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허정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그때 여건은 승기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투창을 잡아 던지려고 했다. 순간, 그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붉은 비단을 휘날리는 인물이 그곳에 서 있었는데, 그것을 본 여건의 수하 중 몇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만억의 부대요! 적광, 적광이란 말입니다!”
만억의 적광은 여남 일대에서 꽤 악명이 높은 부대였다.
함진영과 같이 정식으로 불리는 부대명은 아니었지만, 여남에서 이통과 죽음을 같이하는 붉은 옷의 부대를 적광이라 불렀다.
임협들 중에서도 뛰어난 이들을 모아 강한 세력으로 우뚝 섰던 이통이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그들의 무예가 남아 있었다. 적벽대전 당시, 조조가 패하여 도망가는 그때 천장이라 이름 높던 조인이 사방으로 포위를 당한 상황이었다.
그때 이통은 자신의 군을 통솔하여 공격하였는데, 하마한 후 녹각을 걷어 내면서 포위망 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러고 나서 맹렬히 싸우며 조인의 군을 구출했으며 그 무용이 여러 장수 중 가장 뛰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조조는 그런 이통의 능력을 알았기에 가장 위험한 여남을 지키도록 한 것이고 말이다. 연의나 다른 매체에서는 각광 받지 못했지만, 그의 능력은 조조도 인정한 것이었으니까.
여건은 인상을 찌푸리며 죽간에 쓰여 있던 말을 떠올렸다.
비틀림, 생각하지 못한 비틀림이었다.
여건은 이통이 지금 누구의 부름을 받았는지 보지 않고도 알 수가 있었다.
이통 본인은 언제나 고순을 존숭한다는 말을 하였으니, 그가 얼마나 고순을 각별히 생각하고 따랐는지도 눈에 훤했다.
사실 그랬기에 우금의 휘하에 두어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그간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것을 깨부숴 버리고 여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
“승상의 선택이 많이 어긋난 듯싶군. 고순을 그렇게 만들어서 적을 만들다니 말이야.”
여건은 완벽한 기습이 이렇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전황을 보고 수춘후의 호위장 만큼은 죽여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창을 들고 허정에게 던지려고 하였다.
피슈웅!
여건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재빨리 창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덕에 승태와 병사들은 진을 짜서 허정을 둘러싼 방진을 만들 수 있었다. 여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러자 대도를 들고 있던 붉은 옷의 인물이 주변의 호위를 받으며 활을 조준하는 모습이 보였고, 다시금 화살을 메기는 모습을 본 여건은 창을 들고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화살을 모두 소진하고 내려간다. 흩어져서 퇴각한다.”
“화살을 모두 소진하라! 모두 소진 후 각 조는 퇴각하라!”
깃발이 빠르게 휘날리며 병사들이 화살을 모두 쏟아 내자,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건은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고 바로 말을 타고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런 모습에 이통이 그를 쫓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승태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빌어먹을…….”
말이 움직이기 힘들게 길이 막혀 있었고, 그곳에는 어려 보이는 인물 하나가 병사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모… 모두 자… 잘… 오셨습니다. 마… 말…에서 내리…시지요. 소… 소인 등…….”
말을 더듬거리는 젊은 부관으로 보이는 이가 나서 말을 했는데, 피부가 볕으로 인해 많이 탄 것으로 보아 호족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딱 보아도 농민 같은 이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갑주를 입고 좋은 무기를 든 것을 본 여건은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는 창을 꾹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본디 전장의 주변에서 화전민이나 유랑민들이 죽은 병사들을 털어먹거나 한몫 잡기 위해 돌아다니고는 했는데, 그런 거로 생각한 것이다.
“천하의 도가 떨어지니 아무나 무기를 들고 천하를 어지럽히는구나! 네 이놈! 자리를 치우고 길을 안내토록 하여라! 농인(農人)들이 제 욕심을 참지 못하고 이런 짓이나 하다니, 내 이번에는 봐주겠지만 다음은 없을 것이다!”
“노… 농인 아… 아닙니다.”
“네 이놈!”
“닥쳐라, 이 패전지장이 감히 우리를 홀대한단 말이냐! 지금 당장 죽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붉어지던 말더듬이는 분노가 폭발하자 순식간에 말이 빨라지며 유창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러고 이내 쇠뇌를 들어 올려 여건을 노렸다.
“닥치고 내리라는 말입니다!”
여건도 얼굴이 붉어져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무지렁이들을 모조리 죽여라!”
여건의 수하들 또한 겉모습에 이들을 굉장히 낮게 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군이 움직이는 것을 본 말더듬이는 놀라는 것이 아니라 표정을 굳히고 빠르게 대응하였다.
창병들이 빠르게 달려 나가고, 쇠뇌를 들고 있던 이들이 주춤하는 기마병들의 얼굴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창병들이 그들을 찌르고 끌어내렸다. 여건이 갑작스런 상황의 변화에 말머리를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붉은 옷의 인물이 웃음을 지으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만억! 네 이놈! 선주께서 너를 어떻게 생각하였는데 이리 칼을 거꾸로 잡는단 말이냐?”
“무슨 말이던가?”
“네놈이 역적의 손을 잡았으니 하는 말이다. 선주의 뒤를 이은 승상께 머리를 조아려야 할 터인데 지금 이렇게 서 있지 않은가! 충을 모르는 자, 덕을 버렸으니 옳지 못하다! 땅에 떨어진 규(規)와 도(道)를 다시 세울 생각을 하지도 않으니 네놈들은 악적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여건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은 하늘이 구족을 멸할 것이다! 먼저 간 이들이 너희를 버릴 것이며, 천하 모두가 너희를 노릴 것이다!”
