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pped in the Academy’s Eroge RAW novel - Chapter (506)
루시퍼 (3)
아이리스 길드는 프랑스의 대표 길드이자 전 세계 최고의 정보 길드다.
정보는 물론이고 무력까지 강한 아이리스 길드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 걸림돌은 후계자가 두 명이라는 것.
길드장의 딸인 아이린과 엘리스는 둘 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재능과 능력을 갖춘 아이린과 최근 폭발적인 성장을 한 엘리스.
두 자매의 경쟁이 심화되면 길드 내부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린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엘리스가 정식 후계자가 된 이후로는 아이리스 길드의 위상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정보길드가 아닌, 전 세계 최고의 길드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을 정도였다.
동시에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도 영향력을 넓혔고, 한국 지부도 그중 하나였다.
한국 지부장인 강효린 박사는 아카데미 교수직을 지내고 있었고, 예전부터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깊은 관계를 쌓아갔다.
당연히 협상이나 교섭도 쉬웠는데, 엘리스의 첫 경험이 빅토리아 아카데미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
단정한 정장을 챙겨 입은 엘리스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거울에 비치는 아름다운 얼굴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흐흠.”
엘리스는 얼굴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은 아이리스 길드의 후계자로서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날이다.
바로 한국으로 들어온 루시퍼의 처리를 위해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협상을 하는 것이다.
‘아이리스 길드의 후계자라는 자각을 가져야지.’
자신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를 참는다.
아이리스 길드의 대표는 조금 더 품격 있게 움직여야 한다.
겨우 협상을 하러 나온 것에 기뻐해서는 품위가 떨어진다.
그녀가 만나러 온 사람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 문수린.
얼굴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마인이었지.’
엘리스는 문수린의 커다란 비밀을 알고 있다.
그 정보를 쓴 적은 없어도 알고 있다는 것으로도 협상에 도움이 된다.
‘이호연하고도 자주 만나는 것 같고….’
자신의 경쟁자인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공적인 자리였으니 그 정도는 신경 쓸 수 있다.
그건 문수린도 마찬가지겠지.
띠링-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텅 빈 학생회실이 보였다.
학생회 인원들은 전부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
엘리스와 문수린은 학생의 신분인데도 집단을 대표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학생 회장실에 보이는 문수린을 보며 경직된 근육을 풀었다.
똑똑.
학생회장실에 노크를 하며 문을 연 엘리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님. 아이리스 길드의 엘리스입니다. 오늘은 아카데미의 협력을 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반가워요. 엘리스 양.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문수린이에요.”
문수린은 여유롭게 웃으며 자리를 내줬다.
이런 자리가 처음인 엘리스와 다르게 문수린은 경험이 많았다.
편하게 하던 호칭도 오늘만큼은 공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 네. 말씀은 이미 드렸지만, 오늘은 아카데미의 협력을 받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엘리스는 긴장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빅토리아 길드의 조사팀을 습격한 루시퍼가 한국에 들어왔다.
그 위험성은 이미 공문으로 보냈지만, 다시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루시퍼라고 했었죠? 어젯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던전 조사팀 습격 사건의 주도자.”
던전 폭주 현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였기에, 각국의 거대 길드들도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젯밤, 제일 규모가 큰 세 개 던전의 조사팀이 전멸한 사건이 있었다.
문수린도 그 사건은 알고 있었는데, 매우 큰 규모의 사건인데 범인이 단 한 명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범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아이리스 길드와 면담을 하는 건 당연했다.
“맞습니다. 오늘 아이리스 길드에서 그 움직임을 잡았습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지원이 필요해요.”
“흐음….”
문수린은 아이리스 길드에서 온 공문을 다시 확인했다.
길게 늘여 쓰여있었지만, 정리하면 루시퍼를 잡는 데에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힘을 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하룻밤만에 세 개의 조사팀을 전멸시킨 루시퍼의 위험성은 문수린도 알고 있다.
그 마인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건 분명히 위험한 사실이다.
하지만, 본래 협상은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마인 한 명에게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어.’
지금까지 아이리스 길드의 태도와 달랐다.
대표로 온 사람의 능숙함이 문제가 아니다.
마인 한 명일 뿐이다.
심지어 본국인 프랑스도 아니고 한국에 나타났다.
그런데 아이리스 길드에서 앞장서 협력을 요구하는 건 어색한 일이다.
문수린은 직감했다.
루시퍼라는 마인을 잡는 사안이 그만큼 아이리스 길드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금만 떠볼까.’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얼마나 다급한 지 아는 것이다.
그걸 알아챈 이상, 문수린에게는 여유가 생긴다.
“다른 기관에서 받은 협력은 어떻게 되나요?”
“… 아쉽게도 아직 확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옆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는 말을 들어도 크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피해가 오기 전까지는 실제로 위험한 정도를 알 수 없다.
루시퍼가 지옥에서 온 마왕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문수린에게 루시퍼는 강한 마인일 뿐이다.
“그렇군요… 사실 헌터 협회가 움직이기 전에는 아카데미에서도 먼저 움직이기엔 부담이 있긴 하네요.”
“… 회장님. 루시퍼는 다른 마인들과 다릅니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몰라요.”
“일 년 전에 나타난 패트리샤도 그랬고 반년 전에 나타난 옥타비아 때도 그렇게 말했었죠.”
문수린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로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아카데미의 힘이 움직이면 일어날 일과 그 이후의 대처.
사소한 이권 다툼과 언론의 움직임.
상대는 이런 자리가 처음인 것처럼 보이는 엘리스.
‘눈이 떨리고 있어.’
문수린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엘리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흔들어줘도 당황하는 게 눈에 보이고 있었다.
