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05
00205 꼭두각시 =========================
사내를 빤히 바라보던 양봉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신호에 백파적들은 무기를 그에게 돌렸고 사내는 그것을 본 후 유들유들한 얼굴로 말했다.
“워. 그런 흉악한 건 내려 놓자고. 난 혼자야. 너희들을 협박할 생각은 없어.”
“넌 뭐하는 놈이냐?”
“그건 중요한게 아니라니까. 그저…”
“똥냄새가 지독히 나는 것이 네놈도 잘난 놈들 중 하나냐?”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백파적 중 하나가 이를 갈며 말하자 사내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하게 여유로운 그의 모습에 백파적들은 양봉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그 잘난 인간이 지껄이는 소리를 한번 들어보자. 천하라고 했나? 백성이라고 했나? 너희 잘난 놈들이 도대체 뭘 했지? 우리 백성들을 짓밟고 빼앗는 것 외에 뭘 했냔 말이다.”
“많은 것을 했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주었다.”
“미친놈. 여기를 보고도 그 말이 나오냐! 낙양의 이 처참한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못할 건 또 뭐지?”
싱글거리는 그를 향해 양봉은 이를 갈았다.
손에 잡혀 있는 유협을 놓아 준 후 사내에게 다가간 양봉은 사내를 향해 검을 겨눴다.
당장이라도 말만 하면 오백의 백파적이 저 사내를 흔적도 없이 찢어발길 수 있다.
양봉은 눈물을 쓱쓱 닦은 후 성을 내기 시작했다.
“너희 잘난 놈들은!! 가문의 명예를 드높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찢어발겼다!! 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깔아뭉갰다! 그렇다면 지금 힘이 있는 우리가 널 깔아뭉개도 할 말이 없을 터!!”
“맞아.”
“현명하게 생각하고 대답해라. 넌 무엇을 했냐. 낙양이 이 꼴이 될때! 삼보가 그렇게 무너질때 너희들은 무엇을 했냐!!”
“낙양이 무너질 때는 낙양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삼보의 백성들이 굶어 죽고, 서로를 잡아먹다가 죽고, 이각이 보낸 병사들의 창칼에 죽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나서는 거냐? 그런데도 천하를, 백성을 입에 담을 수 있는거냐?!”
양봉의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를 들으며 사내는 싱글거렸다.
그 웃음에 더더욱 화가 난 양봉이 소리치려고 할 때 사내는 차분히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
“미친 새끼. 그럼 죽어라. 힘없는 놈. 힘 있는 우리에게 죽어라. 그게 너희들이 그토록 하던 일이 아닌가? 군소리 말고, 민초가 짓밟히는 것처럼 짓밟혀라.”
“하지만 내 사람이, 나의 부하가, 나와 함께 하는 이가 백성을 위해서 움직이도록 지원해주었지.”
“뭐?”
그의 말에 양봉은 어이없다는 듯 비웃으며 누런 이를 드러내었다.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말로만 씨부렸다는 것이다.
그런 저 남자와 백성이 고통받는다며 시나 써갈기던 저 황제, 문무 백관이 다를게 무엇이란 말인가.
양봉이 어이없어 하다가 화를 내려 하자 사내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기에 구할 수 있었다.”
“누굴 구했는데? 너깟 새끼가! 백성의 고통 따위는 쥐뿔도 모르는 너따위가 뭘 구했는데!?”
“도적을 잡고, 또한 도적과 결탁하여 부패하고 부패한 관리를 잡고, 백성의 목에 이빨을 대고 그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명사를 처단했다.”
“잘났구나. 그런데 왜 낙양의 백성들은! 삼보의 우리들은 왜 죽어야 했나!? 네가 구한 것은 백성이 아니다. 네가 구한 것은 너의 지배를 받는 노예를 구한 것 뿐이야!”
“웃기는 소리를 마음대로 지껄이는구만.”
양봉의 한이 서린 외침을 들으며 사내는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려 그를 비웃었다.
“어린애냐? 내가 먹고 싶은 과자를 사주지 않아 장터에서 난동을 피우는 어린애냐? 너는? 그리고 너희들은? 너희들이 받지 못했다하여 그것이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네놈이 뭘 아는데! 잘난 갑옷이나 옷을 보니 한번 고생 조차 해보지 않은 놈같은데…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지금 네놈의 목숨은 내 손아귀에 있다.”
“그 손아귀에 있는 목숨이 너의, 너의 가족들의, 네 후손들과 이 나라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의 심장을 찌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양봉이 죽일 듯 노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담담한 어조로 대꾸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낙양이 불탔다? 낙양의 백성들이 죽었다? 그럼 묻겠다. 왜 저항하지 않았지?”
