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9
00019 박색의 여종 =========================
“요새 바쁘다고 들었다. 괜찮은 거냐?”
“네.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났으니까요. 틈틈히 가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은 크게 봐서 두가지다.
첫번째는 생산량 증가를 위한 농법 확인
두번째는 비누 제작.
이 둘 모두 방법만 가르쳐주고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쓰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내가 바쁠 일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부릴 사람이 없다면 내가 직접 해야겠지만 하인과 하녀, 관아에 소속된 농부들이 있는데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전 군승님 댁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를 위한 여종이 왔다고 하더구나.”
“아 예.”
어여쁜 여종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그것을 거절해서 그냥 여종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잊어먹고 있었는데.
내가 시큰둥하게 답하자 아버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음…어여쁜 여종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설마!?”
어여쁜 여종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어여쁜 여종을 보냈나?
포기했던 이런 것과 저런 것이 다시 떠오른다.
“과할 정도로 추녀를 보내주셨다고 하더구나.”
“아 예.”
기대감은 사람을 무너트린다.
하… 괜히 기대했네.
순간적으로 기뻐한 내 자신이 한심하다.
“오후 쯤에 보내준다고 하더구나.”
“아 예…”
실망감에 빠져 있는 나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웃던 아버지는 죽간 하나를 들어 나에게 건네주셨다.
“이게 뭡니까?”
“유 의원의 스승이신 화 선생께서 여행을 끝내고 서주로 돌아오셨다고 하더구나. 겨울이 끝난 후 낙양에 가시는 김에 들르신다고 하니 그에 대비하도록 하거라.”
“아… 그 분이요. 아버지도 아시는 분이세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관직에 나서는 것보다 세상을 떠돌며 의술을 펼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닌 학식이 대단하셔서 서주에서는 그 분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더구나.”
“그렇군요.”
벌써 몇달이나 지났는데.
여기서 서주까지 그리 먼 것도 아닌데 그냥 오지 뭔 겨울이 끝나면 온다고.
아무튼 좋다.
명사가 날 만나러 온다고 하니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겠다.
비누를 쓸만한 수준까지는 만들어서 옷을 빨고 몸을 깨끗히 하는게 좋겠다.
그리고 향료도 만들어두는게 좋겠지.
“듣자하니 비누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면서? 그런 것은 왜 만드는 것이냐?”
“냄새나는 것이 싫어서요. 더러운 것도 싫고.”
“그러고보니 너는 향을 내는 것이나 씻는 것에 너무 집중하는 것 같더구나. 몸을 백날 천날 씻고 닦아봐야 마음이 더러운 자는 보기 좋은 썩은 음식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아무리 겉 표면을 치장한다 하더라도 내면을 갈고 닦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더냐?”
“뭐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있지요. 내면을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합니다. 허나 겉 모습이 바르지 못하고 더러워 사람들이 기피한다면 그 자 역시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흠.”
“물론 아버지 말씀대로 내면을 닦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내면을 갈고 닦는 것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비누를 만들거나 향을 만들어 몸을 깨끗히 하고 좋은 향을 쉽게 내게 하려는 것은 외관을 갈고 닦는 시간을 줄여 내실을 기르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허나 너는 그것에 너무 집중하는 것 같구나.”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이번 것만 확인해보고 그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너무 그런 것에 집중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그것보다 공부는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노, 논어를 조금…”
“전에도 논어를 읽고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긴한데…”
으아… 갈굼이 시작되는구나.
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부에도 힘을 쓰도록 하거라.”
“예에…”
“네가 이유하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너를 완전히 지켜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지식을 이용하라고 한 것이지 그것에 지배당하라고 한 것이 아니란다.”
“네…”
“다시 한번 물어보마. 너는 진유하이냐. 아니면 이유하이냐.”
요새들어 이유하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물건을 만들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진유하다.
“진유하입니다.”
