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69
황제가?
뜬금없네.
그가 갑자기 왜 나를 찾지?
자리에 서서 생각하던 나는 피식 웃었다.
잘됐다.
오래간만에 얼굴도 보고 싶었으니까.
“폐하께서 왜 나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받은 명령은 그저 정북장군님께서 입궐하셔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난 하후상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의천검을 잡고 서황에게 말했다.
“서 교위님. 장군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알았네. 그럼 나는 정북부에 가 있도록 하지.”
서황은 곧장 정북부로 향했다.
행여나 황궁에서 날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라면 바로 정북부에서 황궁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하후상이 내 옆에 서자 내관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가시겠습니까?”
“그래야지. 폐하께서 찾으시는데.”
“그럼 바로 가시지요.”
내관이 앞장서서 걷자 하후상은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장군. 혹시…”
“아니. 황실에서 날 공격할 이유는 많지만 공격할 수는 없겠지.”
물론 나를 산채로 씹어먹고 싶겠지만 황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리고 황실이 오늘로 그 길고 긴 역사를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 아닌 이상 나에게 위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나 하나 잡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조조라면 모를까 나 잡아봤자 정북부만 좀 혼란에 빠지고 말거다.
그리고 황실은 제대로 털리겠지.
당장 허도의 장군부나 병영에 있는 병사들은 황제가 아닌 조조를 따르는 이들이다.
그리고 지금 허도에 머물고 있는 정북부 소속의 북방원정군과 진가의 사병이라 할 수 있는 흑귀대도 나를 따르는 이들이고.
당장 황실의 근위병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황제 입장에서는 나를 건드려봤자 이득은 커녕 손해만 있는 셈이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자.
내관과 함께 황궁에 도착한 나는 꽤나 호화스러워보이는 주변을 보며 감탄했다.
“황실의 돈이 꽤 많나보군.”
“승상께서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웃기고 있네.
실질적으로는 황실을 따르는 이들이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가려나?
동승, 그리고 복완의 죽음.
거기에 황보가가 멸문했고 주준은 고개를 돌렸다.
그 외에 정현이라든가 다른 명사들도 황실을 떠나 서주에 가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황실의 입장에서 돈이 나올 구석은 없을거다.
어디서 그 지원을 받고 있는 걸까?
일단 그 의문부터 해소하는게 우선이겠네.
꼬리를 잡게 되면 황실을 지원하는 이들을 찾을 수 있고 그들을 설득하든, 아니면 실각시켜 힘을 잃게 하든 해야 하니 말이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걸었을 때 내관이 발을 멈췄다.
황실의 정원을 걷어 근원정.
황제의 가족들이 머무는 궁이다.
그 앞에서 내관은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떠나갔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를 소지하신 채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흠…”
법이 그렇다.
근원정의 정문을 지나자마자 그 앞에 서 있던 근위병은 나에게 정중히 말을 걸었다.
내 눈을 마주하던 근위병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고 난 웃으며 말했다.
“자네. 이름은?”
“장운이라고 합니다. 장군.”
“그래. 내 검은 꽤 귀한 검이니 잘 보관해두도록 하게. 만약 없어진다면…”
“그럴리 있겠습니까.”
“그렇지? 상. 너도 맡겨.”
“허나 장군님.”
“법이 그래. 법이. 법은 지켜야지. 승상께서 국법을 수호하시는 분인데 말이야.”
황제의 앞에서 무기를 패용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상국, 혹은 구석을 받은 사람이나 왕위를 가지고 있는 이 정도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그의 앞에서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은 반역으로 취급될 수 있었기에 나는 웃으며 검을 풀어 근위병에게 넘겼고 하후상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의천검을 넘겼다.
“이 검은 조가의 명검이다. 만약 분실시에는… 정북부의 특등실에 널 넣어주지. 또한 너의 가족들은 모두 교사원에서 좋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고.”
“반드시 잘 보관해두겠습니다.”
