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29
“그럼 또 출장을 가신다는 거에요?”
“응. 그렇게 될 것 같아.”
집으로 돌아 온 내가 말하자 부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좀 한가롭게 허도에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출장이라니.
나도 미쳐버리겠다.
“가, 같이 갈까?”
“그래도 되나요?”
내 말 한마디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합비를 시찰하는 정도니까. 그리고 합비와 산양군이 가까우니까 애들도 좀 볼 수 있고. 거기에 오는 길에 서주에 잠깐 들러서 태학도 갔다오자. 청이 너는 태학을 봤으니까 괜찮겠지만 나머지는 못봤잖아? 어때?”
태학에서는 학원생을 위한 숙소를 내어주기는 하지만 성이처럼 정혼자가 있거나, 혹은 가정이 있는 이들을 위한 집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서주에는 아는 사람이 많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부모가 한번 가서 살 집을 봐두고, 또 하인들도 봐두는 것이 낫지 않나 싶었다.
“음… 좋네요. 전 찬성.”
“저도 좋아요.”
“괜찮을까요? 석이와 율이는 아직 갓난아이인데. 자꾸 돌아다니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으음…”
이제 곧 겨울이다.
아무리 우리 가족들이 여행이나 야숙에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아기들을 데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완이와 희는 부드럽게 웃었다.
“저희는 허도에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 괜찮겠어?”
“예. 문제 될 것은 없어요. 영이 언니랑 청이 언니만 데리고 가세요.”
희와 완이가 웃으며 대답한다.
석이와 유가 걱정되서 움직이기 싫다는 듯 보였다.
그 말에 난 볼을 긁적거렸다.
“그럼…”
“아. 그럼 저도 빠질게요.”
“어라!?”
가볍게 손을 든 청이가 말한다.
오히려 더 따라 붙을 줄 알았는데?
내가 의아해하자 청이는 빙긋 웃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허도는 희랑 완이에게 연고지도 없는 곳이잖아요. 그런만큼 이쪽에 누군가는 남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청아아~~”
아이고 이쁜 것.
청이의 배려심이 넘치는 말에 난 감동하며 그녀를 끌어안고 여기저기 입맞춰 주었다.
“어휴. 그만해요.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청이는 자신의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율이를 내밀었다.
“율이를 데리고 가주시겠어요? 아버님이 가신 이후로 매일 시무룩해하던데.”
“그거야 어렵지 않지.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유독 아버지를 잘 따르던 율이다.
이번에 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것이 무척이나 슬펐는지 율이는 좋아하던 소꿉놀이도 마다하고 매일 시무룩해 하고 있었다.
며칠 지나면 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 소중한 딸이 저러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장인어른도 있는데 왜 그럴까.”
“아무래도 아버지랑 있었던 것보다는 아버님과 있었던 시간이 기니까 그런거죠.”
어제 집에 왔던 조조가 시무룩해하던 표정이 떠올랐다.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었는데 율이가 크게 기뻐하지 않아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집에 가더라.
그 애수에 찬 모습이라니.
난 쓰게 웃었다.
“그럼 내일 장인어른께 인사드리고 바로 출발하는거로 하자.”
“알겠어요. 그럼 준비는 제가 할게요.”
이번 합비행에 참가하는 것은 영이, 그리고 서황과 하후상이었다.
나머지는 진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다음날이 되자마자 진가로 찾아 온 하후상을 데리고 조가로 향했다.
내 품에 안겨 있던 율이가 꼬물거리자 하후상은 쓰게 웃었다.
“하아… 휘가 가버리다니.”
“왜?”
“아뇨. 오래비로서 좀 걱정되서.”
“하하하… 별 일 없겠지. 경고도 했고.”
“아, 아하하… 경고요.”
“그럼.”
휘를 건드렸다간 투석기에 달아서 가맹관에 집어 던진다고 했으니까.
똑똑한 그 녀석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거다.
하후상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패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어. 그래. 그러고보니 그 자식 뭔 얘기가 없냐. 뭐라디?”
“다음달 쯤에 상용에서 복귀한다고 하더군요. 마대는 서량으로 가고.”
“그래? 그동안 뭐 했다고 하냐?”
“한중과 한참 치고박고 싸웠다고 했습니다. 한중에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정서장군과 하후패, 그리고 마대의 견제 덕분이라고 하니까요.”
