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 초월[超越] vs 극진[極眞] (2)
그런 야차(夜叉)와도 같은 한만철의 모습은 포기를 모르는 듯한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채 죽음을 불사하는 한만철의 태도는 극진(極眞)의 정신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역시 한만철이야.”
“괜히 4대 길드장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만!”
“김서준도 엄청났지만, 한만철도 만만히 볼 게 아니었어!”
“극진의 정신. 극진검!”
그리고 그런 한만철의 모습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한만철을 칭찬했다.
“오시오!”
한만철은 호기롭게 서준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한만철을 말없이 한참동안이나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리고는 툭, 한만철을 향해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흑룡에게 굴복하셨습니까?”
흠칫, 몸을 떠는 한만철.
“그래서 제게 이런 수작질을 펼치시는 겁니까? 지지 않기 위해서? 그저 승리만을 바라고?”
한만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극진검(極眞劍)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불굴의 정신, 극진(極眞).
사실… 서준은 그 정신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초월자 학원을 접하기 전, 서준은 한만철에 대한 묘한 환상마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문철에게서 5대 길드에 대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
서준은 존경해 마지않던 극진에 대한 실망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게 한원제님께서 말씀하시던 극진(極眞)입니까?”
극진의 정신을 모욕한 한만철에 대한 실망이었다.
사실 극진검(極眞劍)의 창시자는 한만철이 아니었다.
극진검의 창시자는 다름 아닌 한만철의 아버지, 한원제였다.
그리고 한원제는 대격변 시절의 각성자.
대격변 시절 때, 죽은 각성자 중 하나였다.
대격변 시절 때 죽은 각성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각성자들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수가 많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대격변 초기.
대격변이라는 말조차 아직 생소하던 시절.
지구에 갑작스레 등장한 몬스터라는 개념은 끔찍한 재해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의 화기가 전혀 통하지 몬스터들은 종말,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한 번은 대피소가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정부와 군의 판단은 대피소를 버린다였다.
대피소를 포위한 몬스터들의 수는 당시의 각성자 수준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던 것은 각성자 뿐이다.
그리고 대격변 초기에는 각성자의 존재는 정말로 귀한 시절이었다.
정부는 그 귀중한 인력을 사지로 내몰 수가 없었다.
당시 5인의 영웅들은 다른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느라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5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
홀연히 나선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극진검의 창시자, 한원제였다.
오직 한원제만이 그 싸움을 하겠노라 선언했다.
모든 이가 뜯어 말렸으나 한원제는 요지부동.
그때 당시, 한원제가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극진(極眞)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모든 최선을 다했는가. 죽을 만큼 치열하게 싸웠는가.’
‘상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었는가.’
한원제는 홀로 몬스터들을 뚫어내었다.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 고개 젓던 그 몬스터들의 군단을, 단 한 자루의 검으로 뚫어내었다.
그리고 끝끝내 5만명의 사람들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구해내는 기적을 이루어내며 작렬하게 생을 마감했다.
서준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수연의 할아버지가 그때 당시 목숨을 구제 받은 5만명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수연의 할아버지는 한원제에게 감복해 자신의 아들이 곧 한원제의 자식이라며 지은 이름이 바로 석만철.
수연의 아버지이자 서준과 10년 동안 몬스터 사체 업무를 같이 해온 석만철이 눈앞의 한만철과 이름이 같은 이유였다.
더하여 그 당시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이름.
야차(夜叉) 한원제.
이 이름이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한만철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만일 한원제가 살아 있었다면.
현재 검성(劍星)과 쌍벽을 이루었을 영웅이라 평가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원제가 구사했던 극진검은 검성 마저 위력이 상당한 검이라 평할 정도.
오죽하면 그 극진검을 참고하여 자신의 검술을 보완했을 정도였다.
검성이 평가한 극진검(極眞劍)은 한만철의 극진검이 아닌.
대격변 시절, 한원제의 극진검(極眞劍).
극진(極眞)은 그런 정신이다.
서준이 존경하고 또 추구하는 정신.
그런데.
“쪽팔리지도 않습니까?”
한만철의 극진은 그렇지가 않았다.
