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30
석양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었을 때.
진창성을 공격하는 익주군 본대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린다.
무수히 많은 뿔피리들이 울리자 진창성을 공격하던 이들이 천천히 물러난다.
그것을 보며 진창성의 성벽에 있던 이들이 외쳤다.
“적이 물러난다!”
“후우우…”
차륜전이 시작된지 십오일이 지났다.
곽준의 말대로 확실히 이엄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병사들의 피로를 최대한 억제, 전투를 수행하고 있다.
낮과 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교대로 쉬게 하고 있었지만 전 병력을 모아도 쉽지 않은 방어전이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점점 늘어가며, 모두의 피로가 늘어난다.
이젠 거의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적들이 물러나자마자 쓰러져 코를 골아버리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아마 잠시 후 또다른 적이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곽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뚫릴 수 밖에 없다.’
아직 적은 정란도, 충차도, 그리고 투석기도 완성시키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시일이 지났으니 조만간 완성될 것이고, 본격적으로 적들이 온 힘을 다해 공격한다면 진창성은 뚫릴 수 밖에 없다.
멀리 보이는 곳에서 정란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곽준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얼굴에 표정이 없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주먹밥을 건네주지만 너무 피로해서 그런지 그것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야간 습격전 이후 최고조였던 사기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 것을 보던 곽준은 병사 하나가 다가오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유의가 죽었습니다.”
“…그래.”
야간 습격전에도 참전했던 자신의 직속 부하다.
전홍성에서부터 따라왔었던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곽준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십정도 뿐이군요.”
“그렇군… 고맙다.”
“별 말씀을.”
오랫동안 자신을 따른 부하들이 죽는 것에 비참함을 느낀다.
곽준은 눈을 감았다.
그때 피로한 얼굴로 투구를 벗으며 학소가 다가오자 곽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통을 넘겼다.
“드십시요. 물 마실 틈도 없으셨잖습니까.”
“감사합니다. 후우…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이정도는 별 것 아닙니다.”
자신의 팔에 박혀 있는 화살을 뽑아내며 곽준은 애써 무덤덤히 말했다.
성벽을 방패로 싸우고 있지만 아예 상처가 없을 수는 없었다.
아까 전에는 사다리 위로 올라 온 이들까지 처리하느라 상처가 조금 생겼다.
학소의 얼굴에 그어져 있는 긴 상처를 본 곽준이 씁쓸히 웃었을 때 그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곽 도위님.”
“예.”
“잠깐 이야기를…”
전략회의의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삼교대로 적들이 전투를 치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틈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교대, 그리고 적들의 전략회의 시간.
그 틈을 이용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을 흝어 본 곽준은 학소와 함께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늘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던 마량도 계속된 전투에 피로를 느낀 모양이다.
피와 얼룩, 그리고 머리는 정리를 못해 산발이 되어 있다.
그와 함께 회의를 위해 빌린 집으로 들어간 학소는 마량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직 임직현에서는 연락이 없었습니까?”
“…죄송합니다.”
“….”
이제 기대해야 할 것은 임직현에서의 지원 정도다.
버티기만 하면 되는데 그 버티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학소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을 때 곽준은 천천히 말했다.
“병사들의 피로가 상당합니다. 술과 고기로 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마 한, 두번 더 전투가 이어진다면…”
마량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만큼 모두가 힘들어하는 전투다.
“하지만 적들도 힘들 것입니다.”
그럴 것이다.
진창에서의 전투는 벌써 십오일이나 지났다.
적들이 가져 온 치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있는 물은 대부분 오염시켜놓았다.
물을 구하기 위해 멀리까지 나가야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 역시도 쉽지 않은 전투를 치루고 있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 봅시다. 경조윤께서는 결코 진창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학소가 말하자 마량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사내.
관평이었다.
“저도 출진하겠습니다.”
“더 쉬셔야 합니다.”
“아니요.”
학소의 말에 무뚝뚝히 대답한 관평은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위열에게 제 흉내를 내게 하면서 전투를 이어가셨다구요.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 인 듯 싶습니다.”
위열이 나서서 관평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그 무력까지 흉내낼 수는 없었다.
철저하게 보호받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기가 빠져가고 있다.
병사들이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검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않는 관평을 보며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이제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관평이 언급하자 학소는 그를 바라보았다.
붕대로 감아져 있는 몸 여기저기에서 무리해서 움직인 것 때문인지 상처가 터져 피가 흐른다.
“후우… 괜찮으시겠습니까?”
“고통 정도는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이것으로…”
관평은 작은 주머니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었다.
다들 궁금해하자 관평은 무덤덤히 말했다.
“화타 어르신의 마비산입니다.”
“오…”
예전 화타에게 받은 마비산이 있었다.
그것으로 고통을 억제하면 될 것이다.
많이 복용하면 광증에 걸린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이것이라면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낼 수 있습니다. 걱정마십시요.”
“하지만 덧나기라도 한다면.”
“덧나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모두가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에 관평이 나서준다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학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좌중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여러분. 어떻게든 버티도록 해봅시다. 경조윤께선 반드시 지원군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예.”
회의가 끝나고 나왔을 때 아이들이 주먹밥을 건네주었다.
대나무 잎에 감싸진 주먹밥이다.
“너희들까지 온 거니?”
“예! 아버지랑 어머니도 싸우고 계신데 놀 수는 없잖아요!”
진유하의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소년들이다.
꼬질꼬질한 소년과 소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병사들에게 주먹밥과 물을 건네는 것을 본 곽준은 눈을 꾹 감았다.
