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91
직위로 따진다면 승상부주의 대리 업무를 하고 있는 양 사형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은 봉군도위인 나, 다음이 정북장군인 서복과 집금오인 가 사형 순이지만 지금은 사적인 관계가 우선인 상황이다.
내 개인적인 도움 요청으로 그들이 온 셈이니 말이다.
가장 상석에 앉은 가 사형은 우리를 죽 둘러 본 후 빙긋 웃었다.
“자네들이 이렇게 나라의 중임을 맡은 것을 보면 사부님께서도 기뻐하실 걸세. 사제. 사부님을 만났다고 했었지?”
“아. 예. 연락 받으셨습니까?”
북방에서 사부님을 만나고 그에 대한 연락을 전부 돌렸었다.
그 서찰을 받고도 별다른 말이 없길래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가 사형이 언급하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만간 형주로 가신다고 하니 나중에 동문회라도 한번 하는게 낫겠군.”
재밌겠다.
수경원 동문들끼리 모여서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여차하면 아직 임관하지 않고 지역 명사로만 활동하는 사람들을 오나 파촉에 보내서 그곳에서 첩자 역을 부탁해볼까?
가 사형은 훈훈하게 웃으며 말한 뒤 양 사형에게 눈을 돌렸다.
“양 사제. 이야기는 들었어. 승상부주의 대리라며?”
“아직 부족합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해하던 양 사형도 가 사형에게는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를 향해 양 사형은 히죽 웃었다.
“자네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걸세. 내 나중에 병주목이 되거든 자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잘 부탁하겠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이것이 학연의 힘이다!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얼마나 보기 좋냐.
내가 훈훈하게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을 때 서복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도 가 사형을 지원하는 것에 힘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사제들이 있어서 이 가후. 그저 뿌듯할 뿐이구만. 하하! 좋네. 좋아. 그보다 진 사제. 우리를 이렇게 불러 모은 이유는… 시중부의 업무 때문이겠지?”
“예. 사형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동문 좋다는게 뭡니까? 사형들께서 모자란 사제를 조금씩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양 사형과 서복은 이미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지금 가장 시간이 남는 것은 역시 가 사형이다.
가 사형에게 나는 고개를 숙였고 그는 짧게 신음했다.
“흐음…”
조조에 의해서 우부풍에서 병주목으로 승진했다지만 아직 부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만이라도 괜찮으니 가 사형이 나를 좀 도와준다면 내가 부담없이 움직일 수 있다.
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가 사형은 어깨를 으쓱였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네만. 좋네. 내 힘 닿는데까지는 도와주지.”
좋았어!
가 사형의 대답에 기뻐하던 나는 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허나 그리 오래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나는 일단은 출신을 숨기고 있는 입장이야. 내가 자네를 돕는 것에 대한 명분은 시간이 남기 때문에라는 것에 불과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수경원 출신임을 숨기고 있는 가 사형이다.
그런만큼 양 사형이나 서복과 다르게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도울 수 없단는 것.
그렇다면 그가 나를 도울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그는 병주목으로 부임하기 전의 대기기간에 불과했다.
그 대기기간을 가진 이유도 우부풍으로 가 있으며 하지 못한 교사원의 업무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교사원 업무를 보며 시중부 업무를 보는 것이 부담이 되겠지만, 그래도 가 사형이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그가 한다고 하면 하는 것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 정도는 가능하십니까?”
“그정도야 어떻게든 시간을 내볼 수 있을걸세. 물론 교사원 업무도 같이 해야겠지만… 어찌보면 차라리 그게 낫겠군. 자네가 나에게 시중부를 맡아달라는 것은 단순히 시중부의 업무를 보라는 것은 아닐 것 아닌가.”
“하하. 역시 사형은 못 당하겠군요.”
가 사형은 집금오이며 우부풍이고, 또 교사원 소속이다.
교사원은 감찰 업무를 보는 곳.
그런만큼 시중부의 검열과 감찰을 섞으면 좀 더 제대로 털 수 있다.
