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42
00442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
원소군을 포위하고 더 이상 적병의 탈영이 없어졌을 때 쯤.
곽가의 군세가 도착했다.
남은 적병의 수는 일만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았다.
살 수 있는 구멍을 열어 둔 탓이다.
물론 탈영을 가장하여 고급 장교들이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조조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조공. 적들의 수가 의외로 적습니다?”
“자네는 인사도 안하나?”
막사로 들어 온 곽가를 향해 히죽 웃은 조조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구멍을 좀 열어줬네.”
“일부러 그러셨습니까?”
“그래.”
“괜히 쓸데없는 짓이나 하시고. 이런게 군주이고 사공이라니… 참나. 그러다가 원소가 도망치면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
“이보시오! 곽 성주!!”
아무리 입이 험한 곽가라지만 조조에게 저런 소리를 하다니.
조인이 화를 내자 조조는 손을 들었다.
“내버려 둬. 봉효의 입이 더러운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됐어. 내 나름의 생각이니 기분 나빠도 이해하게나. 원소가 도망치면… 어쩔 수 없지. 자네들의 고생이 좀 늘어나겠지만.”
“이해해야지요. 조공께 치도곤을 날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이 사람이 자꾸… 자넨 도대체 목숨이 몇개나 있는건가!?”
곽가의 시큰둥한 대꾸에 조조는 빙긋 웃었지만 주변의 다른 장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조조가 저 놈의 목을 베라! 라고 외칠까 두려웠던 장합은 조조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공.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오! 자네도 왔군. 그래. 사위는 잘 지내던가?”
“업성을 잘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하하. 임신한 아내를 내버려두고 전장에 나갔는데 실패를 하면 곤란하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는 장합에게 농을 건넸다.
오래간만에 만난 이들끼리의 인사가 끝났다.
이제부터 해야 하는 것은 작전회의.
하지만 작전회의가 과연 필요할까?
이미 적에 대한 포위는 끝났다.
그냥 활만 계속 쏴갈겨도 전투는 끝날 것이다.
“제일 궁금한 것은 원소가 아직 남아 있느냐는건데.”
“남아 있겠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없으면 뭐… 뒷일은 사위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고.”
숫제 남일이다.
조조의 반응에 곽가는 볼을 긁적거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회의도 안끝났는데 뭐하나?”
“회의가 필요합니까? 그냥 조공께서 나가서 한마디 하십시요.”
“그게 낫겠지?”
“호위로는 장 도위와 조 교위가 함께 가면 되겠군요.”
호위를 겸하여 장합과 조인이면 충분할 것이다.
곽가가 말하자 조조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장합과 조인에게 말했다.
“가세.”
“예? 아. 예?”
“사공! 정말 그거면 됩니까!?”
“그거면 되는거야. 더 필요는 없어. 어차피 원소 그놈도 그걸 바라고 있을테니까.”
씨익 웃은 조조가 막사에서 나가자 하후돈과 조홍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장합을 따르는 백귀대와 함께 조비의 부대가 참전했다.
천인대가 뒤따르는 것을 본 조조는 천인대장인 조비를 보며 씩 웃었다.
“어떤가? 자네가 보기엔. 자질이 있어보이나?”
“글쎄요. 제가 함부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사위가 말해줬나?”
“예.”
“이거 참. 특별대우 하지 말라고 그리 말했는데…”
“사지도 몇번 들어갔다 왔습니다. 딱히 특별대우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괜히 진유하가 피해를 볼까봐 장합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궁시렁거리던 조조는 조비가 병사들을 이끄는 것을 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천인대라… 하. 봉효 이 사람도 마음이 참 넓군. 툴툴대면서 챙길건 다 챙긴단 말이야.”
“오직 조공을 위해서겠지요.”
“그렇겠지… 후계자 후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테니까. 경쟁은 성장의 원동력이 되니. 과하지만 않으면 되는거야. 과하지만.”
“조공의 말씀대로입니다.”
장합의 대답에 조조는 웃음기를 천천히 지웠다.
“자네도 결혼은 했겠지? 아이는 있나?”
“예. 아직 어립니다만… 딸아이와 남자아이 하나씩 있습니다.”
“남자아이라! 이거 좋구만! 혹시 그 아이가 출사에 관심이 있나?”
“아직 어립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총명하고 용기가 뛰어난 아이이니… 만약 원한다면 지원 해줄 생각입니다.”
“원한다면 이라…”
모든 아비들은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해주고 싶어한다.
그것이 아비다.
자신의 살을 깍아서라도 자식이 원하는 일을 들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원하는 것이 하나라면.
모든 자식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조조는 힐끔 고개를 돌려 조비를 보았다.
“하나를 여럿이서 원하고 있으니… 조공으로서는 쉽게 방침이 정해지나 아비로서는 쉽게 정할 수 없구만.”
“그…”
“뭔가?”
“진동장군이 방 도독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조 아가씨와 사마 아가씨가 낳은 아이들이 다투면 누굴 더 위로할 것이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려운 질문이겠군. 그래. 진동장군의 대답은 어떻던가?”
조조의 질문에 장합은 머뭇거렸다.
대답하기 꺼려하는 그의 모습에 조조는 킬킬 웃었다.
“흐흐. 첫째 부인의 아이를 예뻐한다 말했던가?”
“아, 아닙니다. 그저 열 손가락 깨물어봤자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만 하셨을 뿐. 방 도독도 그 대답을 듣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문다라… 하긴. 그렇겠지.”
자신의 아이다.
예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각자의 위치와 각자의 능력이 다를지언정 아비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자식일 뿐이다.
조조는 장합의 말에 나름대로 만족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그리해야겠군.”