추하고 또 더럽다.
한만철의 극진은 거짓된 극진이었다.
“한원제님을 뵙기에 쪽팔리지도 않으십니까?”
“네가 뭘 안다고 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느냐!”
서준이 한원제의 이름을 언급하자 한만철이 격하게 반응했다.
동시에 한만철의 전신으로 터져나오는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감히 네가 아버지의 이름을···”
마치 역린을 건드린 것만 같은 모습.
하지만 서준은 되려 싸늘하게 일갈했다.
“죽여달라 하셨죠.”
흠칫.
그 서슬 퍼런 살기에 한만철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서준은 그런 한만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롱기누스의 창을 키비시스에 넣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처음 말했던 대로 한달··· 아니, 두달만 누워계시죠.”
이어 서준은 주먹을 단단히 말아쥐었다.
마치 이제부터는 주먹으로 상대하겠다는 태도였다.
반면에 한만철은 아직 검을 들고 있는 상태.
아무리 한만철이 기운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만철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극진의 정신을 깔보지 마라!! 난···!”
타닥.
하지만 한만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준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한만철을 하던 말을 멈추고 황급히 검을 치켜들었다.
서준이 갑자기 치고들어 올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만철은 곧장 서준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러나 기묘하기 짝이 없는 서준의 움직임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서준의 신형.
한만철은 전신의 기운을 흩뿌리며 서준의 기척을 찾았다.
그 순간.
“너야말로 극진(極眞)의 정신을 깔보지마.”
한만철의 뒤에서 들려오는 서준의 싸늘한 목소리.
꽈아앙!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한만철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들 속에서.
“커헉!”
한만철은 자신에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저 전신을 강타는 끔찍한 고통과 몸이 공중을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 정도였다.
뒤흔들리는 시야 속.
그리고 다시.
꽈아아아앙!
“커허헉!”
공중을 부유하던 한만철의 몸이 돌연 땅으로 거칠게 쳐박혔다.
아찔한 통증과 함께 땅이 움푹, 파인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한만철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물론 알고는 있다.
주먹에 맞았다.
그런데 대체 언제···?
그 타격의 과정을 전혀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게다 지금 느껴지는 이 끔찍한 통증은 도저히 사람의 주먹에 맞았다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 놈이···!”
하지만 한만철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튕겨지는 몸을 곧장 일으켜 동시에 검을 휘두른다.
참(斬).
휘두르는 참격으로 공간이 격하며 소름끼치는 풍압을 자아낸다.
하지만.
꽈아아아아아앙!
강맹한 힘이 요동치며 한만철의 몸이 다시금 공중을 부유했다.
그리고 다시, 꽈아아앙!
부풀고 또 터진다.
막대한 힘의 흐름 안으로 파고 들어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생각의 찰나.
서준은 그 찰나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갠다.
어느 틈엔가 서준은 한만철의 코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콰아아아아아아앙!!
“크허헉!”
한만철의 육신이 바닥에 쳐박힌다.
지면을 통째로 주저앉게 만든 그 힘 속에서 한만철은 정신이 점멸한다.
빠르다.
너무도 빠르다.
생각의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듯 서준의 움직임은 반응할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 대체 몇 번의 타격이 이루어진 것인지 한만철은 인지할 수조차 없었다.
의식이 깜빡이며 정신이 끊어진다.
번쩍.
한만철의 눈이 떠지며 푸르른 하늘이 비쳐보였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어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서준은 느긋한 모습으로 서서 그것을 기다렸다.
정신을 차릴 틈을 준 것이다.
“······”
비적비적 일어선 한만철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차마 내뱉을 수가 없다.
“쿨럭···!”
왈칵, 피를 토하는 한만철.
한만철은 그와 동시에 눈을 반짝이며 서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우우우웅!
공간을 격하는 참(斬)의 일격은 매서운 풍압을 일으키며 아직 한만철의 건재함을 알려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서준을 베어낼 만한 힘은 그 어디에도 없다.
콰아아아앙!
한만철의 복부가 함몰된 것처럼 움푹, 파고들었다.
비틀거리며 물러서던 한만철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보이지가··· 않는다.
