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18
00318 너의 편과 나의 편 =========================
“후우우…”
결국은 움직이는 것인가.
유협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민을 시작했을 때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시오. 장군.”
황보숭이 들어오자 유협은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송구함에 몸둘바를 몰라하면서도 황보숭이 자리에 앉자 유협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장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를 어째야 하오?”
“…..”
주준이 자신이 아닌 황실만을 지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주준과 진유하가 만났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만약 조조가 이각을 잡게 된다면…”
“이각이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닙니다만…”
유협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었지만 황보숭은 이 말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제를 데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그 지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마 들어오던 세금마저도 없어졌으니 이각이 가지고 있는 자금 수입은 장안 일대의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 밖에 없었다.
“장안 일대는 점점 피폐해지고 있소. 그것을 생각한다면 이각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수입이 없으면 군대는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보숭은 유협의 걱정이 가득한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뭔가 방법이 없겠소?”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허어…”
팔자에 없는 탐욕을 부려가며 조조의 눈을 피해 자신을 지킬 충신을 찾으려 했다.
그 대상으로 진유하를 선택했거늘 그 역시도 간신에 불과할 줄이야.
유협은 빠득 이를 갈았다.
“주준과 정현이 그렇게 나올 줄이야…”
“…..”
노식, 주준, 정현.
이들이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 있는 황보숭은 그들에게 증오를 보이는 유협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사람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동물이다.
자신이 받지 못했는데 어찌 주겠는가.
황제와 관에 배신을 당해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황제를 돕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황실이라도 지키려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 것이 좋겠소? 원소에게 손을 뻗는 것이 낫겠소?”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유협이 중얼거렸지만 황보숭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소에게 손을 뻗는 것은 오히려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원소는 유협을 부정한다.
동탁에 의해 옹립된 가짜 황제라며 공공연히 떠들어대고 있는 이에게 손을 뻗어봤자 비웃음만 살 뿐이고 행여나 그가 도와 조조의 손에서 자신을 구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조조와 같은, 아니. 어쩌면 조조 이상으로 자신을 압박할 뿐이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유협은 절망감 가득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방법을 주시오!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만 다물지 말고!”
“……”
“유비는 무엇을 하고 있소?”
“그는 지금…”
병이 나서 칩거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역시 조조의 감시 아래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병문안을 핑계로 만났던 것 마저도 이제는 막혀버렸다.
뭔가 지혜를 얻어야 하는데 얻을 수 있는 이가 없다.
이 넓은 천하에 자신을 도울 이가 없다는 것에 비참함을 느끼며 유협은 자조했다.
“문화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구려.”
“허나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는 위험한 자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각의 손에서 짐을 구해준 자요. 그자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거요.”
아까 전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신랄한 발언을 꺼낸 진유하.
비슷한 나이였지만 조조에게 묶여 있는 자신과 다르게 황제마저도 압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자.
그가 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유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누군가가 부럽고, 누군가를 증오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조조가 이각을 잡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이각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조앙 하나만으로 이각을 쉽게 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싸움만은 잘하는 이각이었다.
조조가 천하에 나왔을 때 부터 그를 지원하며 함께 했던 조앙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각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좀 더 나올 것이다.
“지금 조앙이 문제가 아니잖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마등이나 유장의 야심은 대단합니다.”
조앙이 아닌 마등이나 유장이 장안을 차지한다면 조조로서도 쉽게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이각보다 더욱 위험한 적을 옆에 두는 것이 되니까.
“…그럼 어찌해야좋겠소?”
“일전 조조가 말한 것… 마등에게 관직을 주는 것을 생각해보시지요. 마등에게 양주목의 직위를 주고 그것을 인정하게 한 후, 그가 장안을 차지하면…”
“그곳으로 가자는 것이오?”
“나쁘지 않지요. 아니면 유장도 괜찮습니다.”
유장은 어쨌든 황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비록 그 촌수는 멀지만 조조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쉽게 갈 수 있겠소?”
“그건…”
차라리 이각에게서 탈주할 때 유장에게 가면 좋았을 것을.
황보숭은 유협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냈다.
