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232
(232)
“봉고차를 훔쳐서 저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 최광서의 어머니시라고요?”
“네. 죄송합니다.”
“최광서라는 아이가 중학생이라던데 맞습니까?”
“네.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진명은 잠시간 말을 않고 무릎 꿇고 있는 중년 여인을 바라봤다.
자신을 친 피의자가 어떤 아이라는 것은 이미 진술서를 받으러 온 경찰에게 충분히 들었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도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차를 훔쳐 사고를 냈음에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만 받아 온 피의자.
물론 자신도 용서해 줄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눈물로 무릎을 꿇고 대신 용서를 빌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를 보고 있으니 굳건했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부인.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부인은 1년이 넘도록 전화 한 통 없었다. 자신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딸과 아들에게는 연락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눈앞의 여인은 죄지은 아들을 대신해 여기까지 찾아와 눈물로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이 여인의 눈물이 어쩌면 자신을 속이기 위한 악어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바람난 부인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정진명은 복잡해지는 마음을 가다듬고 중년 여인에게 물었다.
“최광서 학생이 저를 차로 치기 이전에도 여러 번 차를 훔쳐 사고를 냈다던데, 왜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방치하신 겁니까?”
“방치라니요?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이 어긋난 길로 가는데 방치를 하겠습니까? 타이르고 혼내고 심지어 방에서 못 나가게 가둬 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때만 지나면 다시 사고를 치니…… 흐흑…… 그저 이렇게 자식이 사고 칠 때마다 피해자를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비는 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흐흐흑…….”
중년 여인의 말을 듣고 있던 정진명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식이 사고 칠 때마다 부모가 지금처럼 대신 용서를 받아 버렸기에 정작 반성해야 할 당사자는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자신의 마음이 약해져 아이를 용서한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도 사고를 치리라.
‘내가 자칫 잘못 생각할 뻔했구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제가 만약 용서를 한다면 최광서 학생은 이번에도 가벼운 처벌만 받겠지요?”
정진명의 질문을 들은 최광서의 어머니는 우는 중에도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의도한 대로 되는 것 같은데, 질문의 포인트가 약간 빗나가 있는 느낌.
“네? 아, 그렇겠지요. 하지만 선생님, 이번엔 제가 그놈의 새끼 다리를 몽둥이로 부러뜨려서라도 나쁜 짓을 못 하게 만들겠습니다.”
“아니요. 저도 부모라서 아이를 혼내는 게 얼마나 힘들고 가슴 찢어지는 일인지 알아요. 그러니 이번엔 어머니께서 그런 아픔을 겪을 필요 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법이 아들을 엄벌하게 하세요.”
“네? 아, 아니요. 버, 법보다는 제가 엄벌해야죠. 꼭 제가 엄벌하게 해 주세요.”
“아니에요. 그동안 어머니께서 훈계를 제대로 못 했으니 이번엔 법이 제대로 훈계하게 하세요. 그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오히려 좋은 거예요.”
최광서 어머니 한민혜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흔들렸다.
지금껏 아들이 사고를 쳐서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나 애걸복걸을 해 왔기에 자신의 눈물 연기가 얼마나 잘 먹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먹히지 않은 것일까?
옷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남루한 것을 골라 입었고 머리도 일부러 산발을 하고 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눈물 연기를 위해 마스카라를 진하게 칠해서 눈물이 흐를 때 검은 물이 흐르게 했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 않나?
‘내 연기가 먹히지 않은 이유가 뭐지? 아하! 이런 멍청한 년. 아직까지 돈을 보여 주지 않고 있었구나! 너무 연기에 몰두했어!’
한민혜는 그제야 자신이 빼먹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서둘러 핸드백에서 돈다발을 꺼냈다.
봉투에 넣지 않고 노란 고무줄에 묶은 만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와 천 원짜리가 섞인 돈다발. 고액권 오만 원짜리는 일부러 넣지도 않았다.
얼핏 보기엔 고무줄이 끊어질 정도로 두툼하기에 큰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세어 보면 30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아, 참. 제가 합의금 드리는 것을 깜빡했네요. 제가 시장에서 두부와 콩나물을 팔아 지난 넉 달간 모은 돈이에요. 그 전에 모아 놓은 돈은 이전 피해자들과 합의하느라 다 써 버리고 이것밖에 없어요. 죄송하지만 이거라도 받고 화를 좀 푸세요.”
돈을 내밀자 정진명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 보였다.
‘눈물!’
한민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상대가 눈물을 흘렸다면 자신의 연기가 반쯤은 성공한 거다.
‘그래 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돈을 보고 모질 수 있는 부모는 없지!’
잠시 후 소매로 눈물을 닦은 정진명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도 자식이 둘이나 있는 부모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진짜 벌을 받게 해서 다시는 나쁜 짓을 할 마음을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머니, 저와 함께 마음을 굳게 먹어요.”
“뭐? 아, 아니 뭐라고요?”
최광서의 어머니 한민혜는 순간 입에서 욕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진실한 마음을 느낀 순간 이미 최광서 학생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니 돈은 도로 넣으세요.”
“요, 용서했다면 합의를…….”
“용서했으니 합의를 하면 안 되죠. 최광서 학생을 진심으로 용서했기에 더욱더 바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죗값을 받는 동안 뉘우치게 해 주려는 겁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용서를 했지만 바뀌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엔 방법을 바꾸셔야 합니다.”
한민혜는 혼란스런 표정을 감추며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마지막 말을 꺼냈다.
“과, 광서는 제가 어떻게든 혼을 내서라도 더 이상 사고 치지 못하게 만들 테니, 이 돈으로 병원비라도 보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 병원비는 걱정 마십시오. 병원비에 후유 장애에 대한 보상까지 이미 사회복지과에서 다 해 주기로 했으니까요.”
