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40
00340 안전한 일부, 위험한 전부 =========================
고당항을 점령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감녕이 부하들을 이끌고 부상자를 치료한 후 시체들과 항구의 정리를 끝내는 동안 나는 여범과 서성, 조청을 데리고 겁먹은 민간인들을 안심시켜나갔다.
이 항구를 기점으로 청주와 연주에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한번 점령하는데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 짓을 또 할 수는 없지.
각자 일을 끝내고 모두 모인 것은 하루가 꼬박 지나서였다.
피곤해보이는 그들을 데리고 고당항 항구 관리자의 집무실로 들어간 나는 서성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피곤하겠지만 조금 더 무리를 해줘야겠는데.”
“평원에 대한 정찰입니까?”
“응. 너도 봤겠지만 여기는 안쪽에서의 공격을 막기는 꽤나 취약한 곳이니까.”
대부분의 항구가 그렇듯 육지에서 들어오는 공격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방비를 하려면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평원에서 공격해들어오면 이도저도 못하고 오히려 피해만 키울 수 있었다.
그것을 걱정하는 나를 향해 서성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매번 미안하군.”
이번에 고당항 공략할 때도 꽤나 고생을 했는데.
“그래도 공적으로 인정해줄테니까.”
“하하하…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제가 알아서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응. 마음대로 해.”
서성이 나가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조청과 여영기는 피곤했는지 서로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쟤들 좀 깨워라.”
“야야. 일어나.”
“으으… 졸려.”
“죄, 죄송합니다.”
“많이 졸린 것 같지만 조금 참아줘. 어느정도 정리가 끝나면 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만들어 볼 테니까. 여범. 인양과 회수는 끝났지?”
“예. 하지만 배들을 다시 쓰는 것은 무리일 듯 싶습니다. 고치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그럼 철만 빼서 최대한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보자고. 그걸 제군으로 보내면 될테니까.”
“알겠습니다.”
“문직은 바로 제군으로 가줘야겠는데. 괜찮겠어?”
“명령만 내리십시요.”
“바로 따르겠습니다.”
그 역시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꽤나 버티고 있었다.
듣자하니 고당항을 점령할 때 문직과 견초는 서로를 견제하듯 움직이며 적들을 쓸어버렸다고 한다.
“그럼 부탁할게. 이걸 가져가서 제군 군수 서복에게 보여줘. 그럼 그가 지원군을 내어줄거야.”
“제군도 지금 전투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래도 받을 수 있는 것은 받아둬야겠지.”
제남군의 병력을 데려오든 아니면 제군의 병력을 끌고오든.
평원의 공격에서 고당항을 지킬 병력이 필요했다.
“견초. 너는 동구항으로 가라. 출정하기 전에 얘기해 놨으니까. 그곳에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해줘야겠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조청, 여영기. 너희는 근처 마을을 돌며 백성들은 안심시키도록. 각자 맡은 업무만 끝내면 쉬자고.”
*****
간신히 평원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원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에 있는 서류와 죽간을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
항구를 빼앗겨버리다니.
단순하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고당항이 적의 손에 넘어가버린다면 적들이 도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빨리 고당항을 되찾아야 했다.
“하지만…”
검은 갑옷을 입은 악마들.
그들은 전투를 즐기는 자들이었다.
상처를 입어도 오히려 즐거워하며 살육을 자행하는 그들의 모습에 원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으으…”
그리고 그들을 이끌던 이를 떠올렸다
한자루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양떼 속의 늑대처럼 미친듯이 날뛰던 그 놈.
그 방천화극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죽어나가던 병사들을 생각하니 순간 오금이 저렸다.
“…후우.”
마음을 다스리자.
이대로는 될 것도 안된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심영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에게 물었다.
“병사들의 상황은?”
“언제든지 출격 가능합니다!”
“…그렇군.”
차라리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는게 나았을 성 싶었다.
원희는 부르르 몸을 떤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쉬었다가 바로 가도록 하자.”
“예? 하지만 쉬었다간 적들이 태세를 정비할텐데요?”
“고당항은 내부에서의 공격에 취약하다. 저들이 정비를 해봤자 의미는 없어.”
“그렇지만…”
“달려오느라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 소영을 불러라!”
“예에…”
난감해하면서도 심영은 원희의 호령을 받아들였다.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영이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며 들어오자 원희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정말 많이 걱정했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시지요?”
“그래. 널 두고 어찌 다치겠느냐.”
“아아아… 군수님…”
원희의 품에 안긴 채 소영은 서글프게 울었다.
그녀의 모습에 원희는 마음이 더욱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견희였다면 이랬을까?
만약 그녀였다면 무감정한 얼굴로 자신을 반기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아니, 반기는 것 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녀를 생각하면 할 수록 오히려 기분만 나빠진 원희는 소영을 안아 침상에 눕혔다.
“군수님…?”
“하고 싶구나. 지금 당장 너를 느끼고 싶어.”
“예에…”
살며시 얼굴을 붉히며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원희는 입맛을 다시고 그녀의 옷자락을 벌렸다.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비비니 적들에 의해 느꼈던 공포가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런 그를 꽉 끌어안아주며 소영은 달콤히 속삭였다.
“제 품에서 좀 더 편안해지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영은 싸늘히 웃었다.
******
“얘네 왜 안오지?”
이거 뭔가 이상한데?
고당항을 점령하며 쌓인 피로를 풀고 경상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도 평원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문을 꽁꽁 싸매고 지킬 뿐 이었다.
지금은 지킬 때가 아닌데 뭐하는거야?
우리야 좋기는 하다만 이건 뭔가 굉장히 찝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다.”