그때 유협이 자신의 의견을 채택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가후 그 자의 감언이설 때문에…’
조조가 아닌 유장에게 도망쳤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후는 촉으로 도망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유장의 이름을 꺼낸 유협을 말렸었다.
파촉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산세가 많은데다가 길이 좁아서 자칫 잘못하면 이각과 곽사에게 잡힐 가능성이 많았다.
거기에 이각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는 완에 있던 장제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 파촉지방으로 간다면 그 길을 이용할 수 없어 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것이 유장에게 가지 못하게 한 가후의 이유였다.
결국 그것에 설득되어버렸던 유협은 쓴 입맛을 다셨다.
“이각이 그리 움직일 줄 알았더라면…”
“아쉬운 일입니다.”
유협이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며 황보숭은 황급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마등을 이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유장에게도 관직을 내리는 수 밖에는…”
“후우… 그럼 이각 토벌령은 어찌 해야 한단 말이오?”
“진유하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만약 유협이 이각토벌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진유하는 오히려 기뻐하며 병사들을 움직일 것이다.
토벌령 없이 사공의 명령을 따른다는 명분 하에 이각을 토벌하고 이렇게 떠들어대겠지.
‘황제조차 구원하지 않으려 한 장안의 백성들을 사공이 사비를 털어 구원했다.’
서주 일대에서는 이미 황실이나 황제보다 오히려 사공인 조조와 진동장군인 진유하를 더욱 높게 쳐주고 있었다.
조조가 오랜 기간 다스리고 있던 연주 일대는 물론이고 말이다.
사예주와 예주 일대는 아직 조조가 장악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장안을 구원하게 된다면 백파적을 정예병으로 끌어들여 백파적을 없애고 낙양을 복구하며 장안까지 구원한 조조를 사예주의 백성들과 명사들은 인정하고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조조가 가지는 주는 사예주, 연주, 서주, 거기에 청주까지 되어버린다.
하북 일대를 거의 손에 넣고 있는 원소와 비교해서 전혀 밀리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조조의 독주를 막지 못한다면…
유협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떤 것이 낫겠소?”
“원소는 바보가 아닙니다. 교활하며 또 필요에 따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자. 만약 폐하께서 이각토벌령을 내리시고 조조가 이각을 공략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그는 조조의 움직임을 막으려 하겠지요. 그리고 원소가 조조와 마찰이 생기면 각지의 군웅들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 틈을 이용한다면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토벌령을 내리자는 거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허어… 결국 그 수 밖에 없다니.”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며 유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라는 것인가.
자조적인 쓴웃음을 지으며 유협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 몸이 부덕한 탓이오. 어째서 이런 일을…”
“…분명 기회는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정말 올지 의문이구려…”
조조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타락한 척 까지 했지만 그자는 절대 경계의 시선을 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차근차근 황실을 따르는 신하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기회가 올 것이란 말인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문이 열리며 동승이 들어왔다.
“어서 오시오.”
“폐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무슨?”
자신의 장인이기도 한 동승이었다.
지금 허도에서 신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이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니.
그를 보며 유협은 불길함에 몸을 떨었다.
“폐하를 도울 지혜를 가진 이가 나타났습니다. 한번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식견이 대단한데다가 지략도 좋아…”
“그런 사람이?”
“만나보시겠습니까?”
“들어오라고 해보시오.”
밑져야 본전이다.
유협은 시무룩히 말했고 그의 말을 받은 동승은 바깥으로 나갔다.
동승을 호위하기 위한 병사로 위장한 그는 큰 키에 맑은 눈을 가진 호남이었다.
그가 들어와 엎드리자 유협은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고개를 들어라.”
“예. 폐하.”
“이름이 뭔가?”
“신. 유 형주목을 따르는 괴월이라는 이입니다. 형주목의 뜻을 받들어 폐하를 사악한 조조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찾아뵈었습니다.”
구원이라.
웃기는 소리다.
아무리 형주 일대를 다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한개 주를 가진 형주목이 조조를 상대할 수 있을까?
유협은 별반 기대를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그리고 형주목이라니. 내가 알기로 유표는 아직 정식으로 형주목이 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협의 말대로이기는 했다.
