피부가 야들야들…”
“흑흑…”
황궁의 모든 것은 황제의 것..
황궁의 모든 사람은 황제의 사람.
저같은 이들이 건드릴 만한 여인이 아니다.
귀인의 가능성이 있는 여인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것을 보면서도 가후는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 이었다.
“좋은 여인이군요. 다만…”
“다만?”
“제가 관상을 볼 줄 압니다만 저 여인은 남자의 정기를 빨아들일 만한 여인입니다. 제가 없는 사이 궁녀들이 또 추가된 모양입니다.”
“그, 그건. 대장군께서 새로운 궁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습니까… 뭐. 마음대로 하시지요.”
“아니~ 왜 이러시나~”
자신들 따위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늘 웃으며 겸손함을 보이지만 그의 책략으로 이각과 곽사의 싸움이 멈췄고 반란을 일으키려던 번조를 잡아 죽일 수 있었다.
가후에 대한 이각과 곽사의 신뢰는 보통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저 자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에 병사들은 황급히 희롱하던 궁녀들을 놓아주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있거라.”
“흑흑… 예…”
황제의 여인으로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녀들은 수치심을 꾹 참아내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렇다면 참아야 한다.
궁녀들이 울먹거리며 나가버리자 가후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병사들.
그들을 향해 가후는 빙긋 웃었다.
“안그래도 제가 새로운 궁녀들을 조금 알아보았으니 그들이 온다면 여러분께서 심사를 맡아주시지요. 어쨌든 대장군의 최측근 아닙니까. 여러분이 아니라면 대장군께서 편히 쉬실 수 조차 없으니 여러분의 즐거움 정도는 제가 알아드려야지요.”
“오오오! 대부께서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하하하!”
“그럼 맡기겠습니다!”
병사들이 환히 웃으며 아첨을 시작했다.
아무리 개인의 무력은 자신들이 강하다 하더라도 가후의 무서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강병을 데리고 있던 번조조차도 가후의 책략에 빠졌고 여포와 왕윤도 가후가 아니었다면 이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대장군께선 안에 계십니까?”
“음. 들어가보게.”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간 가후는 내부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향기에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웃었다.
연기와 함께 시선이 몽롱해진다.
“오오오~ 어서 오시게나. 광록대부! 자네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어!”
“아흑…윽…”
궁녀의 복장을 한 여인이 이각에게 안겨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가후는 눈쌀을 찌푸렸다.
욕심이 과하다.
궁녀들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저자는 정말이지…
진짜 답이 없다.
“또 이러시는 겁니까?”
가후의 말에 이각은 난처한 듯 뻘쭘히 웃었다.
“아니, 이 계집이 건방지게 폐하의 여인임을 주장하며 날 가르치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제대로 교육을 시켜 줄 뿐… 으윽!”
“아아악! 안돼!”
한참 허리를 흔들던 이각은 사정감이 차올랐는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은 채 마음대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에 차오르는 무언가를 눈치챈 귀인은 절망하며 붕붕 고개를 흔들고 허리를 빼려 했지만 숙련된 군인인 이각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 한방울까지 그녀의 안에 싸질러버린 이각은 씨익 웃으며 절망하고 있는 귀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자. 이게 제대로 된 교육이란다. 아가야.”
“흐윽…흑… 폐하… 폐하…”
“이런 식으로 궁녀들을 몇명이나 죽인 겁니까.”
“하하하… 자네도 알지 않은가. 내가 이러는 것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야. 다. 우리 약하신 폐하를 위해서이지. 어찌나 힘이 약하신지 후사를 보시기 워낙 힘들어하시지 않나. 그래서 이런 것이니 자네가 좀 이해를 해주게나. 이게 다 충심이야. 충심.”
충심이 다 죽었다.
이각의 말에 가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황제의 자리를 탐하는 이각이 황제를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욕을 보였을 때 가후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한 일이니까.
그를 말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황제를 죽여봤자 당신은 황제가 될 수 없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황제가 될 생각이라면 상관없지만 모든 군벌들의 추대를 받고 싶다면 그런 방법은 곤란하다.
다른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동탁이나 이각이나.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한가지였다.
황제의 권위를 자신이 차지하는 것.
그리고 황제의 자리를 얻는 것.
그들의 욕심을 조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제의 여인을 안아라.
이 궁궐에 있는 여인은 모두 황제의 여인이다.
그러니 그들을 가져라.
그럼으로써 그 아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해라.
궁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각의 욕심이 점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고, 그가 황제를 죽이려는 것을 막으려면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나도 정말 곱게 죽지는 못하겠군.’
자신의 계책 때문에 죽은 죄 없는 궁녀들을 떠올리면 결국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곱게 죽을 생각따위는 하지 않았다.’
흐느끼는 여인을 보며 가후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괜찮으십니까.”
“흑…흑흑…”
‘결국 이번에도 난 조절에 실패했군. 하아…’
꼴을 보아하니 방에 돌아가 또 자결을 하겠구만.
가후는 그녀가 흐느끼는 것을 보며 시녀에게 말해 옷을 걸쳐주라 말한 후 자리에 앉았다.
바지춤만 대충 추스려 입은 채 이각은 가후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가 돌아왔으니 다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 모친께서는?”
“아직 괜찮으십니다. 그것보다…”
“음?”
“돌아오는 길에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