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94
00194 환상 속의 그대 =========================
“주군… 부디 천하를…”
“기령!!”
식은땀을 흘리며 원술은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자고 있던 애첩이 놀라며 그를 보았지만 원술은 그저 숨만 헐떡일 뿐 이었다.
그런 그를 달래려던 애첩은 원술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충직한 신하였고, 원술의 몇 안되는 이해자였던 기령이 죽은지도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진유하… 이 개새끼… 으아아아!!”
분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으며 포효하는 그의 모습에 애첩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두려워하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갈 뿐.
이런 모습을 볼 것이 못된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원술을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 있던 검을 잡았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기령의 얼굴.
잠을 잘때마다 꾸는 과거의 기억.
천하를 노리던 자신과 자신을 응원하던 기령.
과거의 추억이 떠오른다.
“죽인다!! 죽여버리겠다!! 진유하 이 개새끼!!”
생살을 씹어먹을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 남은 뼈는 개먹이로 넘겨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기령의, 부하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던 그는 뒷목이 당겨오는 것을 느꼈다.
어제 왔던 의원이 화를 참지 못하면, 마음 속에 있는 회한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갔던 것을 떠올리며 원술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장훈의 말대로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이르다.
참아야 한다.
이 불타오르는 분노를, 이 끓어오르는 증오를 가라앉혀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리 쉽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다시 치밀어 오르는 화가 몸을 감싸자 원술은 그 검을 휘둘렀다.
“아아아아!!!”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기물을 때려 부수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는 증오.
헐떡거리던 원술은 검을 떨궜다.
“아하하…하…”
자신의 분노조차 다스리지 못하다니.
한심함에 눈물이 나온다.
“…..”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분노 섞인 외침을 들은 하인들이 창문을 닫아주었다.
오로지 홀로 있는 방.
그 방에서 원술은 아무런 생각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짜일까?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
쉽게 믿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술은 홀린 듯 향로를 향해 다가갔다.
향로 옆에 놓여져 있는 향을 향로에 털어 놓고 불을 붙인다.
은은한 향기와 함께 방 안에 향이 가득 차는 것을 느끼며 원술은 침상에 누웠다.
“기령…”
과거의 자신은 어땠는가.
과거의 그는 어땠는가.
한동안 말없이 과거를 추억했다.
그와 함께 도적을 잡으러 갔던 일.
그와 함께 사람들을 구했던 일.
즐거운 일도 많고 괴로운 일도 많았다.
“하아…”
“주군.”
“…..”
향을 피우고 얼마나 지났을까.
확실히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원술이 향을 끄려는 순간 그는 들려 온 목소리에 딱딱히 굳었다.
뭐지?
잘못 들은 것일까?
원술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목소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었던 목소리.
“기…령?”
환청일 것이다.
환각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그의 죽음조차도 그 빌어먹을 하비성주의 계략에 불과하다면?
원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령!! 기령!! 어딨나!! 너의 주군이 여기 있다!! 기령!!”
방금 전에 들렸던 목소리를 향해 외쳤다.
어두컴컴한 방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난장판이 되었던 방을 더더욱 난장판으로 만들며 그는 애타게 기령을 외쳤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럴수가…”
“주군…”
“기령!!”
뒤쪽에서 들렸다.
이번에는 만난다.
원술은 몸을 돌렸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수춘을 떠나기 전과 똑같은 모습의 그.
그가 자신을 향해 늘 짓고 있는 충직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아… 기령… 살아 있었나. 살아 있었어…”
“주군…”
“그래… 네가 죽을 리 없지. 죽을리 없어! 그러니까…”
“주군… 저는 이제…”
“웃기지 마라! 어디 갈 생각은 마라! 약속했잖느냐! 천하를 가지겠다고! 천하를 손에 넣겠다고! 그때까지 내 옆에서 보좌하겠다고!”
“주군…”
기령이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을 본 원술은 그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사라져버렸고 원술은 당황했다.
“기령! 주군을 놀리는 것이냐!! 당장 나와라!!”
“주군… 부디…”
“아아아!! 이놈!! 감히 날 놀려!?”
기령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그것을 느끼며 원술은 다급히 외쳤지만 그는 없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가슴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마치 전장을 전력으로 달린 것처럼 온 몸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주저앉은 채 흐느꼈다.
“흑…기령… 네 주군이 여기 있는데… 어딜 가버린… 거냐…”
[이 향을 향로에 태우고 그 향을 맡으면 심신이 안정됨과 동시에…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과거 자식을 잃고 몇날 며칠을 울기만 하던 어미를 위해서 그분이만든 향입니다. 한이 있다면 그 한을 토해내고, 그리움이 있드면 그를 다시 만나 그리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만든 향입니다.]또다시 그의 말이 떠올랐다.
덜덜 떨리는 몸.
원술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향로로 향했다.
아까 전에 너무 적게 넣었던 것일까?
향은 이미 꺼져 있었다.
“기령….!”
아직 내 회한을 풀지 못했다.
그러니 기다려라.
다시 나타나서 내 앞에서…
천하를 위한 약속을 나누자.
너의 복수를 하겠다.
그러니 나와라.
원술은 향을 한움큼 집은 후 향로에 넣고 불을 지폈다.
“윽!? 이게 무슨…!?”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원술이 나오지 않자 장훈은 그를 부르기 위해 그의 방으로 향했다.
어젯밤에도 악몽을 꾸었다는 애첩의 말을 듣고 걱정스러웠던 그가 달려간 방은 꽁꽁 닫혀 있었다.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자욱한 연기가 가득했다.
그 연기 속에서 원술은 침을 흘리며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헤에… 기령… 기령…”
“성주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이 연기라도 없애야 한다.