“뭐?”
“삼보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굶주리고 고통받으면서도…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충분히 떠날 기회는 있었고, 충분히 도망칠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얌전히 앉아서 살려달라 울부짖고, 애원하기만 했지. 왜 그랬나?”
“우리에게 힘이 없었으니까! 약자였으니까!”
“약자에게도 약자 나름의 저항 방식이 있다. 약자에게도 약자들만이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토록 살려달라 애원하고 빌 힘은 있어도 저항한번 해보지 않은 이유는 뭐냐?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뭐냐?”
“…..”
양봉과 백파적들의 눈이 사나워졌다.
금방이라도 사내를 죽일듯한 시선을 보내던 그들이 무기를 들고 사내에게 다가오자 사내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 너희들은 개고, 돼지다. 짓밟혔다고? 빼앗겼다고? 짓밟히고 빼앗길만 했으니까 그렇게 된 것 뿐이다.”
“닥쳐!! 네놈따위가 뭘 안다고!! 백성의 삶을 위해서 뭘 했다고!!”
“많은 것을 했다!!”
“뭘 했는데!! 시 하나 썼나!? 백성들에게 구휼이라는 알량한 자비를 베풀었나!? 위정자라는! 힘 있는 네놈들은 그동안 뭘 했는데!”
“산양군에 간 적이 있었지. 연주의 산양군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나?”
“….”
산양군.
연주 내에서 복양과 더불어 가장 살기 좋은 곳.
한때는 도적과 탐관오리들만이 넘쳐나는, 백성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곳이었지만 새로운 산양군수가 부임한 이후 연주에서 백성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군이 되었다.
그곳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산양군수는 어질고 현명하며 백성들을 아낀다.
그 휘하의 장수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들의 것을 아껴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상업을 발전시켜 부를 쌓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준다.
백성들에게 있어서 꿈과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밭을 갈고 소를 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힘없는 이들에게는 꿈만같은 곳의 이야기를 꺼내자 양봉은 입을 다물었고 사내는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는가보군.”
“…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지?”
“그곳의 백성들은 소비의 즐거움을 알고, 살아가는 행복을 안다. 추수의 기쁨을 누리고 축제의 참맛을 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데!!”
“그곳으로 도망갈 수 있음에도 왜 너희들은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징징대기만 했냔 말이다!!”
“…그, 그건.”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왜? 무서우니까. 내가 살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으니까.”
“…..”
“움직이고 싶지는 않다. 왜? 힘드니까. 삼보에서 산양군까지의 거리는 멀다. 일개 백성들이 가기에는 힘들겠지. 그리고 가는 길에 도적을 만날 수도 있고 행여나 갔는데 그저 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했을테니까.”
“그…건.”
양봉이 힘없이 말하자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 너희들이 개고, 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저 주는 먹이만을 받아먹으며 꿀꿀대고, 짖어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잡아먹히기만 기다리는 개돼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짓밟혔다고? 괴로웠다고?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개와 돼지는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것이다.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고, 먹을 때가 되면 괴롭힌다. 그것이 개돼지를 기르는 방법이다. 약자의 권리도, 의무도 행하지 않았다면 그저 개돼지에 불과하다.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나. 어차피 잡아 먹어야 하는 것들에 불과한데.”
“우, 우리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왜?”
“병사들이 창칼로 막고 있었으니까!”
“한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천자에게 칼을 들이댈 용기는 있고, 한을 지탱하던 문무 백관들에게 협박을 할 힘은 있어도 고작 창이나 칼 한자루 든 이들에겐 저항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거냐? 하하하하!! 이거 재밌군. 그래. 뭐 너희들의 말대로라고 치자. 그런데 그런 너희들과 너희가 그토록 증오하는 힘있는 자들의 차이가 도대체 뭐냐?”
“우…우리는… 우리는!”
백파적 중 하나가 항변하려 하자 사내는 어깨를 으쓱인 후 여유롭게 말했다.
“힘이 있으니 그 힘을 쓰고 싶다. 원한이 있으니 그 원한을 풀고 싶다. 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할 수 없다. 왜? 그랬다간 위험부담이 크니까. 그랬다간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 조차도 빼앗길 수 있으니까.”
“….”
