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21
00421 처음이 아닌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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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사망자나 부상자가 생기는 일은 일반적인 일이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그것을 각오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유하는 감성을 팔아서 병사들의 충성심을 끌어모으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현물로 병사들을 끌어모았다.
동기부여를 위해서.
개인적인 연을 맺은 이들이라면 모를까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 한번 나누지 않았던 이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렇기에 항상 무슨 일을 하더라도 철저하게 예산을 할당하여 보관해두는 자금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군역이라고 하지만 단순한 군역이 아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의욕과 충성심을 고취시켜나간다.
당연히 병사들의 수준은 높아지게 되고 충성심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럼으로써 강병이 만들어지게 된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무적은 아니었다.
좋은 장비를 지급받는다 하더라도 창칼에 찔리게 된다면 죽고 많은 훈련을 쌓는다 하더라도 보호하지 않는 부위에 화살을 맞으면 그대로 끝이 나버린다.
최대한 많은 수를 살리는 전투를 치루는 것이 진유하 휘하 부대의 기본 전략이었지만 이번 전투는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전투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말았다.
물론 전사자에 대한 보상은 모두 지급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목숨이 살아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감녕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수레를 끌었다.
그의 수레에 실려 있는 것은 술이었다.
지금이야 술이 잔뜩 실려 있는 동이들이 들려 있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수레에는 흑귀대원들의 시체가 있었다.
그들의 시체를 일단 가매장 해두었다.
흑귀대 대부분의 전직은 도적, 혹은 건달들 같은 하류층 인생이었다.
가족과 고향이 없는 부평초같은 인생들.
잃을 것이 없기에 오히려 강해질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오로지 동료만이 가족이고 동료만이 자신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우울하군.”
그렇기에 감녕은 울적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른 병사들과 다르게 자신과 함께 많이 움직이는 흑귀대였다.
그런 흑귀대원들의 죽음이 있을 때마다 우울해지던 감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 바짝 차리자.”
흑귀대의 대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이 슬퍼해서는 안된다.
흑귀대는 흑귀대답게 죽은 이를 웃으며 보내줘야 한다.
“얘들아! 술 받아라!”
“오오!”
동료가 죽으면 언제나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흑귀대의 일상이었다.
이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기에.
만약 흑귀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길바닥에서 허망하게 죽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들은 감녕의 외침에 웃으며 다가와 술을 챙겼다.
술과 고기를 가져간 그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추모를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을 보던 감녕은 빈 수레를 끌고 병영 안쪽의 건물로 향했다.
“어때?”
“좀 많이 죽었습니다.”
“어쩔 수 없겠지…”
서성의 보고에 감녕은 한숨을 내쉬었다.
흑귀대 뿐만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의 죽음도 많았다.
그들에 대한 보상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에 대한 예산을 신청하면 진유하는 다른 곳의 예산을 빼서라도 지급을 해줬으니까.
“쯧… 이럴 때가 제일 싫다니까.”
남편.
아들.
그리고 애인.
부디 소중한 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이들에게 안타까운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 우울했다.
그것이 지휘관인 자신들의 임무다.
감녕은 얼굴을 쓸어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고. 일단 업에서 모집한 이들의 가족들을 만나러 가야겠어.”
울고불며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고 씁쓸한 웃음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죽었다는 이야기보다 많은 보상금에 기뻐했고, 또 어떤 이는 보상금을 집어 던지며 죽은 이를 살려달라 애원했다.
부상자들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이들은 괜찮았지만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때는 감녕이나 서성, 방통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한 채 돌아 온 감녕은 병영에 모여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늘 웃고 다니는 방통마저도 이때만큼은 우울한 표정이었다.
“도련님은?”
“전풍을 심문하고 있어. 원희도 그렇고.”
“원희 그새끼…”
갈 곳 없는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했다.
그런 감녕에게 있어서 원희는 좋은 상대였다.
그가 비밀통로로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자신의 부하들이 죽지 않았을테니까.
관청의 대전에서 본 부하들의 시체는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온 몸에 상처가 나 있던 그들.
그들을 떠올릴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원희에 대한 심문은 내가 할거다.”
“하지만!”
“너에게 맡기면 금방 죽일 것 같아서.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정보는 뽑아내야겠지.”
