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승태는 전령이 올린 그림과 전황 보고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옆에 앉아 있는 조단에게 그림을 보여 주었다.
조단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빤히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그간 공부해 온 바와 꽤 다르기 때문에 궁금증이 생겨난 듯했다.
“아버지, 전황이 굉장히 특이해요. 대장인 태사 도독이 직접 선봉에 섰어요.”
승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몇 장의 그림을 꺼내면서 알렉산더 대왕을 이야기를 각색하여 말해 주었다.
조단은 눈을 반짝였으나 알렉산더 대왕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듣자 약간 안타까운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그래서 알렉산더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구나. 이렇게 똑똑한 아들과 사랑스런 부인들이 있는 가족이 제일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알렉산더 대왕이 되고 싶다 하여 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자 조단이 승태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저도 아버지가 최고예요.”
승태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조단을 토닥이던 때, 내관이 문을 두들겼다.
“순 사공연속(순심)과 노 종사께서 오셨습니다.”
승태는 일전에 나온 혼사 이야기임을 짐작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 일단락되는 기미를 보이니 순심이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지으려는 것이겠지. 자렴 종숙(조홍)이 직접 서신을 쓸 정도면, 조가에도 입김을 불어넣었을 테니 말이야.’
물론 모두가 이번 혼사에 대해 기꺼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지금의 패공인 조비는 조씨가 어찌 순가의 줄을 타려 하느냐며 은근히 승태를 비난하는 서신을 보내왔다.
승태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쓱 보고는 바로 불태워 버리자, 서신을 가져온 인물은 까무러치듯 발광을 해 댔다.
애당초 승태에게는 조조처럼 좋은 필체나 글귀를 모으는 취미는 없기에 답신은 말로 전해 주었다. 이런 비난은 순가에나 전하라고.
‘물론 순가에도 전했겠지. 그래서 사공연속이 되어서도 이리 직접 오시는 것인가?’
들이라는 말을 전하자, 곧 순심과 노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승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에 앉히려 하였으나 순심은 도리어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어찌 더 높은 자리로 오르실 분을 두고 제가 상석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순심의 엄살 섞인 말에 승태는 손을 휘저었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양주의 전투가 마무리 지어진 것도 아니고, 그저 반기를 들려던 인물을 설득하였을 뿐입니다. 거기다 아직 조정에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황제도 없는 지금의 황실은 형식적으로나마 종친 중 한 명을 대리로 내세운 상황이었다. 어차피 후일 헌제가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에 앉을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으로 돌아가니, 결국 모든 사안에 대한 재가는 순욱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조정에서도 손권에 대한 처후는 골칫거리였는데, 반기를 들어 올린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직위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권은 장사 태수 겸 남형주 도독의 지위를 마치 맡겨 놓은 사람처럼 요구했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사방을 적으로 둘러싸인 현재 상황에서 손권의 목을 그냥 잘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남은 잔당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분명했으니.
결국, 본보기로 몇을 참하고 볼모를 잡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그 결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손권의 아들 대신 손책의 아들인 손소가 허도로 보내졌다.
혹여 손권이 난을 일으키면 전통성을 흔들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승태가 보기엔 그다지 잘 통할 것 같지는 않은 일이었다.
‘하긴 조정에서도 주머니 안의 돈을 탈탈 털고 있는 상황이니, 그 정도로 타협을 본 것이겠지. 이미 둔전으로 뽑아낼 수 있는 여력도 없고, 호족들에게 투자받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니.’
조조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강압적으로 호족들을 압박하거나 몰락시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순가는 그러지 못했다.
연주와 사예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폭압적인 행보를 취하지 못하는 순가의 모습에 호족들은 그저 관망하는 눈으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 혼사는 영 마뜩잖단 말이야. 결국, 순가가 내게 후처를 들이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도움을 바라는 모양새이니 말이야.’
순심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승태는 이내 웃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그들 앞에 다과가 놓이자, 노숙은 우려진 차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낙양에서는 따로 연락이 없습니까? 낙양이 봉쇄된 지도 오래인데, 딱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픈 곳을 찌르는 물음에 순심은 태연하게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봉쇄가 길어지면서 낙양 내부는 그야말로 황폐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그 아름다운 고도(古都)가 동탁의 치세 이후 처참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부에서 이제야 항복의 목소리가 커지는 듯싶소. 하긴 이제는 원담도 돕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네. 원상이 하간에서 크게 난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였으니 말이네.”