“그렇군…”
내가 가정에 가 있는 동안 좌풍익에 별 일이 없었던 것이 상용에서 한중을 견제해 준 덕분이라는 건가.
나중에 하후연에게 선물이라도 좀 보내야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후상은 입맛을 다셨다.
“패는 그쪽에 좀 더 있었으면 싶어했지만 정서장군께서 복귀 명령을 내리셨나보더라구요.”
“왜?”
어쨌든 아들인데.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내 질문에 하후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건 나중에 이야기를 하시죠. 아무튼 허도로 복귀는 하겠지만 아마 다시 좌풍익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전히 말해주는 것을 피하고 있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딱히 남의 집사정에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하후가가 남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곳의 어른이 결정한 일이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셨습니까. 승상복야.”
조가의 앞에 도착하자 조가의 병사들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 품에 안겨 있던 율이가 꼬물거리며 눈을 떴다.
“어! 휘정 아저씨다!”
“하하. 아가씨. 오셨군요.”
“헤헤~”
율이가 헤죽 웃자 조가의 호표기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하후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휘정, 야율. 표정관리 좀 하지 그래? 조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호표기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뭐 어떠냐. 율이가 귀여운 탓이지. 안 그래?”
“하하하. 아가씨가 귀엽기는 하지요.”
율이의 대범하고 활기찬 성격 덕분인지 다들 율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저 삭막한 호표기들의 마음도 녹이다니.
율이가 작은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자 휘정과 야율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거 참… 너무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사람끼리 신뢰와 친분을 다지는데 신분고하를 따지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된다. 하물며 조가를 지켜주는 고마운 이들인데 이렇게 나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
“쩝…”
하후상도 명가의 자식이라 그런지 그런 걸 꽤나 따지는군.
성이가 모현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내켜하지 않던데.
조가의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율이가 내 품에서 내려왔다.
“율아.”
“네?”
“오늘은 외할아버지를 기운내게 해주러 온 거야. 그러니까 잘 해드려. 알았지?”
“우웅…”
“저번에 외할아버지께서 오셨을 때 우리 율이가 어떻게 했더라…? 외할아버지가 많이 상처받으셨을거야. 외할아버지가 우리 율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알겠어요…”
율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자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자.”
안채에 있는 조조가 머무는 정원으로 향했다.
좀 쌀쌀한 날씨였다.
조조는 정원에 있는 작은 건물에 앉아 화로에 참마와 밤을 굽고 있었다.
“어서오게나.”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조조는 율이를 보자 빙긋 웃었다.
“할아버지~”
“오오~ 그래. 율아.”
율이가 빠르게 달려와 안기자 조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조비가 죽고 나서 한동안 우울해하던 조조였다.
이제 좀 풀린 걸까?
그는 율이를 번쩍 안아든 후 여기저기 입맞춰 주었다.
“그래. 이제 마음이 좀 풀렸니?”
“웅… 네. 죄송해요. 할아버지.”
“하하하~ 괜찮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니까… 영원한 이별만 아니면 되지. 그래. 자네들도 왔는가? 앉게. 밤을 좀 굽고 있으니까 같이 먹세.”
“예.”
부지깽이로 화로를 뒤적거리며 잘 구워진 밤을 꺼낸 그는 껍질을 까 후후 불어 율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의 품에 안겨 율이가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조조는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손자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군. 역시 딸이 예뻐서 좋아. 그래… 순욱에게 들었네. 이번에 합비에 간다면서?”
“예.”
“오의 문제 때문인가?”
“일단은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곽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하아… 봉효 그 친구는 내 말도 잘 듣지 않는 사람이니까.”
조조는 씁쓸해하다가 율이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율이는 할애비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예!”
“어이구 이쁜 것. 그래. 그래.”
율이를 보듬은 채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화타는 뭐라던가?”
“아직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저번에 만났을 때는 경고를 했는데… 그것을 어긴 건지. 아니면 다른 병에 걸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화타라고 하더라도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죠…”
“그럼 어쩔 수 없군. 이것을 받게.”
“뭡니까? 이게.”
조조가 던져 준 옥패를 보았다.