“….”
“늘 말했지만.”
“알고 있수. 내 동료가 죽는다는 것은 적의 동료가 죽는 것과 같다고… 그래도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구만.”
방통과 진유하가 항상 말하는 것이었다.
아군이 죽는만큼 적군도 죽는다.
전쟁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괜찮다고 그들은 늘 말했었다.
“오늘은 기분도 우울할텐데 가서 좀 쉬어. 나머지는 내가 할테니까.”
방통의 말에 감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화신주 한동이를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 같은 날은 술이라도 진탕 마시면서 취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넌 좀 쉬지 왜 여기 와 있냐?”
“아, 아하하. 그게 말야.”
방에 돌아와보니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여영기가 있었다.
안량과의 전투로 부상을 입은 것 같은데.
덧나는게 아닐까 걱정된다.
감녕은 화신주를 탁자 위에 올려 놓은 후 말했다.
“괜찮으면 한잔?”
“아, 아니 그게…”
“뭔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
“저기. 오래비.”
“왜?”
화신주의 입구를 막고 있는 나무 뚜껑을 벗겨낸 그가 대접으로 화신주를 퍼 마시려고 할 때 여영기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버지가… 오래비를 보고 싶다고 하는데.”
“…왜?”
“그게. 오래비. 그… 아까 낮에.”
낮에?
뭔가 했었나?
여영기가 위기에 쳐했을 때 너무 급하게 달려오고 행동하느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감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영기는 볼을 긁적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내 여자라고…”
“…..”
“아버지가 들었나봐.”
“…그, 그래?”
“응.”
침묵이 이어진다.
여영기와는 조금씩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첫 입맞춤까지도 했었다.
그런만큼 자신의 미래에 그녀가 함께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될 줄이야.
감녕이 입을 다물자 여영기는 살짝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쓰게 웃었다.
“아하하… 너무 갑작스럽지? 미안. 아버지는 내가 설득할게. 그냥 쉬어. 피곤할텐…”
“가자.”
“응?”
“가자고. 어차피 한번은 부딪혀야 했으니까. 잘됐네. 술도 있고.”
감녕은 심호흡을 한 후 화신주 단지를 들고 말했고 여영기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졌다.
“술상 준비할게!!”
공기가 무겁다.
감녕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아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여포.
그리고 그 바로 밑에 앉아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료.
극한의 무를 추구하는 감녕이다.
무기를 들고 서로의 힘을 겨루는 순간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순간일 것이다.
과거이기는 하지만 천하최강이라 불리는 여포.
그의 적의에 가득 찬 시선에 감녕은 무척이나 오래간만에 죽을 맛을 느끼고 있었다.
“으음… 저기.”
“무슨 할 말이라도?”
“아, 아뇨.”
무거운 공기를 풀고자 입을 연 감녕은 여포의 딱딱한 어조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색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예? 아. 그게… 고아라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올해로 스물 일곱 쯤…”
“스물 일곱!?”
“예…”
그게 뭐 잘못된건가?
감녕이 떨떠름히 대꾸하자 여포는 씩씩대다가 간신히 그것을 억누르고 물었다.
“스물 일곱이라. 그동안 뭐했나?”
“뭐했냐고 물으신다면…”
따지는 듯한 여포의 질문에 감녕은 머뭇거렸다.
뭐했냐고?
그야 진유하 밑에서 일했지.
여영기에게 들었을텐데?
감녕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연주 동아현에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진동장군을 따르고 있었습니다만…”
“뭐!? 동아현에서부터!?”
“…..”
뭐하자는 걸까?
여포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있었다.
감녕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저… 아버님?”
“내가 왜 너의 아버님이지?”
“…..”
감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 어찌해야하는 건가?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왔지만 이런 자리까지는 온 적이 없었던 그는 속으로 외쳤다.
‘도와줘! 도련님!’
두번이나 결혼하면서도 장인에게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았다는 진유하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도대체 무슨 요술을 쓰면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대놓고 자신을 도둑놈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어찌 할 바를 몰라하던 감녕이 장료를 바라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안주 가져 왔어요.”
“오오… 어서 오렴. 이렇게 차려입으니 아주 예쁘구나.”
