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30
율이를 하룻밤 조가에서 재운 후 나와 영이는 합비로 갈 준비를 했다.
챙겨야 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차, 그리고 병사들의 수배는 이미 순욱이 다 준비해놓은 상태.
내 옷, 그리고 가서 먹을 것들.
거기에 장료와 악진, 이전이 합비성에 있다고 하니 그들에게 먹일 재료들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다.
“뭘 그리 바리바리 가져가려고 그래?”
“그래도 잘 먹이고 싶으니까 그렇죠.”
“가서 구하면 되지. 그쪽도 서주랑 인접한데다가 물자가 괜찮은 편이라…”
“그래도 안되요.”
씩 웃은 영이는 내 볼에 입맞춘 후 상자에 말린 약재라든가 어포, 건량을 넣었다.
그녀가 챙기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미안하네.”
“뭐가요?”
“좀 편하게 허도에서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후후후. 그런 걸로 미안해하지 말라구요. 그래도 저는 당신과 함께 가니까. 정 미안할거면 동생들에게 미안해하세요.”
“이미 충분히 미안해하고 있어. 그러니까 오늘은…”
“알았어요. 제가 석이랑 유를 데리고 잘게요.”
적어도 한달 이상은 보지 못할테니 함께 자기로 했다.
당장 내일 출발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나도 마차를 탄다.
잠이야 마차에서 자면 되겠지.
오늘 열과 성을 다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하자.
내가 웃는 것을 보던 영이는 천천히 말했다.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뭐가?”
“만약 오에서 치고 올라오게 된다면 당장 그들을 받아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텐데… 당신이 고생하는 것 아닌가요?”
“음… 꼭 그렇지만도 않을거야.”
전쟁이 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당장 나설 일은 없을거다.
나선다고 하더라도 최전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상자를 닫은 영이는 상자 위에 앉은 후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전쟁 없이 좀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거야말로 내 목표지. 그러기 위해서는 천하를 빨리 잡는 것이 중요하고…”
“몇년이나 걸릴까요?”
내 손을 잡은 영이가 상냥히 묻는다.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솔직히 자신없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이십년을 넘게 그걸 위해서 달려왔는데도 아직 커다란 산이 세개나 남았다.
당장 우리의 골칫거리라고 할 만한 것은 세가지였다.
첫번째는 당연히 익주.
유장의 목을 따고 그쪽을 완전히 토벌하지 않는 이상 발뻗고 잘 수는 없었다.
두번째는 강동.
손책과 주유와 협상을 했을 때라면 솔직히 그쪽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손책이 부상으로 인해 실각하게 되고 주유 역시 밀려났다.
오의 주인인 손권과 노숙이 오를 꽉 잡고 있는 이상 그쪽과 손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딱히 위험하지는 않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지.”
“한… 인가요?”
“응.”
영이도 눈치는 채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한을 대하는 태도는 소 닭보는 듯한 태도였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무리는 없으니 이용가치가 있을 때까지는 얌전히 있어라. 정도의 태도만 보였다.
하지만 유장의 목을 따고 손권을 굴복시키고 나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이 바로 한이다.
“이미 위국의 이름이 한을 누르고 있으니까… 백성들 중에서도 한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진가의 음식을 도맡아 하는 영이다.
그런만큼 재료를 구하는 것도 영이였다.
시녀를 시키지 않고 나가서 식자재를 구입하며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영이의 말인만큼 믿을 수 있었다.
“사람은 나빴던 일을 더 기억하죠. 그런 상황에서 한에서 좋았던 일은 거의 없으니.”
십상시와 하진의 대립, 그리고 황건적.
이후 동탁의 난과 이각과 곽사의 군림.
그 모든 것들이 백성들에게는 이를 갈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위국이 생기기도 전부터 연주 일대 뿐만 아니라 조조의 영역에서는 많은 이들이 등따숩고 배부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만큼 다들 안좋았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만을 가져가는 것이다.
백성들의 생각 속에서 한을 지워나가기 위해 한 노력들.
그리고 지금까지 한 황실에서 한 뻘짓들.
그것들이 오랜 기간 백성들의 마음에 남게 된 것이다.
“익주를 잡고, 오를 토벌하게 된다면 한의 이용가치가 없어지겠지.”
천하가 위국의 영역이 된다면 한 황실은 골칫거리가 된다.
괜히 남겨둬봤자 위험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때 쯤 되면 뭐… 선양을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그리되면 나도 좋아지겠군. 조가의 아이라면 내가 태사가 된다고 해도 군소리 못할테니까.”
물론 당장 일, 이년 안에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선양이야 받을 수는 있지만 받아봤자 좋을 것도 없고.
괜히 익주나 오에서 그것을 빌미로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면 골치 아프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이 문제는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너도 어서 자. 내일 바로 가려면 피곤할텐데.”
