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승태는 가후가 고개를 숙이자 난감함을 느꼈다. 진궁이나 진규처럼 나이든 이가 이러는 것은 언제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소신, 동 상국을 역적으로 만든 한조를 끝내고자 하였습니다.”
“한조의 끝을 내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승태는 한발 물러섰다. 내왕외후, 혹은 자신이 다스리는 곳만 신경 쓰겠다는 지역이기주의는 조금 꺼림직해도 권력자라면 한 번 노려볼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조의 붕괴는 완전히 달랐다. 질적으로도, 천하의 사람들이 당장 악한이라고 지목받을 정도로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가후도 그것을 이해하는 듯 별 내색은 하지 않았다. 마치 선을 긋듯이… 아니, 분명 자신의 약점일 텐데 승태에게 말을 꺼내었다.
그런 가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감미로웠다. 마치 손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조는 이미 병이 들어 변혁이 필요했습니다. 권력자들은 매관과 매직을 하였는데, 그것은 가장 높은 황제에서부터 지방의 현령과 현장, 현위까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승태는 순간 아미를 찡그리면서 가후를 바라보았다. 한조를 끝장내는 것과 옛날이야기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가후의 모습을 보니, 이 옛날이야기를 끊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가후가 이야기하는 내용이야 승태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가. 덕분에 관직을 사들인 이들은 본전을 찾기 위해 백성들을 수탈하였고, 그러한 일들이 누적되자 결국 황건적과 같은 반란이 일어난 거라고 말이다.
물론 이뿐만 아니라 많은 일이 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결국 매관매직으로 인한 수탈 때문이었다. 여하튼 한 조정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조정에는 무능한 권신들만이 남아 있게 되었을 뿐.
“그리고 그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더 큰 이익과 권력을 위하여 싸웠고, 그 끝은 후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십상시의 난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변혁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고래로 내려오던 호족도 아니며,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칭하는 인물도 아닌, 그저 외방의 일개 장수인 상국께서 천하를 변화시킬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동탁은 권력을 쥔 뒤 이러한 악습을 혁파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나 과격했다는 점이었다.
“죄가 있는 자, 창과 칼을 받을 것이고 죄 없고 능력 있는 자, 중용될 것이다.”
그것이 동탁의 방식이었다.
기존의 관행, 합의, 그리고 타협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세운 황제로 인해 명분을 세울 수 있었고, 충성스러운 군대를 가져 충분한 힘까지 있었다. 즉, 명분과 힘 모두를 충족할 수 있으니 다른 이와 대화 따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동탁이 생각한 것보다 구 권력의 단단함이 굳건했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옥도와 같은 천하에서 변혁을 위해 일하는 이들보다는 한낱 자신의 이득을 늘리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중요했다.
“그것이 상국의 천하를 바라보는 기조였습니다.”
“…….”
솔직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승태는 가후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가후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탁을 찬미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마어마한 악인을 대변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동탁이 누구던가. 삼국지연의는 물론이고 정사 삼국지, 역사 속에서도 망탁조의라 불리며 권신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 아닌가.
가후는 승태가 차마 알지 못하던 점에 대하여 말을 꺼내었다.
“상국께서 황실에 욕을 보인 것은… 옳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승태는 동탁이 옳음을 행했다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동안 그가 들은 동탁의 만행은 역사 속의 악행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동탁 아래에 있던 여포의 수하들 역시 무장이다 보니, 정확히 동탁이 어떤 일을 행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동탁은 진정 역적인 듯싶었다.
그러니 가후의 말이 와 닿지 않을 수밖에. 그때, 승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가후는 승태의 눈동자를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천하에 동탁은 최악의 악인으로 규정된 상태. 그러나 실제로는 그가 죄인이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혼란의 책임이 관동의 높으신 분들에게 돌아갈 테니 말이다.
동탁이 엉터리고 쓸모없는 최악의 인간이어야 천하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려는 이들이 명분을 얻을 터. 지금껏 그런 시각에 갇혀 있던 승태를 어찌 설득해야 하느냐는 암담함이 가후의 마음속에 생겨났다.
“당연히 믿기는 어려울 테지요. 뭐, 그러할 것입니다.”
승태는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선 듣겠습니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본 후는 관동에 오래 있었고, 낙양의 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알지 못하는 게 많을 겁니다. 분명 편견이 있겠지요. 그러니 가 공께서 아는 사실을 말해 주시지요. 제가 다른 눈을 가질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자 가후는 예를 표한 뒤, 고이 품고 있던 함을 내밀었다.
“선대 황제 폐하의 유지입니다.”
승태는 서신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 황자 협을 황제로 옹립하라.
옥새가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 사실이었다. 대체 동탁은 왜 이것을 명분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후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동 상국께서도 하 대장군을 존경하셨습니다. 하여 하 대장군의 명예를 지켜드리기 위해서 자신이 모든 오욕을 받아들이기로 하셨습니다.
