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86
관우의 몸은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화타의 의술에 일어나기는 했으나 아직 몸에 뱀독이 남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조조, 화타, 그리고 장비까지 포함한 모두가 전장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관우는 덤덤히 답하였다.
― 사공께 은혜를 갚고 형님에게 가는 길이 이것뿐이니, 어찌 나아가지 않겠는가.
치료 후, 관우는 원소가 군을 이끌고 내려왔다는 이야기에 바로 말을 찾았고, 이에 승태는 가장 빠른 말을 내어주었다.
관우는 그런 승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대는 조 사공이나 의제와 달리 나를 막지 않는군.
― 저는 관 공을 믿으니 막지 않습니다.
― 믿는다라··· 어찌하여 믿는가.
― 관 공께서는 말한 바를 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 공께서는 목숨보다는 약조를 중시하며 명예보다는 협의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관 공께서는 나아가 공을 세울 것이라 믿습니다.
― 그럼 나는 떠날 것인데, 어찌하여 보내 주는가.
― 공을 세우지 못하는 장수가 어찌 장수겠습니까? 화려한 패물(佩物)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는 관 공께서 패물 따위가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과 함께 승태가 통과 패를 건네고 낯선 형태의 약을 들며 말했다.
― 통증을 잊게 해 주는 약입니다.
― 필요 없네만.
― 충분하시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관우는 약을 품에 넣고 물었다.
― 어떻게 먹으면 되겠는가?
― 한 시진 전에 드시면 통증이 가실 것입니다. 하지만 몽롱하고 무력감이 심할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 쓸 일이 없기를 바라야겠군. 그대의 호의와 은혜를 가슴 깊이 간직하겠네.
승태가 예를 취하고 고개를 숙이자, 관우는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가 내어준 약을 끝내 쓰지 않아 몸이 아파 왔지만, 관우의 표정은 마치 산책을 나온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표정과 달리 전마는 미친 듯이 침을 흩뿌리며 달리고 있었고 관우의 언월도는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마치 빗자루로 낙엽을 쓸 듯이 처리해 나아갔다.
안량은 그런 관우의 모습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어찌 이를 이해하겠는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관우의 모습은 마치 초한지의 초 패왕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안량은 월도를 뽑았으나 한발 늦었다. 아니, 빨랐더라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언월도를 막고 있던 월도가 관우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 안량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네놈이 왜! 그래! 유 사군이 대장군의 휘하에 있다!”
안량이 발악하듯 외치자 관우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한가? 고맙군.”
“고맙다! 내 너를······.”
안량은 살겠구나 싶어 환히 웃어 보였지만, 관우는 언월도의 방향을 꺾어 바로 목을 베어 버렸다.
“미안하다. 약조는 지키는 사람이라.”
떨어진 안량의 수급을 언월도로 꼽고 말을 돌리자, 이미 주변의 병사들은 흩어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관우는 그럼에도 계속 싸우라며 독려하는 장수들을 하나둘 베어 내었다.
어느새 관우의 주변이 조용하게 변할 즈음, 피칠갑이 된 장료가 말달려 와 관우에게 물었다.
“관 장군, 무탈하십니까?”
“보는 대로.”
장료는 그런 관우를 보며 옆에 다가와 물었다.
“안량이 뭐라 하던데, 무슨 말입니까?”
“큰형님께서 원소군에 있다고 하더군.”
그 말에 장료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가?”
“뭘 놀랍니까? 이미 들은 말입니다. 살아 있는지, 죽어서 갔는지 알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형님 동생은 괜찮겠습니까? 어양에 몰려간 군대는 서원팔교위의 명장이라 불리는 순우경인데······.”
“글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의제는 질 싸움을 하지 않는 아이라서.”
***
한편, 장비는 자신을 따르는 오환기병들을 이끌며 순우경을 약 올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그를 계속 쫓도록 만들었다. 오환기병은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배사를 하며 어양 근처까지 도망갔다.
