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99
상황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결국 정예병들을 모두 제거하는데 성공한 갈중은 어찌할바를 몰라하는 이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진정한 명을 따르는 것이다!!”
“훌륭하군.”
“폐하. 모시겠습니다.”
갈중은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 말한 후 힐끔 진일과 양경, 주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여전히 부복하고 있을 뿐이다.
갈중은 한숨을 내쉰 후 진일에게 걸어갔다.
“진 형님. 잠깐 얘기 좀 합시다.”
“딱히 할 말은 없다.”
“형님. 이러시깁니까?”
“난 할 말 없다.”
“형님의 아버님이신 진 상서령께서도 황가를 위해 일했습니다! 진정한 충신의 가문인 진가의 사람이 이러시깁니까!?”
“충신의 가문이라…”
“형님. 형님이 그동안 어떤 핍박을 받았는지는 저도 압니다. 그러니 이제 형님께서 그 오명을 벗어던져야지요! 형님이 나서시면 저들도…”
갈중이 설득하려 하자 황제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진 도위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그래… 부친께서는 당고의 금때 죽은 진번이고.”
“….”
황제의 입에서 진번의 이름이 나오자 진일은 주먹을 부서져라 쥐었다.
“내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버님께 들었다네.”
“…아버님께… 입니까.”
“그래.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하더군. 진정한 충신이며 훌륭한 사람이었지. 그런 사람이 그리 가버린 것이 아쉽구만.”
“….”
“자네 부친이 하고자 한 일은 당시 권세를 누리던 환관인 조절을 쓰러트리기 위함이었다네. 그리고… 조절은 조조의 증조부이지.”
유협은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진일의 바로 앞으로 간 황제는 그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다시 한번 그의 충심을 나에게 보여주게. 진 상서령이 실패했던 일은 자네의 손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네. 자. 일어나게. 그리고 함께…”
황제의 말에 진일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를 마주하던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려 할 때 진일은 빠르게 검을 뽑았다.
“무슨!?”
“폐하. 잠시 조용히 해주십시요.”
황제의 목에 검이 겨눠진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황했다.
갈중과 갈중을 따르는 이들은 무기를 들었지만 양경과 주민은 어찌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뭐하는거야!! 진 형님을 잡아! 끌어내! 폐하의 안위를 살펴라!!”
당황한 갈중이 다급히 외쳤지만 양경과 주민은 차마 검을 뽑을 수 없었다.
한번 얼굴을 보기도 힘든 황제보다는 항상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진일이 좀 더 친한 것이다.
“진 형님!”
이각에게서 황제를 데리고 탈출하던 임무를 함께 맡았었던 주민은 더욱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어째서 진일이 이렇게 나온단 말인가.
주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폐하께 검을 들이대는 짓은 역적들이나 하는 짓이요!! 계속 그럴거요!? 형님은…!!”
“폐하.”
“뭐 하는 짓이냐. 진일. 당장 검을 치워라. 네 부친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이냐?”
황제를 마주하며 진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못다한 일을 제가 마무리 지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
“항상 그렇습니다.”
진일의 목소리에 점점 감정이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감정이 들어간다.
그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눈치챘다.
그 감정은 바로 분노였다.
“힘 있으신 분들은 항상 그리 말씀하시지요. 나라를 위함이라고, 이치를 바로 세움이라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진일은 차가운 눈으로 황제를 마주했다.
목에 칼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아무렇지 않아보였고 그것에 진일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으로써 희생되는 이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너무 흥분한 것…”
“전혀 흥분하지 않았어!!”
진일의 일갈에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이 살에 작은 상처를 낸다.
하얀 목에서 흐르는 피에 모두가 대경하여 무기를 잡았다.
하지만 진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없었는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각에게서 탈출할때도 폐하께서는 폐하의 안위를 위해서 많이도 버리셨지요.”
“그건…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
이각의 군을 막아내기 위한 근위군들이 싸우는 동안 황제는 도망쳤다.
