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59
“한의 경조윤은 군자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라고 들었소! 어디 내 마음도 헤아려보시지 그러오!?”
같잖다.
너무 같잖아서 한숨만 나오는 도발이다.
엄안의 외침에 하후상과 곽회는 천천히 말했다.
“신경쓰지 마십시요.”
“한 귀로 듣고 흘려 마땅한 도발입니다.”
“안다. 고작 저따위 도발에 넘어갈 내가 아니지.”
지금까지 나를 도발한 놈들은 많았지만 난 그 도발에 넘어간 적이 없었다.
심계가 깊은 전풍이나 노숙의 도발도 콧방귀를 뀌면서 넘겼는데 고작 저따위 도발에 넘어가면 그 인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도발에는 도발로 갚아주는 것이 예의지.
저렇게까지 해준다면 내가 답변으로 뭘 해줘야 하나?
난 웃으며 외쳤다.
“그럼 댁이 성으로 들어오지 그래?”
“내 몇차례 성에 들어가고자 했는데 그대들의 방해가 너무 심하더군! 그래서 차마 들어갈 수 없었소!”
“아아! 내가 없는 사이에 내 부하들이 당신들에게 잔뜩 겁을 먹었을 뿐! 익주의 엄안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지! 자! 이제 내가 있으니 걱정말고 오시게나! 음? 왜? 겁나나? 자자.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좋은 음식과 술도 준비해줄테니까!”
고개를 돌려 곽혁에게 말했다.
“성문 열어.”
“엑…? 진짜 엽니까?”
“열어. 괜찮으니까.”
내 명령에 무척이나 떨떠름해하며 곽혁은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신호했다.
성문이 열리자 난 웃으며 확성기를 들었다.
“거기서 활질하지 말고 들어오지 그래!? 뭐 두렵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야!”
병신도 아니고 여기서 들어올리는 없겠지.
난 엄안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역시나 엄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 가정 성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아까의 전투로 죽은 부하들이 마음에 걸려 한가로히 여유를 즐길 수는 없을 것 같구려!!”
“그럼 어쩌라고?”
“경조윤이 나와서 그들의 죽음을 위로해준다면 내 성에 들어가 경조윤이 권하는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리다!”
개소리하고 있네.
엄안의 외침을 듣던 나는 느긋하게 웃었다.
“하하… 그거 참 반가운 소리인데… 이를 어쩌나? 하후상!! 관평!!”
“예!”
“우회하여 어둠 속에서 성을 공격하려는 저 파렴치한 것들에게 화살맛을 보여줘라. 아주 매운 놈으로다가!”
“예!”
강노병과 노병, 궁병들이 화살을 쏜다.
흑의를 입고 어둠 속에서 움직여 성문이 열린 틈을 노려 안으로 들어 오려던 이들의 몸에 화살이 박히자 엄안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노인네가 아주 야비하기 그지 없네? 기습이나 하다니.”
“누가 할 소리를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겠군.”
방금 전까지의 즐거운 대화는 없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강궁을 빠르게 주워 든 엄안은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냈다.
“이거… 경조윤께서는 대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어쩔 수 없겠구려!”
어쩔 수 없으면 뭐 하려고?
지금까지는 어쩔 수 있어서 가정성 하나 함락 못 시켰나?
“흠… 아무튼 댁이 우리와 좀 평화적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생각은 없는 듯 하고… 그럼 화살이나 좀 드시려나? 아니면 뜨거운 기름?”
지금같은 상황에서 엄안이 뭔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바깥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도발하는 것 외에는 없지.
이야기가 종료된 것을 확인한 곽혁이 신호하자 성문이 다시 닫힌다.
엄안은 힐끔 닫히는 성문을 본 후 어깨를 으쓱였다.
“이왕 이리 된거… 다시 한번 공격을 할까 하는데.”
“어이구. 마음껏 하시게나.”
내가 바라마지 않는 일이니까.
난 그에게 보이지 않게 곽회에게 손짓했다.
“왜 그러십니까?”
“전투가 시작되면 한쪽의 수비를 약하게 하도록.”
“예?”
“저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수 있게 만들라는거야.”
“그건 왜…?”
“계속 막히기만 한다면 저들이 움직이지 않을테니까.”
엄안이 나옴으로써 익주군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다.
그 말은 엄안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저들의 사기를 크게 깍을 수 있다는 거다.
“피해가 계속된다면 엄안으로써는 무리할 수 밖에 없을거다. 그렇다면 그가 직접 전장에 나설 터. 그때 틈을 확실히 내어주도록 해. 엄안이 직접 올라올 수 있게.”
관평이 엄안과 일대일로 일기토를 치루는 것.
솔직히 내키지는 않는다.
이엄이 바깥에서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도 모르고.
하지만 성벽 위에서라면 상관없다.
관평에게는 미안하지만 하후상과 협공을 시킬 생각이니까.
관평과 하후상은 장합, 감녕, 서황의 밑에서 수련을 할 때 합공을 훈련한 적이 있었다.
제 아무리 엄안이라고 하지만 관평과 하후상이 합격을 한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터.
그것으로 엄안을 제거하도록 하자.
“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만…”
“물론 그렇긴 하지만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적들이 오지 않겠지. 적당한 미끼가 있어야 월척을 낚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자신의 도발이 실패한 것을 깨달은 엄안이 손을 들어 올리자 익주군이 전진한다.
꽤나 많은 적군이 한번에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나도 손을 들었다.
수성전을 펼치기 위한 이들이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을 때.
익주군에서 한무리의 기병들이 나섰다.
기병?
망원경을 들어 기병들의 선두에 있는 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기쁘게 웃었다.