공식적인 형주목의 자리는 공석이어야 했다.
각지의 군웅들이 스스로 나서 자신이 관직을 정하고 그것에 대한 허가를 올릴 뿐이지 그것이 진짜는 아니었다.
괴월의 말을 비웃으며 유협이 시큰둥히 말하자 괴월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께서 조조의 손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제 말을 들어주십시요.”
황제와의 만남을 끝내고 동승과 함께 밖으로 나온 괴월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병사의 복장이 아닌 허름한 문관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를 마주하던 동승은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자네 고향이 어딘가?”
“익주 쪽입니다.”
“익주라… 좋은 곳이지. 그래서 말투에 익주 쪽의 억양이 섞여 있군.’
“하하… 고쳐보려고 했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더군요.”
“황제 폐하를 모실 때가 된다면 그것을 조정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일세.”
“명을 따르겠습니다. 위장군님. 그럼 약속의 그 날까지 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괴월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단순하게 정찰을 위해 도읍에 잠입했을 뿐인데 상당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에 기뻐하며 그는 허도의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에 도착하고 신분증을 보인 그는 그것을 본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오?”
“볼일은 다 본 것이오? 기록에 따르면 꽤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살려고 온 것이 아니란 말이오?”
“하하하… 이런 험난한 세상에 천천히 유람이나 하며 다니는 것이오. 사공께서 어진 정치를 펼치시어 허도가 아주 좋은 곳이기는 하나 이 사람이 한곳에만 있을 수는 없는 사람이라…”
“소지품을 확인해봐도 되겠소?”
‘역시 허도는 다르군. 얕볼 수 없겠어.’
다른 곳이라면 그저 간단히 통과시켜주겠지만 병사의 눈은 예리하기 그지 없었다.
병사와 함께 성문 옆의 작은 건물로 들어간 그는 속옷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벗어서 병사에게 주었다.
기분 나쁠 만도 하지만 괜한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는 소지품을 샅샅히 뒤지고 몸까지 확인한 후에야 겨우 결백을 입증할 수 있었다.
“수고하시오.”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기에 괴월은 무난히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밖으로 나온 그는 터덜터덜 걸었다.
말도 타지 않은 채 남쪽으로 걷던 그는 일단의 거렁뱅이 무리가 다가오자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군.”
“자네가 더 많았지. 그래서… 어떻던가?”
거렁뱅이들을 이끄는 아주 못생긴 남자가 걸어나왔다.
일그러진 얼굴과 사시인 그를 보며 괴월은 싸늘히 웃었다.
“이걸로 황제가 유표에게 관심을 가지게 했으니… 조조는 남쪽에도 신경을 써야 하게 될거다. 그리 된다면 서쪽에 대한 방비는 자연스레 줄어 들 수 밖에 없겠지. 조앙이 장안을 치기 위해 움직인 듯 하나… 그 하나로는 이각을 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 후후후. 장안은 우리가 손에 넣게 되겠지. 맹달. 장로에게 물건은 받아왔나?””
“재배에 성공했다고 하더군. 장안에 보내봤는데 꽤나 쓸모가 있는 듯 해. 자. 이제 할 일은?”
거렁뱅이 중 다른 한 사람이 나섰다.
앞에 나섰던 이와는 정 반대인 사람이다.
거렁뱅이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될 정도로 잘생긴 그가 주머니 하나를 던지자 괴월은 그 안을 확인했다.
“상태는?”
“최상급.”
“그래…? 그럼 가자고.”
“어딜?”
못생긴 남자가 묻자 괴월은 씩 웃었다.
“완으로 간다. 장수의 군사인 가후가 이 약에 중독되었다고 하더군. 그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유표를 돕게 해서 조조가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지. 자… 가자고. 장송, 맹달.”
익주에 들어갔을 때부터.
유장의 부하가 되기 전부터 친했던 친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괴월, 아니 유장의 군사인 법정은 한달동안 꾸준히 쓴 위조 신분패를 박살내 수풀로 던져버리고 완쪽을 바라보며 차분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