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300
(300)
“오빠, 할아버지 조금 안 되어 보이지 않아?”
여동생의 말을 들은 이민호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지금까지 큰아버지만 믿고 거의 모든 재산을 물려주셨는데 말년에 효도는커녕 뒤통수를 맞았으니…… 엄청나게 상심이 크실 것 같아.”
“나도 할아버지가 엄마와 아빠에게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막상 또 저렇게 눈치 보고 계시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
“엄마와 아빠는 뭐라고 하셔?”
“엄마는 오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고 계시고, 아빠는 할아버지를 모실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엄마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면, 아빠의 결정이 탐탁지 않으신가 보네?”
“엄마는 할아버지에게도 서운하고 큰아버지와 큰엄마에게도 서운하고 심지어 아빠에게도 서운한가 봐.”
“아빠에게도 서운하다고? 왜?”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명절 때 한 번씩 내려와서 용돈을 펑펑 주시는 큰엄마와 그렇지 못했던 엄마를 비교하며 구박을 많이 했나 봐 그래서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아 그 부분에 대해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못 하게 막았나 보더라고. 그래서 화가 많이 나 있어.”
이민호는 여동생의 말을 들으며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명절 때 한 번 내려와 용돈을 많이 드린다고 해도 평상시 모시면서 들어가는 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평상시 들어가는 돈은 전혀 계산을 안 하신다.
“아, 참. 오빠. 근데 오늘은 수진이 언니 안 만나?”
“아! 어제 엄마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수진이 백화점 업무 끝나면 여기로 오라고 했어.”
“엄마가 저녁 같이 먹자고 했다고? 나에겐 아무 말 없었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네게 말할 정신이 없었나 보다.”
“하긴, 오늘 하루 종일 엄마가 저기압이지.”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 수진이랑 같이 밥 먹긴 힘들 것 같은데.”
“오빠! 오빠가 왜 유리를 닦고 있어요?”
그때 두 사람의 뒤쪽에서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언제 왔어?”
“언니, 안녕.”
“네, 아가씨. 그런데 아르바이트생 놔두고 왜 두 사람이 추운데 밖에서 유리를 닦고 있어요?”
“아! 그게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해요.”
“복잡해도 좋으니 설명을 해 주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 있어요. 거의 다 닦았으니 금방 들어갈게요.”
“오빠랑 아가씨가 여기서 유리를 닦고 있는데 저만 안으로 들어가라고요? 그럼 안에 계신 부모님이 저를 어떻게 보겠어요?”
수진이 걸레를 집어 들자 미희가 만류했다.
“거의 다 끝나서 도울 거 없으니 먼저 들어가 있어요.”
“아니에요. 그래도 도울게요. 유리 닦는 건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왠지 재밌을 것 같아요.”
순간 미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네에? 유리 닦는 걸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어요?”
“네.”
“그, 그럼 한번 닦아 보세요. 그다지 재밌지는 않지만…….”
수진은 두 사람의 옆으로 가 유리를 닦으며 넌지시 물었다.
“조금 전에 설명하자면 복잡하다고 한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에요?”
“아! 그게…….”
여동생이 자신의 눈치를 보자 이민호는 피식 웃었다.
“수진이도 우리 집안의 일은 대충 알고 있으니 그냥 사실대로 말해 줘도 돼.”
“아, 그래. 언니 우리가 왜 여기서 유리창을 닦고 있냐 하면 오늘 할아버지가…….”
미희가 봇물 터지듯 그간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자 수진의 눈에서 냉기가 흘렀다.
“……그래서 오빠와 내가 여기서 유리창을 닦고 있고 안에 계신 할아버지는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예요.”
미희가 모든 이야기를 끝내자 수진이 냉랭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예전에 오빠가 사촌 형이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부터 못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뒤통수까지 치다니. 정말 가만 둬서는 안 되겠네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땅 내놓으라고 했을 때는 앞으로 잘할 테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가 며칠 후 인석이 오빠에게 땅을 다 물려줬다고 하는 걸로 봐서,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둘러 증여를 해 버린 것 같아요.”
“그랬겠죠. 그 얄팍하고 얄미운 속내가 훤히 보이네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민호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아, 참. 수진아, 예전에 인석이 형 올해 안에 해외 오지로 발령 낼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네, 했어요.”
“이참에 발령 내 버리자.”
“그래도 될까요?”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사실은 오빠랑 저랑 결혼한 이후에 오지로 발령을 내려고 했거든요.”
“굳이 결혼한 이후로 미룰 필요가 있나?”
“오지에 있으면 결혼식에 참석을 못 할 것 같아서요.”
“이미 우리 부모님과 큰집은 사이가 멀어져 버린 터라 결혼식에 안 오는 게 차라리 나아.”
“그래요.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말해서 이번 달 안에 오지로 발령을 내라고 할게요.”
“고마워.”
“뭘요. 사실 저도 우유 없이 식빵을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했는데 잘됐죠.”
* * *
서요셉 과장은 회진을 돌 때마다 손미향 환자의 배양 자가 표피 세포 이식 부위를 꼼꼼히 살펴봤다.
수술 후 처음 며칠은 세포이식수술이 얼마나 잘 됐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수술이 얼마나 잘됐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허허…… 믿기지가 않는군. 아무리 잘해도 이식 성공률이 70퍼센트를 넘지 못하는데.”
서요셉 과장은 이민호가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한 괴사세포를 일일이 손으로 만져 구별한 후 절제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신은 아무리 만져도 괴사 세포와 정상 세포가 구별되지 않았는데, 그걸 수술 장갑을 낀 손으로 만져 구별해 냈다.
