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19
00219 변질된 가치 =========================
북해로 몰려드는 난민들 사이에 섞여서 북해로 잠입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각 현의 현령들과 현장들은 공융이 내린 명령에 따라 피난 온 백성들을 보호하고 받아들였으니까.
거기에 공자원에 입원하고자 하는 이들 역시 그 수가 상당했기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북해군에 들어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되는데 극현에 들어가는데는 추가로 비용을 내든가, 아니면 명가의 추천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와.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추천장이 있어야 하다니.
이건 또 뭔 소리래.
“그게… 각지 명가의 자제들이 있는 공자원이라 그래서 그런지 치안에 대한 문제를 철저히 하는가 봅니다.”
장합은 쓰게 웃으며 말했고 난 입맛을 다셨다.
“공도에게 듣기론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던데… 이거 굉장히 골치아픈 일이군. 어쩌지?”
“허…”
지금까지 오면서 본 북해군은 그래도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비 정도는 아니지만 동해군 정도?
치안도 그럭저럭 잘 되어 있고 백성들의 수준도 괜찮았다.
주점이나 여관에서 파는 물품이나 음식, 술 등도 나쁘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편해지게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여기서 발목이 잡힐 줄이야.
그것도 명가의 추천장이라니.
“아놔. 하비에 넘쳐나는게 명가인데 추천장이 없어서 못들어가는게 말이 되나?”
당장 하비로 돌아가서 내가 알고 있는 명가의 사람들에게 추천장 한장만 써달라고 하면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써 줄 추천장만 해도 수십장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청주다.
청주에 내가 아는 명가는 없었다.
극현에 들어갈 때 추천장이 필요한 줄 내가 알았나.
난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빠르게 끝냈다.
“어쩔 수 없군.”
“네 어쩔 수 없게 되었습니다.”
“뭔가…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조청만이 이해를 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난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야. 없으면 빼앗아야지.”
어차피 극현에 들아가려고 하는 명가의 자제들은 많았다.
그렇다면 적당히 빼앗거나 훔치면 되는 것 아닌가.
잘 찾아보면 적당한 추천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있을 것이고 그들의 것을 그냥 훔치자고 생각했다.
나와 장합의 대화를 들은 장삼은 무덤덤히 우리의 뒤에서 술을 마시는 흑귀대원들에게 조용히 말했고 술을 마시던 흑귀대원 중 셋이 일어났다.
“그럼 부탁할게.”
“맡겨두쇼.”
도적, 건달, 그리고 동네 양아치가 전직인 흑귀대원들에게 있어서 배수짓 정도는 크게 문제 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리를 뜨자 조청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괜찮은 겁니까?”
“응.”
“왜요?”
조청의 질문에 장합은 피식 웃었다.
“추천장 같은 거 받아 본 적이나 써준 적 없지?”
“네.”
조조의 딸인 조청이 추천장을 받아볼 일이 있겠나.
나야 두기에게 추천장을 써주기도 했고 실제로 명가에게 받아 본 적도 있으니 추천장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실제 추천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추천장을 진심으로 써준 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지.”
“아아. 맞아.”
추천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니다.
관직 중에서도 추천을 통해 오를 수 있는 효렴이나 무재가 있다.
그 추천을 통해 관직을 얻은 이가 죄를 저지르면 연좌제로 추천해준 이도 처벌을 받는다.
결국 추천은 각 가문이나 사람간의 이득과 이득을 통해 거래를 위해서 쓰이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추천이 정말 인간이 좋아서 해주는 추천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적당히 이득을 위해서 써주는 것이라면 추천하는 인물에 대해서 뭉뚱그려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을 필요에 따라 추천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특히나 인성이 쓰레기인 인간도 잘 포장해서 효렴으로 추천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추천장에 들어가는 내용을 살펴 두루뭉술한 내용이 들어 있는 추천장을 훔쳐서 쓰면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고 저런 놈들이 추천장을 받는 것보다는 내가 받는게 낫지 않겠어?”
난 뒤쪽을 가리켰다.
기녀들을 끼고 술을 퍼먹으며 그들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어린노무 새끼.
나보다 두어살 쯤은 어려보이는 놈은 훤한 대낮에 신나게 여자들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으하하! 조만간 내가 공자원에 들어가면 아버님께 말씀드려 너희들을 내 첩으로 삼아주마!”
“아이~ 공자님~”
“멋져요~”
“…그, 그렇군요.”
살짝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본 조청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까지 오며 만났던 명가의 자제들은 대부분 저랬다.
물론 아닌 놈들도 있었다.
고상하며 여인과 노는 것보다 계속해서 책을 손에 떼지 않고 있는 진짜들도 있었다.
