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79
좌풍익에서 허도로 왔을 때 조비는 조가로 돌아가는 대신 황실 근위부에 마련된 숙소로 들어갔다.
비록 자리를 오랫동안 비우기는 했지만 자신은 오관중랑장이었다.
그렇다면 주어진 숙소는 사용해야 하는 법.
그동안 미뤄 둔 오관중랑장의 업무를 확인한 후 그는 곧장 진가로 향했다.
진가의 앞에서 진유하가 오기를 기다리던 조비는 그가 오자 그에게 제안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앵속을 이용한다면 북방을 제대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유하의 반응은 그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그 역시 앵속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이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 처럼 보이던 사람이 거절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포기했다.
또한 그렇기에 안심했다.
최소한 진유하가 막장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후의 수단이 손에 쥐어졌으니 말이다.
꽤 많은 양의 앵속을 그에게 넘기게 되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그 앵속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으니까.
조비는 웃었다.
어쨌든 그는 강대하지만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적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좀 더 배워보도록 하자.
“하지만 아쉽군.”
진유하를 설득하기 위해 가져갔던 앵속은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이미 그것을 알고, 또 연구를 시작했을 줄이야.
자신보다 항상 몇걸음이나 앞서 있는 그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그만큼 의욕은 타올랐다.
그래.
나의 적이 되려면 이정도는 되어야지.
자신이 성장함에 따라 진유하라는 거대한 산이 얼마나 위대한지 점점 알게 된 조비는 미소지었다.
그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을 생각하고 만족스러워 했을 때 조비는 자신의 숙소 앞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
조비는 자신의 검을 잡았다.
누군가가 안에 있다.
그가 긴장하며 검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조비는 당황했다.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관중랑장.”
“하… 이거 참.”
조비는 웃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왕 시중 아니시오.”
왕충이 자신을 찾을 줄이야.
그를 마주하던 조비가 자리에 앉자 왕충은 바로 물었다.
“정혼장에 대해서 모르는 것입니까? 혹여 승상께서…”
“황녀 전하와의 혼인 말씀이십니까? 압니다.”
고작 그깟 것을 물으러 온 것인가?
자신의 혼인에 대해서 조조에게 물은 적이 있었으나 조조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 역시도 대답을 미뤄두었다.
이런 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결혼은 가문의 일.
특히나 황족과의 결혼은 더욱 중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번 결혼에 정략의 의미가 강한 이상 자신이 함부로 판단하여 한다 하지 않는다를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특히나 황실을 경멸하는 조비의 입장에서는 만약 조조가 강권하지 않는 이상 거절할 생각 밖에 없었다.
혼담은 거절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치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 혼담은 명분과 위치만으로는 나라 제일이라 할 수 있는 황제가 직접 보낸 것이다.
그런만큼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조비는 아무런 답변도 보내지 않은 상태였었다.
그걸 이제와서 이야기한다?
조비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역시 내 생각대로였군.’
황제가 자신에게 혼담을 보낸 이유가 자신이 생각했던대로라는 것에 조비는 웃었다.
얄팍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진유하처럼 좀 크게 보든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형처럼 대범하게 나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찌그러져 있든가.
이런 사소한 수작만을 중시하는 황가에 또다시 경멸의 감정이 생긴 조비는 왕충을 슬쩍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었다.
“그런데 왜 답변이 없으십니까?”
“좌풍익으로서의 직무가 벅찼기 때문이지요.”
조비가 시큰둥히 대답하자 왕충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중랑장께서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황실은 큰 문제가 생겼소.”
“무슨 문제? 아아. 진 장군이 봉군도위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왕충의 말에 조비는 피식 웃었다.
자신 역시 오관중랑장.
황실 소속의 장수다.
조가가 아닌 근위부의 숙소에 머무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듣지 못한 황실의 분위기, 그리고 전체적인 소문을 듣기 위해서였다.
근위부의 숙소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소문들 중에 재밌는 것이 있었다.
북방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정북장군이 봉군도위직을 겸임한다는 이야기.
황제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겠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즐거웠다.
아무리 진유하가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이라지만 그래도 황실이라는 개같은 놈들을 완전히 짓밟을 기회가 된 것이니까.
재밌는 이야기다.
그가 봉군도위직을 가지게 된다면 황실은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무너져내릴 것이다.
어쩜 일이 이렇게 재밌게 될까.
진유하는 황실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런 그가 황실 근위부를 통솔하는 봉군도위직에 오른다면 황실의 힘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어쨌든 모든 출입부터 시작해서 황실의 인물들이 밖의 인물들과 만나는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자리이니 말이다.
황실 내부에 이제 조조를 상대할 만한 여력따위는 없다.
동승, 그리고 황보숭, 마지막으로 복완이 실각하고 파멸하게 되었고 허도에 있던 황족들의 대부분이 힘을 잃었다.
