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30
00430 천하이분지계 =========================
강하로 돌아오자마자 장비는 곧장 관청으로 가는 대신 자신이 머무르던 장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왔수?”
빗자루를 들고 자신을 반긴 간옹에게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장비는 장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어서 오게나. 잘 다녀왔나?”
“황노인이 여긴 무슨 일이요.”
이 장원의 주인이며 형주의 명사인 황승언이다.
그는 빙긋 웃으며 장비에게 인사했다.
차마 그의 인사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장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승언은 웃음기를 유지한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 사위 만나러 오는 것인데 뭐 문제라도 있나?”
“…그 잘난 사위는 안에 있소?”
“그런데?”
“잠깐 만나야겠소.”
“저번처럼 성질을 내려고?”
“그렇다면?”
장비의 시퍼런 눈을 마주하면서도 황승언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 심약한 아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심약?”
누구 얘길 하는 것인지.
가당찮은 이야기다.
그놈의 어느 부분이 심약하단 말인가.
장비가 콧방귀를 뀌자 황승언은 웃으며 그를 말렸다.
“그러지 말게. 내 좋은 술을 마련해왔으니까 같이 한잔 하세나. 뭐 안좋은 일 있으면 기분도 좀 풀고.”
“나중에.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니 그리 걱정마쇼.”
황승언을 밀치고 장비는 안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소년은 장비가 들어오자 피식 웃었다.
“손책이 부상을 입었습니까?”
“그래. 오른팔이 잘릴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훌륭하군요. 가서 쉬십시요.”
소년의 말에 장비는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웃었다.
가서 쉬라고?
이제는 숫제 자기 부하취급을 하는구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장비는 뜨거운 콧김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너희 빌어먹을 형제들이 시키는 일은 다 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참이지? 형님은 언제 구할 생각이냐.”
성큼성큼 다가간 장비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가볍게 들어올려진 소년은 장비의 말에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이 상당히 거슬린 장비가 화를 내려던 찰나 소년은 차분히 말했다.
“손책을 구한 것이 주유입니까?”
“노숙이라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더욱 잘 되었군요. 이로서 조조를 상대할 세력이 만들어질 수 있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가서 쉬시지요.”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폭발한 장비가 주먹을 들어 올리자 소년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장비가 자신을 때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그는 시큰둥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의 신경전에서 패배한 것은 결국 장비였다.
그가 천천히 주먹을 내리자 소년은 입을 열었다.
“노가가 손가의 손을 들지 않았다면 손가는 다시 재기를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흔들렸겠지. 그리 되었다면 강남의 주인이 결정하기 위한 싸움에서 손가는 크게 밀릴 것이고.”
“그래서?”
“그리고… 그 주인은 아마 유표가 되었을거요. 아니면 황조가 되든가. 그것이 아니면 당신들 중 하나가 되든가.”
“그래서?”
“그리 된다면 조조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리 되지 않았지요. 손책이 큰 부상을 입게 되고, 그로 인해 노가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강남의 패자를 결정하는 경쟁에서 손가는 크게 이득을 보겠지만… 손가는 더 이상 조조와 협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는 겁니다.”
“…..”
그놈의 기회.
약점이 잡힌 쪽이 자신이라는 것에 장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그를 향해 소년은 웃었다.
“손책이 제대로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손가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어린 손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잔인하고, 강해지겠지요. 그들은 손가의 부흥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 그렇다면… 아무리 빚이 있다 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조조를 치는 일도 망설이지 않을 겁니다.”
“조조를 친다…”
“그들이 원소와 협력하게 된다면 허도를 공략하는 일이 쉬워질터. 그리 된다면 당신의 형님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손 놓고 있겠다고? 좋아. 조조를 치기 위해서 강남쪽에 수작을 부리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제갈근 그 개자식은 지금 뭘 하고 있지?”
“허도로 계속 사람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계속 실패하는 듯 싶군요.”
“하! 실패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냐? 좀 더 강한 이를 보내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기 싫기 때문이겠지.”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망할 놈의 최선말고 결과를 가져오란 말이다! 결과를!!”