아이리스 길드와 관계를 생각해서 결국은 들어주겠지만, 저 쪽에서 준비한 것 정도는 받아내야한다.
‘… 어쩌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엘리스는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앉은 문수린이 태산같이 높은 착각이 들었다.
문수린이 읽은 대로, 엘리스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이리스 길드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관계는 굉장히 원만했으니 협상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언니가 말했던 걸 써야 하나?’
물론 아이리스 길드에서 이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한 집단의 힘을 빌려달라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니까.
아이린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처를 대충 예상했고, 아이리스 길드가 가지고있는 이권을 몇 가지 양보하라고 말했다.
준비해온 이권을 양보한다면 문수린도 순순히 물러나겠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어른의 거래’였다.
하지만, 엘리스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직접 왔는데도 저런 태도인 거야?’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협상자로 나갈 때부터 무조건 성공하는 협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겐 문수린의 아버지가 마인이라는 정보가 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극비 정보.
문수린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부담일 텐데,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협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일에 약점을 들먹이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첫 협상은 자신의 능력으로 해내고 싶었다.
‘최대한 원만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
아이리스 길드의 이권도 양보하지 않으며 문수린의 약점도 사용하지 않는.
서로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협상은 없을까.
무슨 말을 해야 문수린을 설득할 수 있을까.
‘아….’
순간, 엘리스의 머리가 맑아졌다.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짧은 고민을 하던 엘리스는 금방 방법을 떠올렸다.
아이리스 길드의 조사팀을 순식간에 전멸시킨 루시퍼의 위험성은 말로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엘리스가 루시퍼에 대한 위험성을 깨달은 건 테러가 일어나기 전이다.
직접 루시퍼를 만난 아이린이 그때의 일을 말해주자마자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호연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린의 지인을 습격했다고 한다.
루시퍼는 이호연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혹시 이걸로 넘어오지 않을까.’
엘리스는 여유로운 표정을 하는 문수린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호연과 상관이 있어요….”
“네?”
엘리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문수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협상과 전혀 관련 없는 그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호연이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요.”
“… 엘리스 양. 뭐라고 했죠?”
이호연의 이름을 들은 문수린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신감을 얻은 엘리스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던전 조사팀 습격 사건의 주도자 루시퍼가 이호연 생도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 책임질 수 있나요? ”
“아이리스 길드의 정보는 틀리지 않습니다. 호연이를 위해서라도… 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오늘 한국에 나타났으니 언제 습격당할지 몰라요.”
“….”
문수린은 엘리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프라이드가 느껴지는 또렷한 눈동자와 차분한 태도.
단순히 협력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쩐지 너무 다급하다했는데….’
그제서야 퍼즐이 맞춰진다.
아이리스 길드의 후계자는 엘리스다.
만약 루시퍼가 이호연을 목표로 한다면, 아이리스 길드가 루시퍼라는 마인에 이상할 정도로 집중하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엘리스는 이호연을 노리는 여자 중 한 명이다.
“… 하아. 서류부터 작성하죠.”
“회장님….”
엘리스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고, 문수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차라리 들어오자마자 이호연의 일이라고 말했다면 곧바로 허락했을 텐데.
괜히 힘만 뺐다.
자신의 꼴이 웃기기도 했다.
상대는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협상하러 왔는데, 자신은 그걸 이용해 이권이나 챙기고 있다니.
그 사실을 몰랐다지만, 괜히 이호연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문수린은 그 감정을 분노로 바꿔 다른 곳으로 돌렸다.
“헌터 협회나 마법사 협회의 도움은 제가 책임지고 받아내겠습니다. 국가의 공적이 나타났는데 자기 이익이나 챙기려 하는 쓰레기들이 저와 같은 공기를 맡고 있다는 게 한스러울 정도네요.”
“…… 맞습니다.”
그 대신 한국에 있는 루시퍼라는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
감히 이호연을 노리다니.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안 될 일이다.
문수린은 이를 악 문채 서류에 사인을 이어갔다.
‘진짜 프로가 되려면 저렇게 손바닥 뒤집 듯 태도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구나.’
엘리스는 문수린의 자세에 감탄하며 세부 사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수린이 전면적으로 협력했기에 협상은 금방 끝났고, 금방 허락을 받겠다고 자신한 문수린은 엘리스가 나가기도 전에 스마트워치로 전화를 시작했다.
“회장님.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문수린입니다. 아이리스 길드의 공문은 확인하셨습니까?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헌터 협회의 전면 협력을 요구합니다. 네? 위험성이 확실하지 않다고요? 알겠습니다.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아니요. 장난이 아니라 진심….”
“….”
방금 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던 문수린도 무서웠는데, 그게 100% 전력이 아니었나 보다.
평소에 주변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문수린과 학생회장인 문수린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엘리스 양. 오늘은 즐거웠어요.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차라도 한 잔 마셔요.”
“네. 꼭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회장님. 저는 진심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엘리스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록 협상은 성공했지만, 공적인 자세 같은 걸 많이 배운 날이었다.
마지막에 전화로 열을 내는 모습은 조금 무서웠지만.
‘회장님 까지 저렇게 만드는 걸 보니 진짜 죄 많은 남자네.’
학생회실을 나온 엘리스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호연의 이름을 꺼낸 것 만으로 저렇게 바뀌는 걸 보니 문수린도 꽤나 중증 같았다.
‘… 내가 할 얘기는 아니지만.’
그딴 바람둥이에 빠진 자신도 꽤나 중증이지.
설마 협상에서 이호연을 사용할 줄이야.
그래도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자신의 집 거실에 여자 4명이 와있는 것도 모른 채.
엘리스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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