이들도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저는 잠시 제 방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예. 그러시지요.”
곽준이 자신의 부서진 견갑을 가리키며 말하자 학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평 역시 위열에게 갑옷을 받기 위해 떠나가자 학소는 마량을 보며 말했다.
“마 낭중. 잠시라도 눈을 붙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피로해보입니다.”
“하하… 이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학 중랑께서도 주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잠이요…”
학소는 피식 웃었다.
사실 머리만 가져다 대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진창성 수비의 총괄을 맡은 학소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했기에 차륜전이 이어지는 동안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그는 마량의 말에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투가 끝나면 휴가를 받아 열흘동안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부지런하신 학 중랑께서도 그렇게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저도 사람인데 쉬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학소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가 쉴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 성의 책임자인 자신이 힘든 소리를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일개 백성조차 성을 지키기 위해 저리 힘겹게 움직이는데 어찌 관인으로서 힘들고 괴롭다고 떠들 수 있겠는가.
학소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마량은 부드럽게 웃었다.
“형주의 마가에 화신주가 들어왔습니다.”
“화신주가요? 그건…”
“예. 조가와 황가에만 주어지는 신주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화신주를 만드는 이는 과거 흑귀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랬습니까?”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학소가 흥미로워하자 마량은 싱글거렸다.
“그렇기에 진가에도 화신주가 보급되고 있지요. 그래서 흑귀대원들이 화신주를 마실 수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마가가 흑귀대와 접점이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예. 하지만 진가의 가주이신 경조윤과 의형제나 다름없는 분이 제 상관이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형주목께서 경조윤과 동문이라고 하셨지요? 수경원의…”
“경조윤 뿐만 아니라 진가의 사람들 대부분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죽엽청이 만들어지는 산양군의 군수님 그렇고. 그래서 화신주가 들어오면 진가에선 그 대부분을 흑귀대에 보급하거나 아니면 형주목에게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술이니만큼 호족들이나 명가를 포섭하기 좋을터. 역시 경조윤 답습니다.”
“하하… 그렇지요? 형주목께서는 화신주를 받으면 각 가문에 나눠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저희 마가도 화신주를 큰통으로 받았습니다. 사실 형님이나 저도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지라, 그냥 가보로 삼을까 생각해봤습니다만…”
마량은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그 화신주의 봉인을 풀어볼까 생각합니다.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마량의 말에 학소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이라.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면 맛볼 수 없겠군요.”
“뭐 그렇게 되겠지요?”
씩 웃은 마량을 향해 학소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 화신주를 맛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서 진창성을 지켜내야겠군요! 이거 의욕이 샘솟습니다.”
“다행이군요. 반드시 우리 함께 화신주를 맛보도록 합시다. 그때는 저도 꼭 마실테니까.”
술을 즐기지 않는 마량이 직접 나서서 화신주를 함께 마시겠다는 말을 하다니.
학소는 그를 향해 싱글거렸다.
“자… 그럼 잠시 후 있을 전투를 위해 우리도 조금이나마 쉬어봅시다. 사람은 쉬어야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변에 널부러져 쪽잠을 자고 있는 병사들을 가리킨 학소가 말하자 마량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잠시 할 일이 있습니다. 학 중랑께선 주무시도록 하십시요.”
“후후… 알겠습니다.”
마량이 인사를 하고 떠나가자 학소는 근처의 벽에 기대에 주저앉았다.
잠시 몸의 긴장을 푼 것만으로 수마가 몰려온다.
천천히 눈을 감은 학소는 작게 중얼거렸다.
“화신주… 맛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방으로 돌아 온 곽준은 단검을 꺼냈다.
그것을 한참동안 말없이 응시하던 곽준은 천천히 자루에 감겨 있던 비단을 풀어내었다.
검은색 비단을 펼쳐 탁자 위에 올려 놓은 그는 이를 갈았다.
처음 단검을 받았을 때 의문이 있었지만 전투를 치루고 생각해보니 이엄에게 몇번 단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제기랄.”
예전 이엄과 같은 편일때 그가 자주 쓰던 방식이었다.
이제와서 이런 것을 보낸 이유가 궁금했던 곽준은 비단의 뒷면에 적혀 있는 암호문을 읽었다.
“푸른 깃발을 흔들면 한번 전투를 멈춰주겠다라…”
그때는 별 개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었다.
한번 전투를 멈춰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렇지만 예상보다 지원이 늦어지는 만큼 한번 전투를 쉴 수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당장 조금이라도 병사들과 백성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구만…”
곽준은 벽에 걸려 있는 푸른 천을 가져와 창에 묶고 밖으로 나왔다.
지쳐 쉬고 있던 이들은 곽준의 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저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성벽 위로 올라간 그는 의아해하는 이들을 무시한 채 빠르게 창을 흔들었다.
성벽 위에서 푸른색 깃발이 흔들리자 병사 중 하나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쩌면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낼지도 몰라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변에 몰린 병사들이 궁금해할 때 적 진영에서 움직임이 보인다.
백기를 든 사신이 오는 것을 본 곽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등지가 아니다.
이엄이다.
그가 오는 것을 본 곽준은 옆에 있는 병사들이 활을 잡자 고민했다.
쏠까?
지금 그를 죽일 수 있을까?
그의 주변에는 방패를 든 병사들이 많았다.
화살 한두방으로는 그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곽준이 고민할 때 이엄은 백기를 박아 놓은 후 외쳤다.
“곽준!! 오래간만이구만!! 우리 얘기나 좀 하지!!”
그의 외침에 곽준을 보는 병사들의 시선이 의구심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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