가는 길에 만난 도적들을 막기 위해 궁녀들이 손을 잡고 그들을 막아내는 동안 황제는 도망쳤다.
수로를 통해 황제를 피신시키는 과정에서 쫓아오는 이각군을 피하기 위해 황제를 지키려던 많은 관리들이 물에 뛰어들었다.
끝까지 황제를 막으려고 하던 이들 중 간신히 살아남아 배에 타지 못한 채 수로에 떠내려오던 이들이 살아남 위해 배를 잡은 이들을 동승은 황제의 안위를 위함이라며 그들의 손을 창으로 찔러 떨어트렸다.
이렇기 때문에.
저렇기 때문에.
많은 이유가 있었다.
천하는 황제의 것이다.
황실의 안위와 위엄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내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고, 또 지불하도록 하지.”
“아버지를 잃은 이들은? 남편을 잃은 이들은? 동생을, 형을 잃은 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네.”
황제의 말에 진일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 어쩔 수 없는 희생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한번 쯤은 여쭙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것이… 그토록 가치가 있어 모든 것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이었습니까?”
진일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자 갈중은 이를 갈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역적 주제에!! 감히!!”
갈중이 달려들었을 때 양경이 무기를 뽑았다.
그의 공격을 막아낸 양경은 고개를 돌려 진일을 보고 소리쳤다.
“진 형님!! 그만하십시요!!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그 분은 폐하입니다!”
자신을 막는 양경을 힘껏 밀쳐낸 갈중이 다시 창을 휘둘렀지만 양경은 그것을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미친놈!! 역적을 도우려는 거냐!”
“진 형님이 누구보다 충신이라는 것은 내가 안다!! 주민! 너도 도와!! 형님을 빨리!! 지금 형님은 그저 흥분하셨을 뿐이다!”
이미 황제의 몸에 상처를 냈다.
늦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경은 진일을 살리고 싶었다.
“주민!!”
“젠장! 형님! 그만하시우!! 형님답지 않수!!”
황제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이들이 끔찍하게 죽었다.
그 피난길.
고난과 고통만이 가득했던 피난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할 새도 없이 허도에서도 많은 이들이 죽었다.
황제를 위함이라는 이유로 동승과 함께 죽었다.
황제를 위함이라는 이유로 복완과 함께 죽었다.
그때마다 생각했었다.
과연 그를 지키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명령을, 정의를 따르기 위해서 그들을 도와 죽은 병사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 가족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반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왜! 왜! 왜 우리가 희생되어야 합니까! 왜!! 그놈의 정의가 뭔데! 그놈의 이치가 뭔데!! 도대체 황실에서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는데 우리가!!”
진일의 말은 충심을 부정하는 말이다.
갈중은 이를 갈았다.
대단한 충신의 아들이 역적이 되었다는 것보다 화가 나는 것은 진일 때문에 여기서 너무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었다.
“죽엇!!”
황제가 있지만 자신의 실력이라면 괜찮을거다.
평소 진일과의 대련에서도 자신이 항상 이겼었다.
양경을 힘으로 밀어버린 갈중은 그가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날아 온 한대의 화살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화살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그의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날 정도다.
갑옷마저도 꿰뚫어 버릴 정도의 힘이 실린 화살.
황제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진일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화살이 날아 온 곳을 보았을 때 그곳에는 문관 한명과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젠장.”
흑귀대와 백귀대다.
통일되지 않은 기병들을 들고 있는 흑귀대.
그리고 강노로 무장한 백귀대.
백귀대의 강노가 자신들에게 향해져 있을 때 문관은 천천히 말했다.
“잘 말했다. 진일.”
“…당신은.”
“그것을 위해서 희생할 필요가 없지. 충성이라는 것은 희생을 시키기 위해서 얻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가후!!!”
황제의 얼굴에 공포와 분노가 섞인다.
그런 그를 향해 씩 웃은 가후가 손을 들었을 때 백귀대는 장전된 강노를 들어 갈중과 같은 편에 서 있던 이들에게 쏘았다.