아마 승태가 들었으면 개소리라는 한마디로 입을 닥치게 했을 터. 보통은 공맹을 더 많이 배운 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못 배운 이들은 멋진 말이라 생각하고 설득되거나 휩쓸리기 쉬웠을 것이다.
이통 역시 동의하는 것처럼 그런 여건의 말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정 그런가?”
여건은 이통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생각에 혀를 마구 놀리기 시작하였다.
“본시 하늘은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한다 하였다. 작금 수춘후를 잡아 공을 세운다면 천하가 너희를 다시 볼 것이다!”
“내가 물음을 던졌는데 답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오? 내 선주이신 조조는 선인(善人)이었소?”
순간 여건은 말을 하지 못했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공을 세워 한조를 지금까지 일으켰으니 사적인 악행을 어찌 판단하겠는가? 천하를 올바르게 세우는데 핏값이 들었을 뿐이다.”
여건은 자신의 말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뭐, 완벽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말실수했다. 두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핏값이라… 그렇구나! 모두 들으라! 서주의 잔혹함을 아는 자는 들으라! 그들의 피가 대지를 적실 때, 이자는 그것을 그저 올바르게 만들기 위한 핏값이라 보았다!”
이통은 창을 들어 여건을 가리켰다.
“천하의 도가 규와 도라 했느냐? 그러한 것이 도라면 나는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협(俠)과 의(義)를 따질 뿐이다.”
이통이 빠르게 달려가자, 여건은 이를 악물고 창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 했다. 이통은 그것을 비웃듯이 무엇인가를 던졌다.
겨우 작은 돌멩이였다. 그 작은 돌멩이가 여건의 손을 때렸다.
“비겁한……!”
그러나 그 비겁하다고 말한 것으로 인하여 순간 말고삐를 잡은 손을 놓쳤고, 여건은 순식간에 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낙마하고 말았다.
푸르르르르릉!
이통은 날아가는 듯 말의 등을 밟고 여건이 떨어진 곳으로 뛰었고, 여건은 공중에 떠 있는 이통을 향하여 창을 내질렀다.
“멍청한 놈!”
공중에서 방향을 트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 여건이 하는 말은 정확하였다. 그러나 이통은 공중에서 창대를 걷어차 공격을 막아 내고는 대도를 짧게 잡고 여건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딱 달라붙는 바람에 창을 휘두르지도 못하는 그때, 이통은 여건의 어깨에 박힌 도를 한 번 비틀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피가 터지면서 여건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였다.
“네놈들은 결국…….”
“닥치거라. 너희는 도독을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자도 결국…….”
이통은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 그의 턱에 올려 꽂아 버렸다.
“그 입에서 나온 더러운 말로 그분을 더럽히려 하지 말아라.”
그러고 나서 이통은 등애를 바라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되었다.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이 모두 너의 덕인데 무슨 죄송이더냐?”
“여…건을 놓칠 뻔…하여…….”
“잡았으면 된 것이다. 어차피 조정이 이번 일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았을 테지만, 여건이 죽었으니 연주와 태산의 군세가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너의 말대로 우 장군이 우리 때문에 움직이게 되면 어찌 될 것 같으냐?”
“모… 모르…겠습니다.”
“그래. 우 장군이 적이 될지, 아니면 같이 싸울지는 알지 못하지만 애매모호하게 있다가 뒤통수 맞는 것 보다야 나을 것이니.”
“수… 수춘후…께서는…….”
“저곳에 있을 것이다.”
이통의 손은 고원 쪽을 가리켰고, 등애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움직이려 하였다. 그때, 이통이 등애를 보며 물었다.
“진정 수춘후의 휘하에 들려 하느냐? 차라리 내 밑에서 중용 받다가 자리를 얻는 게 좋을 것이다.”
“마… 맞지 않습니다. 소… 소인이 군을 움직이는 것과… 장군께서 하는 것은 말입니다…….”
이통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그의 뒤에 섰다. 그러고는 여건의 시신을 내주었다.
“자네의 공으로 하게.”
등애는 슬쩍 여건의 시신을 보고 이통에게 예를 표했다. 그는 그것을 직접 들고 산을 올랐다.
이통은 휘파람을 불며 산을 올랐고 잠시 후 그를 찾는 그의 병사들과 마주하였다.
* * *
정욱은 눈을 감으며 죽간을 이내 화로에 던졌다. 그의 앞에 앉아 있던 문직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일이 꼬였네.”
정욱의 말에 문직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책략은 적중하였고 조제는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닙니까?”
“이통이 제멋대로 움직였어.”
“그렇다 하여도 수춘후가 살 거라는 보장은…….”
정욱은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문직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기할 텐가?”
흠칫.
정욱이 내기를 하겠냐는 말에 언제나 졌던 문직은 그가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이름을 립에서 욱으로 바꾸고 천하의 위란을 직접 막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말이야…….”
정욱의 말에 문직은 약간 걱정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건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다음은 저희가 아니겠습니까?”
정욱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는 의미가 없어 지킬 수 있었던 견성과 패는 달랐다.
작금 조조가 패공으로 처음 추대되었으니, 그 상징이 다를 것이었다.
“조가의 인물이라면… 당연히 노릴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