이제 황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깥과의 줄마저도 모두 잘려버린다면 황실은 말 그대로 허수아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돈이 없다면 사람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은 좌풍익으로 근무하며 충분히 깨닫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조비는 빙긋 웃었고 왕충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웃음이 나오시오?”
“안 나올 것은 뭡니까?”
“끙… 중랑장.”
“말씀하시지요.”
탁자에 놓여져 있는 술을 들어 한모금 마신 조비가 웃으며 말하자 왕충은 담담히 말했다.
“승상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계시지 않소?”
“그렇다면?”
“폐하께선 중랑장을 아주 좋게 보고 있다오.”
“하.”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황제가 자신을 좋게 본다.
그렇다면 황제를 손에 넣고 잘만 움직이면 조앙을 누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왕충의 한마디만으로 상황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던 조비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서?”
“내일. 우리는 진유하가 봉군도위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오. 그리고 당신을 추천하겠소.”
“나를 추천한다라…”
자신의 계획은 일단 북방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북방에서 힘을 쌓는 것이고.
봉군도위직을 가진다는 것은 지금 바로 진유하 뿐만 아니라 조앙과 전면전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런 미친 짓 따위 하겠나.
조앙이나 진유하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빈약한 존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이상 조비는 왕충의 제안에 거절하려고 하려다가 피식 웃었다.
“흐음… 그래서?”
“만약 중랑장께서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중랑장이 좀 더 앞서 나갈 수 있게 지원해주겠소.”
“어차피 더 이상 황실에 힘은 없는 것 아닙니까?”
“아직은 남아 있소.”
“남아 있다? 당장 동승도, 복완도, 그리고 황보가도 없는데 무슨. 혹여 이제 거의 힘을 잃다시피한 황족들을 이야기하는 거요?”
“아직 힘을 가지고 있는 황족은 있소.”
“…..”
왕충의 말에 조비는 눈을 감았다.
아직 힘을 가진 황족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유망지의 일 이후 대부분 힘있는 황족들은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는데.
재산을 몰수당하고 봉지가 압류되어 관의 것이 되었는데?
황실을 지원할 정도로 힘이 있는 이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가?
조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구요?”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말을 한다면, 그리고 내일 우리가 제안하는 봉군도위직을 수락한다면 말해드리겠소. 어떻소?”
솔직히 말하자면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다.
하지만 기분나쁜 제안이기도 하고.
조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소.”
“좋군. 그대의 충심. 폐하께서는 기억하고 계실 것이오.”
왕충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조비와 악수를 하고 나갔다.
그가 나가자 조비는 생각했다.
과연 누구일까.
누가 황제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일까.
“…뭐. 일은 재밌게 되겠군.”
다음날이 되고 예정대로 진유하의 봉군도위직 부임이 있을 때 왕충과 한빈이 나서서 반대했다.
그리고 왕충은 자신에게 봉군도위직을 추천했다.
그때까지도 조비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누구지?’
단상으로 나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보는 이들.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던 조비는 쓰게 웃었다.
알 수 없다.
자신을 보는 시선에 기대감보다는 의문, 그리고 불쾌함만 있을 뿐이다.
‘오관중랑장이 되었을 때와 비슷하군.’
합당한 공적 없이 직위가 올라가봐야 결국 얻는 것은 무관들의 적대 뿐이다.
또 좌풍익의 자리를 겸임하며 간신히 얻은 사람들의 호의가 이번 한번의 결정으로 모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선택을 하자.
봉군도위가 된다면 황실의 근위병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리 되면 무관들의 호응 뿐만 아니라 문관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없겠지.
그렇다면 이미 답은 나온 것 아닌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을 때 조조가 그에게 물었다.
“오관중랑장은 어찌 생각하는가?”
“왕 시중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술렁거림이 보인다.
그래.
지금은 무리라 이거군.
그렇겠지.
봉군도위는 사정장군 수준의 등위다.
좌풍익을 복원한 정도의 공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쯤은 안다.
지금은 영제때와는 다른 시기다.
실적이 없고, 공훈이 없이 가문의 힘만으로 높은 관직을 얻는 시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흐름은 따라주자.
“그렇다면. 그대에게 봉군도위직을 맡긴다면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조조의 질문.
이것 역시 조조가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조비는 여유롭게 웃으며 왕충을 보았다.
그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
다시 고개를 돌린 조비는 조조의 뒤에 있는 황제를 보았다.
황제 역시 자신이 봉군도위직을 맡는 것을 긍정한다.
너희들.
꽤나 즐거워보이는데.
그 웃음을 이제.
“아니요. 저에게는 아직 봉군도위직은 무리입니다. 경험도 일천한데다가 합당한 공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과거 선제때 있었던 불합리한 인사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 역시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짓밟아주지.
자신이 거절한 순간 황제와 왕충의 얼굴이 파랗게 물드는 것을 보며 조비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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