“후후. 당신도 힘내요.”
영이가 베시시 웃으며 날 배웅해주었다.
그녀의 볼에 입맞춘 후 난 안채로 들어갔다.
오늘 처음이 희아였지?
희아가 있는 방에 들어간 나는 얇은 옷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침상에 앉아 있던 그녀가 베시시 웃는다.
“어서와요.”
유장따위 두렵지 않다.
오따위도 두렵지 않다.
황제는 이미 내 밥이나 다름없었다.
“많이… 기다렸답니다. 저… 오늘은.”
“으음…”
“많이… 사랑해주셔야 해요.”
살며시 미소짓는 희아를 보며 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아내들과 밤에 만나는 건 나를 정말 두렵게 만드는군.
피곤에 쩌든 내 표정을 보며 장삼은 야관문을 내밀었다.
“씹으면 좀 나을거요.”
“그러냐…”
“어휴. 힘도 좋아. 뭘 그렇게까지 해?”
“들리디?”
“들렸다기보다는 시녀들이 말해주던데? 뭐 좋은 걸 그리 먹는거유? 같이 좀 먹읍시다. 쩝… 마른 장작이 잘 탄다더니.”
내가 먹는거래봐야 야관문 밖에 더 있겠냐.
그리고 야관문은 나보다 쟤들이 더 많이 먹는다.
어제 청이가 소리를 좀 많이 지르더라.
다 하고 나서 같이 씻으며 했었는데 그때 청이가 진짜 열정적이었지.
온 몸의 진액이 다 빠진 것 같지만 어젯밤을 생각하니 다시 힘이 들어간다.
“음음. 진가의 미래는 밝다.”
“시끄럽다. 야. 너는 안가지?”
“그렇수. 아마 고참들은 다들 여기 있을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이군.
흑귀대원들이 다수 포진한 허도라면 가족들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장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평이가 사흘 후면 도착한다는데… 여기서 머물게해야겠지?”
“그렇지? 왜?”
“아니… 쓸데없이 공격해들어오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잖수. 우리가 아무리 진가에 충성을 하지만 소속은 정북부이고, 장군부의 명령을 따르는 만큼.”
“걱정마. 너희가 움직일 일은 없을거니까. 허도가 공격받는 것이 아니라면 자리를 이탈하지도 말고.”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내가 없는 사이 흑귀대나 백귀대를 쓰려는 장군이 없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남는 병력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직위를 바탕으로 건드리려고 하면 골치아픈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내 부하들이기 이전에 내 가족과 같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엄한 놈의 지휘에 목숨 잃는 꼴은 못본다.
“거기장군과도 협조가 잘 되었으니까 걱정말고.”
전에 있었던 하후가와 진가의 대립 어쩌고가 현실이 되었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은 승상부주, 그리고 승상. 마지막으로 장합의 명을 따르도록.”
“알겠수.”
장삼이 느긋하게 말한 후 나간다.
그가 나가고 잠시 후 커다란 가방을 챙긴 서황이 다가왔다.
“준비 되었습니다.”
“율이는?”
“상이가 데리러 갔습니다. 금방 올 것이니…”
“그래? 그럼 우리도 슬슬 나가볼까.”
진가 앞에 있는 마차에 짐이 실리고 있다.
커다란 마차의 짐칸에 짐이 실리고, 합비로 가는 동안 쓸 자재들이나 파오가 준비된다.
“이거 파오 오래간만에 쓰겠네.”
좌풍익에서 유목민들과 어울리며 질 좋은 파오를 받았다.
어지간한 막사보다 바람도 잘 안들어오고 따뜻해서 꽤 좋은 물품이었다.
저걸 선물해준 저유를 생각하며 웃고 있을 때 하후상이 율이와 함께 걸어왔다.
“준비는 끝나신 겁니까?”
“그래.”
“그럼 바로 가면 되겠군요.”
“음.”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 갔다오는 것이다.
그런만큼 배웅은 따로 필요 없었다.
내가 마차에 오르려고 할 때 청이와 희, 완이가 나왔다.
피곤할텐데 더 자지.
그녀들은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잘 다녀와요. 여보.”
“부디 무사히 다녀오세요.”
“언니. 부탁드릴게요.”
셋의 인사에 난 웃으며 마차에 올랐다.
그녀들과 인사를 마친 영이가 율이를 데리고 타자 서황은 말에 탄 채 말했다.
“출발.”
———-
허도에서 합비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당연히 그 중에는 산양군을 통하는 길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양군을 통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여남과 수춘을 거쳐 내려가는 길이다.
어차피 산양군이야 돌아오는 길에 들러도 된다.
그렇다면 유람도 겸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율아. 저기가 양수호다.”
“와아~!!”
