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41
00441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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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리 되었군.”
무기를 든 채 조조를 독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하후돈이 막사로 들어왔다.
방만한 태도로 그에게 걸어간 하후돈은 씨익 웃으며 허리춤에 숨겨 둔 대나무통을 들어올렸다.
산양군의 죽엽청이다.
그것을 본 조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자 하후돈은 한통을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화신주는 너무 독해서 전시에 마시기는 좀 그렇지.”
“고맙네. 역시 친지 밖에 없어.”
화타에 의해서 당분간은 술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에 화타에게 진료를 받고 환자 주제에 술은 무슨 술이냐며 혼쭐이 났었다.
감히 이 나라의 사공에게 화를 내다니.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도 조조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정도는 보약이야. 보약. 거기에 산양군의 죽엽청은 약주 수준이라고. 화타 어르신도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그렇지. 전쟁이 끝나면 산양군에 지원을 더 해줘야겠어. 산양군과 서주 일대에서만 죽엽청의 제조가 가능하니 말야. 하하…”
대나무통의 뚜껑을 연 조조는 오래간만에 느끼는 죽엽청의 향기에 살짝 눈을 감았다.
그동안 전위의 압박에 죽엽청은 커녕 일반 탁주조차 한잔도 마시지 못했었다.
그것을 이렇게 마시게 되다니.
싱글거리며 한모금 죽엽청을 입에 넣은 조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거슬리던 마음의 앙금이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이다.
“어이. 원양.”
“왜?”
“그것도 줘.”
“욕심은. 옛다.”
하후돈은 투덜거리면서도 그에게 죽엽청을 한통 더 넘겼다.
평소 조조가 먹던 양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정도라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하후돈이 자리에 앉자 순식간에 한통의 죽엽청을 비운 조조는 두번째 죽엽청의 뚜껑을 열었다.
“그나저나 한번의 전투를 더 하게 될 줄이야. 봉효 그 사람도 은근히 허당이라니까!”
“글쎄. 무조건 봉효를 탓하기만은 어렵지. 봉효 그 사람이 그정도로 생각이 없는 사람도 아닐테고.”
긴 의자에 편히 누운 조조는 죽엽청을 아껴서 홀짝홀짝 마신 후 사과를 들어 우적거려 씹어 삼켰다.
그의 옆에 앉아 함께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꺼내 마찬가지로 입에 문 하후돈은 거친 어조로 말했다.
“화타 어르신이 말씀하시더군.”
“뭐라던가?”
“너 빨리 요양해야 된다고.”
“하… 요양.”
요양이라.
좋지.
순우경이 죽은 이후로 무언가 얹힌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의 고통이라 하지 않던가.
화타의 말대로 세상사를 잊고 심산유곡에서 도인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넘쳐나지만 쉽지 않아. 당장 원소를 잡는다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많지.”
당장 황제의 문제도 그렇고 형주, 서량, 익주, 그리고 강남쪽도 생각해야했다.
다행히 서주와 연주 일대는 이제 완전히 자신들의 영역이 되었지만 기주, 유주, 청주와 사예주, 예주쪽은 아직도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잡기 전까지는 함부로 그만둔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만약 내가 다 놔버리고 은퇴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 연주와 서주, 그리고 진동장군이 있는 청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겠지. 앙이가 네 뒤를 잇는다고 해도 말야.”
조앙이 큰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직 자신의 세력 모두를 끌어안기에는 부족했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당장 그를 견제하는 이들은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각지의 명가와 호족들은 조가가 아닌 나 조조를 인정하기 때문에 굴복하고 들어온 이들이 많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조가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야. 지금은 나에게 밀리고 있다지만 나만 없어진다면 얼마든지 자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테니까.”
“그렇지.”
조조의 씁쓸한 말에 하후돈은 한숨을 내쉬며 동의했다.
그의 말대로다.
아무리 사공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가 천하 이강의 자리에 오른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진유하가 업성과 평원성을 차지하여 하북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도.
조앙이 장양의 군세를 물리쳤어도.
아직 원소가 살아 있는 이상 각지의 명사와 호족들은 반드시 기회를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원소를 잡고 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테니까.”
“이민족의 경우도 생각해야하고…”
원소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착각이었다.
원소가 끝이 아니다.
원소가 시작이다.