“함 교수가 보기엔 어때?”
서요셉 과장의 물음에 옆에서 같이 손미향 환자의 배와 가슴을 살피고 있던 함은옥 교수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최하 95퍼센트 이상 성공한 것 같아요. 이 정도면 퇴원할 때쯤 되면 화상을 입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함 교수가 보기에도 그렇지? 허, 참. 난 아무리 손끝으로 괴사 된 세포와 정상 세포가 어떻게 다른지 느껴 보려 해도 느낄 수가 없던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장님께 이민호 선생이 어떻게 수술했는지를 듣고 다른 화상 환자를 치료할 때 손으로 만져 괴사 된 세포를 찾아내려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민호 선생의 손가락 끝은 곤충의 더듬이처럼 발달하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힘드네요. 정말 그 정도는 되어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거참. 결국 이렇게 이식 성공률이 높은 수술은 오직 이민호 선생만 할 수 있다는 거네. 이건 어떻게 레지던트 선생들에게 배워 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다른 교수나 레지던트 선생들에게도 수술 장갑 낀 손으로 정상 세포와 괴사 세포를 구분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구분할 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두 사람을 따르던 레지던트와 인턴들은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수술 분야에서는 괴물이라고 불리는 규격외의 존재가 또 한 번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증명했다.
* * *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이민호는 자신의 핸드폰에 수십 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재중 통화를 확인하니 모두 사촌 형인 이인석의 전화였고 문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진이가 이번 달 안에 인사 발령을 낸다고 했는데, 벌써 낸 건가?”
문자를 확인해 보니 왜 전화를 받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수진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까지 아주 다양했다.
띠리리릭…….
문자를 확인하고 있는데 또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사촌 형.
이민호는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사람이 적은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중간에 전화가 한 번 끊어졌다가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울렸다.
“여보세요.”
―야! 이민호, 너 왜 이리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이민호는 전화를 받다가 상대의 고성에 귀청이 아파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왜 갑자기 소릴 질러요? 수술 중이었어요.”
―수술 중이라도 핸드폰이 계속 울리면 간호사를 시켜서라도 받았어야지.
“형이 잘 모르는 모양인데, 수술 중에는 보통 무음으로 해 놔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그,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예요?”
―너, 너 여자 친구 시켜서 나의 인사 발령을 연구소도 없는 마다가스카르로 내게 했지?
이민호는 순간 사촌 형의 빠른 눈치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이미 수진이가 장인어른에게 이야기해서 인사 발령을 낸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전화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뭐, 형을 오지로 인사 발령을 내 버리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마다가스카르인지는 몰랐네요.”
―너, 이 미친 새끼. 제정신이야? 네가 뭔데 내 인사에 관여해서 오지로 발령을 낸 거야?
“형네 집으로 간 할아버지가 뽀삔가 하는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다가 미희 집으로 가 얹혀사시는 것이 엿 같아서 여자 친구에게 푸념을 조금 했는데, 그게 형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네요.”
―뭐, 뭐! 엿 같다고? 너 말 함부로 할래?
“엿 같은 것을 엿 같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요? 할아버지에게 들으니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에게 물려준 땅을 돌려 달라고 했더니 급하게 형 앞으로 돌려 버렸다면서요? 그 땅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에게 물려줬으면 저와 미희에게 올 땅이었어요. 그걸 지금 형이 꿀꺽한 건데…… 엿 같다는 말도 못 한다는 건가요?”
―부, 부모님 일은 부모님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이고 그 불똥이 나에게까지 튀어선 안 되지.
“뭔 개소리예요? 나와 미희가 이미 금전적인 손해를 봤고 그래서 형을 오지로 발령 내라고 부탁을 한 건데. 형은 나와 미희에게 미안한 감정은 눈곱만큼도 없잖아요.”
―내가 부모님에게 재산 물려받은 건데 왜 네게 미안해해?
“거 봐요. 형은 그렇게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니 나도 편하게 형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거예요.”
―하아! 돌아 버리겠네. 어지간하면 좋게 말로 해결하려 했더니…… 너 조금만 기다려라. 네가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 형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테니까!
“하하, 그럼 형은 나에 대해 잘 아세요? 서로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은…….”
틱.
이민호는 말하는 중에 상대가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을 알고 피식 웃었다.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병원으로 와서 한바탕하려는 것 같은데, 귀찮게 내가 상대할 필요도 없지.”
사촌 형이 와서 행패를 부려도 별로 두렵지 않았지만 분명 환자를 진료하는 데 영향을 받을 것이고 병원 사람들의 시선도 집중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할 필요는 없었다.
이민호는 시큐리티 팀장에게 문자로 사촌 형의 사진을 전송한 후 전화를 해서 사촌 형이 병원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시큐리티 팀장은 이미 이민호가 얼마나 많은 돈을 기부받았는지 알고 있었고, 또 병원장이나 부원장이 그에게 쩔쩔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걱정 마십시오. 병원 안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업무도 많은데 이런 개인적인 부탁까지 드려서.”
―아닙니다. 이민호 선생님의 진료를 방해할 사람을 차단하는 건데 어떻게 개인적인 부탁입니까? 이런 게 바로 저희가 할 일입니다.
“그래요.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아, 참. 그런데 그렇게 이민호 선생님께 해코지를 할 사람이라면 퇴근 후 해코지를 하려고 기다릴 수도 있는데…… 퇴근 후 집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시큐리티를 붙여 드릴까요?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원하신다면 제 재량으로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 저 오늘 당직이에요.”
―아! 아, 알겠습니다. 야간 근무자들에게도 단단히 일러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