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55
*******
“어 음….”
이게 뭔 상황이냐.
장비가 입에서 사금파리를 꺼낸 것을 보았을 때 솔직히 말해서 난 좀 안심했다.
관우의 공은 장비를 처형하는 것이 아닌 태형으로 완화함으로써 해결되었다.
하지만 다시 덤벼든다면?
그렇다면 그를 제거할 수 있는 죽일 명분이 생긴다.
갑옷을 입은 것도, 무기를 든 것도 아닌데다가 태형을 다 맞은 장비라면 충분히 무장한 하후상 정도라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분명 봤다.
장비는 날 죽이겠다며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내가 아닌 관우에게 향해져 있었다.
또한 그가 달려오는 방향 역시 내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지만 마지막은 관우에게 몸을 비틀어버렸었다.
즉, 내가 아닌 관우를 노린 것이라는 거다.
이건 마치…
“…일부러 관우에게 죽으려 한 것 같군.”
“예?”
“흐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난 장비를 죽인 관우를 보았다.
그는 죽어버린 장비를 잡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형을 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죽이려 한 장비를 잡기 위해 병사들이 움직인다.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한 후 난 계속해서 관우를 바라보았다.
관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언월도를 본 하후상과 서황이 무기를 꽉 잡았다.
장비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가?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북장군.”
“말해.”
“…이번에도… 내가 공을 세운거요?”
“글쎄.”
천천히 몸을 돌린 관우는 자신의 피묻은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이번에는 좀 애매하다.
장비가 진심으로 날 죽이려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장비가 마지막에 외친 증오 섞인 외침은 분명히 나였으니까.
겉으로만 본다면 나를 죽이려 한 장비를 관우가 막고 그를 제거했으니 공을 세웠다고 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건 서로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그렇기에 난 나를 응시하는 관우에게 천천히 말할 수 있었다.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텐데.”
“….”
관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관우도 눈치챘군.
장비가 날 죽이려고 했다기보다는, 관우에게 죽으려고 했다는 것을 말이야.
무표정한 얼굴로 장비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관우는 내 뒤에 서 있는 관평을 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관평은 한걸음 나서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야 설마.
너 그만두려는 건 아니겠지?
제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렴.
난 은근한 불안감에 휩쌓인 채 그를 보았고 관평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장군님.”
“왜.”
“이번 전투에서 치룬 저의 공적을 반납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니구나.
괜히 쫄았네.
난 자리에 쪼그려 앉은 후 관평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은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그 공적을 반납할테니까 장비의 시체를 달라는거냐?”
아무리 처벌을 다 받았다고 하더라도 관인을 살해하려 한 죄는 쉽게 가라앉히기 힘들다.
적어도 몇년 이상은 얌전히 있어야 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태형을 받자마자 다시 죄를 저질렀다.
이정도면 충분히 중죄라고 할 수 있었고 아무리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시체를 처참하게 찢어 들판에 버려도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예.”
관평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 피식 웃었다.
“시체가지고 장난칠 생각 없어.”
뼈가 훤히 드러나 있는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날 죽일 일은 없다.
정신나간 놈들이 시체가지고 감성팔이 하면서 협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난 그정도로 미친 놈이 아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유하의 세계에서조차사람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내가 굳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
난 관평의 어깨를 꽉 잡아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나 관우를 보았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관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더 잘 안다.
그렇다면.
해라.
“관우.”
“…..”
“장비의 시체를 원하나?”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데려가. 관평. 수레와 도구, 그리고 병사를 내어줄테니까 관우와 함께 장비의 시체를 처리하도록. 장례를 치루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 그 제반 비용은 내가 낸다.”
본의 아니게 유비와 장비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생겼군.
내 말이 끝나자 관우는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장비의 시체를 안아 든 관우가 말없이 나가자 난 관평에게 손짓했다.
그가 다가오자 볼을 긁적거렸다.
내가 장례를 주도해 본 적이 없어서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네.
“왕릉만 제외하면 어디든지 써도 괜찮아. 지주(地主)가 뭐라고 떠들든 말든 신경쓰지마. 너의 주군은 나다. 너의 죄는 나의 것이고 너의 실수는 나의 실수다.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
“감사합니다.”
