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62
00262 괴물을 잡기 위해서 =========================
“무언가 생각이라도…?”
심배는 전풍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만약 도련님께서 이대로 모든 것을 잃고 원상의 밑으로 들어가실 생각이시라면… 그렇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자에게 당한 것을 복수하고 싶으시다면 지금부터 제 말을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원도. 자네도 함께해야 하네.”
“말해보게.”
자신보다 훨씬 머리가 좋은 심배다.
하지만 지금 심배가 하려는 일은…
봉기는 불안감에 휩쌓인 채 심배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도련님께선 독자적인 정보망을 이용해 저와 봉기가 잡혀 있는 곳을 알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조조의 병력이 다수 포진되어 있는 그 복양성이었다. 그곳을 공격하는 것은 자금도, 병력도 많이 소모해야 하기에 도련님께선 생각하셨습니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원공께 도움이 될 저와 봉기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거셨습니다.”
“…..”
“서주의 영웅이라는 진유하와 싸워 일부러 패배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선. 그리고 그와 협상을 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복양에 있는 중요 인물을 잡아두고 있는 비밀 감옥으로 침투하셨습니다. 그리고 단 한번의 호령만으로 감옥을 지키는 간수를 기절시키시고 저와 봉기를 구해내신 겁니다.”
“그게 말이 되나?”
“말이 안되지만 할 수 있을 겁니다.”
심배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원담은 당황했지만 그의 얼굴은 진지하기 그지 없었다.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원담은 봉기를 힐끔 보았지만 봉기 역시 심각해져 있었다.
둘의 표정에 원담은 어리둥절해했고 봉기는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이 상황을 이용할 생각인가?”
“그래.”
“하지만… 결국 이건.”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네. 전풍… 그자가 이따위 미친 짓까지 한다는 것은 원공께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야. 그자는 점점 미쳐가고 있어. 이건 간신 수준이 아니다. 잔적지인이다. 군주를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심배는 자신이 도망쳐 온 비밀감옥 쪽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괴물이 되는 수 밖에.”
‘그리고 그자는 이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겠지.’
자신을 잡은 젊은 사내.
자질의 차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준 그 미친 남자.
미쳤기에, 괴물이기에 인간인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복양성주 곽가를 떠올리며 심배는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네놈의 뜻대로 움직여주마. 하지만… 전풍을 잡고 난 이후는 너를 잡아주마.’
——-
복양에서 업으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상인들을 매수해서 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백마항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던 원담 일행은 흔들리는 배의 구석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어쩌겠다는거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단 도련님의 세력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
“어째서?”
심배는 남쪽을 보았다.
멀어지는 복양을 말없이 쏘아보던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도움을 줄테니까.”
“누가?”
이해하지 못한 듯한 원담은 이상해하며 물었다.
지금 자신을 도와 줄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원담과 다르게 이미 심배의 생각을 눈치챈 봉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봉기도, 심배도 자신의 의문에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자신과 말 그대로 한배에 탄 심배인 만큼 자신에게 해가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원담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좋아. 당신의 생각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 다음은?”
“묻지 않으십니까?”
“굳이 물을 필요가 있나? 심배. 당신은 책사잖아. 책사가 책략을 쓰겠다는 것을 굳이 막을 이유는 없지. 그게 나와 아버님께 해가 되는 일만 아니라면 말야.”
원담의 말에 심배는 처음으로 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에 원담이 마주 웃자 봉기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었다.
원담에게 해가 되는 일?
원소에게 해가 되는 일?
지금 심배가 하려는 일은 잘못한다면 엄청난 해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기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이 방법 외에는 전풍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복양성주… 정말 무서운 자로군.’
이미 이 상황을 예측하고 판을 깔아 둔 것이라면 복양성주.
절대로 얕볼 수 없는 자다.
외통수를 만들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만약 자신과 심배만 있었다면 절대로 쓸 수 없는 수 이지만 원담이라는 강력한 명분이 손에 들어온 이상 쓸 수 있는 수가 한가지 생겨버리고 말았다
“곽도와 만나야 합니다. 곽도 역시 전풍을 싫어하는 자. 도련님께서 합류하신다면 반드시 도련님을 도울 것입니다.”