그들과 어떻게 연을 맺어서 하비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지금해야 할 일은 공융을 공략하는 것.
공융만 잘 구슬려서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그의 명성을 보고 따라 올 이들은 많았다.
“사부님만 찾으면 수경원을 아예 하비에다가 박아 넣을 수도 있을텐데 말야.”
“죄송합니다. 아직 수경 선생의 흔적을 찾지 못해서…”
“아니야. 워낙 바람같은 분이라서 찾으려고 해도 못찾을게 뻔해.”
장합의 사과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부님을 찾으려는 노력은 나와 방통만 한 것이 아니었다.
수경원이 불탄 이후 수경원의 제자들 중에 관직을 가지고 있거나 각지의 학문소, 서당에서 스승을 하고 있는 이들 중에도 사부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사부님의 흔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 엄백호를 만났다는 정도 밖에 없었다.
“사부님이 안계신데 수경원을 함부로 차릴 수는 없지.”
맘같아서는 그냥 차려버리고 싶지만 수경 선생이 없는 수경원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일 뿐더러 자칫 잘못했다간 기사멸조의 죄를 추궁받을 수도 있었다.
감히 사부님이 멀쩡히 살아계신데 수경원을, 그것도 막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차리다니.
다른 사형들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 위험이 있으니 차라리 안하는만 못하다.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게…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떼돈을 벌 수 있을텐데. 그리고 인맥도 넓힐 수 있고.”
공자원의 가치는 인에 있었고 배움에 있었다.
하지만 수경원의 가치는 달랐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는 곳이다.
이런 등급제?
당연히 허용된다.
뒷감당만 할 수 있으면 말이다.
그리고 난 충분히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었다.
예로부터 말 안듣는 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명가고 나발이고 스승의 명령을 어기는 몰상식한 제자는 패가면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에 문제를 삼으면 권력으로 눌러버리면 되고.
수경원의 인맥을 활용하면 명가 한 둘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지워버릴 수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권력 하는 거구나.
아쉬워 죽겠네.
사부님만 찾으면 수경원을 재건해서 공자원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거대한 집단을 만들 수 있을텐데.
난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고 그런 나를 조청은 쓰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만약 성주님의 사부님을 찾게 된다면…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중앙에 세우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뭐 그것도 좋지.”
나중에 나는 조조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며 중앙에서의 정치적 위치와 권력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중앙에 세워진 수경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겠지.
학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아예 조조 일파의 자제들을 수경원에 입원시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후후. 그럼 그때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겠군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청은 생글거리며 부드럽게 말했고 난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보였다.
“응. 그때는 부탁할게.”
“네에~”
묘하게 밝아보이는 조청의 미소가 그려졌을 때 그녀를 훔쳐보던 비싼 옷을 입은 사내들 중 하나가 자신의 하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장합과 흑귀대원들은 검자루를 잡았다.
이런 거 한두번 보는 줄 아나.
원천 차단이다.
그것에 질린 하인이 되돌아가자 조청에게 흑심을 드러낸 명가의 자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입은 옷, 그리고 흑귀대원과 장합, 조청이 입은 차림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다.
비싸디 비싼 익주의 비단으로 만든 옷이다.
그걸 입고 있으니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겠지.
만약 잘못 건드렸다가 자기 부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자기한테 손해일테니까.
딱히 비싼 옷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괜한 마찰이 생기는 것보다는 낫다.
거기에 이렇게까지 경계한다면 조청의 미모를 보고 달려드는 미친놈의 수는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소저. 소저의 아름다움에… 헉!”
물론 모든 미친놈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 일행 중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조청의 미모에 혹한 취한 사내가 다가오자 장합은 검을 뽑아 그에게 겨눴다.
순식간에 뽑혀 자신에게 겨눠진 검날에 놀란 그가 머뭇거리자 난 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하하하하!! 당신처럼 용기 있는 자는 좋아하지! 하지만 당신의 용기마저도 흔들리게 할 이 아리따운 미녀는 내 내자요! 그대도 인을 알고 뜻을 알며 대의를 품은 자라면 타인의 아내의 미모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허나 그 용기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구려! 내 내자가 이리도 아름다운 것이 죄이지. 그러니 이 장모가 그대의 용기와 내자의 아름다움이 만들어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대에게 술 한잔을 바치고 싶소!”
“그, 그거 고맙군.”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이 술먹고 꺼지라는 내 의미를 알아들은 것일까?
그는 머뭇거리다가 내가 준 술을 한번에 들이마신 후 나에게 잔을 되돌려주었다.