“왔구나.”
적들을 이끄는 이는 바로 이엄이었다.
———–
“이거 너무하지 않나?”
“누가 할 소리를.”
성벽 밑에서 엄안의 근처까지 온 이엄은 느긋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떨리고 있었다.
다시 공성전을 해봤자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라는 정도는 이엄도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나와서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이고.
당장이라도 이엄에게 화살을 쏠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을 일단 말렸다.
뭔 수를 쓰는지는 한번 들어나보자.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
즉 엄안의 옆까지 온 이엄은 나를 올려다보았고 그를 내려다보며 난 확성기를 들었다.
“어르신 나이도 생각해드려야지. 상황이 좀 불리해졌다고 저 정도 되는 노인네를 이렇게 혹사시키는 것은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내 생각은 이렇다.
원래는 엄안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출진하고, 또 군이 양분되며 아군의 전력이 약화되는 위기의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엄이 선택할 수는 세가지 뿐.
하나는 후퇴.
하나는 협상.
하지만 지금의 이엄에게 그 두가지는 선택하기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진창에서 협상과 후퇴의 패를 다 써버렸다.
그런만큼 이엄이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치중은 부족할 것이고 후퇴를 하게 된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 마지막 하나.
바로 엄안을 불러 요격하여 불리한 세를 일발역전하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이 되지 않는 짓이다.
차륜전을 쓰고 아직 피로가 회복되지 않은 엄안을 부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이엄이 선택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경조윤께서 이렇게 나와주셨길래 내 나름대로 성의를 다한 것인데. 섭섭하게 그럴거요? 아무리 그래도 급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오! 경조윤 정도라면 이 익주의 명장인 엄 장군 정도는 되어야 상대해줄 정도가 되지 않겠소?”
“섭섭은 무슨…”
이엄을 내려다보며 난 손을 들었다.
강노병과 궁병들이 적들에게 무기를 겨눴다.
하지만 그는 자신들에게 무기가 겨눠졌음에도 피하거나 전투를 준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여유롭게 서서 대화를 하려고 할 뿐.
그런 그를 보며 난 차분히 말했다.
“이제 슬슬 결착을 낼때가 된 것 같은데 말이지? 뭐 또 협상할 것이라도 있나?”
“협상할 거리는 이제 없는데.”
“그럼 싸워야지. 자. 시작하자고.”
화살을 쏘게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내가 손을 들자 성벽 위에서 준비하던 이들이 긴장한다.
“그렇게 성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버틸 거면서 무슨 싸움을… 사내 중의 사내인 경조윤께서 치졸하게 거북이처럼 틀어박혀서 싸우실 생각이오?”
“몰랐나? 사실 나 계집애였어.”
이엄의 도발에 난 콧방귀만 뀌었다.
누구보다 내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이엄일 것이다.
그럼 나가지 말아야지.
원래 전술은 적이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는게 제일이다.
내 대답에 이엄의 인상이 구겨진다.
이거 깨소금맛이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뿌듯해진다.
“참으로 대단하시구려! 진정한 사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버티는 것이 최선이란 말이오!?”
“응. 난 그냥 버틸건데? 뭐 문제라도?”
이엄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그런 그를 향해 난 웃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이것이니까. 내 마음 이해하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구만.
한없이 일그러져버리는 이엄의 얼굴을 마주하던 내가 손을 내리자 궁노에서 화살이 발사된다.
쏟아지는 화살비를 방패로 막아낸 이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오. 경조윤.”
한번 공격을 당했는데도 저 평온함이라니.
적이기는 하지만 진짜 보통 놈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예쁘게 봐줄 생각은 없다.
어차피 적이다.
이제와서 친하게 지내자고 해봤자 무슨 좋은 소리를 하겠나.
“혹… 이런 말을 알고 있소?”
“무슨 말?”
쟤는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저러는 걸까?
내가 웃으며 다시 강노를 장전하는 흑귀대를 확인하고 묻자 이엄은 씩 미소지었다.
“토사구팽.”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오는 거지?”
“경조윤. 그대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오. 인정하지. 솔직히 당신이 낀 전투는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요.”
“하하… 이거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만. 그래서?”
“유표를 쓰러트리고, 원소를 잡고… 거기에 연주와 서주에서 풍년을 불러 일으켜 신농의 재림이라 불리는데다가 삼보를 부흥시켰소. 그리고 듣기로는 신벌이라 불리는 마마 역시도 당신의 손에 잠들었다고 하더군.”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두렵지 않소?”
이엄은 진지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곳은 전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상황.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들릴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이엄의 목소리만이 퍼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대가 이룬 모든 업적. 그 업적의 대부분은 마치 한을 건국하는데 큰 공헌을 한 한신과 다르지 않구려.”
이 자식 설마?
날 회유하려고?
이런 상황에서 회유책을 쓰려는 이엄의 배포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나 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들 모두가 어처구니 없어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하나요. 그대는 위왕의 사위이지.”
“그래서?”
“지금의 위왕은 그대를 인정하고 좋아할 것이오. 하지만… 과연 그들의 후손도 같을까?”
아… 식상하다.
어째 다들 날 꼬드기려는 이들은 이런 식의 이야기 밖에 못할까?
난 고민을 하다가 손을 들었다.
다시 쏘아지는 화살.
그것을 힘겹게 막아낸 후 이엄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사실은 당신도 그리 생각하는 것 아니오?”
이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진다.
그 미소를 마주하고 있을 때 다들 이를 드러내었다.
“이런 미친! 위국의 중진에 있는 이들이 그것을 가만히 놔둘 것 같은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위국은 한의 그 쓰레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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