관인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백성의 땅을 빼앗을 수는 없다.
장비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서는 땅이 있어야 할텐데.
관우나 관평이 유주에 땅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결국은 암매장 뿐일텐데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돈이 있고 권력은 쓰라고 있는 거다.
그걸 뒀다가 뭐하겠나.
잘 쟁여뒀다가 국 끓여 먹을 생각은 없으니 필요할 때 써야지.
“호족들이나 명사들이 그걸 가지고 불만을 가지고 떠들면 내 이름을 얼마든지 팔아도 좋아. 뭣하면 승상의 이름까지도 인정해준다.”
관평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부하 중 하나다.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들어 줄 수 있는 만큼은 들어줘야 하는 것이 맞다.
난 관평의 어깨를 꽉 잡아주며 강하게 말했다.
“그러니 뻘짓하지 마라.”
장비의 죽음, 그리고 그의 시체를 매장하고 장례를 지내는데 문제가 생긴다고 사고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서로 다른 길을 걷겠다고 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연이라는 것이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쯤 관우도, 그리고 관평도 속이 많이 복잡할 거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실수를 범한다.
그 실수는 마찰에서 생겨나게 되는 만큼 마찰이 될 수 있는 계기는 모두 없애는 것이 맞다.
관평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 하후상을 보았다.
“하후상. 따라가.”
“알겠습니다.”
냉정하고 현명한 하후상이 있으면 문제가 될 소지는 줄어들겠지.
하후상이 허둥거리며 관평과 함께 병영으로 향하자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두 지금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둘러보며 난 천천히 말했다.
“뭐해? 상황 종료했으니까 일하자고. 오늘도 바쁠테니까.”
집무실에서 일감을 확인한다.
어제 있었던 축제의 결과와 상인들의 지원금을 확인하던 나는 날 지그시 응시하는 서복에게 물었다.
“뭐 할 말 있냐?”
“넌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응?”
“관우가 장비를 죽일 줄 알았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서복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비는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글쎄…”
나라고 해서 장비의 속을 알 수 있겠나.
하지만 장비의 말과 관우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대충 예측은 할 수 있었다.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결국은 천하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결의하고 세상에 나왔지.”
“응?”
“하지만 유비의 죽음으로 그 결의는 무너졌어.”
“그렇겠지.”
“태어난 시간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 것이다. 대부분 의형제들은 비슷한 맹세를 하지. 그건 너도 알지?”
서복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쓴웃음을 본 나 역시 쓰게 웃었다.
나와 서복, 그리고 방통.
우리 역시 비록 성도 다르고 피도 다르지만 우리는 형제나 같은 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형제는 아니고 의협에 사는 이들처럼 의형제의 맹세니 뭐니도 하지 않았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다?
그게 뭔 개소리야.
셋 중 하나가 엄한 놈한테 죽으면 피의 복수를 하고 죽은 놈이 못 누린 것을 다 누리며 남은 가족들을 돌볼 생각을 해야지 죽기는 왜 죽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보며 나 역시 피식 웃었다.
물론 처음부터 의형제가 되지 않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 참 웃겼었다.
의형제의 맹세를 하려면 술동이에 서로의 피를 나눠 섞은 후 그 술을 마셔야 했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나는 술을 못마셔서 술 대신 음료로 하자고 했고 서복은 부모님께 받은 몸에 어찌 쓸데없이 상처를 내냐며 피를 뽑는 것도 거절했었다.
방통은?
같은 날 죽기는 왜 죽냐며 버럭 화를 냈었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서로 짜증나서 의형제는 무슨 의형제냐며 다 때려치우고 각자 할 일 하러 갔고 감녕은 뭐 이런 것들이 있나 싶어하며 우리를 한심하게 보았었다.
당시에는 무지하게 짜증났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즐거운 추억에 불과했다.
이놈들이랑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결의는 무너졌고, 의형제의 맹세는 사라졌지.”
“그래서?”
“관우도, 장비도 유비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마음이 비어버린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채워야 살아갈 수 있어.”
“장비는 너에 대한 증오로, 관우는 이루지 못한 결의로 그 빈 마음을 채웠다는 건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장비와 다르게 관우가 선택한 길은 정말 힘든 길이야.”