“그렇군. 곽 선생이라면 믿을 만 하지.”
고개를 끄덕인 원담은 심배를 믿음직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확실히 책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전풍이 붙여 준 신비따위보다 훨씬 낫다.
오랜 시간동안 원소를 모신 그인만큼 더욱 신뢰하기도 좋았다.
“그리고 다음은… 저희와 함께 할 이를 찾아야 합니다. 다만…저희가 없는 동안 이미 전풍에게 포섭당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으음. 기주목의 부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을 포섭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왕 포섭할 것이라면 오랫동안 원소를 따르던 이들을 포섭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들과 오랜 기간 연을 쌓았으니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고 나을텐데.
원담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심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차분히 가르쳐주었다.
“전풍은 시간을 들여 사람을 현혹하는 자입니다. 단기간에 무언가를 주기보다는 차근차근, 벽돌을 쌓듯 상대를 압박하여 그를 끌어들이는 자. 그런 자라면 공손찬, 유우의 부하들 중에 저희에게 합류한 이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런가…”
“예. 순우경 장군과 고람 등은 오랜 기간 기주목을 따르던 이들. 만약 전풍이 그들을 포섭한 것이라면 그들을 빼와 도련님의 세력이 가담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들을 공략한다면 세력을 키울 수 있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새롭게 가담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습니다. 도련님께선 유주의 공략에 손을 대지 않으셨겠지요?”
“아니라고 하긴 뭐하지만…”
마땅한 공적을 세우지는 못했다.
원담이 떨떠름히 대꾸하자 심배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웃었다.
“그럼 되었습니다. 봉기에게 듣기로 공손찬을 제거하며 그의 부하들을 대부분 전풍이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손찬을 치는데 가장 큰 힘을 쏟은 것은 전풍과 원상입니다. 필경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아직 남아 있을 터, 그 부분을 건드린다면 적어도 두명 이상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또한 문 장군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가급적 안 장군과 문 장군을 모두 포섭하는 것이 좋겠지만… 들어보니 순우경의 보좌로 안 장군이 왔지만 그는 결국 도련님을 배신하고 말았다지요? 그렇다면 그는 이미 전풍의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도는 해보겠지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래 한번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쉬운 법이니까. 한번이라도 전풍의 꾀임에 넘어갔다면 그는 결국 전풍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문추 장군… 으음. 그 분은 믿을 만 하지. 하지만 그 분을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해야 합니다. 도련님께선 문 장군께 무예를 배웠습니다. 그 연을 빌미로 문 장군께 도움을 요청해주십시요.”
“후우… 알겠어.”
원소의 상장이며 뛰어난 무력을 가진 그를 떠올렸다.
늘상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쳐 준 그라면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원담이 고개를 끄덕이자 심배는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무엇인가?”
“진유하와 싸워야 합니다.”
“으, 으음.”
이것만큼은 예상치 못했다..
진유하의 이름이 나오자 원담은 머뭇거렸다.
그와 다시 싸운다?
검은 귀신들을 이끄는 그놈과 다시?
순간적으로 오금이 저렸던 원담은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요.”
“무… 무엇을?”
“진유하를 이길 수 있으십니까?”
원담의 동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진유하를 이긴다?
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는가?
“그깟 놈! 내가 호령 한번만 하면…”
마음 속에 감도는 어둠을 지우기 위해 원담은 실실 웃으며 호기롭게 외치려 했지만 심배의 눈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말을 잇지 못한 원담은 입맛을 다실 뿐 말을 잇지 못했다.
“……”
“하아…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것인가?”
“솔직한 감상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도련님께서 진유하를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지금 와서 다시 그와 싸우라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원담은 고민했다.
아니, 사실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굳이 싸워야하는가?
그와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은 있을 것이다.
어지간하면 진유하와 맞부딪히는 것보다는 다른 이와 싸우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고 있는 원담이 말을 꺼내지 못하자 심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과 봉기의 이야기, 그리고 항구에서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진유하는 강적입니다. 아니, 어쩌면 조조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담은 조금 주눅든 어조로 물었다.