아주 그냥 검열의 모범사례가 뭔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각인을 시켜버리자.
“쯧쯧. 사제. 속이 훤히 보이네. 아무튼 가 사형이 돕는다면 우리들도 좀 더 편해질 수 있겠구만. 안그래도 시중부 쪽에서 귀찮게 구는 것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쌓여 있는 문제를 싸그리 처리해버려야겠어.”
승상부주 대행으로 있으며 이래저래 불만이 많았던 양 사형은 기분 좋게 웃었다.
지금까지는 순욱이 시중부의 편의를 꽤 많이 봐 주었었지.
하지만 이젠 그딴 것도 없다.
“가 사형이 본격적으로 털려면 제대로 털 수 있겠지. 사형. 부탁드립니다.”
서복이 웃으며 말하자 가 사형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 사형의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이각 때에도 거의 혼자서 장안의 살림을 도맡아 했고 황실과 이각의 사이를 교묘하게 조율하여 이각이 함부로 황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할 정도의 정치적인 능력과 지략을 갖춘 사람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부풍을 혼자서 재건할 수 있을 정도고.
“그나저나 시중부의 업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근신을 당한 시중부의 관리들이 문제겠군. 그들에 대한 관리는 어찌 하지?”
가 사형이 시중부에서 본격적으로 일한다면 시중부의 중직에 있던 관리들의 부재로 생길 업무적 손실은 최대한 줄일 수 있을거다.
거기에 양 사형과 서복이 지원한다면 혼란은 금세 줄어들겠지.
아마 시중부에서는 이리 생각할거다.
그동안 무관 쪽의 일만 하던 내가 과연 문관으로서 제대로 업무수행을 할 수 있을지.
얼마 못가 항복하고 근신하고 있는 시중부 관리들을 다시 불러올 것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시중부에서는 불안감을 느끼고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것을 잡아내야 한다.
“가 사형. 양 사형. 교사원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딱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서주의 교사원 소속이라… 허도에서 쓸 만한 인재는 몇 없네. 가 사형. 사형은 있겠지요?”
서복의 말대로 시중부를 원할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신경써야 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근신을 당하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문제지.
허도로 복귀한 후 교사원의 업무를 시작한 가 사형이다.
그런만큼 그에게 할당된 인원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고 내 생각대로 가 사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교사원주께서도 다른 임무때문에 당분간은 장군부쪽 일만 하셔야 한다고 하더군. 임시 교사원주 정도의 권한은 있으니 걱정말게.”
이왕이면 이번 검열에서 왕충과 한빈 등 내게 적대하는 놈들의 허물이 발견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의 허물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수로는 연대책임과 최고 상관으로서 책임 부실이라는 이유로 무기한 근신을 때려버리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좋은 성과라고 할 수 있고 아쉬울 것은 없었다.
어쨌든 시중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나다.
왕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인맥을 총 동원한다면 시중부를 터는 일 따위.
어렵지 않다.
옛부터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은 없다지 않은가.
“내 호위도 생각해야 하니 말이야. 진 사제. 자네가 조금 피곤하겠어.”
황궁에 출입할 인원을 허가하고 그들에 대한 점검 및 검열을 하는 것은 내 임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황궁에 출입할 인원들에 대한 담당을 하는 내 일이 늘어나겠지만 이정도야 뭐.
당분간 집에는 다 들어갔군.
“사형들과 동기가 고생하는데 저라고 편하게 있을 수는 없지요.”
그럼 시중부의 문제는 끝났다고 보면 되는 것이군.
남은 것은 근위군을 단련하는 것과 황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야. 서복.”
“왜?”
“병사들 좀 쓴다.”
“뭐 하려고?”
그의 질문에 난 씩 웃었다.
“시중부도 일단 내 손아귀에 들어 온 셈이니까. 황궁 내에 남아도는 부지를 좀 이용해야지.”
“뭐 하려고?”
“훈련장 만들려고 한다. 죽어라 육체훈련체조만 시킬 수는 없잖아?”