세상을 바꾼다는 것.
천하를 구한다는 것.
이건 황제 하나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조조를 비롯한 조정의 신료들이 머리가 터지도록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해도 쉽게 할 수 없는 길이야. 그것을… 비록 관과 정책에 의해서 한번 걸러졌다고 하나 한 사람의 힘 만으로 도전한다는 것은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지.”
“흐음…”
“장비 역시 알고 있었을 거다. 날 죽여야 한다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하지만 장비는 결코 나를 용서하지 못할거고, 관우처럼 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었겠지. 그렇기에 관우에게 넘긴거라고 할 수 있어. 관우가 자신을 죽이게 함으로써 관우의 각오를 더욱 강하게 다지게 한 것이라고… 그 외에는 장비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네.”
“음…”
서복은 입을 다물었고 난 다 적은 죽간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이대로 처리하면 될 것 같고… 아무튼 장례 비용이 얼마나 나오려나?”
“진짜 대주려고?”
“응.”
“넌 진짜 속도 좋다. 어찌 됐든 너 죽이려고 한 놈인데 그놈의 장례비용을 대주고 싶어?”
질려하는 서복을 향해 웃었다.
내가 무슨 팔자 좋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아무런 생각 없이 장례비용을 대준다고 한 것이 아니다.
“일단 첫번째. 장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줌으로써 관우와 관평이 나에게 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두번째. 나를 죽이려 한 자를 후하게 제사지내어 줌으로써 내 관대함을 널리 알릴 수 있다.”
“퍽이나 관대하겠다.”
“워. 지배자는 최대한 자신이 관대할 때는 관대하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유주를 점령해야 하는 지금 이런 미담이 만들어진다면 백성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좀 더 쉬워질거야.
“그리고 죄를 저지른 이들도 공을 세운다면 그 죄를 탕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수하고 공을 세우려고 하겠지.”
서복의 말에 난 히죽 웃었다.
“맞아. 비용을 조금 지불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하는게 나아.”
내 말을 얌전히 들은 서복은 죽간을 확인한 후 그것을 접어 옆에 놓고 다른 죽간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은 내가 죽간을 펼치자 그가 물었다.
“세번째는?”
“없어. 두개가 다다.”
장비의 장례를 치뤄주는 이유는 저 두가지 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하더라도 결국은 네 사람 챙기기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관평이 은근히 마음이 약한 놈이잖아.”
아무리 다른 길을 간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관계는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다.
단번에 잘라낼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다른 길을 간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추억은 남아 있을 것이고 장례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회한으로 남을 수 있었다.
불이 꺼졌다고 하여 안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잔불이 남지 않도록 확실하게 짓밟아야지.
성대하게 장례를 치뤄주고 관우와 관평에게 남아 있는 아쉬움을 모두 털어내게 해주자.
난 서복을 향해 웃어보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어디가?”
“축제 결과 확인하고 문제점 점검하러 간다.”
나를 향해 서복은 웃으며 외쳤다.
“또 혼자가라? 응?”
“알았어. 알았어.”
잔소리쟁이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의 말대로 장비가 죽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를 노리는 이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당장 공손강의 후예나 선비, 오환에 있는 이들이 날 죽이려고 암살자를 보낼지 모르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혼자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서황과 주령은 이미 무기를 든 채 준비하고 있었다.
“어디든지 함께 가겠습니다.”
“따르지요.”
“너네가 이러니까 무섭다.”
든든하긴 하지만.
난 그들을 향해 피식 웃은 후 마당으로 나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장비의 피로 물들어 있던 마당은 벌써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보!”
“응?”
청이다.
청이가 왜?
갑옷을 제대로 차려 입고 무기까지 든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옆에 붙었다.
“저도 함께 갈게요.”
“음… 아니 좀 쉬지.”
“허도에서 북방에 갈때 말씀드렸죠?”
청이는 예쁜 손가락을 세운 후 내 코를 꾹 눌렀다.
“당신은 제가 지켜드릴거라고.”
“하아. 그래.”
청이라면 괜찮겠지.
서황과 주령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청이는 자신의 단창을 꽉 잡은 후 군인의 모습이 되어 말했다.
“반드시 제가 지켜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