“그럼 되었다. 내 말을 꼭 명심해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가보거라.”
“예…”
집무실 밖으로 나오며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간만에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 같다.
하긴, 요새 공부에 소홀히 하기는 했지.
이유하가 알고 있던 지식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을 뿐더러 필요한 것도 많았다.
특히 위생이나 치료에 대한 부분.
지금과 다르게 이유하가 살던 세상은 씻는 것과 냄새에 무척이나 민감했었다.
그것은 이유하도 마찬가지.
타인과 만나는 일이 잦은 이유하로서는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좋은 인상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청결과 향.
그것은 첫 인상을 좌우할 정도로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하아.”
향은 지금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청결이라도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만약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농법들이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면 이것은 어떻게든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리 된다면 명사들이나 관리들이 날 찾아 올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비누를 만드는데 집중했던 것인데…
“하긴. 아무리 이렇게 해봤자 머리에 든 것이 없으면 의미가 없지.”
아버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껏 만났는데 머리가 텅텅 비어 있고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좋은 평가는 커녕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도 하기 싫다… 으아.”
옛 성현의 말씀을 읽고 외우는 것.
은근히 이거 힘든거다.
특히나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쉽지가 않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와 경전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뭐야?”
“도련님! 이거 다 굳었어요!”
“아. 그래?”
벌써 다 만들어졌단 말이지?
밀랍과 글리세롤이 섞여 크림화 되어 있는 병을 유모가 보여주자 작은 종지에 크림을 담은 후 적신 천을 위에 올렸다.
“이거는 가지고 있다가 유모 잘때 왼손에 바르고 자.”
“왜 왼손만이에요?”
“잘 만들어진건지 확인해봐야 하니까. 혹시 바르고 따끔거리면 바로 물로 씻어내. 알았지?”
화장품이 몸에 안맞는 경우도 있다.
내가 줬다고 아파도 참고 그냥 쓴다면 그것만큼 골치아픈 일은 없지.
“네. 알겠어요. 아. 그리고 도련님.”
“왜?”
“전 군승님 댁에서 오늘 여종이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어디서 재워야 하나요? 그리고 도련님께도 소개시켜 드려야하는데…”
“알아서 해. 저녁 먹기 전에 보면 되겠네. 언제 온다는데?”
“지금 데리러 갔어요.”
“그럼 유모가 대충 설명해주고 이따가 저녁 먹기 전에 불러줘.”
“알겠어요. 그럼 도련님. 공부 열심히하세요~”
내가 탁자에 앉아 경전을 읽고 있었던 것을 본 유모는 활짝 웃으며 나갔다.
으음… 여종이라.
이런 것과 저런 것이 물건너 갔지만 어지간하게 못생기지만 않았다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남자 주인이 여종에게 손을 대지 않으면 사내답지 못한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다.
추녀라서 남자의 손을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내가 성은을…
“에라이. 됐어.”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여색에 빠지면 큰 일을 하지 못한다.
삼국지에 나온 것처럼 시대가 흘러간다면 아버지는 큰 일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노력을 해서 어떻게든 조조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계집질에 빠져서 색만 탐하는 인간이 어떻게 조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조조는 자신의 권세와 법을 이용하며 난세의 영웅이라는 평까지 받은 남자다.
거기에 그의 밑에는 쟁쟁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적어도 그들만큼은 해야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아버지를 비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여포와 엮이지 않을 것이라 말하셨지만 유비무환이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해놔야 한다.
“그러니까 조금만 해야겠다.”
그렇다고 즐기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니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일테니 어떻게 조금 만지작거리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으헤헤헤..”
절로 군침이 돈다. 빨리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경전을 읽는데 몰두했다.
창 너머로 해가 져 어둠이 찾아왔다.
등불에 불을 키고 경전을 덮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왔나!?
난 기대감을 품으며 낮게 헛기침을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물론 내 몸종을 만나는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초면에 굳이 나쁜 인상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그게 하인이든, 높은 사람이든.
