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83
00483 각자에게 소중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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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에 들어간 유이는 차마 잠들지 못했다.
유망지가 허도에 유람을 왔다가 같은 황족들을 만나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서 죽게 생겼다.
“아아… 형님. 왜 그러셨습니까… 왜…”
황족 모두가 조조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황족들은 조조를 인정하고 그를 존경했다.
어쨌든 그는 십상시나 하진, 동탁이나 이각과는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나름대로 황실과 황족을 우대하고 그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오히려 잔인해진다.
동탁에게 핍박받을 때를 생각하지 못하고 조조가 호의를 베푸니 오히려 자신들이 잘난 줄 알고 날뛴다.
당장 조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몸가짐을 바로하고 입조심을 하라 형님께 그리 일렀거늘.
자신의 조언을 그렇게 무시하더니 결국은 이런 사단이 나버렸다.
유이는 절망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 남은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 생각하던 유이는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리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구요?”
“손님. 손님을 찾아 오신 분이 있으십니다.”
“…누구?”
자신을 찾을 만한 사람은 없을텐데?
혹시 진유하인가?
그렇다면 빨리 만나야지.
그리 생각한 유이가 문을 열었을 때 밖에 서 있는 것은 진유하가 아니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만나서 반갑소. 나는… 조비라 하오. 당신에게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소.”
“제안… 이요?”
“그래. 제안.”
“무슨 제안을?”
조비?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이름인데.
유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흠칫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설마…?”
조조의 둘째아들의 이름이 조비였다.
그가 자신을 향해 미소짓고 있는 것을 보던 유이는 그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살짝 허리를 숙이는 것을 보며 물었다.
“그쪽은…?”
“도련님의 책사라고 해두지요. 유엽이라 합니다. 잠시라도 괜찮으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유엽이라면… 아. 부풍질왕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저를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르는 분들도 꽤 있던데.”
“하하하… 어쨌든 나 역시도 황족의 말석에 자리하고 있는 몸. 족보와 계보 정도는 외우고 있습니다.”
유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까?”
유이의 질문에 유엽은 싱글거리며 대꾸했다.
“유망지… 당신의 형님을 살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의 말에 유이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진동장군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다.
유이의 눈이 떨리자 조비는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만이라면 괜찮겠지요?”
조비와 유엽이 안으로 들어오자 유이는 불안해하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그를 향해 조비는 들고 온 항아리를 옆에 놓은 후 품에서 한장의 고급스러운 비단에 감싸진 종이를 꺼내었다.
“이게… 뭡니까?”
“한번 읽어보십시요.”
연보라색의 귀한 비단이다.
이런 깔끔한 염색은 아무곳에서나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내용을 적은 것이길래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궁금해하며 유이는 그것을 펼쳤다.
“현 황제 유협은 동탁에 의해서 옹립된 위천자(僞天子)… 아니 이런 미친!”
예전 원소가 유협을 인정하지 않을 때 썼던 명분이다.
각지의 유력한 황족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제안하기 위해 원소가 보냈던 글.
유이 역시 이것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받은 즉시 불태운 후 다시는 이딴 소리 하지 말라며 원소의 사자에게 욕질을 한 후 돌려버내버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것을 왜 조비가 가지고 있단 말인가?
황족 중에서도 주변에 인정 받을 만한 단 몇명만이 받은 것일텐데.
현재의 황제인 유협은 동탁에 의해 옹립된 천자였다.
원래대로라면 적자인 소제가 황제의 자리에 있어야 했지만 결국 동탁은 그를 폐위시키고 유협을 황제로 옹립시켰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지만 몇몇 황족들은 아직도 유협이 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또 신하들 역시 마찬가지.
유협이 황제라면 다른 황족들도 충분히 황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원소는 그들을 노렸고 그것으로 새롭게 황제를 옹립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조조에게 당해 죽어버렸으니 이제는 세상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문서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유이는 부들부들 떨며 그것을 조비에게 내던진 후 외쳤다.
“이딴 글을…!! 지금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 저의가 뭐요!?”
“저의랄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유엽. 당신이 이런 문서의 곁에 있어서는 안되오. 지금 천하가 어떤 상황인지 모른단 말이오!? 허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알고 있습니다. 지금 무척이나 뜨겁지 않습니까. 유망지의 말이 황족들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다 아니다로 지금 신료들은 뜨겁게 토론하고 있지요.”
그걸 알면서도 이런 문서를 보인다?
만약 이 문서가 남아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정말 큰일이 난다.
이건 조조를 욕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 황실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황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한에 대한 반역을 꿈꾸겠다는 내용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중죄가 될 것인데 이것을 조조의 아들과 그의 책사가 가지고 있다니.
유이는 질린 표정으로 조비와 유엽을 보았다.
만약 이런 문서를 소지한 것이 걸린다면 진짜 난리가 난다.
두려워하는 유이를 향해 조비는 빙긋 웃었다.
“뭘 그리 두려워합니까. 그저 문서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문서 하나에 집안 자체가 풍비박산이 날 수 있는데? 돌아가시오.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할 바에는…”
“이 문서가 유망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도?”
“…..”
진지하기 그지 없는 조비의 표정에 유이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가 긴장하자 유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문서를 들고 유막을 만나주십시요. 그리고 그의 인장을 찍어주십시요.”