순우경은 이 이상 쫓아 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저들이 조조가 있는 함정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순우경이 자리에 멈추어 고민하자, 갑자기 오환기병들도 멈추기 시작했다.
“저놈들이 왜?”
그러더니 갑자기 순우경의 부대를 향하여 들어오자, 순우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명을 내렸다.
“대마진(對馬陣)을 세워라. 돌기를 상대하는 것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저놈들이 미쳤구나.”
대마진은 원형으로 된, 방패병과 창병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진형이었다. 그 사이를 지나면 기마병들은 창에 맞거나 극(戟)에 말 다리가 잘려 포위된 뒤, 좁아지는 진에 의해 죽게 된다.
장비는 그런 무시무시한 순우경의 대마진을 보고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마치 그런 진 따위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밀집된 그들의 모습에 오환기병들은 그 앞에서 돌진을 멈추고 말머리를 돌려 좌우로 갈라져 빠져나갔다. 오롯이 장비만 적들을 넘어 그들 사이에 섰다.
그것을 본 순우경은 멍하니 장비를 바라보았다.
“저 미친놈은 뭐냐?”
홀로 대마진을 구성하는 소진(少陣)에 들어온 장비는 창에 찔린 말에서 곡예를 하듯이 내려와 사모를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에 적병들이 허리가 베어지며 쓰러졌다.
이에 병사들이 검을 뽑으려 하였으나 장비는 사모로 하단을 휘둘러 적들의 허벅지들을 베었다.
방패병들 일부가 몸을 돌려 장비를 압박하려 했으나 그는 그들의 협공 준비가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그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짧게 잡은 사모로 방패병들 중갑 사이의 살을 찌르고 베어 냈다.
순식간에 열다섯으로 이루어진 소진의 구성원 모두가 바닥에 누워서 베이고 찔린 부위를 부여잡은 채 죽어 가거나 죽어 있었다.
그 순간, 순우경 측 병사들의 진형이 장수 한 명을 대항하기 위한 장살진(將殺陣)으로 변모하였다. 병사들의 품에서 나오는 쇠사슬의 모습에 장비는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순우경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장비의 눈에는 순우경이 원소와 조조의 얼굴로 보였다. 장비는 승태와의 대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 내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조조의 인내심은 모조리 박살이 나서 노골적으로 네 세력을 모조리 흩어 버릴 것이다. 앞에 대적이 있으니 더더욱 잘게 쪼갤 테지.
승태는 웃음을 지었다. 이는 장비가 원하는 바였고, 승태도 원하는 바였다. 장비는 승태가 끝까지 몰려 감정적으로 조조를 죽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승태는 진궁의 판 위에서 움직이고자 했지만 말이다.
― 중랑장.
― 응?
― 원소도 죽고 사공도 죽으면,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 알고 있다.
― 천하가 무너지더라도 유 사군이 천하를 쥐는 것이 맞습니까?
― 너는 어째서 사공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냐?
― 살려고요.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에나 올라가면 될 것이다.
― 싫습니다. 제가 잘못이 없는데 왜 포기를 합니까?
― 우리 형제들도 그렇다.
― 대단하시네요.
― 그런데 뭉쳐서도 조조의 세력을 뒤집어엎기 힘들 텐데, 어떻게 조조를 죽이고 세력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냐?
― 원소와 조 사공이 죽고 흩어질 세력은 저와 뜻이 같거나 저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칠 이들입니다. 만약 둘이 이번 전투로 한꺼번에 죽으면 그들은 저를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 하! 조조가 알면 까무러칠 이야기로군. 그래서 언제 조조를 죽일 것이냐?
순가가 붙인 눈을 장비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 같았지만, 승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자신의 대적인 원소를 꺾고 가장 기뻐할 때 죽음을 내려 줄 것입니다.
― 그럼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 조조를 죽일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하, 내가 죽이라는 것이냐?
― 관 공과 중랑장의 목숨값입니다. 어차피 장 중랑장도 원하는 바 아닙니까?