“오. 왔어?”
오라는 원희는 안오고 제군에 보내 현재 청주쪽의 상황이 어떤지 파악을 하라고 했던 여영기와 조청이 돌아왔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서찰 하나를 건네주었다.
“뭐야?”
“제군 군수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서복이?”
서둘러 서찰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순우경 격파, 저웅 협곡에서 살아나간 이는 오천도 되지 않음] [안량 중상, 고람 경상]“호오…”
서복 다운 서찰이다.
다른 이야기는 없이 깔끔하게 필요한 이야기만 적어 놓은 것을 보며 내가 피식 웃자 여영기는 감탄했다.
“제군에 갔을 때 들었는데 진짜 서 군수님이 대단한 사람이긴 하더라구요.”
“그래?”
“네. 강남에서 유요를 상대로 할 때도 대단했지만… 그 순우경을 물리칠 줄이야. 지금 난리가 났다구요. 역전의 명장인 순우경이 약관도 되지 못한 어린 군수에게 밀렸다는 이야기는 청주 전역에 퍼지고 있답니다.”
“그렇군…”
“장강의 아랫물이 윗물에 밀리고 있는 것이라며 다들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조청 역시도 여영기와 같은 소문을 들었는지 빙긋 웃었다.
서복이 쉽게 당할 놈은 아니긴 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영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저는 흥패 오래비와 함께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남은 것은 조청 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 서 군수님의 승리에는 장군님의 역할이 아주 컸습니다.”
“그러겠지.”
지도를 살피며 내가 무덤덤히 대꾸하자 그녀는 주먹을 꼭 쥐었다.
“지금 허도에서 장군님을 모함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러겠지.”
단순히 황제의 수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마 유표, 혹은 유장이나 다른 세력의 공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공적은 작게, 패배는 크게.
상대를 압박하여 신뢰를 잃게 만드려는 수였다.
“장군님에게 일군을 맡길 수 없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무시해.”
실제 명령서가 없다면 무시해도 좋을 만한 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문 따위는 금방 가라앉을 것이다.
내가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조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날 살며시 끌어안았다.
“장군님. 싫지 않으십니까?”
“엥? 뭐가?”
얘 왜 이래?
난 그녀에게 안긴 채 고개를 들었다.
조청은 마치 땡감이라도 먹은 것처럼 무척이나 떫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시고 공적을 올리신 장군님이 이런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저는 참을 수 없습니다.”
“참어.”
“…아니 그게.”
“지금은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때야. 어른스럽게 넘어가줘야지.”
내가 승승장구할 수록 원소의 세력은 움츠려 들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내가 기주를 상대하기 위한 일군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세라는 것은 이어지는 것.
고당항을 차지한 공적을 기반으로 평원을 공략하고, 기주를 향해 움직이게 되면 불리해지는 것은 유표와 유장, 그리고 마등이나 다른 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는 원소를 공략하는 내가 무능하고 쓸모 없는 놈이니 빨리 교체를 해야 한다는 소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아버님께서 그딴 뜬소문에 휘둘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우리는 명령서 대로만 움직이면 되는거다.”
“하지만…”
“내가 욕먹는게 싫어?”
“…네.”
조청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 좀 보소.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날 거의 남편 취급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남편취급이라기보다는…
“날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남 시선 신경쓰면 할 수 있는 것도 못하는 법이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물론 그렇지. 하지만 허도에는 순 군사님도 있고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거야. 그런 소문은 금방 잦아들 것이니까 신경쓰지 말고 일이나 하자고. 제군쪽은 정리가 되었다고 치고… 북해쪽에 대한 소식은 들은 것 없어?”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당장 원희가 언제 움직일지 확인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하기도 바쁜데 허도에서 도는 소문따위 신경써봤자 내 손해다.
내가 심드렁하니 말하자 조청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 앉았다.
“방 도독님과 전풍이 힘싸움을 하고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전황은 아군에게 상당히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래?”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북해군을 차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수를 써서 전풍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하더군요.”
북해에 있는 백성들의 수를 줄여나가 북해군을 공지로 만들 생각인가.
거기에 추가적으로 동래군까지 압박하려는 모양이군.
“그렇구만… 그럼 제군에서 병력을 받아서 바로 평원을 치면 될 것 같은데.”
북해를 공략하고 원상을 동래군까지 밀어낸다면 한동안 뒤쪽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가 있다.
당장 원희가 차지하고 있는 평원을 친다든가.
아니면 병력을 움직여 백마항을 다시 공략한다든가.
내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조청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리고 서 군수님의 말씀인데… 평원을 공략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평원을? 왜?”
“몇가지 확인할 것이 있다고… 북해의 일이 끝나면 서 군수님과 방 도독님이 이곳으로 오신다고 하니 그때까지 잘 지키고만 있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얘들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주 신났구만?
“업에서 평원을 지원하지 못할 뿐이지 북방에서는 얼마든지 평원을 지원할 수 있는데 얘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딴 소리를 하는 건지. 참나.”
“그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노력은 해봐야겠군. 다른 지원은 없었어?”
“철갑기마대 칠백을 보내셨습니다.”
“…어, 엄청난 지원을 해줬구만.”
철갑기마대를 보내다니.
공성용 장비나 지원이 아닌 평지에서의 결전용 부대를 보낸 것을 보니 진짜로 공략하지 말고 항구만 지켜달라는 것으로 보였다.
“한달 안에 북해 쪽 일을 정리할 것이라고 하셨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평원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평원에서 쉽게 공격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던데…”
조청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대답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방 도독님이 작업 해 놓은 것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