“익주 일대는 오랜 시간 유씨의 손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어. 유씨가 아니라면 그곳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저항은 극심하겠지.”
“뭐… 그곳은 하나의 새로운 제후국과 비슷하니까.”
“골치야. 골치. 쉽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내 안에 있는 분노한 말들은 항상 날뛰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약 너무 많이 먹지 마라. 그 약은…”
“광증을 불러 일으킨다?”
“…알고 있었냐!?”
당황한 하후돈이 외치자 조조는 빙긋 웃었다.
역시 그랬나.
만약 조조가 분노하면 어떻게 말려야 하나 생각했던 화타였다.
그런데 이렇게 무덤덤하다니.
아니 그걸 떠나서 알고 있었다니.
오히려 맥이 빠져버린 하후돈이었다.
“이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약이지. 이런 말도 있잖은가. 독도…”
“잘 쓰면 약이다? 화타 어르신이랑 똑같은 얘기를 하기는.”
“하하하. 그렇지.”
이 인간은 도대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 온 사촌이지만 정말이지 조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을 약으로 쓰는 화타 어르신이나 그걸 또 알고서 냅다 먹는 아만이나… 어휴. 난 모르겠다.’
자신과는 종이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이렇게 사공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속 편히 전장에 나오는 배짱을 가졌겠지.
하후돈이 투덜거리자 조조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이봐. 돈.”
“왜. 아만.”
“아만… 정말이지 그리운 이름이군.”
“들었다. 중간이 죽은 이후로 잠을 설친다면서?”
전위의 걱정스러운 보고를 들었던 하후돈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좀 제대로 잤으면 좋겠는데.
하후돈의 걱정어린 말에 조조는 히죽 웃었다.
“그래가지고 원소를 잡을 수 있겠냐? 둘도 없는 친구잖아.”
“둘도 없는 친구였지.”
“…..”
“과거의 일이다. 이미 나에게 남은 것은 대업을 위한 갈망 뿐. 그것을 위해서라면 친우도 벨 수 있어.”
“허… 독한 놈.”
욕 아닌 욕을 내뱉는 하후돈의 무례에도 조조는 그저 웃을 뿐 이었다.
“내일 쯤이면 봉효가 도착하겠지. 원소의 부대는 코 앞이다. 그들이 오면 바로 나갈 수 있을거야.”
“그렇겠지… 안량도, 문추도, 그리고 자기 아들까지 죽은 마당에 더 이상 피하지도 않겠지.”
원소를 떠올리며 조조는 키득거렸다.
“과연 자네가 도망칠지 아니면 대적할지는… 내일 보면 알 수 있겠지.”
“너 설마 도망치기를 바라는거냐?”
“글쎄… 아만은 원하지만 조공은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갈등하고 있었다.
조조의 말에 하후돈은 웃었다.
사공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더더욱 인간적인 면모를 버려가고 있던 그였다.
조인에게 듣기로는 청이의 임신에 대해서 알려졌을 때 외에는 거의 화를 내지도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는 인형처럼 감정을 죽이고 살아왔다.
오로지 법과 제도에 의한 움직임만 보일 뿐.
그것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며 하후돈이 알고 있는 ‘아만’을 가려왔다.
그런 그가 이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희망을 내보일 줄이야.
“자칫 잘못하면 하북에서 엄청난 전쟁을 치뤄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래서야 사공 실격이군.”
“무슨 걱정이 있겠나. 안량도, 문추도, 고람도, 순우경도. 거기에 전풍과 곽도까지 잃은 원소다. 백마항을 건너봤자 업에 있는 조카사위에게 끝장날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정 뭐하면 어때? 좀 기다렸다가 유부인이 오면…”
“됐어. 그들을 이용할 필요까지도 없다.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업성에서 잡은 원가의 사람들을 방패로 내세울까도 생각해봤지만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곽가에게 제대로 기습을 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원소군이다.
저하될 대로 저하된 사기.
그리고 원소군의 움직임에 맞추어 따라 움직여 그들을 추격했다.
이어진 조조군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원소군.
저들의 수는 이제 이만여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포위되어 탈영병이 속속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탈영병의 사이에 껴서 원소가 도망치지 않을까?”
“그럼 어쩔 수 없는거지. 하지만…”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소의 그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만한 이야기다.