“네? 사, 사회복지과에서 그런 것도 해 줍니까?”
“저도 이번에 알게 된 건데 저처럼 사정이 딱한 사람은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나 보더라고요.”
“그, 그래요. 그래도 이 돈은 받고 합의서를…….”
“합의는 절대 안 된다니까요. 아이를 오히려 버리는 길이라고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한민혜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병실을 나와야 했다.
‘하아! 어쩌면 저 사람 말처럼 진짜 혼이 나야 광서가 바뀔지도 모르겠군.’
* * *
땀을 뻘뻘 흘리며 오금희를 수련하는 이민호의 얼굴이 깊은 고민을 하는 듯 자못 심각했다.
그가 심각한 것은 얼마 전 정진명 환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 기운을 주입하다 기운이 순간 과하게 빨려 나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게 무슨 현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몇몇 다른 환자에게도 기운을 주입해 봤고, 아주 상태가 안 좋은 위중증 환자에게 기를 주입할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기를 빨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환자가 급속히 회복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은 탈진 현상으로 무기력증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무기력증을 겪었지만 소모한 기운이야 다시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오금희를 수련하면서 그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기운은 채워지지만, 근본적인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고 있어!’
이민호는 그간 위중증 환자에게 빨려 나갔던 기운이 이렇게 오금희를 수련하거나 운기행공을 통해서는 채울 수 없는, 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기는 다른 말로 생기라고도 부른다.
‘중증 환자에게 빨려 나갔던 기운이 나의 생기였다니!’
생기를 채우는 비술은 자신이 알기로 세상에 없었다.
화타였던 시절 평생 오금희를 수련했지만 결국 세월을 이기지는 못해 몸은 늙어 가고 기력은 쇠해졌었다. 비록 남들보다 오래 살 수는 있지만, 생기가 다하는 때가 오면 죽게 되는 것이다.
아마 조조에게 잡혀 옥살이를 하지 않았어도 십 년 정도밖에 더 살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론 혹여 생기가 빨려 나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겠구나!’
지난 며칠의 경험을 통해 생기가 무조건 빨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주 간절한 마음을 품어야 빨려 나간다는 것을 파악했기에 주의한다면 더 이상 수명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
태국 츄라롱콘 국왕 기념병원에서 연수를 온 캄파 바잇 교수는 소용철 교수에게 면박을 당한 후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자신이 식도암 복강경 림프절 곽청술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S대학병원에선 아무리 요구해도 자신에게 수술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온 문자를 보게 됐다.
인터넷이 발달한 덕인지 몇 년 전부터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수술할 의사를 찾기 위해 게시판에 공지 문자를 올리면 그 지역에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들에게 일괄적으로 문자가 가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어! 식도암 환자를 수술해 줄 의사를 찾네.”
불감청 고소원이라더니 하늘이 이렇게 자신에게 기회를 주나 보다.
캄파 바잇은 곧장 공지를 올린 의사의 전화번호를 클릭했다.
신호가 가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이곳이 한국이고 공지를 올린 의사도 한국 의사지만 자신은 안타깝게도 한국말이 아주 서툴렀다. 때문에 영어로 인사를 했다.
“여보세요. 식도암 환자를 수술할 의사를 찾는다는 문자를 보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 네. 그런데 한국 의사가 아니신가 보네요?
“네. 저는 태국 츄라롱콘 국왕 기념병원 흉부외과 폐, 식도 파트 교수 캄파 바잇입니다.”
―아, 태국에서 최고라는 츄라롱콘 국왕 기념병원의 교수님이시군요. 마침 환자분도 태국 사람인데 잘됐네요.
“아! 저와 같은 고국 사람이 환자인 겁니까?”
―네.
“고국의 환자라면 아마 저를 아주 잘 알 겁니다.”
―방금 캄바 바잇 교수님을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른다고 하는데요.
“네! 그, 그래요.”
―하지만 츄라롱콘 국왕 기념병원 의사라고 하니까 아주 반색을 하시네요.
“아! 하하…… 그렇겠죠. 어떻게 제 이름까지 알겠습니까.”
―식도를 절제하고 위장을 대용 식도로 만들어서 문합해야 할 환자인데, 제가 외과라 흉부 쪽 전문의가 필요해서 공지를 올린 겁니다. 먼저 환자의 차트를 교수님께 보내드릴 테니 메일 주소 좀 알려 주십시오.
“네, 제 메일 주소는 영어 소문자로 ch…….”
캄파 바잇 교수는 자신의 메일 주소를 불러 준 후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으로 메일을 열어 환자의 차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 자신이 수술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 환자의 경우 가슴을 열지 않고 식도의 림프절을 복강경으로 절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에! 가슴을 열지 않고 림프절을 복강경으로 절제할 수 있다고요? 그 술기는 얼마 전 S대학병원에서 성공했지만, 아직 널리 보급되지는 않은 술기인데…….
“마침 제가 S대학병원에서 지난 몇 달간 집중적으로 배운 부분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럼 S대학병원에 연수를 오신 거군요.
“네.”
―그럼 언제 수술이 가능하시겠습니까?
“언제라도 오후 늦게는 가능합니다.”
―그러면 이틀 후 오후 7시에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그럼 이틀 후에 수술할 수 있게 환자의 컨디션을 조절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그전에 환자도 한번 뵙고 싶은데 오늘 연수 끝나고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물론 당연히 되죠. 언제쯤 오실 수 있으십니까?
“오후 7시쯤에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환자분께 교수님이 오신다고 말해 놓겠습니다.
“네. 그럼 오후에 뵙겠습니다.”
―네.
캄바 바잇 교수는 통화를 마친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소용철 교수에게 내가 식도암 복강경 림프절 곽청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게 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