꽤 놀라운 소식이었다. 사실 하북의 일은 그리 관심이 없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조조에게 망명한 원상이 난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면 병주의 가후가 전황을 순식간에 뒤집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승태가 흥미가 동한 모습을 보이자, 순심이 계속 말을 이었다.
“원담이 전풍에게 일군을 맡겨 낙양으로 보내 버린 후 입을 닦아 버린 일로 인하여 내부에서 꽤 큰 내홍(內訌)을 겪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원상이 하간에서 비밀리에 세력을 모았다고 한들 이렇게 쉽게 흔들릴 일은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제아무리 원담이 내정을 못 한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한번 흔들었다고 난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것이 민심을 다독이고 호족들의 마음을 모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역량과는 차이가 있지만, 호족들에게 이권을 내주고 병사를 모으거나 군량을 조달하는 일은 원담이라 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혹시 그 방법도 한계에 달해서 난이 일어난 건가? 아니면 전풍이 없어서? 끙, 전후를 알기 힘들긴 하군.’
가장 큰 문제는 원담의 독선적인 성격이었다. 마치 자신이 원소라도 된 것마냥 사람들을 대하니 반발심이 생기고, 전풍의 일로 인하여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가족들 간에도 서로 분란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고간은 원담에게 구원요청을 했음에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자, 이제는 아예 원담을 원수라 여길 정도였다.
청주의 저수는 전풍을 돕고 싶음에도 사방이 틀어막혀 방법이 없으니, 주변을 공격하는 식의 발버둥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후께서 약간의 도움만 주신다면, 청주의 저수도 금세 정리될 것입니다.”
승태는 순심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 해도 저수가 그렇게 쉬운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순심이 이처럼 자신 있게 말을 한다는 것은 승태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승태는 슬쩍 그 근거를 물었다.
“청주의 저수를 정리하려는 시도는 이쪽에서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 마음을 접었는데, 어찌 그리 자신하시는 것입니까?”
“저수의 아들인 저곡이 원상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승태는 순심의 말에 여전히 의문을 드러냈다. 저수가 원담의 손을 들어 주며 청주를 차지하였는데, 그의 아들은 원상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일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곡이 어째서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것입니까?”
승태의 말에 순심은 느긋하게 수염을 쓸어 넘기며 답했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수가 청주에서 버티며 전투를 벌인 것이 이미 열 번을 넘습니다. 솔직히 저수 같은 인재가 원담의 무엇을 보고 손을 들어 주었겠습니까? 아마도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어찌하여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보아도 제가 필요한 자리는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수춘후께서 직접 서주에 행차만 하여도 저수는 군을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순심의 말은 승태가 관심을 끌어 주는 동안 저수를 설득하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그사이에 저수에게 세객을 보낼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허도에는 하릴없이 놀고 있는 기주인들이 많으니, 이번 기회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승태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허유가 지나갔다. 물론 허유가 기주 사람은 아니지만, 말로 설득하는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원 공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승태가 허유에 대해 언급하자, 순심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사치와 향락이 무엇인지를 정말 제대로 알려 주는 사람이 바로 허유였기 때문이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지요.”
“그를 지원해 주는 인물이 있습니까?”
“이전에 패공께서 내준 전답만 하여도 어마어마하니, 그것만으로도 지금 같은 삶을 영위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승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세객으로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승태의 제안에 순심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일을 망칠 것입니다. 거만한 성정이니 분명 저수를 깔볼 것이고, 그리하면 자연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승태는 눈썹을 긁으며 말했다.
“그랬다간 저수의 손에 죽겠지요. 어차피 하는 일 없이 전답을 가지고 있는 허유보다는 죽은 허유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허유가 못 하겠다 버티면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아마 알아서 열심히 할 것입니다.”
순심은 순간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했다. 설마 승태가 이런 날강도 같은 소리를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선대 패공께서 주신 물건 아닙니까? 지금 패공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이렇든 저렇든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죽으면 쓸모없는 인물 하나 치운 것이고, 성공하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일을 이루는 것이니 말입니다.”
순심은 차를 벌컥 들이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공께 말씀 전해 올리겠습니다.”
승태는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결정은 순욱이 할 일인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알아서 잘 하실 분이었다.
순심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떼었다.
“그나저나 혼사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승태는 이윽고 본론이 나오자 잠시 찻잔을 빙빙 돌리면서 순심을 바라보았다. 길어지는 침묵에 노숙 또한 절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승태의 입이 열렸다.
“순가에서 저를 굳이 사위로 삼으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혼사를 맺든 맺지 않든 제가 순가를 돕는 것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