벌컥 화를 내는 장비의 얼굴은 누가봐도 두렵기 짝이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것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유비를 구하는 것은 우리 역시 원하는 일입니다만. 뭔가 대단한 자가 유비를 가두고 있는 것 같더군요.”
“차라리 내가 가겠다! 내가 가면 되는 것 아니냐!”
장비의 말에 소년은 키득거렸다.
“당신이 가면 어쩔 겁니까? 당신이 허도에 들어간다면 조조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어쩌면 이미 당신에 대한 수배령도 내려졌을 겁니다. 당신이 허도에 들어갔다는 것이 알려진 순간 조조는 유비를 반드시 죽이려 할 것입니다.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하더라도 지금 유비의 목숨은 조조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그가 힘만주면 터져버리겠지요. 그 힘을 주게 하려는 겁니까?”
“관 형님이 조조의 밑에 있다. 관 형님의 도움을 받으면 큰형님을 구할 수 있을거다.”
“글쎄요.”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뭐!?”
“당신의 말대로 그 관운장이라는 사람과 당신이 협력해서 어떻게 유비를 구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허도에서는 어떻게 벗어날 것이며 허도에서 벗어나 이곳까지는 어떻게 도망칠 것입니까? 병사들도 없는데? 조조가 바보라고 생각하십니까?”
“…..”
“허도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들의 반란조차도 손쉽게 제압한 조조입니다. 조조를 너무 얕보지 마십시요.”
“큭…”
“유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허도의 점령 뿐입니다.”
확신에 가까운 그의 말에 장비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허도의 점령.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년을 노려보던 장비는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갈았다.
“만약.”
“…..”
“형님께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장비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너희 제갈씨들을 모두 내 손으로 찢어죽일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차 있는 말.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흉신악살의 얼굴을 마주하며 소년은 웃음을 터트렸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웃지 못하는데 이 망할 제갈씨들은 간이 다른 사람들의 몇배나 되는 것인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푸핫! 웃기는군요. 저희 형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찢어죽여야 할 대상은 저희가 아니라 조조… 그리고 진유하 아닙니까?”
“닥쳐!!”
“화를 내는 것은 좋으나 이치가 그렇지요. 순서대로 하시지요. 조조와 진유하를 찢어죽이고 저희 형제를 찢어죽이시면 딱 맞겠네요.”
결국 조조.
결국 진유하.
제갈근과 이 소년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었다.
가끔씩 말하는 것을 보면 유비는 물론이거니와 유표도, 심지어 자신들의 목숨마저도 그들을 잡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장비는 그의 멱살을 더더욱 강하게 잡은 채 천천히 말했다.
“우리를 이용할 생각이냐?”
장비의 싸늘한 말에 소년은 키득거렸다.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뭐!?”
“예. 이용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형님을 구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 하듯, 저희 역시 조조와 진유하를 잡기 위해서 당신들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
웃음기 가득해 있던 소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년의 눈에는 증오만이 가득 차 있었다.
조조와 진유하의 이름을 언급한 순간 세상사에 관심없던 소년이 증오로 가득 차 있는 무시무시한 이가 되었다.
장비는 천천히 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무슨 생각이냐. 네놈은.”
“유비는 저의 계획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저 역시도 그를 구하고 싶어요. 그러니 믿고 기다려주십시요. 최소한…”
다시 자리에 앉은 소년은 장비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제 모든 것을 불태우더라도 당신을 도울 생각입니다. 그러니 걱정마시지요. 이번에 형님께서 보낸 이들은 아주 대단한 자들이라고 하니…”
진심이 담겨 있는 그 말에 장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자 소년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싸늘히 이를 드러내었다.
“당신의 형님이 죽어 일계가 무너지게 되더라도… 최소한 당신들과 저희들의 복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요. 자… 그럼 원소가, 그리고 장양이 얼마나 잘해주느냐가 문제인데… 난감하군. 그쪽은 나도, 형님도 손을 대기 어려우니…”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방의 구석에 있는 제단에 다가갔다.
그곳에 있는 위패를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굳은 어조로 말했다.
“반드시 그들을 잡아 숙부님의 원한을 갚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숙부님께서도 저희를 보살피고 도와주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