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53
청이를 재우고 난 밖으로 나왔다.
장비의 습격 때문일까?
어째 관청 내의 분위기가 살벌하기 그지없다.
추가적인 습격이 없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관청에 호위와 경계 병력이 더 늘어난 것을 보던 나는 잠이 오질 않았는지 계단에 앉아 홀로 술을 홀짝거리는 관우를 발견했다.
“한잔 하겠소?”
“딱히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받아주지.”
관우가 내민 술병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축제에서 팔던 술인가?
싸구려라 생각되는 술을 입에 머금은 채 난 관우에게 술병을 돌려주었다.
“가끔씩은 말이오.”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마셨다.
거친 맛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씁쓸한 술맛에 내가 눈쌀을 찌푸렸을 때 관우는 천천히 술을 마시며 말을 이어나갔다.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밑을 봐줬으면 좋겠구려.”
“뭐?”
“당신이 하는 일. 나쁘지 않소.”
세상에.
관우가 날 긍정하는 말을 할 줄이야.
내가 당황하자 관우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술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관의 일이나 법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백성이요. 그 틈을 이용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소.”
“뭔가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농기구를 빌려주는 것은 좋지만 그 빌려 준 농기구를 선점하여 재 대여해주는 이들이 있소.”
“….”
“땅을 가진 지주들 중에는 일부러 땅으로 농민들을 포섭해서 그 농기구를 많이 빌리고, 농기구의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대신 빌려주는 이들도 있다오.”
“음…”
“그리고 그것에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이들도 있고, 또한 소를 빌려준 후 몰래 그 소를 죽이는 이도 있고 자신의 소와 바꾸는 이도 있소. 그 뿐인 줄 아시오?”
관우는 차분히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산양군이나 하비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몰랐다.
내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관우는 쓰게 웃었다.
“당신들이라고 하더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소.”
“…조조군의 영역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건가?”
“물론. 다만 연주나 서주 같은 곳은 아니오. 중앙에서 떨어진 곳일 수록 지배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오. 아직까지 호족이나 명가의 힘이 강한 사예주나 예주 쪽은 그러는 이들이 많다오. 관리들도 그들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으니까.”
관우는 힐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한 부분의 처리를 제대로 해주었으면 하는데.”
“뭔가 자세하게 아는 것 같은데. 그동안 도대체 뭘 한거냐?”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그물에서 빠져나간 작은 물고기들을 잡고 있었소.”
무슨 비유지?
곰곰히 생각하던 나는 피식 웃었다.
“백성들을 구하고 있었나?”
“뭐 그렇소. 관이 아닌 밑바닥에 사는 한명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보며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을 구하고 있었소.”
대수롭지 않은 말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의 도움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다른 이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니.
그가 이런 삶을 살고 있었을 줄은 몰랐던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장비를 어찌해야 할까?”
“선택은 당신의 몫이요.”
관우는 시큰둥히 답했고 그 말에 난 오히려 당황했다.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법과 질서가, 정책을 통한 관의 집행이 백성들을 구하는 거대한 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어길 생각은 없소. 다만 나 역시 그 법과 질서에 기대어 요청할 뿐이지.”
“복잡하구만.”
“천하를 구하는 일이 그럼 쉬운 줄 알았소? 내가 말한 것들 외에도 당신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은 많다오.”
“그런가…”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 나름대로 한번 해보시오. 나는 나대로 할테니까.”
관우의 말에 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우리도 사람이다.
그런만큼 우리가 만든 법과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것에 딱히 죄책감은 없다.
완벽을 지향하기 위한 시행착오는 얼마든지 있을 수 밖에 없는거다.
그런 실패에 하나하나 좌절하기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내가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자 관우는 피식 웃었다.
뭐 됐나.
“장비를 만나러 갈거다. 함께 가겠나?”
“그러지.”
관우와 함께 관청의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그에게 맞아 기절했던 장비가 깨어났다는 보고는 받았다.
하지만 의외로 조용하군.
내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장비가 잡혀 있는 뇌옥 앞에는 팔짱을 낀 채 대검을 옆에 둔 관평이 앉아 있었다.