닿을 수가 없다. 대처가 안된다.
‘겨, 격이 다르다···’
한만철은 순간적으로나마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꽈아아앙!
“커허허헉!!”
싸움 자체가 되질 않는다.
물론 서준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아래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4대 길드의 수장이자, S급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헌터였으니까.
아무리 서준이 뛰어나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수강생 수준이라 생각했다.
끽해야 A급 헌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면 끝에 서준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등할 것이라 생각했다.
A급 헌터에서 S급 헌터로 격상한 것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준의 움직임은 화려하지 않았다.
마치 극진검의 묘리처럼 단조롭고 또 단순했다.
그렇기에.
꽈아아아아앙!
그것은 괴악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커허허헉!!”
닿을 수가 없다. 범접할 수가 없다.
생각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친다.
이 압도적인 격차는 한만철 절망시키면서도 또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꽈드드드드득!!
둔탁한 울림.
폭음과 함께 세상이 새하얗게 물든다.
“······”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어떠한 생각도, 관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딱 하나.
서준이 맨주먹으로 한만철을 두들겨 패고 있다 라는 사실만 인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서준이 4대 길드의 수장을 상대하는 데에는.
그것은 방금 전에 서준이 보였던 압도적인 힘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꽈아아아아앙!!
의식이 흐려지고 귓가에는 알 수 없는 환청만이 맴돈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은 한만철의 갈비뼈를 부러드리고 내장을 터트렸다.
힘없이 날아간 한만철의 육신이 멀찍이 떨어져 땅에 뒹굴렀다.
정신이 아찔하다.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붙잡고 무너지는 자세를 부여잡으려 했지만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순간, 우악스럽게 멱살이 잡히며 서준이 주먹이 쇄도해온다.
“그, 그만···!”
한만철은 힘겹게 또 절박하게 소리를 내뱉었다.
우뚝, 멈추는 서준의 주먹.
“차, 차라리··· 죽이시오···”
한만철은 간절한 목소리로 애걸했다.
떨리는 한만철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서준은 다시 한만철의 멱살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그리고는 전신에 신력(神力)을 담았다.
꽈드드드드드득!!!
근육이 일시에 수축하며 무시무시한 괴음이 서준의 몸에서 터져나왔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무한한 힘.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장내에 휘몰아쳤다.
마치 공간이 진동하듯 부르르, 공기가 떨려온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름끼치는 힘의 기세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서준은 신력(神力)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만철을 바닥에 내려꽂았다.
쩌─────────엉!!
한만철의 몸이 바닥에 꽂히면서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불길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심한 가뭄에 땅이 메마르듯 거미줄 같은 균열이 쩌저적, 일어났다.
서준은 터벅, 다시 한만철의 멱살을 쥐어 들어보였다.
그래도 4대 길드장이라는 짬밥이 있는 걸까.
한만철은 죽지도 그렇다고 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한만철은 더 이상 한만철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뭉개져있었다.
“······사, 살려···”
한만철은 끝내 서준을 향해 목숨을 구걸했다.
그의 거짓된 극진(極眞)의 한계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내, 내··· 만점을 드리리다··· 그러니 부디···”
서준은 말없이 그런 한만철을 다시 바라봤다.
추했다. 아니, 추함을 넘어 추악했다.
이건 극진(極眞)의 길을 걷는 자가 보일 태도가 아니었다.
아마, 류진철에게도 이런 식으로 굴복했겠지.
그렇기에 서준은 한만철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살려주면, 이대로 끝을 내면 언제 뒤돌아 말을 바꿀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거짓된 극진이라도 극진은 극진인 것일까.
한만철은 쉽사리 기절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서준이 만점을 받기 위해서는 한만철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건 서준으로서도 섣불리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프로 헌터 시험은 말 그대로 시험이다.
시험의 장에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곧 살인이나 다름 없었다.
응시생이 심사관을 죽인다.
이건 심하면 자격증 박탈까지도 건드릴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어쩌면 류진철은 이런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해 한만철을 보낸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서준이 뛰어나다고 한들 4대 길드장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러나 정말 천만에 하나.