장비는 어이가 없는 듯 승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승리에 취한 조조를 죽이는 일은 장비에게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나도 원하는 바이지. 조조와 원소가 죽으면 천하의 판도가 바뀔 것이니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네가 챙길 수 있겠느냐?
― 중랑장이 저를 걱정하는 것입니까?
― 아니. 타산하는 것이다. 네 대답에 따라 큰형님을 어찌 움직이게 할지 결정해야 하거든.
― 그런 것은 성공하고 하십시오.
장비는 원소와의 대전이 끝나고 천하의 질서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는 입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을 웃으며 싸우고 있었다.
순우경은 그런 장비를 보며 부관에게 물었다.
“저놈은 왜 헤실거리면서 사람을 죽이는 거야? 진짜 미친 건가? 싸울 줄 아는 놈 같은데··· 잡아서 밑에다 두고 쓰면 좋을 것 같군.”
“포로로 잡습니까?”
“가능하면 그리하여라. 나는 그것을 바라보도록 하지.”
안량이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는 순우경은 그저 장비의 싸움을 보며 천천히 여흥을 즐기려고 하였다.
‘그냥 원가의 금력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 버릴 이 전쟁에서 작게나마 즐거움을 느끼겠구나.’
그때, 안량 쪽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장군! 장군! 급전! 급전입니다!”
순우경은 자신의 여흥을 깬 병사에게 약간의 짜증을 담아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안 장군이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군대는 패퇴하여 흩어졌습니다! 곽 도독이 지금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순우경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전령에게 안량이 당한 이유를 물었다.
“당하다니? 왜? 조조의 휘하에서 하후연이나 조인을 제외한 안량을 이길 상대가 있다더냐? 하후연은 보급을 조인은 후방에서 군을 다스리고 있을 터인데?”
순우경의 머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안량이 단순히 무예만 믿는 머저리였으면, 조조의 휘하 장수 중 무예가 출중한 인물에게 당했을 것으로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안량은 순우경도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장수였다. 그러니 상대가 단순히 무예만 출중하다고 해서 안량의 방진을 뚫고 호사들이 지키는 이들을 뚫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존재라면 또 모를까.’
순우경은 과거 흑산적의 백만 병사들을 도륙 내던 여포 휘하의 장수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
“장군, 급한 일입니다! 곽 도독께서 지키는 백마의 도하지점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순우경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알았다. 퇴각 신호를 보내라!”
순우경의 퇴각 신호가 전군에 퍼지자, 병사들은 빠르게 장살진을 풀고 퇴각하기 위한 방호진을 만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언덕 너머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순우경은 이들이 그저 죽음을 각오한 미끼로 생각하고 빠르게 군을 움직였다.
***
한편, 여양 원소군은 충격에 휩싸였다.
“안량이 죽다니··· 안량이 왜!”
문추가 분노하며 이를 보고한 순우경의 전령을 한 손으로 들고 분노를 내뿜었다. 그때, 뒤에서 허유가 유비의 앞에 죽간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이건 유 사군께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은데?”
“자원(子遠), 자네가 말해 보게”
허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유 사군의 의제가 지금 조조를 돕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 이전의 관우라는 자가 안량을 베었다고 하네.”
문추는 전령을 던져 버리고 유비에게 손을 쓰려는 순간, 원소가 일어나 그를 막았다.
“그만! 그는 황실의 일원이다.”
유비는 놀란 표정으로 허유가 던진 죽간을 읽고는 나아가 원술의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장군, 우제(愚弟)들이 소인의 상황을 몰라 역적을 돕고 있는 것일 겁니다. 간악한 조조가 우제들을 속이고 있는 것일 테니, 제가 직접 전장에 나가겠습니다. 만일 저의 생사를 안다면 전향해 올 것입니다.”
원소는 유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문추와 같이 가십쇼.”
“추!”
“예! 주공!”
“연진의 방호가 약하다고 하니 일만의 정병과 기병 오천을 이끌고 가게. 그곳을 무너트린 뒤 백마의 상황을 살피고 공격하게.”
“명을 받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