하후상이 으르렁거리자 근위병은 딱딱히 굳은 얼굴로 힘겹게 대꾸했다.
쟤는 왜 이런데서 성질이냐.
그의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바깥보다 몇배는 더 좋아보이는 정원에 감탄했다.
“이정도로는 꾸미기도 힘들겠다.”
“진가도 이렇게 꾸며볼까요? 하후가도 이정도는 아니지만 정원을 잘 꾸몄습니다. 장군께서 원하신다면…”
“됐어. 내 아내들만 고생하지.”
가뜩이나 집안일 하고, 또 애들 가르치느라 바쁜 마누라들에게 일을 늘려 줄 필요는 없다.
거기에 나 같은 경우는 매번 임지가 바뀌는 터라 자주 거주지가 달라지는데 기껏 꾸며봤자 나중되면 관리하기도 난감해진다.
그냥 지금 상태가 제일 좋다.
하후상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원을 걸어간 나는 정원에 있는 정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황제를 발견했다.
황제의 앞에 있는 것은 대여섯살 정도 되어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금의를 입고 있는 그는 내가 다가오자 딱딱히 얼굴을 굳힌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날 노려보았다.
“태자마마. 신, 정북장군 진유하. 인사드리옵니다.”
여섯살 쯤 되어보이는, 얼굴에 고집과 나에 대한 적의가 꽤나 있어보이는 소년은 바로 헌제의 장남인 유풍 이었다.
내가 부복하며 인사하자 유풍은 인상을 쓰며 휙 고개를 돌렸다.
성질내지 마라.
비록 내가 네 어미를 유폐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안죽였잖냐.
뭐 어쨌든 그녀가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유풍이 나에게 적의를 보이는 이유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난 그가 화를 꾹 참는 것을 보며 웃었다.
“신수가 훤해보이십니다.”
이 녀석을 보니 조충이 떠오르는군.
그 녀석도 나이가 어린 주제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속이 참 깊고 현명했는데.
당장 나를 보고 죽일놈 살릴놈 떠들어대지 않는 것을 보니 자기 상황이 어떤지도 대충 알고 있는 듯 싶고.
난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태자마마께서 저를 이리도 위해주시니 당연히 좋아야겠지요.”
“그렇습니까.”
그는 휙 고개를 돌린 후 내관과 함께 정원에서 나갔다.
유풍이 떠나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자의 앞으로 향했다.
황제는 정자에 앉은 채 홀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폐하. 찾으셨다지요.”
“아아. 그래. 올라오게나.”
내 부름에 황제는 애써 여유를 가장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난 정자로 올라갔고 황제는 아까 전까지 유풍이 앉아 있던 자리를 권했다.
“앉게.”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별 것 아니야. 그저 북방 정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칭찬하고 싶었을 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황제는 꽤나 여유로운 태도였다.
내가 황실 근위병들을 총괄하는 봉군도위로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만약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여유로운거면 제정신이 아닌건데.
난 황제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는 바둑판을 정리한 채 물었다.
“어때? 한판 두겠는가?”
그의 말에 하후상을 보았다.
연회에 참석해야 하는 시간은 괜찮은가?
한시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는지 하후상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또 일이 있는지라.”
“바둑 한판이 그리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을텐데.”
“바둑두다가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잖습니까.”
“그런가. 그럼 간단하게 할 만한 무언가가 없을까…”
“오목으로 하지요.”
“…그건 또 뭔가?”
오목에 대해서는 모르는구만.
유협이 얼떨떨해하며 날 바라보자 나는 그에게 천천히 오목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방법에 대해서 전부 들은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린 후 돌을 들었다.
“일단 한번 해보면 되겠지.”
“그렇지요. 한번 해본다고 해서 죽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른 일들과 다르게 말입니다. 패배한다고 다 잃는 것도 아니고. 그저 놀이에 불과하잖습니까. 놀이.”
“하핫.”
