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83
요화가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 벽돌로 성벽을 보수하고, 무너진 곳이나 불에 탄 곳을 정비한 후 적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지 않는다.
뭐지?
끝났나?
정찰을 다녀 온 우금의 보고에 의하면 아직까지 적들은 지근거리에서 진형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철수인지, 공격인지.
아직까지는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우금은 적의 움직임이 철수로 잡힌 것 같다고 판단했다.
사기가 그리 높지 않은데다가 탈주하는 이들까지 조금씩 보인다고 했다.
진짜 다 때려치우고 복귀하려나?
그럼 우리도 추격해야 할텐데.
“갈거면 가고 올거면 올 것이지 뭐 이리 뜸을 들여?”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지 사일이 지났다.
적들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할 일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만약 돌아간다면 추격하여 그 군세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것이 맞았다.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다 태워 돌아가는 길에 고생 좀 하게 하든가.
“경조윤!”
적들의 움직임에 의아해하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하후상이 달려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무슨 일이라도?”
하후상의 표정이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큰 일이 난 것 같은데?
설마 총공격인가?
“적의 사자가 왔습니다.”
“사자가?”
이제와서 왜 사자가?
하후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군대는 없고 고작해야 오십여명 정도로 이루어진 이들이 사자를 뜻하는 백기를 들고 있었다.
“뭐냐! 우리가 더 할 말이 있었나!?”
확성기를 들고 외치자 바깥에 있던 이들 중 하나가 나온다.
장임이다.
요새 자주 봐서 익숙한 그는 말에 올라탄 채 나에게 외쳤다.
“패배를 인정하겠소!”
세상에.
저게 항복 선언을 하는 자의 태도란 말인가.
패배를 인정하는 거면 무릎꿇고 다 같이 와서 빌어도 시원찮은데.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그가 말하자 난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익주로 돌아가려고 하오!”
“어쩌라고! 후방을 공격해달라는 건가!?”
소원이라면 해주자.
난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곽회와 곽혁에게 손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전투를 할 수 있게 병사들에게 준비를 시키러 그들이 가는 동안 장임은 당당히 외쳤다.
“제대로 준비를 하고 가는 것이니 와도 상관이 없소! 오히려 바라는 일이지!”
퇴각하는 군을 잘못 공격하면 오히려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건 대책없이 공격하는 놈들 얘기고.
등신도 아니고 추격하다가 오히려 당할 정도로 여기 있는 이들이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장임이 대범하게 말하자 내 옆에 있던 하후상이 인상을 찌푸렸다.
“쏠까요?”
항복 선언하는 주제에 저렇게 당당한 장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하후상은 옆에 있는 강노병의 강노를 받은 후 그에게 겨눴다.
“내버려둬봐. 후퇴하려는 주제에 이렇게 와서 떠드는 것이라면 뭔가 이유가 있을테니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저들 입장에서는 물러가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도 퇴각을 한다는 것을 알리러 왔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터.
내가 궁금해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을 때 장임은 단호히 외쳤다.
“그냥 가도 좋지만 그간의 정이 있어서…”
“그럼 목이라도 하나 주고 가지 그러나?”
“내 목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주고 가지!”
장임의 목보다 중요한 것?
혹시 엄안이나 이엄의 목인가?
그런 것이라면 웃으며 받아 줄 수 있다.
“줘봐.”
“이엄이 탈주했소!”
“…응?”
이건 또 예상 밖의 말이다.
이엄 탈주를?
생각해보니 그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항장 출신으로 군을 이끄는 대장의 위치까지 올라갔는데 별 소득 없이, 피해만 입은 채 돌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정성에 대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의 물자가 빠르게 소모되는 것도 이엄이 진창 공략에 실패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익주로 돌아갔으면 모를까 물자도 모자라고 공성병기도 없는 상황에서 가정군에 합류, 오히려 물자의 소비만 빠르게 해서 이곳의 작전을 말아먹었다.
돌아가봤자 잘해야 사형을 면치 못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하지만 그건 그의 사정이지 내가 알바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어이없어하며 외치자 장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엄 교위께서 경조윤께 전하라 하셨소! 이엄은 그대에게 많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소!”