“힘있는 자들은 약한 자를 짓밟는다. 관리들은 백성들의 것을 빼앗는다. 유지들은 백성의 삶을 가져간다. 병사들은 백성을 짓밟고 죽인다. 빼앗고, 빼앗기고, 죽고, 죽이고. 결국은 너희들이 그토록 지껄이는 논리는 약육강식이 싫었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꼴은 뭐냐? 그토록 너희가 증오하고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거잖냐. 그런데 천하가 뭐 어쨌다고? 백성이 뭐 어쨌다고? 그런 너희들 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 백성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네놈이 한 것이 무엇이 있는데!?”
“말했잖아. 많은 것을 했다고. 연주의 산양군과 서주의 하비를 잇는 물자 유통망을 만드는 것을 지원했다. 서주에서 생산되는 많은 물자들이 연주에 충분히 유통되게 만들어 연주의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의 수를 줄였다. 너희들이 너희들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을 휘두르며 우리는 백성의 원한을 푼다고 지껄이는 동안 수천! 수만의 백성을 구했다!!”
“…..”
“한톨의 곡식도 먹지 못해 아이에게 줄 젖을 만들지 못하는 어미에게 밥을 주었고, 한냥에 불과한 약을 사지 못해 죽어가는 아비의 곁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약을 주어 아비를 살리게 했다. 먹을 것이 없어 부모를 버려야 하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땅을 잃어 더 이상 살아갈 힘을 갖지 못한 농부들에게 땅을 주어 경작을 하게 했다. 이정도면 많은 것을 한 것이 아닌가?”
“네놈은… 누구냐.”
“말했잖아. 내가 누군지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상자에서 일어난 사내는 양봉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툭 쳤다.
“너다. 너희 백성들이고 너희 사람들이다.”
“……”
가슴의 고통은 작았다.
말 그대로 ‘툭’ 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고통은 가슴 속에서 계속 퍼져가고 있었다.
결국 난 무엇을 했던 것인가.
결국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힐끔 고개를 돌려 문무 백관들과 황제를 보았다.
그토록 증오스럽다고 생각했던 저들이 자신들의 눈치를 살핀다.
저들의 모습과.
삼보에서 한톨의 곡식이라도 얻기 위해 관리들의, 힘있는 이들의 눈치를 살피던 자신들이 뭐가 다를까.
“사람에게 힘이란 것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비루하고 못난 너희 백성들이 뭉쳐 힘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천하에서 가장 높은 천자 역시도 너희들의 칼에 두려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힘이 아니야! 그 힘을 무엇을 위해 쓰느냐다!”
사내는 다시 주먹을 쥐어 양봉의 가슴을 강하게 쳤다.
아까와는 다른 강한 공격.
그것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양봉은, 그리고 다른 백파적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위정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위정자가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 그것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다. 위정자가, 힘 있는 자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망가라! 저항하라! 싸워라! 그래서 가져야 하는 것이다. 너희 백성들은 약한 자들이 아니다!! 약한 것은 살아가야 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개돼지에 불과하다! 칼을 들었잖아! 힘을 가졌잖아! 한순간이라도 힘을 가졌다면 그 힘을 어디에 써야하는지 생각해라! 너희가 그토록 지켜야 한다는 백성을 위해서 쓸 것인지!! 아니면 너희의 같잖은 욕망과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 쓸 것인지! 너희 스스로가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빼앗기지 않는다! 그래야 너희의 것을 지킬 수 있다! 위정자에게! 힘있는 자에게 지켜달라고 하는 것은 축사에 있는 가축들이나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개돼지인가!?”
“아니다!! 우리는 개도, 돼지도 아니야!!”
“그럼 너희는 뭐냐.”
사내의 말에 양봉은 눈을 감았다.
한참동안이나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힘이 없는 백성인가?
힘을 가진 도적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고통 속에서 높은 이들만 바라보며 살려달라 꿀꿀대는 개돼지인가.
“…우리는… 누구요.”
양봉은 고개를 숙인 채 사내를 바라보았고 사내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나도 몰라!”
“윽…”
“너희 스스로 결정해라!”
“…당신은 누구요.”
양봉은 힘없이 물었다.
그의 질문에 사내는 피식 웃었다.
“나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지. 한때 산양군의 군승이었고, 현재는 한 황제 구출군 중 1군을 이끄는 대장이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양봉 뿐만 아니라 유협, 문무 백관, 도적들이 모두 그곳을 바라보았을 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의 뒤에는 수많은 병사들과 강해보이는 장수들이 서 있었다.
흙먼지를 정면으로 받으며 한점의 망설임없이 걸어 온 당당한 사내의 말에 양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천신의 뜻을 받은 연주목. 조조의 뒤를 이을 후계자. 조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