황제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뭐, 다른 일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후.”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검은 돌을 만지작거리다가 툭 내뱉었다.
“뭐 좋네.”
바둑을 두자고 했다가 오목으로 전환하는데도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 말은 단순하게 바둑 두자고 나를 부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황제는 천원에 검은색 바둑돌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수는 어찌 할 생각인가.”
수가 누구더라.
천원에 있는 흑돌을 보던 나는 백돌을 들어 그 옆에 놓았다.
“수라면… 아. 폐 황후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끙.”
입술을 깨물며 그가 신음한다.
그런 그를 향해 난 여유롭게 웃었다.
“그건 제가 결정할 것이 아닙니다만. 승상부, 상서부, 그리고 승상께서 결정하실 일이겠지요. 저는 정북장군입니다. 그저 북방방면의 외정 사령관입니다만.”
내 대답에 황제는 피식,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흑돌에 대각선으로 걸쳐 백돌을 두자 그는 백돌의 머리 부분을 흑돌로 막았다.
“허나 자네라면 충분히 수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
“저를 너무 높게 보시는군요.”
그의 말대로 처분을 결정하는데 어느정도는 힘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느정도에 불과하다.
좀 과하게 조조나 승상부, 상서부에 압박을 넣는다면 법도를 어긴 복황후를 살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동귀비를 살리는데 힘을 쓴 것은 자네가 아닌가?”
“아닌데요.”
나 아니다.
조조가 황족들이 움직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살린 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녀를 살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어쨌든 내 아내일세.”
“그렇겠지요.”
“또한 풍이의 어미이기도 하고.”
“그렇죠.”
“그런 그녀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 잘못되었나?”
“아니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만.”
대답 한번에 돌 한번씩.
황제와 나는 천천히 돌을 두었다.
그래도 확실히 바보는 아니군.
한번 설명해 주었을 뿐인데 황제는 꽤나 내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원이 참 좋습니다.”
“뭐?”
“정원이요.”
백돌을 놓은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정말 좋은 정원이다.
기화가 많고 요초가 널려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말하자 황제는 어리둥절해하며 날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과거 낙양에 있던 황궁의 정원도 이정도였겠지요?”
“…더 좋았지.”
“아. 그렇습니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자 황제는 살짝 수그러진 어조로 대답했다.
그런 그를 향해 히죽 웃은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때 당시 저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버님도 그때는 그저 일개 현의 현장이었지요. 당연히 황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
“천도를 했을 때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장안이었지요? 장안은 어떻습니까?”
“큭.”
황제에게 있어서 장안은 좋은 추억따위는 전혀 없을 것이다.
기껏 동탁이 죽었지만 결국 이각과 곽사에게 잡혀 끔찍한 생활만을 이어나갔을 테니까.
“장안에 있는 황궁의 정원도 이정도는 됩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글쎄요. 그냥 사람은 뭐랄까.”
백돌을 놓았다.
네개의 돌이 완성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자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은 비유에 불과하다.
동탁에게 압박받을 때.
이각에게 핍박받을 때.
그때 너의 생활은 어땠지?
그때 너의 삶은 어땠지?
난 그를 무덤덤한 눈으로 마주했고 황제는 나를 노려보며 흑돌을 꽉 쥐었다.
“자네…”
“뭐라고 해야하나. 저는 말입니다.”
황제는 바둑판의 좌귀.
지금 필사적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앙이 아닌 동 떨어진 좌귀에 흑돌을 가져다 놓았다.
그것을 보며 난 다섯개의 백돌을 만들어낸 후 천천히 말했다.
“가끔씩은 동탁이나 이각이 부럽고, 또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황제의 눈이 떨린다.
그를 마주하며 난 빙긋 웃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동탁.
천하의 역적이라는 이각.
그들을 부러워하고 존경스러워하는 이유?
별 것 없다.
그저…
주제파악 못하고 날뛰는 네놈을 뒷 생각 안하고 짓밟아 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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