‘…하기야 이 유지가 드러나면 하진과 하씨 일족은 그대로 역적 집안이 되어 버리겠지. 그를 존경한다면 이런 건 쓰지 못하는 게 당연해. 어째서 하진의 군세들이 그대로 동탁에게 고개를 숙였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비사가…….’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명분을 가지고 왜 굳이 홍농왕을 죽였을까라는 의문도 떠올랐다. 이런 게 있다는 사실만 살짝 흘렸더라도 제위에 다시 오를 명분을 잃을 터.
“당시 홍농왕 전하는 어찌하여…….”
“상국은 아닙니다. 논의한 적은 있었으나…….”
승태는 이후로 동탁에 대한 가후의 변론들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가 알던 역사대로의 악인은 아니더라도 무능하다는 점은 변함없었다.
특히 화폐를 함부로 건드린 일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하기야 현대에서는 당연한 경제적 상식이나 예측은 모두 수많은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얻은 것 아닌가.
“이 가 모는 상국을 배신한 한조와 작금의 폐하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가후는 말끝을 흐렸으나, 승태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한조의 멸망을 원한다는 말씀입니까?”
“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근왕군이라 자처하는 자들도 분명 스스로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군을 일으켰겠지요. 저들이 성공한다면 분명 폐하를 봉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의 생존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상국께서 옹립한 황제이니 따르고 싶은 마음도 없을 것이고요.”
승태는 가후의 말에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전투가 어찌 끝날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후에 어마어마한 변혁이 일어나리라.
승태는 바닥을 툭툭 두들기며 물었다.
“그것이 제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들 중 누군가가 제위에 오른다면, 굳게 닫힌 왕의 자리로 오르는 문이 열리겠지요.”
제위의 문턱이 내려가면, 왕위의 문턱 또한 내려갈 것은 자명하였다. 황제도 아무나 되는데 왕위는 어떻게 되겠는가?
가후는 고심하는 승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후께서는 가장 천천히 그 길에 오르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장 빛나는 이가 될 테니 말입니다.”
다음 날, 승태는 말에 올라탄 채 무심한 표정으로 안읍을 바라보았다. 가후 휘하의 인물들도 승태의 뒤를 따르며 명을 받들었다.
하동과 병주의 세력을 흡수하게 된 승태였는데,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가후의 말만이 맴돌 뿐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만인의 볕을 비추는 해가 되어 주소서.”
승태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태풍에 휘말려 겁먹었을 때, 해가 비치는 것을 보고 태풍이 물러났음을 알았다. 아마 가후 역시 혼란의 소용돌이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인물이 되라는 의미로 말했으리라.
‘나는 저들의 태양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달릴 뿐.’
자신의 휘하에 모인 수많은 사람은 각자 원하는 바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승태였다. 그러하니 그들의 손으로 이상을 이루어야 했고, 굳이 공을 가져갈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마지막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씹어 삼키면 될 뿐.
* * *
승태의 후퇴로 인해 하동을 노린 전투의 판이 갑자기 바뀌고 있었다. 아군이 흔들리는 것과는 별개로 적군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과격해졌기 때문이다. 원담은 그전까지의 차분함은 모두 거짓이라는 듯이 우격다짐으로 도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방희 역시 포판현을 무시하고 곧바로 안읍으로 진격하고자 했다.
그러니 포판은 어느 정도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장합이 지키던 문희현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어 버렸다.
장수들은 승태의 군이 대양으로 움직인다는 서신이 전해지자, 급작스럽게 혼란해졌다.
지금 기주병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데, 후퇴한다는 건 자신들을 버린다는 것과 다름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군세의 일부가 적의 뒤를 노린다는 것을 아는 장합과 부관들은 의연했지만, 이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내부의 불만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후께서 굳이 이런 수까지 두셔야 했습니까?”
부관의 말에 장합은 피식 웃었다. 보라, 성장했다고 느낀 원담조차 저리 급해지지 않았는가.
“적들의 반응을 보게. 도강은 많은 준비를 마치고 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도 군내의 불안은… 잡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들의 행동이 빠를수록 더 커질 게 분명합니다.”
장합은 그런 부관의 어깨를 다잡으며 말했다.
“곽 장군을 필두로 소수의 군세를 움직이도록 하게.”
“기습하려 하심입니까?”
“아니네. 우리가 기습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뿐이네. 그러면 적의 움직임도 잠시 늦춰지겠지. 그러고 나서 고 장군께 이 서신을 전하게나. 적이 강을 건너도록 할 터이니, 반드시 이곳에서 싸워야 한다고 말이야.”
“명을 받듭니다.”
부관은 빠르게 자리에서 떠나 후방에 주둔 중인 곽원과 고순에게 서신을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
장합은 강에 건설되는 간이 나무다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 수십이 달라붙어 마차보다 넓은 나무판을 서로 엮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작업 도중 계속해서 물에 떠내려가는 이가 생김에도 끊이지 않고 병사들이 작업에 투입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이 가장 큰 일이겠구나.”
장합은 턱을 괴며 술잔을 살짝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