알고 있다.
진창 공략에 실패한 것도, 그리고 그의 고육계가 실패한 것도 결국은 나 때문이니까.
그가 나를 증오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이엄과 나는 이미 원수 상태다.
거기에서 증오가 더 박힌다고 하더라도 걱정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탈주할 때 군사 천여명을 데리고 갔소! 그리고 그는… 산을 넘어 안정을 지나 바로 좌풍익을 공격한다고 했소.”
“…뭐!?”
장임의 외침에 나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게 정말인가!?”
“우리의 주군이신 익주목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저께 새벽! 그는 야밤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탈주했소! 좌풍익을 직접 공격하여 당신을 가정에서 뺀 후 우리가 공격하여 가정을 함락시키라는 제안을 했지만… 엄 교위께서는 그 작전을 거부하셨고 그는 자기 멋대로 병사를 끌고 나가버렸소!”
고작해야 천여명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산을 넘을 때는 천여명이지만 아직까지 근처에는 끌어들이지 못한 유목민, 그리고 도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엄은 나도 경계해야 할 정도로 달변가에 뛰어난 정치력을 가지고, 승리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사기를 칠 수 있는 남자다.
그가 그들을 선동, 포섭하여 좌풍익을 공격하게 된다면?
고작해야 천여명 따위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좌풍익은 지난번 농사와 목축업이 크게 성공하여 많은 이들이 부유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있을 때도 그것을 노리고 쳐들어 오는 정신나간 도적들이 꽤 되었는데.
이엄의 도움을 받는데다가 내가 없는 상황이라면 얼씨구나 하고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미친…”
“좌풍익을 통해 한중으로 빠지는 길 정도는 분명 있을 터! 이엄이 노리는 것은 좌풍익을 공격하여 경조윤! 그대의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한중으로 복귀하는 것을 선택했소!”
“이런 개새끼가!!! 감히!!”
내가 분통을 터트리자 장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막고자 했지만 막무가내였소! 그러니 말하겠소이다!! 경조윤!! 우리는 돌아가겠소! 추격하지 마시오!”
“…큭.”
지금 추격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만약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내 옆에 있던 관평과 요화는 분노로 이를 갈았다.
“지금 임진현에 군사가 얼마나 있지?”
“대부분 진창과 기곡으로 보내 놓은지라… 병력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약 삼천여 정도 밖에는…”
상대적으로 내부에 있는 임진현인만큼 도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정도의 병력 밖에 없었다.
장합이나 서황은 지금 진창과 기곡을 막고 있을 것이다.
초조함 때문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바깥에서 나를 보고 있던 장임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튼 전해야 할 말은 여기까지요. 경조윤!! 우리가 조사한 바로 그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대의 가족이라 들었소! 그러니 그들을 지키는 것이 어떻겠소!?”
절로 이가 갈린다.
장임은 할 말을 다 했는지 몸을 돌렸다.
“우리를 원망하지 마시오! 이엄의 행동은 우리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니!”
“잠깐!! 엄안은 왜 그 작전을 거부했지!?”
내 질문에 멈춘 장임은 고개만 돌리고 외쳤다.
“이엄을 신뢰할 수 없는데다가 그런 비열하기 그지 없는 방식은 엄 교위의 방침과 어울리지 않았을 뿐! 당신의 가족을 죽인다 하여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소! 우리를 그따위로 보지 마시오! 그리고 따, 딱히 당신이 마음에 들어 따른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오! ”
말을 마친 장임이 몸을 돌리고 움직인다.
그를 따르는 이들이 함께 돌아간다.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난 크게 발을 굴렀다.
“젠장! 요화! 관평! 애들 불러!! 바로 임진현으로 간다!”
바로 출정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온 곽회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적들이 거짓을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퇴각을 위해서 우리를 속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라면?
우금의 정찰에 의하면 충분히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임진현을 공격하여 내 가족들을, 내 사람들을 공격하고 짓밟았다면?
매우 위험한 방법이지만 나에 대한 증오가 강한 이엄이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일이었다.
말 안장에 짐을 올렸다.
무기를 챙기고 갑옷의 끈을 꽉 당겼을 때 곽회는 나를 잡았다.