“조공이시라면 분명 현명한 선택을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합이 고개를 숙이자 조조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의 천인대장을 좀 빌렸으면 싶네.”
“모든 것이 조공의 것인데 빌리고 자시고가 있습니까.”
다른 이도 아닌 조조가 달라고 하는데 넘겨야지 어쩌겠는가.
장합이 손을 들자 그의 부관은 조비에게 향했다.
“그럼…”
대열을 변경한다.
자신의 부름을 받은 조비가 다가오자 조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더냐.”
“쉽지 않았습니다.”
“봉효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원소를 코 앞에서 놓쳤다고?”
“…송구스럽습니다.”
“흠.”
조가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거칠어졌지만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장에서 구르는 이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조비를 말없이 응시하던 조조는 피식 웃었다.
“어디 한번 네 나름대로 해보거라.”
“예?”
“후계자가 되고 싶다 하지 않았더냐. 막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아버님.”
“허나.”
조조는 조비를 똑바로 응시했다.
“한가지 기억해두거라. 너나 앙이나 나에게 있어서는 같은 자식이다. 그렇기에 누굴 더 응원하고, 누굴 더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말씀은…?”
조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조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는 그저 관망만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엄청난 차이가 난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조조가 손을 써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쉬운 길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아버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네 나름대로 공을 세우고, 네 나름대로 사람을 모으고, 네 나름대로 뜻을 만들어 보아라. 만약 실패한다 하더라도 너에게 큰 도움이 될테니까. 사람은 실패에서 좌절해서는 안된다. 실패에서 배워나가야 하는거야.”
“아버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비로서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한의 사공으로써… 널 신하로 대하겠다.”
냉정하다면 냉정한 말이었지만 조비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허락을 받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할 것이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조조는 피식 웃으며 안장에 걸려 있는 커다란 확성기를 들었다.
‘이것 역시 사위가 만든 것이었지.’
전장에서는 소리를 지르는 것도 큰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쓰면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말을 알릴 수 있었다.
좋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놈이지.’
능력은 있으되 의지는 없는 놈이다.
늘 헤실거리는 그 녀석을 떠올리니 웃음이 절로 나온 조조는 천천히 얼굴을 쓸어만졌다.
마음을 다스리자.
이제는 친우와 헤어질 시간이니까.
“원소오오!!!!”
확성기를 통한 외침이 울려퍼진다.
원소군의 움직임이 변한다.
병사들이 길을 내어주는 것을 보던 조조는 병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사내를 보며, 과거에 그의 집 앞에서 그를 부를 때 외쳤던 것처럼 힘껏 외쳤다.
“놀자아아!!!”
고작 수십의 병사를 이끌고 나온 원소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조조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넨 나이가 몇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건가? 제발 나이를 먹었으면 체통 좀 지키게. 사공이라는 사람이. 쯧.”
천하이강이라 불리며 전쟁을 해왔던 상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원소를 향해 조조는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 어떤가! 사내는 나이가 몇이어도 애라잖은가. 가끔씩은 이렇게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나?”
“한심하다. 한심해.”
투덜거리는 원소의 모습에 조조는 더욱 짙게 웃었다.
그 웃음에 실소를 터트린 원소는 어깨를 으쓱였다.
“흐흐… 그래. 뭐하고 놀건가?”
“어렸을때부터 주구장창 놀던 놀이가 있잖은가. 그게 좀 커졌을 뿐이지.”
어렸을 때부터의 놀이.
전쟁놀이다.
동네의 아이들을 모아서 대장군이 되겠다고 치기어린 소리로 떠들어대며 하루 종일 산과 들, 마을에서 마음껏 놀았었다.
“기억 나나?”
“뭐가?”
“어렸을 때 너와 매일 전쟁놀이와 사냥만 일삼다가… 내 숙부께 한번 혼쭐이 난 적이 있었지.”
“아아… 나도 그랬지.”
서출인 자신.
환관의 후손인 조조.
그렇기에 더욱 품행을 바르게 해야 한다 집안에서 압박이 들어왔었다.
그때 자신은 어땠지?
원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크게 혼이 난 이후 자신은 노는 것보다는 공부에 힘을 썼었다.
하지만 조조는 어땠는가.
숙부를 속여 먹는데 성공하고 오히려 더욱 방탕하게 놀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조조가 자신의 숙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때 이후로 자네와 전쟁놀이를 한 적은 없었지.”
“맞아.”
“그리고… 이제서야 자네와 다시 마주하면서 전쟁놀이를 하게 생겼네.”
놀이라고 보기에는 좀 크긴 하지만.
조조나 원소에게 있어서는 결국 놀이에 불과했다.
원소는 그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핫!! 그래!! 다시 전쟁놀이를 하게 되었군!! 그래. 그때도 네 녀석의 편이 더욱 많았었지. 그래… 기억이 나는구만. 그래…”
과거를 추억하던 원소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번에는 지지 않을걸세. 매번 자네에게 졌을 때마다 사실 약이 올라 죽을 뻔 했거든.”
“그럼 이번에는 한번 이겨보게나.”
장합과 조인이 나서려 하자 조조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말렸다.
지금 그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놀이’가 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겠나?”
굳이 전쟁을 하지 않아도 여기서 원소를 잡을 수 있었다.
장합과 조인, 조비가 있는 조조와 다르게 원소에게는 그저 부장 몇명이 있을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선선히 웃으며 원소를 돌려보낼 뿐 이었다.
“쓸데없는 만용이 자네의 목을 조를걸세.”
“기대하지.”
원소가 돌아가난 후 적의 진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설픈 돌격대형이다.
낮아진 사기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것을 보며 조조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나에게 있어서도… 자네에게 있어서도 결국 오늘이 마지막 놀이인가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