“…..”
저게 차려입은건가?
갑옷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는 여영기가 술상을 봐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여포의 날카로운 시선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앉거라.”
“네.”
여영기가 자신의 옆에 앉자 감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말해도 괜찮겠지?
여포가 화신주를 한모금 들이마시는 것을 본 감녕은 여영기의 손을 잡았다.
“아버님!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요!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오래비…”
감동한 듯한 여영기가 몽롱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감녕은 지금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약 여포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여영기를 데리고 튈까?
일단 남쪽으로 가면 괜찮을거다.
도련님이라면 이해해주겠지.
아니면 바로 습격을?
그래도 영기의 아버지인데…
어처구니 없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감녕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화신주 한잔을 다 비우고 또다시 한잔을 단숨에 비운 여포는 그를 노려보며 싸늘히 말했다.
“내 딸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예.”
“어떻게?”
“그야… 열심히.”
“열심히 어떻게?”
“일단 생각해 둔 것은 있습니다만. 이번 일만 끝나면 제대로 관직도 받기로 했고…”
“관직이 높아져봤자 적만 많아지지 않겠나? 그래서야 내 딸이…”
“아버지! 그만해요! 오래비가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평소에는 얼마나 달변가인데!”
“여, 영기야.”
‘지금 그러면 역효관데!?’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가뜩이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듯한 여포였다.
그런 여포에게 이렇게 소리를 지르다니.
감녕은 움찔하며 여영기의 손을 잡았다.
“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리는 그녀를 보니 할 말이 없다.
감녕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여포에게 말했다.
“저는 영기를 사랑합니다. 영기 역시 저를 사랑하고.”
“그래서?”
“아버님께서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허… 전에 나에게 덤벼들때부터 기개가 남다르다고는 생각했다만. 간이 배밖으로 제대로 튀어나왔군.”
“…..”
이런 반응이 나오다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막 나가?
감녕이 고민하는 동안 여영기는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해도 난 오래비와 결혼할거에요.”
“결혼하지 않고 평생 애비와 살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몇살때 얘기를 하시는거에요!?”
충격을 받은 듯한 여포가 떨떠름히 말하자 여영기는 벌컥 화를 내버렸다.
그 성질에 여포는 시무룩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이 일은 그렇게 아세요!”
잘한다!
감녕은 감탄하며 여영기를 보았다.
그녀의 대범함에 감녕이 놀라는 동안 장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기야. 그리 말하더라도 결혼은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막 정할 만한 것이 아니야.”
“막 정하다니요? 장 사부님. 말씀이 이상하시네요. 우리 흥패 오래비가 어디가 어때서요?”
“아니 어디가 어떻다는 건 아니고… 감 도위정도라면 훌륭하지. 훌륭하고 말고. 그러니까 그냥 깔끔하게 허락해줍… 형님?”
“우리…? 우리…?”
정신줄을 놓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감녕을 바라보던 여포는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기 위해서 다시 화신주를 한잔 크게 삼켰다.
저 독한 술을 저 큰 대접으로 연이어 마시다니.
감녕이 말리려던 찰나 여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정 못해!”
“인정 못하면 어쩌시려구요? 전 오래비와 결혼할건데.”
“너… 너!”
“왜요!”
여포의 성질에 여영기 역시 성질을 냈다.
둘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기류에 감녕과 장료는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형님. 그만 하시죠. 감 흥패. 저 사람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진동장군의 최측근이기도 하고 가진 능력도 괜찮습니다. 제가 보장하지요. 조조군 내에서도 평판이 아주 좋습니다. 저만하면 영기의 짝으로 잘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야야. 너 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간신히 둘을 말린 감녕과 장료는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보는 여포와 여영기를 보았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여영기는 감녕을 꽉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셔도 저는 오래비 없으면 안되요!”
물컹한 가슴이 얼굴에 닿는다.
달콤한 향기에 취할 것 같았지만 감녕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잡으며 여포를 보았다.
그의 표정.
저게 그 여포의 표정이라니.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우울해하는 여포의 모습에 장료는 빠르게 손사레를 쳤다.
일단 나가라는 듯 보이는 손짓에 감녕은 여영기를 떼어놓고 말했다.
“아버님. 내일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