문을 열고 사람들을 불러 환기를 시킨 장훈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연기는…
그는 황급히 천을 물에 적신 후 코와 입을 막았다.
“너희들은 들어가서 성주님을 방 밖으로 모셔라! 어서!”
이 연기가 문제다.
원술이 저렇게 된 것은 이 연기가…
하지만 연기만으로 뭐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코 끝에 걸리는 향을 느끼며 장훈은 하인들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원술을 빼가는 것을 보았다.
열린 방문과 창문 사이로 연기가 꽤나 빠지자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러진 검.
그리고 부숴진 기물들.
그 기물들 가운데 멀쩡한 몇가지 중에는 며칠 전에 공물로 진상받은 향로가 있었다.
미세하게 남아 있는 잔향.
하얗게 타버린 재들만이 있는 향로를 바라보던 그는 향로 옆에 있어야 할 향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그 향이!?”
독향이었나?
하지만 의원은 그것이 독향이 아니라고 했었다.
설마 그 의원이 사기를 친 것인가?
아니면…
“으아악!!”
“내놔!! 그 향!! 다시 만나야 해! 기령을!!”
원술이 향한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고통스러워하는 하인의 비명과 원술의 끔찍한 포효.
그것을 들으며 장훈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했다.
“…빌어먹을!!”
하비성주의 계략일 것이다.
자신들이 실수를 했다.
그가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려지지 않는 독향을 넣었고 독향을 너무 생각없이 받아버렸다.
“젠장! 그 개자식!!”
명사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 그들이 주는 선물들을 받고 답례품을 내주며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이 잘못이다.
그냥 돌려보내고 그들의 마음만 받았어야 했는데.
그들의 호의를 이용해서 이런 악랄한 수를 쓸 줄이야.
장훈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갈았다.
“그래서?”
병사들을 모집하여 수춘으로 돌아 온 유훈은 장훈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장군께서는 지금 지휘를 제대로 하실 수 없는 상황이네.”
“그건 나도 보면 알아. 이제 어쩌냐는 걸 묻는거다.”
유훈의 질문에 장훈은 눈을 감았다.
만약 이것이 하비성주의 계략이라면 지금 싸울 수는 없었다.
원술이 광증에 걸려 날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수춘에 소문이 나 있었다.
죽은 기령과 수많은 병사들이 자신들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하비성주라고 소리치고 그를 죽이려 한다.
인사를 하러 온 명사들에게마저도 칼을 휘두르려 했던 것을 떠올리며 아직도 등골이 오싹한 장훈이었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게.”
“의원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모른다고만 말할 뿐이야.”
“그 향을 가져왔던 자는?”
“조사해보니 그런 가문 자체가 없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멸문되었지. 하비성주와 기싸움을 하다가 지역의 건달들과 어울려 반역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가주 뿐만 아니라 그 자식들까지 모두 죽었어.”
빠득 이를 갈며 장훈이 말하자 유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껏 병사들을 데리고 왔는데.
하지만 유훈의 말대로 지금 싸우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자신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이 지금 저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이대로는 하비성주와 싸우는 것도 문제지만 싸워 이겨도 문제였다.
광증에 걸린 이는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지금 방에 묶인 채 힘없이 신음만 흘리다가 기령이나 악취, 이풍 등이 옆에 있다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가끔씩 하비성주가 눈 앞에 있다며 검을 가져오라고 외치는 것이 전부인 원술이다.
그런 그를 내세워봤자 자신들에게는 무리가 있다.
“일단은 돌아가자. 지금 하비성주가 수춘을 공격이라도 했다간… 필패다.”
원술이 저렇게 된 것이 알려지자 수춘의 백성들은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이제는 하다하다 광증까지 걸리나.
천신의 저주다.
감히 천신의 뜻을 거스르려 하니 저렇게 되버린 것이다.
당한 것은 자신들인데 오히려 백성들이 이리 나와버리니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훈의 말에 유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어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담담히 말한 그를 향해 장훈은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퇴각의 준비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음. 자네는 후장군을 잘 모시게.”
원술의 방으로 들어 온 장훈은 희미하게 신음을 하고 있는 원술에게 다가갔다.
흐리멍텅한 눈.
힘없이 늘어져 있는 몸.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바짝 말라 있는 그의 입술을 보며 장훈은 시녀에게 말했다.
“가서 시원한 꿀물 한 대접을 타오도록 하거라.”
“예.”
시녀가 나가고 나서 꿀물을 가지고 오자 그는 그것을 받은 후 은수저로 살짝 퍼 원술의 입술을 축여주었다.
“달구나…”
“…주군.”
“흐…기령이 저기 있는데도… 이것 밖에 못하다니… 으으… 하비성주를 죽여달라고 저리 원통히… 악취가, 이풍이… 교유가 저리 말하고 있는데…”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그자의 생살을 찢어 씹어 삼킴으로써 그들의 원혼을 달랠 것입니다. 그러니…”
“장훈… 전권을 너에게 주마. 하비성주를…. 죽여라.”
“알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물러나도록…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군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며 장훈은 빠드득 이를 갈고 동쪽을 노려보았다.
마귀같은 자다.
고작 얼마 되지도 않는 약을 쓴 것만으로도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버리다니.
그야말로 마귀의 저주와 같은 자다.
그리고 그런 마귀의 다스림을 받는 곳.
그곳이야말로 마굴이다.
하비성이 있는 곳.
서주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노려보며 장훈은 원술의 힘없이 축 늘어진 손을 꽉 잡았다.
“기다려라. 마굴의 개자식아… 우리는 반드시 돌아올테니. 반드시 돌아와 네놈의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겠다…”
너무 강하게 이를 악물어 잇몸에서 피가 난 장훈은 입가에 흘러 내리는 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증오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