졸릴텐데도 그는 그저 물끄러미 뇌옥 안을 지켜 볼 뿐 이었다.
“괜찮냐? 교대해줄까?”
“아. 장군님.”
내가 들어오자 관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후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 괜찮습니다.”
“음… 그래.”
잠시간 침묵.
어색하다.
관평은 다시 뇌옥 안을 보았다.
뇌옥 안에는 쇠사슬에 묶인 채 의자에 앉아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장비가 있었다.
그를 보던 나는 관평에게 물었다.
“잘 싸우던데? 장비의 공격을 그렇게 막아낼 줄은 몰랐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냥 운이라고 생각하긴 좀 그렇군.”
“하하… 감사합니다.”
관평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침묵.
난 한숨을 내쉰 후 관평에게 말했다.
“잠깐 저자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줬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관평은 쓰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려다가 관우를 마주쳤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관평은 관우에게 말없이 목례했고 관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것을 받아주었다.
그때 그렇게 헤어졌는데 어색할만도 하겠지.
관우가 한쪽 벽 구석에 서서 팔짱을 끼자 난 챙겨 온 술을 창살 안에 밀어 넣었다.
“한잔 할텐가?”
“네놈이 주는 술 따위를 마실 것 같은가?”
“내가 주는 것 아니다. 네 형이 주는 것이다.”
“하!! 형이라고!?”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뀐 장비는 이를 갈며 다가와 그 술병을 걷어찼다.
그의 발길질 한방에 술병은 산산조각나버린다.
싸늘한 눈으로 나와 관우를 노려보던 장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날 죽이려고 한거지?”
“왜 형님을 감금하고 죽인 거지?”
이건 괜히 물었군.
장비의 시선을 마주하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살고싶지 않나?”
“살려줄 생각인가?”
장비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살려준다면 뭘 할 생각이지?”
뭔가 다른 일을 한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장비는 예상했던대로 씨익 웃었다.
“다시 네놈을 공격해주마. 그리고 널 죽여 형님의 원혼을 달랠 것이다.”
“….”
에라이.
때려치자.
내가 말해봤자 씨알도 안먹히겠군.
장비의 말에 난 고개를 돌려 관우를 보았다.
관우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앞으로 나왔다.
“익덕.”
“꺼져라. 배신자. 네놈과는 할 말이 없으니까.”
관우가 불러도 장비는 그저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을 뿐 이었다.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씁쓸해지는 미소를 지은 후 나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줄 수 있나?”
“뭔 소리를 하려고?”
“부탁이다.”
“끙.”
상관없겠지.
이곳에서 나가려면 결국 이 문을 통과해야한다.
관우가 장비를 데리고 탈주할 수도 없을테고.
장비가 갇혀 있는 뇌옥의 작은 창을 보았다.
어린아이도 쉽게 나가지 못할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니까 괜찮을거다.
난 관우와 장비를 번갈아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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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하가 나가자 장비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왜냐. 왜 배신한거냐. 왜 날 막은거냐.”
“형님의 유지를 따르기 위해서다.”
“하!! 결의를 배신한 놈이 유지를 따른다고!?”
장비는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나 관우에게 다가갔다.
창살 밖에 있는 관우를 죽어라 노려보던 장비는 빠득빠득 이를 갈며 분노를 토해내었다.
“제정신으로 그따위 말을 내뱉는거냐!? 응!?”
“이미 너도 알고 있을텐데.”
“뭐!?”
“도원의 결의를 떠올려라.”
“도원의 결의를 네놈의 입에 담지 마라!! 역겨우니까!”
장비의 분노 섞인 외침에도 관우는 그저 말없이 바라 볼 뿐 이었다.
그 계속되는 시선에 장비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안다.”
“그러겠지. 너 역시 바라던 것이 천하가, 세상이 바뀌는 것이었으니까.”
속정이 깊고 성질이 더러운 장비이지만 실상은 상황 파악을 냉정하게 하고 누구보다 더 냉정히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장비였다.
그런 장비이니만큼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것이라고 관우는 생각했다.