“도련님.”
유모의 목소리에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답했다.
“들어오도록.”
“도련님? 고뿔이라도 걸리셨나요? 목소리가 왜…”
“…..”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기껏 내리깐 목소리에 유모가 당황하자 난 원래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들어와.”
“네…”
유모의 걱정어린 대꾸와 함께 문이 열린다.
늘상 보던 유모. 그리고 유모의 뒤에는 유모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 작은 키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 아인가?”
“네. 인사드리거라. 앞으로 네가 모실 도련님이다.”
“으… 아, 안녕하십니까! 소녀 장연이라 합니다!”
소녀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덩치를 보아하니 나보다 일곱, 여덟살은 많아보인다.
조금 펑퍼짐한 옷차림이라 몸은 알 수 없는데…
“고개를 들어보거라.”
“…저기… 천녀는 무척이나 용모가 박색인지라.”
“아니 얼굴은 봐야 될 것 아니야.”
“….”
한참동안 망설이던 장연이 부들부들 떨며 몸을 들었다.
검은색 긴 머리칼에 가려져 숙여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말을 안들을까.”
“어서 고개를 들어라!”
내가 투덜거리자 유모는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움찔한 장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난 쓰게 웃었다.
“하…”
“우으…”
전체적인 균형만 보자면 나쁘지 않았다.
갸름한 얼굴.
짙은 눈썹.
오똑한 코.
물기가 잔뜩 서려 있는 눈망울.
약간 두툼한 듯한 입술.
이렇게만 표현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장연이 박색이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으으…”
그녀의 피부는 무척이나 지저분했다.
밭일을 많이 한 것인지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했다.
그것뿐이면 괜찮은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얼굴 가득 마치 곰보빵처럼 갈라지거나 움푹 파인 부분이 많았다.
“곰보?”
“흑…”
“어디 도련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더냐!”
“아니 유모도 보이면서 왜 얘한테만 그래.”
“도, 도련님!”
“곰보… 곰보라.”
곰보.
두창이다.
두창에 걸려 죽지 않고 나을 경우 이런 피부가 된다.
이유하가 영업을 뛸 때 만났던 시골의 어르신들 중에 몇분 두창을 앓았다가 살아나신 분들의 피부가 이랬다.
“두창… 이였지?”
“…네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처럼 그렁그렁 눈물을 맺은 장연이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난 팔짱을 꼈다.
이유하가 알기로 그가 살던 세상에서 두창은 사라진 병이었다.
그 이유는?
종두법 덕분이었다.
소의 우두를 접종하는 것으로 인위적으로 약한 수두를 발병시켜 몸에 항체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종두법이 생기기 이전, 천연두는 호환과 더불어 마마라 불리우는 강력하고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물론 불법복제 비디오보다 덜 무섭기는 하지만 발병하면 기본 3할, 특정 경우 8할까지 치사율이 증가하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이거 비누나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만…”
비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식량 생산량을 늘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연의 모습에 난 내가 빨리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장연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 그녀의 턱을 잡고 피부 여기저기를 살폈다.
얼굴 뿐만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 두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것 때문에 박색이라고 취급받는 것이겠지.
그녀의 드러난 피부 여기저기를 살핀 후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이런 거나 저런 거까지는 힘들어도 이런 거는 할 수 있겠다.
….
아니 이게 아니고.
“흐으음…”
“도, 도련님?”
“어쨌든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하마.”
“예?! 아… 예!!”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장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다가 황급히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유모. 얘 데리고 가서 씻기고 밥 먹여.”
“어… 음. 네. 알겠습니다.”
유모 역시 놀란 얼굴이다.
원래 두창을 앓았던 환자는 어린 아이들에게 기피대상이다.
그 피부 때문에 괴물 취급을 받으며 어떤 곳에서는 두창을 앓았다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쫓겨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놀라기는 커녕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이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