“다른 건 몰라도 본초. 그 녀석의 자존심만은 나도 인정해. 그는 자신의 출신에 불만을 가지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각오했어. 그런 그가… 탈영병의 흉내를 내며 도망친다?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겠네.”
“왜?”
“그럼 더 이상 그는 내가 알던 원소가 아니게 될테니까.”
정말로.
차라리 그가 도망쳐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알고 있던 원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를 잡는데 오히려 부담이 줄어들텐데.
조조는 포위되어 있는 원소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죽엽청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원소는 작전지도를 보며 싱글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다니.
심배는 그의 대담함에 놀라는 것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원공. 가셔야 합니다!”
“간다? 어딜?”
“도망치셔야지요!! 이제 치중도 없습니다! 지금 이길 방법은 없어요! 도망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들은 포위를 했지만… 그 포위망은 엉성합니다! 탈영병들이 탈영하기 좋게 구멍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 틈을 노리면 됩니다!”
심배의 다급한 말에 원소는 껄껄 웃었다.
“으하핫! 도망친다? 이 원 본초가?”
“지금 농담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적습으로 인해 문추와 고람이 죽었다.
원담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친다.
어차피 전풍은 죽었으니까.
원상을 구슬리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심배가 다시 한번 외치려 하자 원소는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잔 더 하지.”
“원공!!”
“소리지르지 말게.”
“크…”
이런 상황이 되서도 무슨 저런 여유를 보인단 말인가.
봉기는 이미 탈출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일단 여기서 탈출한다.
그리고 남피로 가서 원상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 그리고 북부에 있는 병력을 끌어모은다면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릴 수 있었다.
아니, 그것 뿐만이 아니다.
장양이 패배했다고 하지만 아직 그들의 병력은 남아 있었다.
그것마저도 끌어들인다면 다시 한번.
다시 한번 할 수 있다.
하지만 심배의 말에도 원소는 시큰둥할 뿐 이었다.
“이보게. 심배.”
“…말씀하십시요.”
“자네는 천명을 믿나?”
뜬금없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그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른 심배가 탁자를 두드리려 했을 때 원소는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서출로 태어나며 천명따위는 믿지 않았지.”
“원공…”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지 않은가. 내가 서출로 태어난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네.”
뭔가 굉장히 홀가분해진 듯한 그를 바라보던 심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지금 포기하고 있었다.
“육년의 상을 지낸 것도 마찬가지야. 대부분은 삼년상만으로도 위험하다고 했지만 육년의 상을 지내고도 난 살아남았어. 그리고 많은 것을 얻었지.”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생하셨으니 이대로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이제…”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하는 건데 말이지.”
원소는 술잔의 술을 한모금 마신 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늘이 이 원 본초에게 준 역할은… 그저 아만을 띄워주기 위한 역할인 것 같단 말야.”
“원공!! 그래서 그냥 물러나시겠다는 겁니까!? 이대로 앉아서 죽겠다는 겁니까!?”
심배의 외침에 원소는 히죽 웃었다.
“역천을 꿈꾼 사람으로서 그런 것은 곤란하지. 하지만 도망쳐봐야 구질구질할 뿐이니… 여기서 다시 한번 역천을 노려보겠네.”
“…미친.”
결국 욕설을 내뱉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곳은 사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탈출해 재기를 노려야 한다.
바보가 아닐진데 왜 이런 판단을 내린단 말인가.
원소를 노려보던 심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냥 죽겠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심배. 자네는 가게. 봉기 역시 탈출을 준비한 것 같은데.”
“큭…”
“만약 내가 이곳에서 천명에 따라 죽게 된다면… 상이에게 뒷일을 맡기지. 자네가 상이의 후견이 되어 한번 잘 해보게. 어쩌면 하늘이 마련해 준 자네의 역할이 나의 복수를 하라는 역할일지도 모르니 말이야.”
더 설득할 수는 없었다.
자리에 남고자 하는 원소를 노려보던 심배는 가차없이 몸을 돌렸다.
그가 나가자 원소는 술잔에 술을 부었다.
“흐흐흐.”
아들인 원담의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그 습격이 벌어졌을 때, 원담이 조비의 칼에 찔렸을 때 끝이 보였을지도 몰랐다.
아들도 죽고.
수많은 병사들과 수하들도 도망가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 뿐이었다.
원소는 술을 단번에 들이마신 후 차분히 중얼거렸다.
“자… 와라. 아만. 나는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이 원소이니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