다시 한번 그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자 심배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와 싸워야 합니다.”
“…..”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라고 한다면 하겠지만.”
입술을 삐쭉 내밀며 원담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를 향해 심배는 빙긋 웃었다.
오만함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두려움을 제압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다.
그 두려움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하는 오만함은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반드시 도련님께선 승리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마, 맞아! 그딴 놈! 병사들과 장수들만 제대로 갖춘다면 이길 수 있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저것은 허세가 아니게 될테니까.
다음에 진유하와 싸운다면 원담은 반드시 이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겠지…’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 장원에 갇혀 있던 심배였다.
그 역시 탈출을 몇번이나 꿈꿨고 실행도 해보았다.
간수를 포섭하기도 해보았고 간수 몰래 열쇠를 훔쳐 장원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탈출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었다.
일단 장원의 복도에는 항상 삼일 일조의 병사들이 있을 뿐더러 장원 밖에도 암살자, 그리고 개들이 항상 풀려 있었다.
그 뿐인가?
장원 근처에는 항시 백인대 이상의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어 포위망을 만들고 있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탈출을 막은 복양성주 곽가의 행동에 오히려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원담과 탈출할 때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복도에 있는 것은 병사 한명 뿐.
장원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장원 근처에도 아무도 없었다.
마치 탈출을 ‘하라고’ 자리를 깔아 준 것 같았다.
심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의 상황, 그리고 적들이 원하는 것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현재 원소의 부하인 전풍은 원상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서 원담을 버렸다.
후계자 자리가 공고해짐으로서 원소의 부하들은 쓸데없는 정치질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한 사람의 군주.
확정되고 많은 이가 따르는 후계자.
그것이 있다면 군이 막장이 아닌 이상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곽가는 자신들을 풀어 준 것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탈출을 막던 그가 이제와서 자신을 놓아줄 이유는 그것 밖에 되지 않을테니까.
거기에 추가적으로 심배는 원담이 보여 준 문서를 보고 이 일에 서주의 영웅이라 불리는 진유하 역시 끼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원담이 가지고 있던 낡은 편지.
그리고 그곳에 적혀 있는 전풍의 글씨.
전풍 자신이 직접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직인까지.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지만 전풍의 글씨를 오랫동안 보며 그에게 분노하고, 그를 어떻게든 거꾸러트릴 생각을 하고 있던 심배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름과 직인, 그리고 한줄의 글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가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을 준 것이 다름아닌 진유하라는 것은 진유하 역시 이 일에 가담하여 전풍을 쓰러트리려 한다는 것이다.
적의 적이 꼭 친구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고, 자신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는 것은… 원공의 사람들이 결집하는 것이겠지.’
그것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해주겠다.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전풍을 실각시킬 수 있다면.
주군의 자식마저도 자신의 책략을 위해서 써먹어버릴 괴물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독이라도 마셔주겠다.
심배는 진유하를 상대해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원담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
“반드시 도련님이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그래? 하긴 나라면 이길 수 있겠지.”
“예.”
‘진유하… 그리고 곽가. 너희 둘은 반드시 한번은 패배를 해줄테니까.’
비록 그 패배가 조조에게나 진유하에게나 큰 타격을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패배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다.
곽가는 이렇다 할 소문이 없었지만 진유하에 대한 소문은 대단했다.
천신장, 서주의 영웅, 그리고 무패의 장군.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절대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자.
그런 자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면 원담의 낮은 평판도 단번에 반전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원상이 만들어낸 공적은 대부분이 가짜다.
전풍이 아무리 날고 기어 그가 세운 전공을 모두 원상에게 주었다고 해도 원상은 아직 코흘리개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 모든 공적이 실제 원상이 세운 업적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담이 세울 업적은 다르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싸워 업적을 얻게 될 것이다.
그정도라면 충분히 원상의 업적을 뒤엎고 남을 것이다.
심배는 원담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심배를 보며 봉기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꺼내버렸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