서준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들, 서준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한만철을 죽이는 것뿐이니까.
류진철은 최악에 최악까지 고려하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모든 상황들이 류진철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만철을 죽이지 않는 한 서준이 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방법은 없다.
처음부터 서준이 A급 헌터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서준이 걷고자 하는 초월자란 방법이 없으면 방법을 만드는 자들.
그 모든 불가능들을 초월(超越)하는 존재들이다.
“두달 정도만 누워계시라고.”
서준은 류진철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삼단전(三丹田)을 활성화시켰다.
하단전에서 태동한 이글거리는 화염은 중단전의 써클을 타고 흘러 증폭에 증폭을 거듭했다.
───────────!!
정의할 수 없는 그 어떠한 힘이 서준의 전신으로 폭사한다.
그것은 상식과 인지를 아득히 넘어, 인과를 초월한 불가사의한 힘이었다.
서준은 그 힘을 한만철에게 쏟아부었다.
콰콰콰콰콰콰콰!!!
“···!!!”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힘이, 인과를 초월한 까마득한 힘이 한만철을 집어삼킨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잠식해온다.
한만철은 입을 쩌억, 벌려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눈이 까뒤집어지며 정신이 아찔해진다.
새하얗게 물든 두 눈이 새파란 빛에 젖어간다.
전신의 감각이 드문드문 끊긴다.
실핏줄 하나하나가 터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 연이어 몰아친다.
파지직!
한만철이 감당할 수 있는 마나의 그릇이 부서진다.
한만철의 정신의 그릇이 서서히 깨져간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한만철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거대한 힘의 폭풍은 계속해서 쏟아져내렸다.
한만철의 정신이 점점 흐릿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러한 찰나의 순간들 속에서.
한만철은 서준의 정신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건··· 언젠가 한만철이 마주했던 정신이기도 했다.
그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굴복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
극진(極眞)이 끝내 걷고자 하는 길이자, 최종적으로 나아가야할 궁극의 길.
아주 오래 전, 자신의 아버지 한원제에게서 찰나 간 엿보았던 정신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정신이었다.
‘어, 어, 어째서···’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서준에게서 보이는 걸까.
서준의 눈동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눈동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나, 여전히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극진(極眞)의 정신, 아득한 그 너머.
초월(超越).
한만철은 흐릿해지는 정신과 시야 속에서 서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런데 왜일까.
그런 한만철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서준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아버지, 한원제가 서있었다.
한원제는 말한다.
‘극진(極眞)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모든 최선을 다했는가. 죽을 만큼 치열하게 싸웠는가.’
‘상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었는가.’
이젠 기억조차 희미해져버린 그 날의 일. 그때의 등.
애써 외면하려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그리하여 자신에게 단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는가.’
“자신에게 단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서준의 일갈에 한만철은 끝내 정신을 잃어버렸다.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군림해온 4대 길드의 수장, 한만철.
그 거짓된 극진(極眞)이.
털썩.
초월(超越) 앞에 꺾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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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신을 잃은 한만철과 함께 장내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경악과 충격.
그 어떠한 단어로도 이들이 받는 심정을 표현할 수도, 대변할 수도 없었다.
서준은 묵묵히 서있었다.
한만철은 희생양이었다.
서준이 A급 헌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게 하기 위한 희생양.
그리고 그 최악의 경우는 서준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었다.
행여 일이 잘못되더라도 서준과 함께 자멸하게 하려했던 추악한 계획.
결국 이 일의 배후는 따로 있었다.
이 모든 일을 꾸미고 계획한 자.
그러나 정작 본인은 뒤에 숨어 지켜보는 자.
이득과 이해 관계만을 따져 사람 목숨 따위는 체스판 위의 체스말처럼 써버리는 프로 헌터 세계의 지배자.
서준은 이를 뿌득, 갈았다.
“류진철!!”
갑작스러운 서준의 외침에 장내의 모든 이가 서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중계로 지켜보던 사람들 또한 서준을 주목했다.
내려앉는 묵직한 침묵.
그렇게 한국 사회 전체가 서준을 주목하는 가운데.
서준이 냉기보다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다음은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