이건 위왕의 패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만약 봉효가 허튼 짓을 하려고 한다면 위왕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게나. 꽁꽁 묶어서 서주의 별장에 처박아 버리든지, 아니면 산 좋고 물 좋은 휴양지에 가둬버리던지. 정 뭐하면 허도로 압송하든지. 자네 마음대로 하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제 나도 말년이야. 더 이상 내 주변의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군.”
은퇴를 앞뒀기 때문인지 조조는 무척이나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조비의 죽음 때문이겠지.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지만 그렇다 하여 자식이 죽은 슬픔을 완전히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시무룩해하자 율이가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 왜 그래요?”
“어이쿠. 아니다.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그렇단다. 율아. 참마를 먹을테냐? 할애비가 까주마.”
“네!”
“그래. 그래. 잘 먹어서 좋구나.”
조손이 보기가 좋다.
둘이 노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율이를 조가에 맡기고 가겠습니다. 율아. 할아버지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네!”
“괜찮겠나?”
“밤에 울면 보내주십시요. 뭐… 율이가 울 것 같지는 않다만.”
“하하하… 그렇지. 우리 율이는 울지 않아요. 그렇지요?”
“네에~!”
“에구~ 이쁜것.”
율이를 꼭 끌어안고 조조가 웃는다.
난 율이와 인사를 하고 안채에서 나왔다.
뒤따르던 하후상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전하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시니 정말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아. 온 김에 좌장군 좀 만나고 가려고 하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채 사저도 조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조가의 부인들이 머무는 내원으로 향한 나는 시녀에게 말했다.
“좌장군은 안에 계신가?”
“예. 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럼 내가 왔다고 전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시녀가 들어가고 잠시 후 돌아왔다.
그녀를 따라 안채로 들어가 안채의 작은 손님방에 머물렀을 때 두 남녀와 아이 하나가 걸어왔다.
“왔냐?”
건들거리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는 조앙.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채 사저.
둘이 자리에 앉자 난 천천히 말했다.
“우리 조카. 숙부에게 오거라.”
“예!”
씩씩하게 대답한다.
아장아장 걸어 내 품에 안긴 조카를 받은 나는 웃으며 물었다.
“이제 몇살이죠?”
“내년이면 여섯살이다. 많이 컸지?”
“예. 듬직한게 장군감이군요. 하하…”
“며칠 전에 이름을 바꿨어.”
“어? 왜요?”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는데 어떤 기인에게 이야기를 들었나봐. 지금 우리 아들의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
“호오. 그렇구나. 그래서요? 뭐로 바꾸신건가요?”
조앙은 씩 웃었다.
“천(天).”
“와우… 패기 넘치는 이름이네요.”
하늘이라는 이름.
결코 아무나 쓸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황가에서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이름이 바로 천이라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냅다 자기 아들에게 줘버렸다는 것에 내가 감탄하자 조앙은 웃었다.
“뭐… 앞으로 잘 살아가겠지. 아버지도 괜찮다고 하시니 문제는 없어.”
조앙이 이 이름을 받은 이유를 얼추 알 것 같았다.
슬슬 천하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합비에 간다면서?”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니…”
쓴웃음을 지은 조앙은 천천히 말했다.
“오와 마찰이 생기는 것 아니냐?”
“뭐…”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전쟁을 하기는 힘들거다.
보고에 따르면 손권이 직접 나왔다가 쳐발리고 간 것이니까.
그런만큼 바로 공격해들어오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어쩔 생각이야?”
“어쩌고 자시고 일단 합비에 가봐야 알겠는데… 보고서만으로 뭘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현장을 봐야 이렇다 할 말이 나오지.”
조앙은 웃었다.
“나도 갈까?”
“이상한 소리 마시고 일이나 하십쇼.”
댁이 거길 왜가?
“윽…”
“후후. 유하야. 네 덕분에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다. 고맙구나.”
“뭘요. 사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저 철없는 인간에게 사저를 준 게 후회스럽긴 하지만.”
“흐흐~”
조앙이 싱글벙글 웃자 난 채 사저에게 말했다.
“사저. 그럼 뒷 일은 저에게 맡겨주시고 사저는 그냥 여기서 편하게, 하고 싶은거나 하고 사세요.”
“그래.”
“천이도. 네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면 많이 공부해둬야 한다. 알았지?”
“네!”
밝게 웃는 천이를 향해 웃은 후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율이가 자고 갈거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걱정말렴.”
채 사저도 있으니 안심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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