망설임따위는 없다.
한차례 쏘아진 강노의 화살만으로 대열이 무너진다.
방패도 소용없다.
이정도로 지근거리에서 쏘아진다면 방패나 갑옷으로도 쉽게 막을 수 없는 것이 강노의 화살이다.
한번의 공격으로 그들이 고통과 괴로움에 비명을 내지르자 가후는 차분히 말했다.
“가서 폐하를 모시게나.”
“예.”
기병을 든 흑귀대들과 함께 직검을 든 사내가 나선다.
장합.
흑귀대를 이끄는 강한 무장이 어깨를 가볍게 풀며 걸어오자 양경과 주민은 고민했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군을 지켜야 할까?
허나 명령을 위반한 것은 자신들 역시 마찬가지다.
근위군의 임무는 운현궁을 지키는 것.
그것을 어긴 것이기에 그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장합과 흑귀대는 그들을 그냥 지나칠 뿐 이었다.
“진 도위.”
“….”
“검을 내려라.”
“…저는.”
“일단 내려. 네 처분은 봉군도위와 집금오께서 하실 것이다.”
장합의 싸늘한 말에 진일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황제가 희생을 강요한 탓에 수십년간 쌓여 온 의문과 분노가 터져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걱정이 밀려온다.
어찌 되었든 이자는 황제다.
황제의 몸에 상처를 낸 자신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진일이 눈을 꼭 감았을 때 뒷짐을 지고있던 가후가 걸어왔다.
그는 진일의 어깨를 잡으며 빙긋 웃었다.
“자네와 같은 사람을 원했어.”
“…예?”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그것이 있어야 파격이 가능한 법이야.”
“….”
진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작게 고개를 숙이자 가후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몇번 두드린 후 파랗게 질려 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 어딜 그리 급히 가시려고 이렇게 나서셨습니까?”
“큭…”
“어딘가 가실 것이라면.”
가후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장합과 흑귀대가 백귀대의 강노로 고통받으며 쓰러져 있는 근위군들을 죽여나간다.
훈련때에는 그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농담도 하던 흑귀대다.
그런 흑귀대가 전투에 들어선 순간 훈련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무서움을 보이고 있다.
한때 자신들의 가르침을 받고, 또 훈련을 받던 근위군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무시하며 철저하게 죽여나간다.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고, 머리를 쪼개며 단 한명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죽여나가는 모습에 황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가 폐하를 모시지요.”
피로 물들어 있는 흑귀대원들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 그리고 갑옷과 무기에 뭍어 있는 살점들.
그것을 본 황제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자 가후는 그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아주 안전하게 말입니다.”
남은 근위군들은 머뭇거렸다.
어떻게 해야하지?
아무리 황제의 움직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령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주민과 양경이 두려워하자 가후는 여유롭게 웃었다.
“뭘 그리 걱정들을 하는 건가?”
“예?”
“자네들에게는 죄가 없네. 뭐, 명령지에서 이탈한 것은 사실이니.”
“…”
“허나 공을 세운 것 역시 사실이지. 만약 자네들이 가담했더라면 폐하가 엄한 곳으로 끌려가실 뻔 했잖은가. 그야말로 근위군으로서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한 것이라네.”
“아아… 다행… 입니까?”
“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양경을 향해 가후는 천천히 말했다.
“혹여 봉군도위가 자네들에게 벌을 주려 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막아주지. 뭐, 그가 벌을 내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집금오 어르신. 그렇다면 저희는…”
“공을 세웠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네. 축하하지.”
절망이 기쁨으로 바뀐다.
살아남은 근위군이 환호성을 내지르려는 찰나 진일은 가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옥체에 상처를 냈습니다.”
“흐음.”
“그 죄는 제가 받겠습니다. 허나… 제 가족들은.”
진일의 말에 가후는 웃었다.
“정 그리 말한다면 자네의 목숨은… 내가 받겠네.”
“…예?”
“자네의 생사여탈권을 내가 가지겠다고 말한 것이야. 자네 같은 사람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거든.”