“유막이라면.”
현재 허도에 머물고 있는 황족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황족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그를 만나라.
그리고 그의 인장을 찍어달라.
유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붉게 물들어 있는 얼굴.
그의 분노를 마주하던 유엽은 피식 웃었다.
“지금… 나더러 황족들을 팔라고 말하는 거요?”
덜덜 떨며 유이가 말하자 유엽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기도 황족이면서 어찌 이런 말을!?
유이는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못했고 그런 그를 향해 유엽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유엽은 담담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욕지기를 내뱉으려던 유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 진동장군의 뜻을 받은 사람들이요?”
진동장군?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이지?
유엽과 조비는 서로를 보다가 물었다.
“진동장군께서 뭐라 말씀하셨길래 그러오?”
“…아, 아니라면 됐소.”
“혹… 진동장군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
유이는 망설였다.
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미 망설인 순간 답은 나온 것이었다.
유엽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진동장군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모양이군요.”
“…한가지만 묻겠소.”
“뭡니까?”
“당신 역시 황족. 그렇다면 지금 일이 터진다면 당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텐데… 왜 이런 짓을 하려는거요? 왜 같은 황족끼리 황족을 공격하려는 거요?”
“하하하… 그건 뭐. 개인 사정이라고 해두지요.”
작게 한숨을 내쉰 조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에?”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에 유이는 당황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인가?
“이 자양도 황족. 수를 좀 더 쓰긴 해야겠지만 유막과 만나고 그의 신뢰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소. 아니, 오히려 당신보다 내가 더 나을 수도 있지.”
“….”
“당신이 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소.”
유이를 내버려 둔 채 조비는 몸을 돌렸다.
그가 나가려 하자 유이는 당황하며 그를 잡았다.
“마, 만약!”
“뭐요?”
“내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낸다면… 정말 형님을 살려주시는 것이오?”
유이의 질문에 조비는 피식 웃었다.
“내 최선을 다해 그를 구해주도록 하지. 만약 우리의 생각대로… 진동장군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터진다면 유망지에 대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테니까.”
유이와의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며 조비는 피식 웃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역시라고 하는게 맞겠지요.”
“그렇지…”
어떻게보면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것 따위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본다면.
진유하는 자신이 조조의 후계자가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긴 한데 무섭구만. 괜찮겠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부터 우리는 그 진동장군과 싸워야하는데. 그를 적으로 돌려야 하는데. 정말 괜찮겠소? 이 일을 시행하면 진동장군이 웃으며 넘어가지는 않을텐데.”
조비의 질문에 유엽은 빙긋 미소지었다.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일까?
조비가 궁금해하자 유엽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적이 어디 있고 친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것도 그렇지. 그렇다면 자양.”
“말씀하시지요.”
“그대의 목적은 무엇이오?”
“별 것 없습니다. 일단 첫번째 목적은 도련님을 중랑장… 적어도 오관중랑장 정도의 위치에 올려드리는 것이지요. 그정도는 되어야 적어도 장안성주와 어떻게 비벼볼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작 해야 중령군에 불과한 조비다.
감히 장안성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말직에 불과했다.
그를 상대로 움직이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음… 차라리 잘됐군요. 진동장군께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방해가 되지 않겠소?”
“방해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지금 저희들이 잡아야 하는 것은 황족입니다. 장안성주도, 그리고 진동장군도 아닙니다. 지금은 함께해야 할 때지요.”
“…..”
“유이가 아까 그리 놀라던 것을 보면… 진동장군께서는 그 문서가 없었겠지요. 유이 나름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랬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따로 준비하고 계실터. 그렇다면 저희는 그분을 도우며 저희의 이득을 챙기면 됩니다.”
“음… 한가지만 더 묻겠소. 자양. 당신은 저 문서를 어디서 난거요?”
처음 보았을 때 조비도 꽤나 놀랐던 문서다.
공공연히 현재의 천자는 인정할 수 없다고 떠들어대던 원소였지만 실제로 이런 문서까지 만들어 알려져 있는 황족들을 끌어들였을 줄은 몰랐다.
조비의 질문에 유엽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저희 가문에 온 문서입니다. 안심하십시요. 이 문서를 제가 받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유이, 그리고 도련님 외에는 없으니까.”
“…응? 그렇다면… 그대는 왜 원소의 편을 들지 않은거요? 그대도 이름난 황족이라면…”
“황족의 삶이 어떤지 아십니까?”
“…응?”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조비는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향해 유엽은 차분히 말했다.
“많은 것이 제약됩니다.”
“무슨 소리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황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황족이기에 해서는 안된다. 황족이니 해야한다. 황족이니. 황족이니.”
“….”
“그것이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얼마나 지독한 저주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자신 역시 조조의 아들이기에, 조앙의 동생이기에 많은 것이 억제되는 삶을 살아왔다.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을 말할 수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좀 생각을 해봤습니다.”
“뭐요?”
“황족이라는 것이 제 발목을 잡고 있다면… 황족이 아니면 되지요.”
“…..”
좀 무서운 이야기다.
조비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고 유엽은 상냥히 웃었다.
“황실이 사라지면… 황족이라는 굴레 자체가 사라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