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09
“흐음…”
경조 내에서의 올해 수확량에 대한 보고를 확인한 사마의는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적군.”
“하지만 이정도면 대풍입니다.”
“그것은 저번의 기준을 따르는 것, 위국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평작에 불과해.”
사마의의 싸늘하기 그지 없는 말에 왕창은 입을 다물었다.
나름대로 잘 했다고 했는데 사마의에게는 만족할 정도의 상과는 아닌 듯 싶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경조윤께서 세금을 내지 않게 수를 써주셨는데, 그 기간동안 최대한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나?”
죽간을 내려 놓은 사마의가 무덤덤히 말하자 왕창은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정도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전 경조윤 때보다…”
“장난하나? 낙양에서 받은 물자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 까지 생각한다면 그리 큰 이득은 아니야.”
그의 말에 왕창은 입을 다물었다.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사마의는 너무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사마의는 대단하다.
비록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숙련된 다른 관리들보다 훨씬 생각이 깊었고 냉정하며 일을 잘 했다.
그 뿐만 아니라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을 말 몇마디만으로 압도할 수 있을 기세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사마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와 같이 일해야 하는 왕창은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축제에 대해서는 다들 기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삼보 전역을 이끄는 축제에 대해서는 취소를 명한다. 굳이 하고자 한다면 장안 쪽에서만 하도록.”
“그렇지만… ”
“너무 일러. 고작 이정도 성과를 내고 축제를 한다면 만족하고 거기서 멈추게 될거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리고 삼보의 백성들 역시 배고프고.”
올해는 경조 뿐만 아니라 우부풍, 좌풍익 전역에 풍년이 이루어졌다.
그런만큼 그것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를 기획하려 했던 왕창은 사마의의 쌀쌀한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장안 쪽에서만 하는 축제라면 내가 출자하도록 하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장안에서는 축제를 해도 좋다는 말에 왕창은 안도했다.
풍년을 일궜다는 것에 기뻐하던 사람들을 즐겁게 함과 동시에 그들을 풀어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왕창은 사마의의 말에 동의하며 빠르게 말했다.
“그, 그런 것이라면 저도 출자하겠습니다.”
“네가 출자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다행히 하후상과 두습, 곽혁의 월봉은 밀려 있으니 그것도 포함시킬 수 있겠군.”
“그래야 한다면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어떻습니까?”
장안의 세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세율을 조정함과 동시에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물자를 조금만 줄인다면 사마의가 굳이 자신의 자금을 내놓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왕창의 제안에 사마의는 눈쌀을 찌푸렸다.
“불가. 또한 병사들에 대한 봉급 역시 건드리지 마라.”
“…하아. 알겠습니다.”
“상인들에게 출자금을 지원받는 것도 금지다.”
“알겠습니다.”
사마의의 냉정함에 혀를 내두르며 왕창은 그가 고쳐 쓴 죽간을 받았다.
이것을 종이에 적어 허도로 보내면 올해의 중요한 업무는 끝나게 된다.
왕창은 사마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좌풍익.”
“뭔가.”
“괜찮으십니까?”
“하. 쓸데없는 걱정을. 내가 고작 이정도 업무로 어떻게 되기라도 할 것 같은가?”
“그렇지만 요 며칠 제대로 쉬지 못하셨다 들었습니다.”
“이번의 추수 정리와 그 추수 현황에 대한 보고만 끝나면 여유가 생기니 그때 쉴 수 있다.”
사마의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왕창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 밑에 내려앉은 짙은 기미를 보아하니 요 며칠 또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보였다.
사마의가 주는 업무의 강도는 대단하지만 그가 맡고 있는 업무 역시 상당했다.
자기는 놀면서 일을 시키면 불만이 쌓이지만 상관 역시도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은 일을 하니 하급 낭관들도 불만을 표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사마의를 좀 쉬게 해달라는 간청까지 받고 왔던 왕창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며칠이라도 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다들 좌풍익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불가.”
“…하아. 그… 제가 사마가의 가풍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것은 아니지만.”
“뭐냐.”
“그럼 밤에 잠시 쪽잠을 주무실 때만이라도 아드님과는 각방을 쓰시는 것이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시녀들에게 듣기로 아드님이 밤마다 운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잠을 설치시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거기에 지금도…”
왕창은 사마의의 옆을 가리켰다.
옆에 놓여져 있는 기묘한 도구.
나무로 만들어진 흔들침상이다.
바구니에 줄을 달아 놓은 후 그 안에 있는 아이가 흔들거리게 하는 것.
장춘화가 아이를 낳은 이후 사마의는 꽤 자주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와서 저렇게 돌보고 있었다.
“괜찮은 유모라면 제가 소개해드릴 수 있습니다. 제 처와 깊은 연을 맺고 있는 여인인 만큼 신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마가의 적자를 어찌 사마가의 사람도 아닌 이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럼 사모님께라도.”