“이 육모, 귀하의 부인의 미모와 귀하의 자비에 큰 감명을 하겠구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귀하의 부친이 누구신지 알 수 있겠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분이 아니라오. 또한 도련님의 위상은 적어도 군수따위는 아니니 걱정마시오.”
“그, 그렇소? 실례했소이다.”
장합의 말에 사내는 머뭇거리다가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갔다.
군수따위가 아니긴 하지.
“주목이신데요.”
조청은 베시시 웃으며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것을 생각하니 괜히 조청을 데려왔다 싶었다.
“너무 예쁜 것도 탈이구만.”
“그러게요.”
내 타박에 조청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는지 활짝 웃었다.
확실히 조청의 지금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붉은색의 비단이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약간 탄 듯한 건강한 갈색의 피부와 탄력, 그리고 엷게 한 화장 덕분인지 조청의 매력은 주변에 널려 있는 기녀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만약 이곳이 극현 근처가 아니었다면 나와 장합, 그리고 흑귀대는 조청의 미모에 혹한 이들 때문에 엄청 골치를 썩혀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명가의 자제들이 넘쳐나는 곳이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공자원에 들어가는 자제들은 명가의 자제일 뿐만 아니라 높은 관직을 가진 이의 자제이기도 했다.
그 말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개기며 해를 끼쳤다간 자신의 가문이 파멸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청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가의 자제인데 어느정도의 개념은 있었고 그 덕분에 생각 외로 덤벼들지 않았다.
자기 동네에서는 왕이라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들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기에 저들은 눈치만 살필 뿐이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다.
“제가 예쁜 것이 죄지요.”
“어이구. 그래. 잘났다.”
“후후. 싫으신가요?”
조청은 내 손을 꽉 잡았다.
아프다.
“살살 잡을래? 응?”
“후후후… 저를 빼앗길까봐 두려우십니까?”
“응. 두렵다. 너 뺏기면 연주목이 내 목을 빼앗아 갈 것 같거든.”
“그럼 절 더 지켜주세요.”
“네가 더 잘 싸우잖아…”
전에 조청과 대련을 해 본 적이 있었고 그 결과는 내 참패였다.
진짜 쎄더라.
전력을 다하면 서황까지는 무리더라도 서성까지는 가능한 듯 싶었다.
이정도라면 개인의 무는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래도요.”
“답지 않게 왜 이래?”
“매번 언니만 예뻐해주시고. 저도 아내 아닌가요? 방금 전에는 내자라고 하셔놓고선.”
“알았어. 알았어. 최선을 다해서 지켜주지.”
“후후후… 귀여우셔라.”
“…..”
어째 무섭다.
조청이 입술을 핥으며 날 바라보자 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떻게. 자리라도 비켜드릴까?”
장합은 나와 조청의 대담을 듣고 쓰게 웃으며 술을 마셨지만 흑귀대들은 재밌다는 듯 지켜보다가 조청을 향해 물었다.
워낙 성격이 유쾌한 놈들이다보니 날 놀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서운 것들.
“어머? 그래 주겠어?”
흑귀대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전장에 자주 참가하며 전장에 익숙해진 병사들의 음담패설에도 능숙하게 대처할 줄 아는 조청이었다.
그런 그녀는 흑귀대의 야유에 가까운 놀림에도 웃으며 대꾸할 뿐 이었고 흑귀대원들은 인상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그냥 올라가쇼. 방 잡아 드릴테니까.”
“정말? 그럼 부탁할게~”
얘들아.
그렇게 부추기지마.
나 진짜 잡아먹힐지도 몰라.
영이랑 떨어지고 나서 안그래도 요새 조청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가 않은데.
나에게 향해지는 조청의 시선이 점점 강해지고 그녀가 입술을 핥는 것이 더욱 잦아지자 난 은근슬쩍 시선을 돌려 회피했다.
“어? 벌써 왔네?”
“에… 몇장 가져왔는데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슈.”
“…..”
무서운 놈들이 여기 또 있었네.
마을 한바퀴를 돈 것 뿐인데 그들의 손에는 열장이 넘는 추천장과 호패들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확인해 본 후 서주에 날 아는 명사의 추천장을 챙긴 후 나머지를 흑귀대원들에게 돌려주었다.
“아. 도련님. 마을을 돌면서 본건데.”
“음.”
“우리 말고도 훔치는 놈들 많던데? 그리고 이것도 판다고 하더라고.”
“….”
와… 진짜 대단하다.
추천장까지 훔쳐서 팔 줄이야.
인의 도리를 가르치는 공자원에 들어가기 위한 추천장을 이렇게 훔쳐서 팔 줄이야.
역시 인간은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