“조조가 정권을 잡게 됨으로써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 쯤은 안다… 알고 있다고.”
“….”
자신이 쉽게 인정하지 못했던 것을 장비는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천하를 떠돌아다녔으니 그도 알고 있겠지.
조조의 세력권과 그 세력권 바깥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는.
“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비가 저리 화를 내는 이유를 관우는 알 수 있었다.
속정이 깊기에.
대의가 아닌 소의를 따르는 자이기에 저리 화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형님은!!”
“…..”
“형님이 하셨어도… 천하는 살만한 곳이 되었을거다.”
“…그럴지도 모르지.”
관우의 대답에 장비는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관우는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형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제 포기하라는 거냐? 저자에게 죽은, 조조에게 죽은 형님의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거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거냐!?”
고개를 치켜 든 장비의 시퍼런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형님의 원수를 인정할 수 밖에 없고, 형님의 꿈을 짓밟은 이들을 긍정하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관우의 대답에 장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쥐던 장비는 천천히 손을 뻗어 창살을 잡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네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냐!! 뭘 원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냔 말이다!!”
“밑바닥에서부터 구하는 것이다. 관이, 나라가 구하지 못한 이들을 구하는 일이다.”
“뭐?”
얼빠진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장비를 향해 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조의 정권이 하는 일은 큰 것이다. 커다란 것을 다루며 커다란 정책을 펼친다. 하지만 그 커다란 정책 안에도 구멍은 있기 마련이지.”
“….”
“그 구멍을 메울 것이다. 밑바닥에서부터 할 것이다. 관의 힘을, 저들이 가진 권력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내 스스로, 나의 힘으로 할 것이다.”
그 말에 장비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유비와의 결의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관우와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혼자서 세상을 바꾸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했으니 결의를 하게 되고 천하를 노리게 된 것 아니었던가.
장비는 관우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미친놈. 그것이 가능할 것 같으냐?”
“사실 지금도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해낼 것이다.”
“네놈 혼자 뭘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겠다는 거냐?”
힘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부와 권력 없이는 움직이는 것 하나도 막힐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관우는 그 가시밭길을 걷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장비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겠다고? 하하… 이봐. 관우… 제정신이냐? 신이라도 될 생각이냐?”
관우의 말에 장비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힘들어 하고, 가장 괴로워하는 이들을 권력의 도움 없이 구한다.
나라에서조차 구하지 못한 이들을 구원하겠다.
그 미친 짓을 선택한 관우를 노려보며 장비는 누런 이를 드러내었다.
“네놈이 불가의 지장보살이라도 되겠다는 거냐?”
“필요하다면 지장보살이 아니라 나찰이라도 되겠다. 그것이 내가 가져야 할 것이고, 형님을 위한 길이기도 할테니까.”
관우의 대답에 장비는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그것이 비웃음이기는 하지만.
장비의 웃음에 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우습지?”
“하하하… 제 형도 버리고, 제 동생도 버리고. 결의마저 버린 놈이 구원자 노릇을 하겠다고? 아서라. 아서. 그냥 차라리 배신자로서 등 따숩고 배부르게 살아라. 그게 너에게 더 맞을거다.”
장비의 비웃음과 모욕에도 관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그를 바라보며 장비는 빠득 이를 갈았다.
“성공할 성 싶으냐!!”
“글쎄.”
“애초에 네놈이 하려는 행동은 위선이다!”
“안다. 하지만 위선이라 할지라도 선이며, 거짓된 정의라 할지라도 정의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내 근처에 있는 사람부터 구한다.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지?”
“하하!! 웃기지 마라. 네놈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 것 같나!”
“그러니 일단은…”
관우는 빙긋 웃은 후 장비를 보며 말했다.
“너부터 구해주마.”
“…뭐? 미친놈. 날 구하겠다고? 진유하를 죽이려 한 날 네놈이 어떻게 구하겠다는 거냐.”
“형님은 구하지 못했으니까. 너라도 구하려는거다.”
관우의 말에 장비는 입을 다물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장비를 마주하던 관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라. 반드시 너를 구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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