“흥.”
왕창의 말에 사마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그를 보며 왕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께선 아직도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입니까?”
“출산 한번 했다고 드러누워 있는 꼴이라니. 한심하기는. 그래가지고 어찌 사마가의 맏며느리라 할 수 있겠나. 정말 남 보기 부끄럽군.”
“여인이 출산을 하면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약이라도 준비시킬까요?”
“헛소리.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이 약이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여유가 있다면 일이나 더 하도록. 경조 내에 있는 현들에게 지급되는 무기의 수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의 날카로운 말에 왕창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차갑기 그지 없다.
자신의 아내에게까지 저렇게 나오다니.
왕창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좌풍익!”
“뭐지?”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우금이었다.
그는 사마의에게 고개를 숙인 후 약재를 들어 올렸다.
“말씀하신대로 좌풍익의 이 의원께 약을 받아왔습니다. 출산을 하신 부인의 보양에 좋은 약 맞지요? 마침 경조윤의 부인들께서도 출산을 하여 그를 위해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헤에.”
우금의 말에 왕창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안 그런 척, 걱정따위는 하지 않는 척 하면서 좌풍익에 간 우금에게 그런 요청을 해놨단 말이지?
왕창이 실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사마의는 얼굴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멍청하긴. 왜 하필 지금…”
좌풍익에 있는 이의원, 이당지라면 화타의 제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침술이나 다른 의술은 조금 모자랄지 모르지만 약을 만드는 재주만큼은 화타의 다른 제자들과 통틀어 가장 뛰어나고 한다.
그런 사람의 약이 올 예정이니 확실히 다른 의원에게 받을 약은 필요 없겠지.
왕창이 실실 웃으며 바라보자 사마의는 천천히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었다.
살짝 홍조가 감돌아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히죽거리던 왕창은 말없이 그가 건네주는 다른 죽간을 받았다.
“…이것을 처리하도록.”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왕창이 몸을 돌리고 나가자 사마의는 우금을 쏘아보았다.
그 시선에 우금은 히죽 웃었다.
“거 이제 그냥 인정하시지.”
“뭘 인정하라는 거냐. 뭘. 진유하 밑에 있더니 능글맞음만 늘어나서는…”
과거 사마가의 병사였던 우금이다.
그때도 조금은 경박하긴 했지만 진유하와 엮이며 더욱 능글맞아진 우금을 향해 사마의는 힘없이 말했다.
“사모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거잖습니까.”
“흥. 누가 그런 짓을. 그 여자는 그저 사마가의 자식을 낳게 하기 위한 여자에 불과하다.”
“예이. 예이.”
사마의의 쓴소리를 대충 넘긴 우금은 약이 담긴 봉투를 근처의 탁자에 올려 놓았다.
“그럼 저는 순찰업무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러도록… 아. 그리고.”
“예?”
“서량 쪽에 교사원의 요원을 보내 놓았나?”
“아. 예. 지금쯤이면 장안으로 복귀했을 겁니다. 확인해볼까요?”
“그러도록.”
“옙!”
밝게 대답한 우금이 나가자 사마의는 그가 가져다 준 약봉투를 들었다.
“이건가.”
이당지의 약이라면 믿고 먹일 수 있다.
사마의는 그 약봉투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응애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흔들리던 바구니가 멈춰서 그런가보다.
사마의는 씁쓸한 입맛을 다신 후 바구니 안에 있는 작은 아이를 들어 올렸다.
자신과 똑 닮은 눈매와 입술.
포동포동한 복숭아빛 볼은 장춘화를 닮았다.
“녀석. 나중에 여자 여럿 울리게 생겼군.”
맑고 검은색의 깊은 눈은 또 어떻고, 오밀조밀한 얼굴은 어떻고.
짙은 눈썹은 또 어떻고.
보면 볼 수록 질리지 않는 자신의 아들을 보던 사마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마사의 이마에 입맞춰주었다.
“꺄르륵~”
입술의 느낌이 좋았나보다.
사마사는 환하게 웃었고 그것을 보며 사마의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내가 네 애비다. 아버지라고 해보거라.”
“….”
“아버지.”
“아우?”
“아버지.”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입니다.”
“…이 사마의의 아들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
사마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하느라 누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며 대꾸한 후 딱딱히 굳은 몸을 돌린 사마의는 사마사를 바구니에 올려 놓고 말했다.
“왜 왔지? 쉬라고 했을텐데?”
“슬슬 사의 젖을 물릴 시간이 되어서 왔답니다. 방해됐나요?”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요? 다행이군요.”
약간 초췌해보이는 장춘화는 사마사를 안아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품에 사마사를 데리고 가 젖을 물리는 것을 사마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도 먹고 싶다면 조금 기다려주세요.”
“…헛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