황궁의 토지 관리는 시중부의 업무다.
시중부의 업무를 내가 보는 이상 황궁의 남는 땅을 어떻게 쓰는지는 내가 결정할 일.
내 말에 양 사형과 서복은 피식 웃었다.
양 사형과 서복에게 나머지를 부탁한 후 난 시중부 시중의 집무실에 앉아 있는 가 사형을 보았다.
놀라운 집중력이다.
빠르게 죽간을 흝어보며 정리할 것을 적은 그는 피식 웃었다.
“황실 내부로 들어가는 자금의 흐름이 좀 궁금했는데 마침 잘 됐군.”
“사형.”
“왜?”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만.”
“하하. 물어보게나.”
“황제가 왜 사형을 보고 그렇게 겁에 질렸던 겁니까?”
“음? 하하하… 별 걸 다 묻는군.”
가 사형은 능청맞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대답하지 않으려는 건가?
그를 지그시 바라보자 가 사형은 볼을 긁적거리며 난처한 듯 웃었다.
“이각의 밑에 있을 때 그와 이래저래 좀 마찰이 있었지.”
“마찰이요?”
“음. 뭐랄까… 한과 황실을 위함이라는 빌미로 여러가지를 빼앗었거든.”
“여러가지를… 뭘요?”
“일단 황실의 자산이나 군대, 병기라든가… 귀인이라든가.”
“황제가 가만히 있던가요?”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만으로도 저 지랄을 하는데?
가 사형은 킬킬 웃었다.
“당연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았지. 그때는 서원군과 근위군 모두가 황실의 힘이었거든. 지금보다는 황실의 상황이 오히려 좋았을 수도 있어.”
“그럼…?”
“아마 그때 황제가 자신의 모든 힘을 이끌고 이각과 싸웠다면 적어도 양패구상은 할 수 있었겠지. 개중에는 그것을 제안한 이들도 좀 있었고.”
양패구상은 커녕 그냥 똥망했을 것 같은데.
가 사형은 즐겁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그것을 좀 막아내고 힘을 깍아내어줬을 뿐이네. 사제. 정적은 항상 여기저기에 있는 법이야.”
“….”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황제는 꽤나 나를 두려워하더군.”
“그렇… 군요.”
“황제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척이나 싫을거야. 이각에게서 간신히 탈출했지만… 큭큭큭. 늑대의 주둥이에서 탈출했는데 들어간 곳이 결국 호랑이 굴이라니. 그것을 인도하는 일이 어찌나 재밌던지.”
진짜 성격 한번 고약하네.
굉장히 즐거워하는 가 사형을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가 사형은 한 황실을 증오한다.
아니, 한 황실 뿐만 아니라 이 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산산히 찢어발겨져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사람인 만큼 황제는 본능적으로 가 사형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사형. 부탁하겠습니다.”
“그래. 상서부와 승상부에서의 지원은 내일 쯤 오는 건가?”
“예.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예산 부분은…”
아까 양 사형과 서복이 있을 때 말했지만 근위군에 들어가는 예산은 이미 삭감되어 정북부로 향해지기로 되어 있었다.
즉 지금 개처럼 구르는 근위군에게 주어지는 월봉도 내가 조정할 수 있다는 거지.
가 사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왕 조정하는 예산안. 내가 좀 더 거들어도 되겠나?”
“예?”
“자금줄을 좀 더 명확히 보고 싶어서 말이네. 황실에서 숨겨 놓은 뒷주머니도 탈탈 털어보게. 그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추가적인 자금을 받는지가 궁금했어. 그리고…”
뭔가 더 말하려던 가 사형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이건 확실치 않으니. 아무튼 나에게 맡겨두게.”
기회가 되었다 싶으니 아주 제대로 물어뜯는구나.
가 사형은 무척이나 즐거워했고 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요.”
더 이상 황실의 움직임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마땅치 않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자.
가 사형이라면 제대로 황실을 뜯어버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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