자욱하게 안개가 낀 호수를 보며 율이가 감탄한다.
내 품에 안긴 채 신기하게 바라보던 율이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이 호수에는 용이 살고 있는거에요?”
“응?”
“외할아버지가 말씀해주셨던건데. 양수호에 이렇게 물안개가 끼는 건 용이 입김을 내뿜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하하하… 세상에 용이 어딨… 윽.”
내 옆에 있던 영이가 옆구리를 찔렀다.
그래.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자는 거지?
“응. 이 호수에는 용이 살고 있단다. 아주 공명정대한 용이라서 잘못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큰 벌을 내리지.”
“우와! 전 착하게 살고 있으니까 칭찬해주시겠네요!?”
“어제 율이 밥 안먹는다고 울지 않았어? 그럼 나쁜 아인데.”
“힝…”
“그럼 이 애비가 나서서 용을 잡아주지. 율아. 그거 아니? 이 아비는 마마신도 물리친 천신장이란다.”
물론 옛날 이야기지만.
아직도 서주 인근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버지 최고~!”
내 품에서 버둥거리며 좋아하는 율이를 꽉 끌어안았다.
“하하하! 당연히 그러겠지.”
영이가 흐뭇하게 웃었다.
성이나 휘와는 다르게 율이는 참 순수한게 좋다.
그런 율이를 데리고 막사 근처로 돌아왔다.
호위를 겸한 이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인. 맛 좀 봐주십쇼.”
백귀대 대장이 떨떠름해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오면서 식사는 영이가 계속 도맡아 했었다.
이제 내일이면 합비성에 들어가는만큼 마지막 식사는 자기들이 준비하겠다며 백귀대가 나섰다.
하지만 영 맛이 나지 않는 것인지 다들 똥씹은 표정이다.
“음… 자화를 좀 더 넣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상큼하게 웃으며 영이가 말하자 그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오각의 말린 꽃잎을 잘게 부숴 죽에 넣었다.
크게 휘저은 후 그릇에 담에 그가 내민다.
살짝 먹어 본 영이가 웃었다.
“이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야!! 밥 먹자!!”
영이의 허락을 받은 그가 외치자 다들 엉거주춤 몰려왔다.
준비된 것은 돼지고기 구이와 영양죽이다.
전장에 있는 것도 아닌데 밥은 잘 먹어야지.
파오를 설치한 이들까지 모이자 난 서황에게 물었다.
“다른 놈들은?”
“그쪽도 밥 먹을 준비 중입니다.”
“경계 간 애들 것도 잘 챙겨줘. 못 먹으면 서럽다더라.”
“하하… 당연한 말씀을. 자. 드시지요.”
각자 받은 죽을 한입씩 먹었다.
괜찮군.
내가 별다른 불만 없이 먹고 있을 때 음식을 먹던 백귀대 장교가 한숨을 쉬었다.
“하…”
“왜 그러냐?”
“아니… 이제 현실로 돌아 온 것 같아서… 지금까지 호위 치고는 굉장히 잘 먹었잖습니까. 부인 덕분에.”
“하하하…”
영이의 음식솜씨가 좋기는 하지.
그동안 입이 즐거웠는데 다시 자기들이 한 걸로 먹으려니 착찹한 모양이다.
“취사병들에게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줄테니 걱정 말아요.”
“감사합니다! 부인!”
잘 먹고.
잘 자고.
그리고 많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강해지는 왕도다.
지금까지 내 밑에 있는 이들에게 이것은 철저하게 지키게 했었다.
덕분에 꽤나 미식가가 되어버린 이들이다.
이제 다른 군에 가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된 백귀대원들이 웃으며 식사를 하는 사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뭐야?”
죽 그릇을 내려 놓았을 때 첨병이 달려왔다.
도적인가?
“복야!”
“뭔데 그렇게 소란이냐?”
“오십여의 무리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적인가?”
서황이 대부를 잡으며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전원 전투 준비를 하라고 해. 왕적, 적양. 너희는 부인과 아가씨를 호위하라. 복야.”
“아아. 그래.”
나도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위국 내에 치안이 좋긴 하지만 도적은 항상 존재했다.
물론 거대한 도적단의 경우야 관에서 나서서 바로 없애버리지만 작은 도적단 같은 경우는 잡는 것이 영 마땅치 않았다.
“어떤 놈들인지 얼굴이 궁금하구만.”
밥먹을 때는 개도 안건드린다고 했는데.
저녁 식사 시간에 접근하다니.
다들 투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첨병이 다가왔다.
“확인되었습니다. 적이 아닙니다.”
“그럼?”
첨병의 말에 서황은 무기를 내려 놓았다.
모두에게서 피어오르던 살기가 가라앉았을 때 첨병은 조심스레 말했다.
“스스로 밝히길 합비성 도위 장호…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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