“경조윤. 이것은 기회입니다.”
아무리 퇴각의 준비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적들의 사기는 낮다.
그 후미를 친다면 적에게 타격을 제대로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었다.
“그 기회를 살리려다가 내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다면… 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것이다.”
“그건…”
“곽회. 나를 욕하려는 건가?”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곽회의 시선을 마주하던 나는 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많은 이들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철갑기마대를 제외한 흑귀대와 백귀대 전원이 준비를 끝냈습니다.”
다들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다.
흑귀대는 물론이거니와 백귀대 역시 진가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시작은 산양군에서부터, 그 이후로 많은 훈련을 거치고, 또 업 공략에서 큰 공을 세우며 정규군이 되기는 했지만 백귀대의 대부분이 진가를 따른다.
늘 장난스럽고 즐거워보이던 흑귀대원들도 좋은 표정이 아니다.
그들의 딱딱히 굳어 있는 표정을 확인한 내가 말에 올랐을 때 관평과 하후상, 요화가 다가왔다.
“저도 가겠습니다.”
“만약 이엄이 진짜 산길을 통해 넘어갔다면… 필시 악에 바쳐 있을 것입니다. 푹 쉬어 체력에는 자신이 있으니 걱정마시지요.”
“저는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그들이 나를 따르려고 하자 곽회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조윤.”
“나에게 가지 말라고 말할 생각이라면 하지 마라.”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진다.”
병력이 모자라거나 물자가 모자란 것도 아닌데도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보다 나에게는 가족들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영이까지 갑옷을 입고 나와 말에 오르는 것을 본 내가 출발하려 하자 곽회는 내 앞을 막았다.
“경조윤!”
“왜!! 자꾸 막는다면…!!”
이를 갈며 검자루를 잡자 곽회는 고개를 저은 후 품에 손을 넣었다.
“길은 아십니까? 좌풍익까지 가려면 험지이기는 하지만 이쪽 길을 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품에서 꺼낸 지도를 나에게 건넨다.
그것을 보니 내가 아는 관도와는 다르다.
정비되지 않은 길이지만 산길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이엄이 떠난 날짜를 생각한다면 기존의 관도를 통해 추격할 시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을 통한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터.”
“이 길은…”
“다만 이 길에는 도적들이 많습니다. 경조윤께서 도적들을 용서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눈을 감아주십시요.”
“곽회!”
빠르게 달려 온 곽혁은 숨을 헐떡인 후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것을 나에게 넘겨준다.
“그들은 흑귀대와 백귀대를 보고도 통행료를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싸우지 말고 그냥 줘버리십시요. 이 통행료를 받고도 길을 막으려 한다면 제 이름을 말해주십시요. 경조 일대의 도적들은 저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일년간 사마의의 밑에서 경조를 다스리던 곽회다.
그는 침착하게 말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가정성을 지키는 임무는 본디 저의 것. 이번에 익주의 군대가 후퇴하는데 있어서 추격을 하지 못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원군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에 대해 뭐라 따질 수 있겠습니까.”
곽회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부디 목적한 바를 이루시기를 여기서나마 빌겠습니다.”
“…부탁한다.”
곽회 역시 가정성을 지키며 나와 인연을 맺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가정성을 지켜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만약 저들의 말이 거짓이고, 퇴각하는 척 하다가 다시 가정성을 공략하러 온다면 지켜야 할 이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따라오는 대신 가정성을 지키려고 한 그를 향해 난 빠르게 말했다.
“조나현의 전장군에게 알려라. 그곳에는 전장군 뿐만 아니라 전위도 있으니 필시 내가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지원하러 와줄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조나현에 알리게 된다면 지원을 왔던 내가 좌풍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공론화된다.
곽회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인다.
대기하고 있던 두습은 하후상에게 다가갔다.
“잘 해라.”
“당연한 말을.”
이제 인사는 끝났나?
한시가 급하다.
난 말고삐를 당겼다.
“좌풍익으로 복귀한다! 쉴 여유 따위는 없다! 관평! 선두에서 군을 이끌어라! 곽회가 알려 준 길로 곧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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