어깨를 으쓱인 가후는 장합이 다가오자 진일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장 교위. 이 사람은 내가 데리고 가도 되겠는가? 폐하의 옥체에 상처를 낸 사람이야. 교사원에서 심문을 좀 해야 할 듯 하이.”
“음… 그리하십시요. 그럼…”
“그래. 가게나.”
“폐하는 어찌 합니까?”
“걱정말게. 내 알아서 할테니. 날 따르는 이들도 있고 말야.”
가후가 손을 들어 올리자 수풀에서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나온다.
교사원의 병사들이다.
그들을 이끄는 우금이 웃으며 나오자 장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맡기겠습니다.”
황제의 움직임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해야 할 일은 남았다.
황궁 여기저기에 난 불이라든가 혼란을 잡아야 한다.
필시 다른 이들의 명을 받은 이들이 혼란을 가속시키고 있을 터.
장합이 흑귀대와 백귀대를 이끌고 가버리자 황제는 홀로 선 채 가후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속인 것이었군.”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교사원에서는 항상 폐하의 안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서지 않고 있었던 것 뿐이지요.”
자신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에 불과했던 것인가?
가후를 향해 빠득 이를 간 황제는 두 손을 들었다.
“하하. 나는 언제나 자네에게 당하기만 하는군. 그래.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인가?”
“잠시 따라와주셨으면 합니다.”
“…마음대로 하게.”
여기까지 온 이상 뭘 어쩌겠는가.
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그와 함께 걸었다.
도착한 곳은 운현궁이다.
운현궁에는 왜?
황제가 의아해할 때 가후는 운현궁의 앞에서 외쳤다.
“폐하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의 외침에 운현궁에서 검은색 갑옷을 입은 이들이 나왔다.
이들은 도대체?
호표기다.
호표기가 왜 운현궁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포박된 이들이 하나둘 씩 보이자 황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아들, 그리고 귀인들, 총애하던 내관들과 궁녀까지.
그들 모두가 사로잡혔다.
“뭐 하는 짓이냐!!”
황제의 비통한 외침에도 호표기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나와 깃발을 들어 올릴 뿐.
호표기의 깃발, 그리고 승상의 깃발.
“폐하. 저는 뭐랄까. 조금 놀랐습니다. 폐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시고 싶어하실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하하… 제가 그리도 싫으셨습니까?”
깃발이 모두 세워졌을 때 흑색 갑옷을 입은 이가 걸어나온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승상.”
시중의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자신이 보았을 때.
그의 눈에서 보이던 광기는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이 모든 것이 그의 수작에 불과했던 것이란 말인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듯한 조조의 여유로운 미소를 마주한 황제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쩔 생각인가?”
“글쎄요. 저는 그저 봉군도위의 지원 요청을 받았을 뿐입니다. 이번 일에 대한 처분 권한은…”
조조는 어깨를 으쓱인 후 즐겁게 말했다.
“봉군도위와 교사원에 있겠지요. 당장 난이 마무리 되기 전까지는 규정상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저는 일개 승상. 황실의 일에는 관여하기 힘듭니다. 하하하!”
웃기는 소리다.
조조는 진유하보다 상관이며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다.
그런 그가 자신은 이번 일에 처분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진유하.
이각의 밑에서도 황실을 이용하려 했던 가후.
이 둘에게 처분을 맡긴다고?
그렇다면…
황제는 잡혀 있는 이들을 보았다.
자신의 아들과 딸, 그리고 내관들과 궁녀들까지.
그들 모두의 처분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걸려 있다?
황제는 조조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순간 황제는 주먹이 터져라 꽉 쥐었다.
진유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결국 황제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넋이 나가버린 듯한 황제를 보며 가후는 조조에게 차분히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가후를 향해 조조는 빙긋 웃었다.
“남은 것은 진가쪽 일인데…”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인 조조는 히죽 웃었다.
“호랑이와 악귀가 있는 곳이니만큼… 되려 여기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겠구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